김광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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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 모습
성명
김광규(金光圭)
출생
1941년 1월 7일 (83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가족
배우자 정혜영[1], 아들 김진우[2]
학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석사·박사)
경력
중앙고등학교 독일어 교사
부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전임강사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명예교수

1. 개요
2. 생애
3. 가족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독문학자, 교수, 시인.

김광규의 시는 일상적 삶에서 얻은 구체적 체험을 평이한 언어와 명료한 시어로 표현한 일상시이면서 그 속에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생애[편집]


1941년 1월 7일생(83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에서 출생했다.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75년 문학과 지성에 등단했고, 2007년은 제19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이다.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뚤음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뜻이 분명하고 건강하며 읽는 이들에게 쉽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이남호[3]


주요 작품으로는 「묘비명[4],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어린 게의 죽음」, 「아니리」, 「도다리를 먹으며」, 「상행」, 「서울꿩」, 「생각의 사이」[5] 등이 있다.[6]


3. 가족[편집]


김광규, 정혜영 교수 부부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 60학번 동기다. 김교수가 대입 면접시험을 치를 때 정교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연이 없다가 1963년 경주로 떠난 졸업여행에서 가까워져 사귀게 되었고 1964년에 같이 졸업을 하고 김교수가 군대를 마친 1967년에 결혼했다. 1981년 김교수가 한양대학교에 먼저 부임하고 1982년 정교수가 한양대학교에 부임하여 같이 근무하다가 같은 해 정년퇴임했다.


4. 여담[편집]


중학교 3학년 때 작문 교사였던 조병화 시인과 김광식 선생을 만난 것이 작문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 1959년 서울고 3학년 때 월간 문예지 《신문예》가 전국 고등학생들의 문예 작품 가운데 우수상을 뽑아 시상하는 신문예상에서 '청자 앞에서'란 시로 1등을 차지했다. 당시 3등은 '몸 떨리는 계절'을 쓴 순천고 3학년 김승옥이었고, 가작은 '꽃'을 쓴 경기고 3학년 김화영이었다. 당시 심사위원 조지훈은 "'청자 앞에서'는 그 시상의 원숙과 시어의 간명으로 해서 수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라고 심사평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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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2]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3] 그의 네 번째 시집인 '좀팽이처럼'의 해설에 실린 글이다.[4]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었다.[5] 내용은 '학제간 연구' 문서에 있다.[6] 헷갈리는 사람들이 은근 있는데, <와사등>을 쓴 시인은 김광이다. 반대로 김광규의 시를 김광균의 시로 착각한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