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박이

덤프버전 :

1. 개요
2. 유래와 변화 과정
3. 구분
4. 해당 가수들의 반응
5. 네 사람의 관계
6. 포스트 김나박이?
7. 여담
8. 비판


1. 개요[편집]


한국의 R&B-발라드[1] 4명의 남가수인 이하 범수, , 효신, 를 뜻하는 인터넷 줄임말 용어.

본래 디시인사이드 가요 갤러리에서 자기들끼리, 2000~2010년대 당시 소위 가창력 본좌를 뽑는다면서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최종적으로 도출된 결과가 공식처럼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국내 대학 서열처럼, 노래 실력 티어로 최상위급을 정한 것. 이후 TV 프로그램에서 언급되거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와 유튜브에서 김나박이와 관련된 컨텐츠 게시물과 영상들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인 의미를 확립하게 되었다.

2. 유래와 변화 과정[편집]


처음엔 그냥 2000년대~2010년대 초반 당시 노래 잘하는 당시 기준 30대 이하 남자 가수가 주제였다.[2] 그렇게 여러 가수가 언급 됐으나 서서히 정리가 되면서 '김나박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시작된건 2011~2012 시절 디시 가요갤러리로 보인다.

논쟁의 진행 과정을 보면 일단 2000년대 초반, 나얼데뷔 직후[3] 화려한 앨범 기록으로 부터 불씨가 시작된다.

  • 2001년 '벌써 일년'의 21주 연속 차트 1위
  • 2002년 '점점'의 8주 연속 1위
  • 2003년 '정말 사랑했을까'의 6주 연속 1위 등[4]

단 한 번의 방송 출연 없이 대히트를 거둔 브라운아이즈, 특히 보컬 측면에선 메인보컬이던 나얼에 대한 대중들의 궁금증이 더해가던 찰나, 베일에 싸여있던 나얼의 라이브 실력이 2004년 첫 콘서트와 함께 공개되었다. 그리고 2005년 나얼의 리메이크 1집 앨범 'Back to the soul flight'이 발매되며(타이틀 곡: 귀로) 나얼이 적어도 R&B 분야에선 음원 뿐만 아니라 라이브마저 대한민국 본좌라는 게 알소동이나 디씨에서 정설이 되었다. 배순탁 작가가 '대한민국 리메이크 앨범 통틀어 올타임 넘버원'이라 했으며, 임진모 평론가가 '모든 가수들의 리메이크 앨범의 방향성을 잡아줬다는 앨범'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앨범 맞다.

그러다 나얼의 독주를 지켜보기 다소 심심했던, 평소에도 vs 싸움과 비교질을 좋아하던 디씨인 포함 몇몇 네티즌은 2006년 어마어마한 폼을 보여주던 크라잉 오열창법의 대가 윤민수를 끌어와 나얼 대항마로 부상시킨다. 유명했던 캐리건 시절. 허나 얼마 못 가 윤민수가 성대결절로 물러나면서 이 대결 구도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게 된다.

짧았던 나 vs 윤 동안에도 당시 기준 대중들에게는 노출이 덜 된 재야의 고수였던 김연우 그리고 김범수, 박효신이 훌륭하고 꾸준한 라이브 실력과 좋은 앨범 작업물을 보여주자, 2009년 디시인사이드 가요갤러리에서 나얼과 이들을 묶어 '4대 본좌'라는 호칭이 생겼다. 하지만 이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이승철은?’, ‘임재범은?’ 같은 여러 레전드 보컬리스트를 언급하며 '본좌'라는 칭호에 거부감을 내비치자, 이를 순화한 '4대 보컬'이라는 칭호에서 '김나박'이라는 표현까지 변했다.[5]

특히 연배가 있던 네티즌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가수만 언급되자, 다른 네티즌을 보컬 역사에 대한 지식도 일천한 어린 넘들 비슷한 취급을 하기도 했다.[6] 그러다보니 나름의 기준이 정해졌는데, 당시 나얼, 박효신, 김범수는 가수로서 전성기에 접어드는 나이였지만 전설이라고 할 순 없는 애매한 경력을 가진 당시 최고의 기량을 가진 30대 초반 전후 무렵 보컬들이었다. 그래서 나이대로 보면 40대로 접어들고 있었던 김연우는 언급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준 아래 '김나박'에 비견될만한 작업물, 가창력을 지닌 이수 역시 추가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면서 ‘이’가 합세된 ‘김나박이’란 단어가 생겨나게 된다.


