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r20240101판에서 저장되지 않은 문서입니다.
자동으로 r20210301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자동으로 r20210301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김기준(1880)
덤프버전 : r20210301
1.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김기준[편집]
김기준은 1880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중국 지린성 연길현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군에 붙잡혀 1920년 11월 2일 혼춘현 두도구에서 총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김기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보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기준[편집]
김기준은 1880년생이며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당촌리 출신이다. 그는 1909년 6월 2일 안규홍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포군을 맡았다. 그는 의병 수십 명과 함께 안규홍을 따라 1909년 9월까지 보성군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소위 폭동죄)로 기소되어 1909년 10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했으나, 1910년 2월 1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김기준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