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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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안산 그리너스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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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그리너스 No. 18
김대경
金大景 | Kim Dae-Kyung
출생
1991년 9월 2일 (32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9cm | 체중 69kg
주발
오른발[1]
포지션
윙어, 풀백, 윙백[2]
유소년
거여초등학교
원삼중학교
강릉문성고등학교
숭실대학교
소속 구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4)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5~2022)
시흥시민축구단 (2019~2021 / 군 복무)
안산 그리너스 (2023~)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U-23 / 2013)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포지션은 윙어풀백.


2. 선수 경력[편집]



2.1. 유소년 시절[편집]


서울 거여초등학교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용인 원삼중학교를 거쳐 강릉문성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주가를 높였다. 숭실대학교에서는 오른쪽 윙어로 출전하여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을 장기로 삼는 전형적인 한국형 윙어 중 하나였다. 성실하고 노력을 거듭하는 선수로 정평이 났었다.

2.2.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2013 시즌을 앞두고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번외지명으로 수원에 입단했다. 번외지명이라는 신분 특성 상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지만 훈련에 성실하게 임하며 자신을 증명한 그는 시즌 초부터 의외로 자주 출전하였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및 K리그 무대에서 활발하게 기용되면서 제법 호평을 받았고 시즌 초에는 간만에 수원에서 괜찮은 신인이 나왔다는 평가도 받았다. 4월에는 리그에서 1득점 1도움을 기록하면서 수원 4월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초의 좋은 플레이를 이어가지 못하고 페이스가 떨어졌다. 결국 4월에 기록한 1득점 1도움 이후로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총 22경기 1득점 1도움으로, 신인을 기준으로 보면 마냥 나쁘진 않았지만 애매한 성과를 냈다.

2014 시즌에는 전력 외로 밀려나고 말았다. 리그에서는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래도 이 시즌에 잠시 주목을 받은 때도 있었다. 2014년 5월 대한민국에서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과 친선경기가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해 1 : 0 승리를 이끌었다. PSV에 박지성이 소속되었기 때문에 이 때는 제법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시즌 전체로 보면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잔부상에 시달려 컨디션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주전 경쟁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결국 출전 기회가 제한된 상황에 놓이자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이적을 선택했다.

2.3. 인천 유나이티드 FC[편집]


파일:2019김대경.png


2.3.1. 2015년[편집]


결국 2015년 1월 23일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였다. 전북의 박세직과 동시에 입단 오피셜이 발표되었다. 두 선수 모두 전 소속팀에서 초반에는 괜찮았으나 뒤로 가면서 전력 외로 밀려났기에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았다.

팀의 스쿼드가 상당히 얇았기 때문에 김대경에게 시즌 초부터 기회가 많이 가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부진한 점도 있고 다른 자원들도 많아[3] 이적 초반에는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본래 자리인 윙어보다는 주로 센터백이 결장했을 때 김대중이 아닌 오른쪽 풀백 권완규가 센터백을 보고 김대경이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본 포지션인 우측 윙어로 기용되는 경기도 있었으니 이 시즌에는 멀티 로테이션 자원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시즌 중반을 기점으로 폼이 급상승하였고, 뛰어난 몸놀림과 더불어 팀의 측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FA컵 일정을 병행하면서 지친 선수들이 생기자 보다 기회가 늘어났으나 주전으로 도약하지는 못한 채 시즌이 종료됐다.


2.3.2. 2016년[편집]


2016년에는 주력 우측 풀백이었던 권완규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윙어가 아닌 풀백으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2015년의 등번호였던 17번이 권완규에게 가고 자신은 수원에서 쓰던 36번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선수 본인의 의지 때문이라고 한다. 풀백으로서의 활약도 제법 준수한 편. 수원 FC 전에서 이태희와 함께 위클리 BEST 11에 드는 등 오히려 윙어로 나올 때보다 더 활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똥 먹고 부활한 잉글랜드의 멀티플레이어가 생각난다

이기형 대행 부임 후에는 다시 윙어로 나오고 있지만 주전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고 로테이션으로 가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활약 자체는 평이한 수준. 그러다가 2016년 10월 29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 인천에서의 데뷔 골을 기록했고 팀 승리에 기여하는 데 성공했다. 상대 수비와 골키퍼의 실책성 플레이가 있긴 했지만 활발한 움직임이 낳은 성과이기에 값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즌 막판의 활약을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팀과 재계약을 맺었다. #


2.3.3. 2017년[편집]


2017 시즌을 앞두고는 이전보다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고, 2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2:0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멋있는 프리킥으로 만회 골을 넣었고 이어서 페널티킥까지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활약을 펼쳤다. 이는 김대경의 프로 첫 멀티골 기록이기도 했다. 때문에 김대경이 앞으로 주전을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이 나왔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왔지만... 불행하게도 전반을 마치기도 전에 발을 헛디디며 큰 부상을 입었고, 이후 이 부상이 거의 시즌 아웃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결국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가 부상당한 이후 주전으로 올라선 문선민이 센세이셔널한 기량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같이 호흡을 맞추는 다른 윙어들이 계속 부진하는 상황이라 김대경의 공백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문선민이 패턴이 읽히면서 심각한 부진에 처한 이후로 김대경의 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다.

