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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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광운대학교 졸업 후 2013년 FC 서울에 입단했다. 별명은 춘디치, 퍼디남춘.[6]
2. 프로 데뷔 전[편집]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남춘은 고등학교 졸업 후 윤성효 감독이 이끌던 숭실대학교와 김호 감독이 이끌던 대전 시티즌의 제의를 받았다. 고심 끝에 프로행을 선택한 김남춘은 대전 시티즌의 전지 훈련에 합류했으나 데닐손, 슈바, 브라질리아 등 괴물들을 만나며 프로의 벽을 느끼고 2주 만에 짐을 쌌다.
대학 팀 선수 등록이 마감되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김남춘에게 광운대학교가 손을 내밀었다. 광운대도 마찬가지로 선수 등록이 끝났으나 정원 외 멤버로 1년 간 같이 훈련한 뒤 이듬해 09학번으로 입학하였다.
광운대 주장으로 활약한 김남춘은 대학교 4학년까지 마치고 프로 입단을 노렸다. 시즌당 한 명만 영입할 수 있는 자유 선발 선수로 FC 서울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또래 대졸 선수보다 1살 많은 만 24세의 선수임에도 구단이 거는 기대가 컸음을 알 수 있다.
3. FC 서울[편집]
3.1. 2013~2015 시즌[편집]
2013년 자유 계약으로 입단했으나 리그 경기에 나서지는 못하고 FA컵과 ACL에서 1경기씩 출전했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최용수 감독이 3백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수비진의 가용 인원이 많아지자 기회를 잡았다.
2014년 8월 16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K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10월 9일, 울산 현대 원정에서 프로 데뷔골을 넣었다. #
2015년에는 김주영의 이적으로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였으나 최용수 감독이 김주영의 이적은 4백 전환으로 메울 것이라고 밝히면서 오히려 주전 경쟁이 더 험난해졌다. 그러나 이웅희가 4백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김진규의 폼 하락과 부상이 겹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를 중심으로 3백을 재편하여 왼쪽 센터백 자리를 두고 김동우와 경쟁했다.
2015 시즌 리그 17경기, ACL 3경기에 출전하였다. FA컵에서도 4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여담으로, 대전 시티즌전 미디어데이에서 "하루살이라고 생각하고 매 경기 최선을 다했다."라는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프로 선수로서 주전 경쟁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 수 있는 부분. #
2015년까지는 백업으로 시작해서 시즌 중반 로테이션으로 어느 정도 기회를 부여받고 한 번씩 괜찮은 활약을 보여 주기도 했으나 주전으로 쓰기에는 부족한 선수였다.
3.2. 2016 시즌[편집]
포지션 경쟁자였던 이웅희가 입대했고, 김진규는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하지만 시즌 초반 주전 3백은 김동우, 김원식, 오스마르였고 백업으로 국가대표 출신의 정인환과 심우연이 영입되며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로테이션 멤버로 늦봄부터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기력이 좋지 못해 최용수 감독이 떠나기 전인 6월 말까지 나올 때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기대치는 바닥을 쳤다. 유현, 윤일록과 함께 팬들에게 제발 좀 떠나라고 욕을 먹었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이 장쑤로 가고 황선홍 감독이 부임하면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데...
최용수 감독 체제에서 최악의 폼을 보였기에 황선홍 감독 부임 후에는 아예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정인환과 김동우를 밀어내고 서울에 없어서는 안 될 수비수로 환생했다. 팀이 3백과 4백을 혼용하던 과도기를 거쳐 4백으로 정착하자 오스마르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입된 곽태휘가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하자 오스마르-곽태휘 조합에 밀려 한동안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으나 이 조합이 느린 발과 중원에서의 압박 부족으로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노출하자 황선홍 감독은 오스마르를 중원으로 올리고 김남춘을 곽태휘의 짝으로 낙점했다. 그리고 정비된 수비진은 스플릿 라운드에서 4승 1무를 견인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김남춘은 전북과의 최종전까지 풀타임을 소화하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2016 시즌 종료 후 유상훈, 윤주태와 함께 상주 상무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
3.3. 상주 상무 FC (군 복무)[편집]
2016년 말 상주상무 8기로 입대해 2018년 전역했다. 2시즌 동안 리그에서 38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했고, FA컵 1경기에 출전하였다. 첫 해엔 낯선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보여줬고[7] 두 번째 해엔 부주장과 임시 주장을 맡으며 헌신했다.