3. 구분[편집]


우선 이들이 고평가 받는 이유는 3옥타브대의 고음을 진성으로 올리는 가창력과 뛰어난 표현력, 개성을 갖춘 음색에 있다. 초고음이 되는데 그 속에서도 톤이 유지되면서 음색의 희소성과 감정 표현까지 뛰어나기에 고평가 받는 것. 또 꾸준한 연습을 통해 40대 들어서도 큰 기복없는 컨디션을 유지해 난이도 높은 곡들을 콘서트에서 부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7]

이수를 제외한 ‘김나박’ 세 명은 기본적으로 R&B발라드를 주력으로 하는 가수지만, 세 명의 가창 스타일은 다르다. 이것은 락&팝발라드를[8] 표방하는 이수를 포함해 이들 각각의 스타일이 대중들 사이 호불호를 유발하면서 ‘김나박이’의 서열을 가를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또한 현재는 각자만의 확고한 음악 스타일이 갈려있기 때문에 R&B 발라드 보컬이라고 정의할 수도 없다. 각 보컬들의 특징을 대략적으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 김범수는 단단함을 넘어 딱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강한 성대접촉으로 중음과 파워풀한 고음을 소화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깔끔하게 소화한다. 그의 칼 같은 박자감과 정확한 음정, 발성은 실용음악계에서도 학생들에게 추천할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파워, 성량, 안정감 등 김범수의 보컬 장점 대부분은 강한 성대접촉에서 비롯된다. 특유의 까랑까랑하고 단단한 음색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하지만 이 때문인지 나머지 셋에 비해 음색의 풍부함은 떨어져 상대적으로 개성이 적다는 평도 받는다. 이러한 이유인지 히트곡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또 냉정하게 보면 미남은 아니라[9]하관은 미남이다 대중가수로서 손해보는 점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방송 출연과 김나박이 중 가장 대중친화적인 행보를 보여 대중에게 친근한 가수로, 노래 잘하는 가수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 나얼은 R&B 대표주자로[10], 애절한 감정 표현력과 초고음에서까지 힘을 발휘하는 리드미컬하고 정교한 기교가 강점이다. 나얼의 기교는 기본적인 펜타토닉 음계 뿐 아니라 크로매틱과 블루노트를 섞어 매우 다양한 음을 예측 불가능한 박자로 사용하는데, 이를 정확한 분절감으로 소화한다. 또한 나얼 특유의 감미로운 음색은 가녀린 표현의 약음과 강한 표현의 벨팅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도 유지된다. 쩌렁쩌렁 울리는 풍부한 공명의 고음~초고음 역시 국내 최정상급으로, 콘서트에 간 관객들은 석굴암에서 공연하는 줄 알았다는 평을 남기기도 한다. 또한 작곡, 앨범 프로듀싱 능력도 뛰어나서, ‘브라운아이즈’ 시절의 몇 곡을 포함해 ‘브라운아이드소울’ 대부분의 곡과 나얼 본인의 곡들은 대부분 나얼의 손에서 탄생했다.