참고로 이 때 당한 부상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아킬레스건 부상. 권창훈이 당한 그 부상이다. 회복이 아무리 빨라도 6개월에서 1년인데다가 후유증도 굉장히 커서 선수 생활 자체가 불투명해질 염려가 큰 부상이라 김대경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부상이 김대경의 커리어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심지어 집에서 쉬다가 화장실을 가던 도중 또 넘어지는 바람에 아킬레스건 부상을 한 번 더 당하기까지 했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부상을 당하면서 더욱 큰 데미지를 입고 말았다.


2.3.4. 2018년[편집]


부상의 여파가 큰지 2018년에도 한동안 명단에서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R리그 명단에서도 제외되면서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기형 경질 후 첫 경기에서 서브에 이름을 올려 드디어 복귀를 알렸지만, 송시우 투입을 선택하면서 복귀전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이후 R리그를 통해 복귀전을 치르기는 했지만, 아직도 고통에서 자유롭지는 않다고 전해진다. 거기에 잔부상이 겹치면서 복귀는 점점 뒤로 미뤄지고 있다. 9월에 와서야 다시 R리그에서 풀백으로 출장 기회를 받았는데, 워낙 공백이 길어서 1군에 뛸만한 폼을 2018년 내에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와중에 10월 들어서는 R리그에서 센터백으로까지 출전하면서 멀티 플레이어의 위엄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김대경이 센터백으로 R리그에서 뛸 정도면 강지용이윤표는 도대체...

나중에 밝히기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이미 오른발은 절대 부상 전의 100% 상태로 복귀할 수 없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거기에 복귀를 위해 운동을 하면 아킬레스건 외에도 어깨나 다리 근육 등 다른 부위에 지속적인 부상이 발생했다. 이전에 당한 부상의 여파가 워낙 커서 계속 문제가 따라다니던 상태가 된 셈.


2.3.5. 2019년[편집]


시즌 종료 후 FA 대상자가 되었고, 지난 2년간의 공백으로 인해 재계약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력 외 선수들에게 전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내리는 상황에서 최종환, 한석종과 함께 확실한 행보가 결정되지 않았고, 결국 얼마 후 정산, 김동민에 이어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1년간 인천과 더 동행하게 되었다. 사실상 인천에서의 마지막 기회가 될 전망. 지난 해에는 R리그에서도 상당히 시간이 흐른 후에야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이번 해에는 첫 라운드부터 윙어로 나와 득점을 기록하는 등 몸 상태는 꽤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3일 5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왼쪽 풀백 포지션으로 선발 출전하며 부상 이후 첫 공식 경기를 뛰게 되었다. 오랫동안 쉰 점을 감안하면 꽤 나쁘지 않은 폼을 보여주어 팬들에게 위안을 주었으나 팀의 전반적인 경기력이 수준 이하였고 결국 3 : 0 패배를 막지 못했다. 팬들은 허용준, 김보섭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인지라 차라리 김진야를 윙으로 올리고 괜찮은 복귀전을 치른 김대경이 풀백 주전을 뛰는 게 낫지 않냐는 반응을 보이는 중. 그러나 나름 무난한 복귀전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그 경기 이후로는 다시 명단에서 사라졌다. 김진야가 U22 쿼터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다시 풀백에 기용되고, 정동윤김동민, 곽해성이 번갈아가며 기용되는 와중에 김대경의 입지는 굉장히 좁아졌다. 구단이 6월 A매치 휴식기를 이용해서 떠난 홍성 전지훈련에도 동행하지 않았는데, 이 훈련에 동행하지 않은 선수는 사실상 유상철 신임 감독의 플랜과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하기에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좋지는 않다. 그 와중에 R리그에서는 스트라이커로 출전했는데, 그간 스트라이커 자리를 커버해주던 지언학까지 1군으로 올라가면서 스트라이커 자원이 없어지자 풀백, 윙어에 센터백까지 경험한 김대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때도 지속적으로 잔부상이 따라다니는 상황이었고, 좀처럼 몸이 올라오지 않아서 1군 무대 출전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2.3.6. 시흥시민축구단 입대[편집]