상주에서의 모습은 아래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상주상무 8기 김남춘
3.4. 2018 시즌[편집]
33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선발 출전해 후반 38분 골문 근처에서 찌아구에게 공을 빼앗기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며 골을 내주게 되었고 최용수 감독의 복귀전은 0:1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한동안 주전 수비수로 출전했으나 팀 스피릿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승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이탈했다.
3.5. 2019 시즌[편집]
추가 부상까지 당해 7월까지 소식이 없다가 7월 18일 R리그 경기에 교체 출전했다. 시즌 끝나기 전에 1군 경기에 투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별다른 부상이 없었던 이웅희도 부쩍 노쇠화한 모습을 보이는데 운동능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십자인대 부상을 겪은 30세 수비수의 폼이 어떨지가 의문이다.
27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시즌 처음으로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경기장을 밟지는 못했다.
35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드디어 시즌 첫 리그 경기에 출전하였다. 3백의 중앙 수비수로 깜짝 선발 출전했는데 장기 부상에서 돌아온 것이 무색하게 경기 내내 안정감 있는 수비를 뽐내며 팀의 1:1 무승부에 기여하였다. 실점 상황에서 집중력이 떨어졌던 점은 흠이지만 시즌 내내 서울의 고질병이었던 불안한 센터백 자리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팬들의 답답함을 해소해 주었다.
단 4경기 출전했지만 김원균의 부상 이후 김원식과 정현철이 차례로 무너지며 팬들에게 불안과 공포만을 선사했던 3백의 가운데 스위퍼 자리를 제대로 채워 팀의 ACL 진출권 수성에 크게 공헌했다.
시즌 종료 후 부산 아이파크 이적설이 있었으나 12월 23일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례적으로 서울이 재계약 보도 자료까지 뿌린 몇 안 되는 선수. 재계약 인터뷰[8]
3.6. 2020 시즌[편집]
좌우 스토퍼인 김주성, 황현수와 함께 주전 3백을 구성하게 되었고, 3백 중 중앙 수비수로 낙점받았다. 2020 시즌 최용수 감독의 쓰리백이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을 한층 더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터라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에 가담해야 하는 김주성과 황현수의 뒤를 받쳐 줄 베테랑이자 부드러운 발밑으로 빌드업을 주도할 수 있는 김남춘의 역할이 많이 중요해졌다.
1라운드 강원 FC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안정적인 수비를 펼치고 있었지만 전반 종료 직전 김영빈에게 얼굴을 걷어 차이면서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고, 팀은 후반전 3골을 허용하며 역전패했다. 출혈이 매우 심했던지라 많은 팬들이 부상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경미한 타박상이었다.
3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는 김주성의 백패스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상훈 골키퍼와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며 어이없는 실수로 공을 헌납하였고, 선제골 실점의 원흉이 되었다.[9] 팀은 2:1로 역전승.
이후 끝없는 폼 하락으로 리딩을 담당해야 할 3백의 가운데 자리에서 서울의 대량 실점에 큰 지분을 차지했다.
8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 K리그 1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최용수 감독이 자진 사퇴한 후 김호영 감독대행 체제에서는 4백에서 황현수와 함께 중앙 수비수로 짝을 이루면서 폼이 서서히 올라와 다시 수비진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23라운드 슈퍼매치에서 전반 종료 직전 부상을 당하며 김진야와 교체되었다. 이 부상 이전에는 1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서울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만큼 수비진에 전력 누수가 예상된다.