  • 박효신은 특유의 풍성하고 울림이 강한 흉성에서 나오는 호소력을 가졌다. 맑은 가성 또한 자주 사용하는데, 허스키한 진성과 부드러운 가성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나얼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보이스가 큰 강점이며, 뮤지컬 활동을 시작하고 단단하고 꽉 찬 소리를 내는 모습도 보여준다. 3옥타브 음역대 또한 훌륭하게 소화한다. 다소 소리를 깔아 내던 데뷔초와 달리[11] 7집 이후로는 여린듯 절절한 2옥타브 후반 이상의 음역이 최대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박효신은 가수로 일정 위상에 도달했으나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는데 이는 그에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심지어 기존 창법과 다른 7집 앨범이 발매되자 이전까진 막연히 박효신을 바리톤으로 인식하던 대중들이 (하이)바리톤이냐, 테너냐는 성종 논란을 제기할 정도였다.[12] 또한 박효신은 음악 외적 팬도 있으며, 공연 외 뮤지컬도 하며 가끔씩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등 아예 신비주의에만 매몰되는 스타일도 아니라 소위 덕후 조련을 잘하는 것도 나름의 강점이다.

  • 이수는 튼튼한 성대와 강한 피지컬을 기반으로 파워풀하고 굵직함이 중요시되는 고음역대의 록&팝발라드를 능숙하게 소화한다. 특유의 날카로운 미성에 매우 강한 흉성을 동반한 벨팅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를 매우 수준 높게 구사해 목소리의 파워는 ‘김나박이’ 내에서 최고란 소리를 듣는다. 그의 고음은 거의 포효하는 것에 가까운데, 성대를 얇게 붙인 후 외부근을 개입하고 이를 강한 호흡으로 때려 소리를 낸다. 이런 창법으로 인한 두꺼우면서 째지는, 강렬한 호소력 짙은 음색은 그가 모종의 사건으로 방송가에서 퇴출당한 이후에도 뮤지션으로 롱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13] 때문에 피지컬 최고점이었던 13-17시즌에는[14] 엄청난 성대 힘과 함께 차트를 줄세우는 히트곡을 쏟아내며 김나박이 내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대중성을 자랑해 노래방 덕후들이 많이 따라불렀다가 망했다.

}}}
김범수의 'One Last Cry' 커버

}}}
나얼의 'One Last Cry' 커버

}}}
박효신의 'One Last Cry' 커버

}}}
이수의 'What's Up!' 커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넷 다 스타일이 많이 다른 보컬이므로, 누가 우위냐를 따지는 게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냥 취향 따라 즐기면 된다.

한편, 이수의 경우 과거 성 스캔들 때문에 방송가에선 사실상 퇴출된 상황이라, 주요 방송에서 이 단어가 나올 땐 인터넷 커뮤에서 불 탈(...) 가능성 때문인지 은근슬쩍 이수의 이름을 빼는 경우도 꽤 있다. 예를 들어 놀면 뭐하니? 겨울 노래 구출 작전 당시 김범수가 나왔을 때 유재석이 '김나박' 3대 보컬이라는 식으로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일종의 관용어처럼 된 느낌도 있어서 그로부터 두 달 정도 후에 방송한 라디오 스타에서는 같은 방송국인데도 이수의 이름과 얼굴 사진까지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4. 해당 가수들의 반응[편집]


현재 박효신을 제외하곤 이에 대해 언급한 적들이 있다. 의외로 박효신은 미디어에 간간이 얼굴을 비춘 편임에도 관련 질문이 인터뷰 때 없었다.

김범수는 프로젝트 're.MAKE20' 인터뷰에서 김나박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으며, 대중들이 자신을 리스트로 꼽아준 것에 대해 노래를 하는 입장에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감사를 표했다. 다만 자신이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어떤 부분이 훌륭한지 잘 모르겠다며 겸손한 모습도 보였다. 또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다. 채널에서 나박이 곡 커버를 하기도 한다.

나얼원더케이 좌표 인터뷰에서 김나박이라는 표현을 알고 있다 밝혔다. 또한 같은 김나박이의 일원이며 친구이자 좋아하는 가수라 말한 김범수를 비롯해 네 명 중에 자신이 있어 기분이 좋지만 내심 부끄럽고 과분하다 답했다.

