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삼(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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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덕삼.jpg
출생
1876년 8월 3일
한성부 동부 인창방 동소문외계 용두리
(현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두동)
사망
1962년 5월 10일
부산광역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덕삼은 1876년 8월 3일 한성부 동부 인창방 동소문외계 용두리(현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로 이주했다. 1919년 4월 3일 차희식, 차병혁, 차병한, 차인범, 장제덕, 장소진, 이영쇠 등이 주도한 화성군 장안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2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조암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앞세워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 때 그는 선두에 서서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시위군중과 함께 인근의 쌍봉산(雙峯山)으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다시 시위군중과 함께 우정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를 끄집어내어 불태우고 투석으로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오후 5시경 시위군중과 함께 몽둥이를 가지고 화수리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공포를 발사하며 대항하는 일본 경찰과 투석전을 벌여 일본인 순사 카와바타 토요타로(川端豊太郞)을 죽이고, 주재소를 파괴·방화했다.

파일:김덕삼2.png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이후 체포된 그는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소요·살인·방화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화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신했고, 1962년 5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김덕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9년 국립대전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