파일:시흥김대경.jpg

한동안 R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019년 7월 4일, 공익 근무를 위해 K4리그 참가팀 시흥시민축구단으로 임대된다는 사실이 인천으로부터 발표되었다. 시흥에서는 중요 선수로 대우를 받았지만 부상은 시흥 시절에도 그를 따라다녔다. 아킬레스건 외에도 어깨에 지속적인 부상이 따라다녔고 산업체 근무와 병행하느라 제대로 몸을 끌어올릴 시간도 없었다. 시흥은 그가 경기를 뛸 수 있는 최소한의 상황만 되면 무조건 그를 기용했기에 출전 기록 자체는 제법 있었지만 프로로 돌아가던 시점에는 몸 컨디션이 많이 내려와있었다. 시흥에서의 출전기록은 총 20경기 1골 2도움으로, 21시즌 여름이적시장 기간에 복무가 종료되면서 팀을 떠났다.


2.3.7. 2021년[편집]


2021년 8월 3일 인천 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김대경의 복귀를 공식 발표했다. # 등번호는 입대 전과 동일한 36번. 복귀 인터뷰에서 여전히 컨디션이 나쁘지만 몸을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팀 스쿼드가 워낙 탄탄해졌고 컨디션 문제도 따라다니면서 2021 시즌에는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다.


2.3.8. 2022년[편집]


2022 시즌에도 팀에 잔류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존재감은 여전히 낮았던 상황이었다. 여전히 끊임없는 잔부상이 발목을 잡아 100%의 컨디션을 만들지 못했다. 종종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끝내 그라운드를 밟지는 못했다. 훈련장 내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기량은 보여준 듯하지만 몸이 올라오지 않으니 프로에서의 경쟁력은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 점이 발목을 잡아 전역 후 0경기 출전에 그치고 말았다.

시즌이 종료된 후 계약이 만료되면서 FA로 풀려났다. 오래도록 인천에 있던 선수였지만 불의의 부상 이후 커리어가 완전히 꼬여버린 상태였다. 제법 헌신했던 선수였지만, 끝내 인천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4. 안산 그리너스 FC[편집]


2023년 2월 6일 안산 그리너스 FC에 입단하며 커리어 첫 2부리그를 경험하게 되었다.

시즌 초에는 부상의 여파가 남아서 결장하다가 4월 초부터 서서히 출전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매치 핏이 됐다고 판단하자 선발에 투입되는 중. 기량 면에서는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스피드를 활용한 직선적인 플레이 및 위협적인 움직임을 통한 공간 창출이 최대의 장기. 또 활동량이 많고 헌신적인 플레이 역시 보여줄 수 있는 자원이다. 킥력도 나쁘지 않아서 크로스 시도를 자주 하고, 2017년 인천에서는 프리킥으로 득점을 하기도 했다. 다른 강점으로는 측면의 어디에 둬도 1인분을 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기질. 풀백, 윙백, 윙어 등 어디에 둬도 제법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직선적인 플레이어의 한계도 그대로 노출하는 경향이 있다. 다소 애매한 기술 때문에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고, 잘 안 풀리는 날에는 좀처럼 존재감이 없기도.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주력이 감소한 후에는 기존에 보여주던 많은 활동량과 직선적인 플레이 스타일보다는 세밀한 축구를 구사한다.


4. 여담[편집]


  • 인천에서 송시우와 함께 인스타 악플러로 맹활약을 펼쳤다. 수원에서 홍철이 보여주는 모습을 제일 비슷하게 보여주는데, 시크하게 툭툭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지곤 한다. 그래도 선수들과의 관계는 돈독한 걸 볼 때 좋은 친화력을 바탕으로 거는 장난 수준.

  • 2014년 월드컵 휴식기간 중에 열린 PSV 아인트호벤과의 친선 경기에서 후반전에 교체로 출전해 결승골을 넣었다. 그리고 무개념 해축빠들로부터 대선배님 은퇴하시는 길에 접대 안 하고 깽판쳤다고 까였다 (...)

  • 롤 모델은 현재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뛰고 있는 이청용.
[1] 약발인 왼발도 잘 사용하지만 양발잡이 칭호가 붙을만큼 완벽하게 마스터하지는 못했다. [2] 주 포지션은 주발이 오른발인데 왼쪽 측면 포지션을 보는 전형적인 인버티드 레프트윙이며 희귀한 인버티드 레프트백이다.또한 라이트윙,라이트백,라이트윙백도 소화 가능하며 측면 전지역에서의 포지션을 모두 볼 수 있는 측면에서의 멀티플레이어이다.[3] 당시의 인천은 측면 미드필더 자원에 이천수, 김인성, 박세직, 진성욱등 실력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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