이수엠씨 더 맥스 9집 정규 앨범 'Circular' 음감회에서 김나박이란 용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그는 ‘국내 및 해외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이 있고 또한 팬들 사이에서 이와 관련하여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아는데 이를 어떤 한 단어로 묶어 표현하고 논쟁을 벌이기보단, 각자 선호하는 아티스트를 찾아서 듣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 바 있다. 더불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부끄럽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해당 가수들도 김나박이라는 표현에 감사를 표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을 그렇게 칭하는 것에 한편으론 부끄러워하는 모습. 특히 김범수는 유튜브 컨텐츠를 올리면서 자신을 빼고 임나박이라는 칭을 쓰는데, 여기서의 임은 임재범이다.


5. 네 사람의 관계[편집]


실제 넷, 특히 박효신과 김범수, 김범수와 나얼은 서로 꽤 친한 사이다.

박효신 4집의 '친구라는 건'에 김범수가 참여하여 역대급 곡을 뽑아내기도 하는 등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15]

김범수와 나얼도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의 CCM 프로젝트 앨범 <I am melody 2>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종종 만나는 모양.[16]

박효신과 나얼의 경우 2000년도에 결식아동 자선 콘서트에서 공연을 같이 한 인연이 있다.

박효신과 이수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가끔씩 듀엣으로 불러본 적이 있는 사이다. 동갑내기로 과거에 서로 종종 교류했던 일이 있었다. 특히 이수의 아내인 가수 의 절친이 박효신이라 교류가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범수와 이수는 서로 음악적으로 함께 작업하거나 콜라보레이션을 한 적은 없지만 김범수가 이수, 결혼식의 축가를 불러주는 등 꽤 친분이 있는 사이다. 더군다나 2021년 3월 5일 김범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수의 '어디에도'를 커버한 영상에 이수 본인과 그의 아내인 가수 린이 직접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17] 또한 이수 본인도 '앞으로 '어디에도'는 범수형 노래입니다. 반박시 음알못'이라고 직접 댓글을 달았다.

물론 당사자들 간에도 경쟁 의식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그렇다고 누가 더 잘났다에 목 매다는 살벌한 라이벌 관계는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라디오와 같은 매체에서 서로를 칭찬하는 한편, 정작 자신을 그 라인에 넣어주신 팬분들께는 굉장히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고 한다. 어차피 넷 다 절대고수로 취급받는 마당에 굳이 우열을 가릴 이유가 없기도 하고, 애초에 노래란게 주관적인 평도 강해서 객관적 우열을 가리기 매우 까다로운 분야기도 하다.

김범수는 나얼, 박효신, 이수와 모두 접점이 있는 마당발이며, 모두 동료로서, 지인으로서 친분이 있다. 특히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세 명의 곡을 모두 커버하기도 하는 등 김나박이 기믹에 꽤나 호응해주는 편.


6. 포스트 김나박이?[편집]


김나박이 모두가 40대에 접어든 2020년대 들어, 일부 커뮤니티에선 다시금 파릇파릇한(...) 성대를 찾아 20~30대 남성 가수 중 포스트 김나박이를 찾아보려는 시도도 종종 한다. 리스트로는 하현우, 허각, 신용재, 임한별 (허용별), 정승환, 이라온, 마크툽, 김민석, 박재정 등이 거론된다.

다만 아직까지 확실히 포스트 김나박이라 할만한 가수는 나오지 않고 있는데, 우선 하현우는 나이가 김나박이랑 비슷해서 포스트 운운하기도 민망해 애초에 구분할거면 동년배인 김나박이에 같이 끼여서 '김나박이하'로 구분되는 편이다. 물론 가창력 측면에선 앞서 언급한 인물 중 가장 김나박이에 필적할만한 가수인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락커 인상이 강한 점이나[18] 확실히 뜬 시기가 2016년 복면가왕 이후로 2000년대 김나박이보다 많이 늦은 점, 특히 히트곡이 적은 점[19] 등이 거론되어 잘 쓰이는 표현은 아니지만 가창력 만큼은 김나박이와 같은 최고 수준의 보컬이라고 평가 받는다.