이후 부상 회복에 전념하며 결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4. 사망[편집]
2020년 10월 30일,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에 따르면 김남춘은 30일 아침,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10] 그는 팀 동료 주세종의 생일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사망 전날까지 훈련을 같이 했었던 상황이며 팀 또한 다음 날 인천과의 리그 최종전을 앞둔 상태였다.[11]
이에 많은 축구 팬들과 관계자 및 데얀 다먀노비치, 홍철, 김태환, 도닐 헨리, 제이슨 데이비슨, 데이브 뷜트하위스, 히카르두 로페스, 카를로스 아드리아노, 다카하기 요지로, 마우리시오 몰리나, 윤일록, 알렉산다르 페시치, 이크롬존 알리바예프, 발렌티노스 시엘리스, 김민태 등 많은 선수들이 애도를 표했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서울과 같은 조에 속한 호주 A리그 소속 멜버른 빅토리와 K리그 소속 안산 그리너스, 수원 FC, 광주 FC, 부산 아이파크, 충남 아산 FC도 인스타그램 댓글을 통해 애도를 표했다. 김남춘이 군 복무로 인해 2년 간 뛰었던 상주 상무는 추모 글을 게시했다. 울산 현대의 서포터들은 11월 1일 광주 FC와의 홈경기에서 그곳의 봄은 행복하길 이라는 문구의 걸개를 걸었다. 포항 스틸러스의 서포터들은 11월 1일 상주 상무와의 홈경기에서 김남춘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김남춘 영원히 남쪽의 봄은 따뜻하길이라는 두 가지 걸개를 걸었다. 전북 현대 모터스 서포터 또한 대구 FC와의 홈 경기에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의 걸개를 걸었다. 같은 GS그룹의 여자 배구단인 GS칼텍스 서울 KIXX 배구단도 인스타그램에 김남춘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30일 저녁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의 N석 1번 출입구 근처에 팬들이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마련해 국화꽃을 놓고 가거나 포스트잇으로 메시지를 남기고 초를 놓는 등 고인의 마지막을 위한 자리를 가졌다. 경기 당일 FC 서울 구단 프런트를 상대로 한 시위[12] 를 계획 중이던 서포터즈 수호신은 시위를 급히 취소하고 김남춘 선수를 위한 걸개를 마련한 후 구단 마케팅 팀과 협의해 추모 공간을 유지했다. 서포터즈와 콜리더는 조문객들을 위한 국화와 손 소독제를 한켠에 두었다. 이 추모 공간에는 서울 팬들뿐 아니라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북 현대 모터스, 부산 아이파크, 포항 스틸러스, 인천 유나이티드, 안산 그리너스, 대구 FC 등 타 구단의 팬들까지 자기 팀의 머플러를 가져다 놓고 추모 메시지를 붙이며 동참하기도 했다. 충남 아산 FC의 프런트 직원은 에펨코리아 국내축구 게시판을 통해 추모공간에 찾아갔다는 것을 밝혔다. 중국 슈퍼 리그의 광저우 FC[13] 와 상하이 하이강,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의 알 아흘리 SFC, 베트남 V.리그 1의 하노이 FC 팬들까지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31일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는 경기 시작 전 경기장의 모든 이들이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했고, 고인의 마지막 등번호가 4번이었던 만큼 전반 4분에는 전광판의 추모 문구와 함께 관중석에서 큰 박수가 나왔다. FC 서울의 벤치에는 김남춘의 유니폼 2벌(홈 유니폼과 원정 유니폼)이 놓였고, 장내 아나운서는 낮은 톤으로 안내방송을 했으며, 경기 전후와 하프타임 때 어떠한 음악도 켜지 않았다.[14] 양한빈. 오스마르, 김원식, 조영욱은 눈물을 보였고, 생전 김남춘과 절친했던 친구도 경기 종료 직후 서럽게 우는 모습이 나타나 팬들을 슬프게 했다. 경기 후 한승규가 김남춘의 유니폼을 홈 서포터즈쪽 골대 앞에 놓자 박주영이 그 위에 주장 완장을 올려놓았다. 경기장 밖에 있던 추모 공간은 2일까지 존치되다가 철거됐다.
서울은 이 경기에서 아길라르의 결승골로 인천에 0:1로 패했다. 경기결과는 서울 선수단이 경기 전날 받은 충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인천 구단의 일부 선수가 보인 행동과 코로나19로 인한 원정팬 입장 금지 수칙을 어긴 채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인천 팬들의 태도가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 날 인천은 K리그1 잔류에 성공했지만 일부 몰지각한 인천 팬들의 행동[15] 때문에 인천 구단과 팬들은 잔류한 것에 대한 축하를 받기는커녕 모든 타 구단의 팬들과 대중에게[16] 매우 크게 비판받았다.[17] 더욱이 인천의 지난 시즌 감독이었던 유상철이 SNS로 자신이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임을 언급했을 때, 그가 2002 월드컵의 영웅이었던 만큼 K리그 타 구단을 지지하는 축구팬들은 물론[18] 전국민이 나서서 유상철의 쾌유를 기원하는 데에 동참했음을 감안하면 일부 인천 팬들의 이런 행동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19][20]
피파 21은 김남춘의 사망을 추모하는 뜻으로 게임에서 그를 삭제했다.[21]
샤다라빠는 2020년 11월 16일 샤다라빠의 풋볼다이어리에서 김남춘 선수를 추모했다.#
사인과 방식이 밝혀지지 않은 현재까지도 큰 충격으로 남은건지 구글에는 승부조작, 도박과 연루되어 자살한 거 아니냐는 뇌피셜이 떠돌았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한 번 갑자기 쓰러져서 친구가 바로 신고했다고 하며 송파구 내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사라졌다는 말로 봤을 때 돌연사 혹은 급사의 가능성도 높다.[22]
공교롭게도 1주기인 2021년 10월 30일에 다시 경인 더비가 편성됐는데,[23] 이날 경기에서도 인천이 2:0으로 승리함에 따라 서울 팬들은 2년 연속으로 김남춘 선수를 웃는 얼굴로 추모하지 못하게 됐다. 다만 인천이 잔류확정에 온갖 세레모니로 도발을 했던 지난시즌과는 달리 이번 2골에 모두 관여한 상무 시절 후임이던 송시우는 고인을 추모하기위한 의도로 자신의 득점에서도 동료들과 간단한 하이파이브[24] , 김현에게 기여한 도움에는 김현과 가벼운 포옹만 하는 등 세레머니를 크게 하지 않는것으로 고인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 호평을 받았다.
