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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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국사 창건 설화의 주인공
1.1. 개요
1.2. 관련 문서
2. 코미디언 김대성
3. 작곡가 김대성
4. 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한국연합회장
5. 마스크의 전 멤버 에이스의 본명


1. 불국사 창건 설화의 주인공[편집]



파일:김대성 표준영정.jpg


김 (金)
이름
대성 (大城)/대정(大正)
출생
700년 ~ 774년
국적
신라
신장
170cm
직업
대신라국 시중


1.1. 개요[편집]


신라의 인물.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문왕 때 태어나[1] 혜공왕 때까지 산 재상.

삼국유사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불교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원래 경주 모량리[2]에서 가난한 홀어머니 경조(慶祖)와 살던 아이였고 동네 부자 복안이 나눠준 조그만 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날 흥륜사의 고승 점개스님이 복안의 집에 시주를 받으러 왔을 때 일이었다. 복안은 바로 베 50필을 내 주었고 점개스님은 복안의 보시에 감탄하며 훗날 큰 복을 누리리라 축원했다. 이에 대성은 어머니 경조에게 자신들의 현생은 전생과 관련되었다고 얘기하며 자신들도 보시를 해서 후생을 위해 복을 쌓자고 제안하면서 밭을 흥륜사에 보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으나, 꿈을 통해 하늘에서 환생을 알린 뒤 재상인 김문량(金文亮, ?~711)의 집에서 다시 태어났다[3]. 태어났을 때 김대성이라 써진 금으로 만든 쪽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이의 이름을 김대성으로 짓고 혼자 남은 어머니를 데려와 봉양했다. 새로 태어난 그는 사냥을 매우 좋아했는데,[4] 에서 을 잡아죽인 날 밤부터 에 자신이 죽인 곰이 나타나 '내가 너에게 아무런 해도 안 끼쳤는데 왜 날 죽였느냐! 나도 네놈을 죽여 이 억울함을 풀겠다!'고 공갈협박을 일삼자 두려움에 떨며 살생을 그만 두고 곰의 명복을 비는 절을 세울 것을 맹세했는데 이것이 장수사로 알려져 있다.

후에 전현생의 부모가 모두 나이가 많아 세상을 떠나자 전생의 어머니 경조를 위해 석불사(석굴암)을 짓고 현생의 부모인 김문량 부부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고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공사는 751년(경덕왕 10년)에 시작해서 774년(혜공왕 10년)에 끝났다고 한다.

사실 삼국유사의 기록이 불교 설화적이고, 또다른 사서 삼국사기에는 김대성이란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만큼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이기백 교수를 비롯한 몇몇 역사학자들은 경덕왕 4년(745년)에 시중에 올라 750년에 물러난 시중(중시)에 오른 대정(大正)이란 인물과 음운의 유사성을 들어 동일 인물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김용춘 등 다른 인물을 봐도 신라어에서 ㅊ~ㅈ~ㅅ 음의 한자 표기가 달라지는 일이 흔한 편이기 때문이다. 연대를 살펴봐도 삼국사기의 대정이 중시를 지낸 시기는 경덕왕 5년부터 9년(745~750)까지고, 그의 현생의 아버지 김문량도 성덕왕 5년부터 10년(706~711)까지 중시를 지낸 문량(文良)과 동일인물로 추정되어 부자지간으로 연대도 들어맞는다.

다른 기록을 보면 불국사는 법흥왕 때부터 창건했다는 기록 등도 있어 김대성의 건축은 없던 절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기존의 절을 보수하고 증축한 "중건"으로 보는 견해가 크다.

키는 170cm 쯤으로 추정된다.


1.2. 관련 문서[편집]




2. 코미디언 김대성[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대성(코미디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작곡가 김대성[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대성(작곡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한국연합회장[편집]


파일:external/blog.adventist.kr/News_6340_file1.jpg


5. 마스크의 전 멤버 에이스의 본명[편집]


자세한 내용은 마스크(아이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700년에 태어났다는 설(기록 상 사망 당시 75세(만 74세))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2] 현재 경주시의 서쪽 지역.[3] 계시를 받은 김문량이 바로 하인을 보내 대성을 데려오라 했으나 모량리 사람들의 제보에 따르면 보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사했다고 얘기했다.[4] 한국사의 사냥 관련 기록 중 국왕이 아닌 개인의 사냥 관련 서술은 김대성이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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