허각이나 신용재의 경우 대중적 히트곡은 어느 정도 있지만 전성기였던 2010년대 이후 김나박이 수준의 롱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고, 정승환도 사실 가창력만 따지면 고음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사실 허각이나 신용재도 고음 구사력 자체는 김나박이 수준은 아니다. 신용재는 음역대는 몰라도 김나박이만큼 폭발적인 성량을 전격적으로 내세우는 스타일은 아니고, 허각은 성량이 대단한 보컬인건 맞으나 음역 자체는 김나박이와 동급이라 볼 순 없다. 게다가 허각은 김나박이랑 4~5살 차밖에 안난다.

이라온은 아름다운 미성과 고음 구사력은 뛰어나지만 대중적 인지도나 히트곡이 적고 임한별도 보컬 강사로 활동할만큼 발성적으로 뛰어난 보컬이지만 음색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 마크툽은 그래도 이중에선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20] 찰나가 영원이 될 때 등 고음 히트곡도 내면서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론 돋보이는 편이지만 김나박이 전성기 시절엔 못 미치고 있다.[21] 박재정은 데뷔 이후 몇년간은 잘 언급도 안되었지만, 2020년대 들어 바라만 본다, 헤어지자 말해요가 인기를 끌고 중저음톤이면서도 고음을 상당히 잘 한다는게 알려지면서[22] 재평가된 케이스.

다만 이 모든 케이스를 합쳐도 냉정하게 보면 아직 김나박이 정도의 임팩트를 남기진 못하고 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이 분야에서 예전만큼의 인재가 잘 안나온다는 소리거나 혹은 나와도 발라드 시장이 최전성기를 찍던 시절보단 히트곡을 내는데 좀 더 어려운 환경이 됐고[23], 또 지금은 발성법 보급화 등으로 오히려 평균적인 실력은 더 늘어난 감도 있지만 노래 잘하는 가수의 기준도 이전보다 더 엄격해져서 달리 말하면 시작점부터 김나박이랑 비교 당하는 시대 비슷하게 되어버린 감도 있다.[24]


7. 여담[편집]


  • 우스갯소리로 '나박김치에 싸먹는 거'라고들 한다.

  • 성종은 박효신을 제외하곤 테너로 추정된다는 의견이 많다. 박효신은 테너가 아닌 하이바리톤이라는 의견도 많다. 허나 애초에 성종은 병원 가서 성대 정밀 검사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소리만 듣고 성종 파악하는건 추정에 불과할 뿐이다.

  • 네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다. 2000년에 데뷔한 이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1999년에 데뷔했다. 나이는 나얼(1978년생)이 가장 많고, 김범수(1979년생)[25], 이수(1981년 4월생), 박효신(1981년생 9월생) 순이다.

  • 넷 중 둘씩 만나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라이브를 보여준 적도 더러 있다. 아쉽게도 넷이 한 자리에 모여서 같은 노래를 한 적은 아직껏 없다.

  • 나박이라는 배리에이션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우스갯소리. 숲튽훈 참고.

  • 2020 KBO리그에서 '이'를 뺀 김나박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 삼진왕 경쟁을 하고 있는 재환, 성범, 병호를 가리킨다. 더군다나 김재환이수와 닮았다. 게다가 이 셋의 소속 팀(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 키움 히어로즈)은 1~4위권에서 순위 경쟁을 하고 있고, 셋 다 메이저리그와도 관련이 있다.[26]

  • 김나박이 중 한 명인 김범수는 가수 임창정의 팬이었다고 한다.[27] 그래서, 커버곡으로 임창정 곡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김범수가 존경하고 따라하고 싶다고 표현한 보컬이 이승철, 임재범 등 한두명이 아니긴 하다.