오늘 경기 서울의 선수단. 서울의 영원한 춘디치, 김남춘 선수와 함께 뛰었습니다.
서울의 4번은 오늘 경기 서울에서의 마지막 풀타임을 소화했습니다.[25]
2주기인 2022년 10월 30일은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로 인해 리그가 앞당겨 시작하고 일찍 끝나는 일정이 편성되며 리그 경기는 없을 예정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이 FA컵 결승전에 진출해,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2차전 전주 원정 경기를 김남춘의 기일에 치르게 됐다. 전반 4분 김남춘을 추모하기 위해 1분간 박수를 쳤다.[26] 그러나 이날마저 전북에 1-3으로 패배하고 합산 점수도 3-5로 밀려버리며 우승컵마저도 전북에게 내주며 바람에 2022 시즌도 웃으며 추모하지 못했다.
FC 서울은 김남춘의 등번호 4번을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결번하기로 했다.[27]# 그리고 2023 시즌 생전 계약 기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4번의 임시 결번을 해제했고 후배 이한범이 물려받았지만 이한범이 FC 미트윌란으로 이적하면서 다시 공번이 됐다. 그러나 2024년 7월, 상무에서 제대한 이상민이 등번호 4번을 배정받으면서 공번에서 벗어났다.
3주기 하루 전인 2023년 10월 29일에 서울은 수원 FC와 원정 경기를 치르게 됐다. 전반 4분에 서울의 팬들은 1분간 박수를 치며 김남춘 선수를 추모했다. 또 서울의 팬들은 "서울의 봄" 응원가를 부르며 다시 한번 김남춘 선수를 추모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서울은 이 경기 4:3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3년 만에 김남춘 선수의 기일에 웃을 수 있게 됐다.
FC 서울은 영원히 12명의 선수들이 뛴다. 김남춘이 그 중심이다.# #
5. 기록[편집]
5.1. 공격 포인트[편집]
5.2. 카드[편집]
5.3. 상대 구단[편집]
5.4. 각종 기록[편집]
6. 여담[편집]
- 장지에 초코파이가 있었던 것을 봐서 살아생전 초코파이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 친화력이 매우 좋은 성격이라 선수단과 두루두루 친했으며 특히 박주영이 가장 좋아하는 후배 중 하나였다. 서로 알게 된지 1년도 안 된 한승규가 생전에 김남춘을 많이 따랐을 정도로 후배들 사이에서도 친화력 좋은 선배였다.