  • 2023년 김나박이 콘서트가 열린다는 카더라가 돌아 팬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알고보니 '원조' 김나박이 콘서트가 열린다며 K2의 성면, 일기예보들, 유리상자승화, <어떤가요>의 원곡 가수 정봉을 합쳐 김나박이라 칭하며 각 포지션의 가수가 한번씩 콘서트를 하는 것으로 밝혀져 팬들을 뿜게 만들었다. 근데 또 따지고 보면 저 가수들도 물론 김나박이급 가창력은 아니지만, 90년대 가요계의 황금기와 르네상스를 상징했던 가수들에 포함되는건 맞으니 원조 김나박이란 표현도 틀린건 아니고 실제로 이 콘서트와 관련된 댓글 중 하나가 "김나박이가 아닌데 김나박이가 맞음."이기도 했다. 이후 원조 김나박이는 2023년 6월 14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8. 비판[편집]


세상은 넓고 노래 잘하는 가수는 널려있다. 애초에 가수 데뷔 사회는 한해에도 수백명 이상의 프로 가수들이 쏟아져나와 그런 곳에서 오직 몇명의 최고 보컬만이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를 얻는 가수가 되는 시장이다. 즉 가수가 알려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보컬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허나 운이 나빠서 유명해지지 못했을 뿐 무명가수 중에서도 실력자들은 많으며, 가수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다. 가수들 사이에서도 장르가 다 다르고, 가창력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어떠한 평가를 내리든 그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그런데 특정 가수 몇명을 모아놓고 이들을 기준으로 노래 잘하는 가수와 못하는 가수를 가린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일까?

물론 이들 4명이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가진 가수인 점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다른 가수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며, 그러한 기준이 되는 것 또한 말이 안된다. 사실 김나박이라는 표현에는 문제가 굉장히 많다. 표현이 생겨날 당시 김나박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중반 나얼을 기점으로 윤민수를 포함한 “나윤”에서 윤민수의 성대결절 이후 디시인사이드 가요 갤러리에서 가장 선호되던 R&B 장르의 보컬인 김범수와 박효신이 포함되어 만들어진[28], 타 장르 가수를 철저히 배제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김나박이 이외의 걸출한 보컬들도 찾아보면 상당수 있음에도 표현이 굳어져 이 세대의 다른 가수들은 은연중에 이 4명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마저 존재한다.[29]

공신력 있는 단체의 평가와 달리 이런 공고한 서열화는 하나의 신분제처럼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점이 보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이 단어는 한국 대다수 대중들의 인식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2000년대 후반 소수의 가갤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당연히 현재 한국 보컬의 실력에 대한 국민들의 보편 정서도 반영하지 못한다. 또한 발성법들이 이전보단 대중화된 2010년대 이후, 각종 오디션 프로 등으로 쏟아진 많은 실력파 발라더들로 인해 평균적인 실력 측면에선 상향평준화가 이뤄지면서 이 표현 자체가 더 이상 의미가 있냐는 비판도 많아졌다.

또 충분한 가창력과 음악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호불호가 갈리고 장르적으로 좁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가수들도 많다. 그런데 김나박이만을 '본좌'로 칭송하고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선별하여 다른 가수들과 분리하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가 될 수 있다.

다만, 고음을 잘 내지만 특출나지 않은 단순한 양산형 가수들과 달리 가창력도 뛰어나고 각자의 개성도 뚜렷하게 발전시킨 김나박이가 고평가 받을 이유도 충분히 있는건 사실이다. 즉, 김나박이의 가치를 내려치는 게 아니라, 이들만이 최고의 가수라는 고정관념을 갖지 않도록 비교될만한 음악들에 동등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5 23:36:07에 나무위키 김나박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수는 록발라드+팝(가요)발라드 하이브리드에 가깝긴 하다. 애초에 국내에선 R&B도 R&B 발라드화 된 곡들이 많다.[2] 이미 보컬 갤러리에서도 인정하는 전세대 탑 보컬리스트격으론 임재범, 이승철이 있었고 김경호도 간간히 언급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은 전성기가 지나가던 시절이라 이들을 제외한 당시 기준 전성기에 있는 최상의 보컬리스트를 뽑는 병림픽논쟁이 일어났다.[3] 정확히는 2001년 브라운 아이즈 멤버로서 데뷔. 이미 나얼은 1999년 아카펠라 그룹 앤썸으로 데뷔했지만, 소속사와 곡의 문제 등으로 팀이 와해된 후 프로듀서 겸 가수 윤건과 만나 브라운 아이즈로 다시 데뷔했다.[4] 나얼은 3년간 3개의 앨범만으로 무려 20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린다. 김, 박, 이 세 가수가 20년 커리어 전체 앨범 판매치가 130만 장도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기록이다.[5] 김연우도 김범수와 같은 김씨이기에 따로 언급되지 않고 김나박으로 불렀다. 김김나박[6] 마치 오늘날 와서 김나박이가 거장 취급을 받고 20~30대 보컬리스트들은 실력이 있어도 이들보단 무조건 아래 취급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7] 물론 이들도 사람인 이상, 최전성기보단 나이가 들수록 발성적으로 조금씩 떨어지는 부분은 있다. (물론 반대 케이스도 소수 있긴 하고, 나이가 들수록 감성적 테크닉은 더 풍부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그것은 차치하고) 대표적인 것이 2022-23 겨울나기의 이수가 부른 흩안. 다만 해당 곡이 엠맥 노래 중에서도 손 꼽히는 난이도임은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조금은 아쉽다는 평. 그 외에도 나얼의 기억의 빈자리처럼 난이도가 높은 곡은 콘서트 라이브시 신곡임에도 음역을 한키(반음) 내려 부른다거나 하는 경우가 보인다. 연속된 라이브에 힘들어서 그럴수도 있고, 아니면 감정선을 좀 더 잡기 위해서 내리는 것일수도 있다.[8] 사실 이수는 락발라드를 표방하는 고음 잘하는 팝발라드 가수에 더 가깝긴 하다. 음색적으로 봐도 그렇고, 엠씨더맥스 음악들도 보면 반주에 클래식 비중이 높은 편이다.[9] 애초에 나얼과 박효신은 미남이고, 이수도 나쁘지 않은 마스크에 등빨이 좋아 옷핏을 잘 받는다. 비주얼 가수 드립은 밈.[10] 브라운아이즈 시절 R&B발라드, 미디어 템포 발라드를 주로 했으나, 브라운아이드소울 활동부턴 정통 R&B를 주로 내세우고 있다. 본인 솔로 앨범에도 정통 R&B곡들을 다양하게 수록하고 있다. 다만 대중에겐 90년대 발라드 감성을 본인식으로 해석한 곡들(같은 시간 속의 너, 기억의 빈자리 등)이 유명한 편이다.[11] 다만 이 때도 3옥타브는 무리없이 소화했다.[12] 박효신 본인 말에 의하면 2010년대 이후 음색이 원래 편한 음색이고, 이른바 소몰이창법 톤은 당시만 해도 OK 사인이 잘 나던 소리로 본인 역시 개성 있다고 생각해 자주 썼다고 밝힌 바 있다.[13] 다만 특유의 강렬한 느낌을 위해 외부근을 개입시키는 창법은 그 특성상 컨디션이 나쁘면 삑사리를 더 많이 나게 한다. 사실 이수는 발성 측면에선 나머지 셋에 비해 정석적인 발성은 아닌데, 일반인들은 진작 삑사리 났을 구간에서도 타고난 성대로 커버치는 측면이 있다.[14] 이때의 피지컬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영상이 바로 그 잠시만 안녕 7단 고음 영상으로, 일반인은 커녕 어지간히 노래 잘한다는 가수 레벨에서도 가능할까 의심이 드는 수준의 고음과 호흡을 요구하는 애드립을 뽑아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체력적으로 여유로운 콘서트 초반에 한 것이 아닌 최후반부 앵콜곡이라는 것.