- 2022년 FC 서울의 FA컵 결승 2차전이 김남춘의 2주기에 펼쳐졌고 공교롭게도 하루 전날 FC 서울의 연고지인 서울에서 이태원 압사 사고까지 일어났다. 이에 많은 서울 선수단과 팬들이 애석함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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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화군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됐다.[2] 2020년 사망했지만 생전 계약 기간이던 2022 시즌까지는 김남춘의 이름으로 임시 결번을 지정했다.[3] 2020 시즌 도중 사망.[4] 유골함에 성도 김남춘이라고 써져 있다. 기사[5] 사망 후 추모 계정으로 전환.[6] 본인은 춘디치를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7] 당시 상주 상무에 센터백이 워낙 많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경기가 종종 있었는데, 영상을 보며 공부하는 등 많이 노력했다고 한다.[8] 갑작스러운 단명 이후 이 영상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과 끝도 FC 서울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은 결국 가장 슬픈 방식으로 지켜지고 말았다.[9] 유상훈도 잘한 건 없지만 김남춘의 잘못이 더 크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10] 타살 가능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11] 다만 선수 본인은 재활중이라 경기에 나올 수 있는 몸상태는 아니었다.[12] 프런트를 비판한 걸개를 지난 경기에서 강제로 철거한 것에 대한 항의.[13] 뒷이야기[14] 평소 진행하던 하프타임 '걱정말아요 그대' 응원은 당연히 없었고, 스폰서 계약이 돼 있어 어쩔 수 없이 송출해야 하는 전광판 광고 외에는 음악 자체를 한 번도 틀지 않았다. 심지어 홈팀 선수소개 시간도 별다른 배경 음악 없이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만으로 조용히 진행됐다.[15]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역 수칙의 일환으로 도입된 원정팬 입장 금지 방침을 무시하고 인천 유니폼과 MD 상품을 입고 입장하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 아길라르의 득점과 승리 확정 후 박수를 치고 환호를 질렀다. 부주장 김도혁은 W석에 있던 팬과 포옹을 하고 호응 유도를 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일로 비판 여론이 커지자 김도혁은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에 따르면 김도혁은 단지 지인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일부 인천 팬들이 김도혁에게 박수를 보냈고 김도혁은 이에 호응을 했다고 한다. 박수를 무시한다면 팬들의 환호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고 김도혁 역시 평소 습관대로 행동했다고 해도 원정팬은 입장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었고 시기가 추모를 하던 시기인 만큼 김도혁의 행동이 부적절했던 것은 분명하다.[16] 사건에 대한 비판의 규모가 커지면서 평소 국내축구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기사나 유튜브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상황이 전해졌다.[17] 이 사건으로 인천 팬들은 영구까임권을 얻은 반면 인천과 대조적으로 라이벌임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함께 위로를 해준 수원 팬들은 호감을 받았다.[18] 투병 사실이 알려진 이후 경기가 열렸던 모든 K리그 경기장에서 관중들의 유상철 감독 쾌유 기원 박수를 진행했다.[19] 인천의 주장 김호남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남춘아 우리가 미안해라는 문구를 올렸다. 상주 상무 시절 군 생활을 함께 한 동료였던 김남춘을 평소에 신경쓰지 못한 자책과 몰지각한 일부 인천팬들의 행동에 대해 모두 사과하는 의미로 여겨진다.[20]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전부터 서울과 인천은 사이가 엄청 나쁘기로 유명했고 사건 이후 서울은 인천 팬들에게 "싸천" 이라고 욕할 정도로 사이가 더욱 악화됐다. FC 서울 외에 인천과 원수관계를 갖고 있는 다른 팀의 팬들도 인천을 더 심하게 증오하기 시작했다.[21] 선수의 사망을 추모하는 의미로 선수를 삭제한 또 다른 사례로는 피파 19의 에밀리아노 살라가 있다. 둘 다 싱글 플레이 모드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FUT 모드에서는 생성 제한이 되었다.[22] 갑자기 쓰러졌다면 심장 이상일 가능성도 있으며 사실이라면,상태가 호전되어서 상급 종합병원이 많은 송파구 내 상급병원으로 가서 검진 및 예약을 마친 후 걷거나 차량으로 귀가하다가 지나가던 건물(건물이 거주지는 아니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갑자기 문제가 터져서 그대로 사망에 이른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이는 언제까지나 추정일 뿐이므로 확신하지 말 것.[23] 다만 2020년에는 상암 경기였고 2021년에는 숭의 경기라서 장소는 다르다.[24] 이때도 너무 좋아하지 말라며 자제시켰다.[25] 위에 언급된 대로 FC 서울 측이 김남춘이 쓰던 등번호인 4번을 비우기로 한 기간이 계약 기간 종료인 2022 시즌까지였다. 서울의 2022 시즌 마지막 경기가 전북과의 FA컵 2차전이므로 마지막 풀타임이라 표현한 것.[26] 전북의 홈 팬들 또한 같이 박수를 치며 김남춘을 추모했다.[27] 2020년 초 3년 재계약에 서명해서 2022 시즌 종료까지 4번은 김남춘의 번호로 남는다. 2021년 2월 8일 FC서울은 2021 시즌 등번호를 발표했고 여기서 2021년과 2022년, FC서울의 4번은 故김남춘 선수를 위해 비워 둡니다.라고 공지했다.[28] ACL 플레이오프 1경기 포함[29] ACL 예선 포함[30] 광운대학교 시절 2010 FA컵 예선과 2011 FA컵 예선에서 기록한 4경기 1경고는 이 기록에서 제외되어 있다.[31] 예선 기록 포함.[32] 광운대학교 소속으로 FA컵 예선에 참가했던 기록까지 포함하면 클럽축구 통산 139경기 4골 2도움 18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