[15] 이 곡은 2004년 라디오에서 라이브와 2009년 박효신 콘서트 때 김범수가 게스트로 2번 참여하여 총 3번의 라이브를 선보였으며, 특히 2009년 라이브 땐 곡의 마지막쯤 김범수와 박효신의 미친 듯한 애드립, 기교 대결이 일품이다.[16] 나얼은 본인 입으로 김범수와는 친한 사이라고 직접 밝혔으며, 이름을 언급할 때도 '범수'라고 편하게 부른다.[17] 김범수가 사용한 MR은 이수와 제이윤만이 갖고 있던 원곡 MR로, 이수 혹은 제이윤이 김범수에게 직접 준 것으로 추측된다.[18] 발라드 감성이 대중성에 크게 작용하는 한국 대중음악계 특성상, 일단 음원시장에서 보컬이 히트하려면 감미로움이 준필수 비슷하게 되었다. 락커의 경우 그 특유의 파워풀함, 왁자지껄한 분위기 때문에 행사나 음악 페스티벌 등 무대에서 강점을 발휘하고 그걸로 돈을 버는 경우도 꽤 있지만, 음원시장에선 비주류가 된지 오래되긴 했다.[19] 2020년 히트곡 돌덩이 등이 있긴 하지만 최대 고점으로 보나 히트곡 수로 보나 김나박이한텐 밀린다. 사실 김범수도 은근히 히트곡이 있음에도 이 점 때문에 지금도 나얼, 이수 등과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까이는 판국이다.[20] 다만 이 곡은 이라온 파트가 더 핵심이긴 하다.[21] 김나박이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려면 허각+신용재 히트곡에 하현우, 이라온, 마크툽 외모정도 되는 가창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22] 2013년 슈스케 우승 이후 몇년간 무명기를 보내서 오히려 이기간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발성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23] 다르게 말하면 노래방에서 뽐내기 위한 초고음 짱짱맨 시대 못지않게 이른바 중고음 위주의 이지 리스닝 시대가 각광받는 등 트렌드가 바뀐 것도 있다. 애초에 한국 팝 발라드의 시초인 유재하 곡들부터가 초고음이 아니었다. 90년대 락발라드 시대로 접어들면서 고음병 환자들이 등장하고, 이게 락발라드 쇠퇴 후 2000년대 R&B발라드 시대에도 이어져서 감미로움+초고음까지 요구하는 기조가 이어진 것이다.[24] 특히 나얼의 경우 상기되어있듯 데뷔하자마자 보여준 임팩트가 너무 셌다. 그런 나얼조차 2020년대 들어선 차트에서 이전보다 부진을 겪고 있지만 말이다. 김범수는 이미 본인도 언급했듯 차트인 욕심을 버린 상황이고, 박효신이나 이수도 이전보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미 히트곡도 쌓여있겠다 콘서트만 돌아도 되는 시기긴 하다만.. 어쨌든 세대 교체할 타이밍이 오고 있다는 신호일지도.[25] 빠른 79이긴 한데 2012년에 못친소에 출연했을 때 하하노홍철이 범수 형이라 안하고 범수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면 1978년생과도 친하고 1979년생과도 친한 듯하다. 결정적으로 1978년생인 조정치와도 서로 편하게 말 놓는 사이다.[26] 김재환은 2019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포스팅 신청을 했지만 실패를 했고, 나성범은 에이전트로 스캇 보라스와 계약을 하며 메이저리그 도전을 공공연하게 밝혔고, 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 갔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각각 못 간 놈, 가고 싶은데 결국 2023년까지 못 간 놈, 갔다 온 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7] 유튜브 범수의 세계 참고.[28] 물론 나중엔 록 장르의 이수가 포함되긴 했지만 애초에 이수는 정통 락커 느낌은 아닌데다 어쨌든 시작은 R&B 가수를 서열화하는 데서 시작되었다.[29] 가장 대표적인 희생양(?)이 성시경이었다. 나름 객관적인 대중성이 증명되는 히트곡도 많고, 음색의 독특함이나 음역대에서도 크게 밀리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비음과 초고음엔 좀 덜 어울리는듯도 한 편안한 음색 때문인지 김나박이 추종자들에겐 유독 저평가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