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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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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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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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통령배고교야구심볼.png
1984~1985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s-2|{{{#a78329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박준태
(광주제일고등학교)

김동수
(서울고등학교)


권순구
(군산상업고등학교])

파일:lgv1.png파일:Twins_champion_v2.pn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3.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0
1994
2003
2004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우승코치

2015

파일: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코치)

2022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0 KBO 리그 신인왕


김동수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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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12번
김진우
(1989)

김동수
(1990~1991)


나진균
(1992)
LG 트윈스 등번호 2번
백인천
(1990~1991)

김동수
(1992~1999)


장재중
(2001.4.29.~200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진갑용
(1999.8.1.~1999)

김동수
(2000~2001)


임재철
(2002.4.29.~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번
장재중
(2001~2001.4.28.)

김동수
(2002)


한승진
(2003~2004)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번
김필중
(1998~2002)

김동수
(2003~2007)


팀 해체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
서울]]
/
[[넥센 히어로즈|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번}}}
팀 창단

김동수
(2008~2009)


조재호
(2011~2011.6.6.)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0번
강병철
(2008)

김동수
(2010~2014)


손혁
(2015~2016)
LG 트윈스 등번호 80번
김무관
(2012~2014)

김동수
(2015~2017)


세리자와
(2019~2020)
LG 트윈스 등번호 92번
김민호
(2013~2014)

김동수
(2019~2020)


장재중
(2021)
LG 트윈스 등번호 80번
세리자와
(2019~2020)

김동수
(2021)


이성우
(2022)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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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No.80
SBS Sports 해설위원
김동수
金東洙 | Kim Dong-Soo

출생
1967년[1] 10월 27일 (56세)
서울특별시 강서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화곡초 - 강남중 - 서울고 - 한양대
신체
180cm, 85kg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0년 1차 지명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0~1999)
삼성 라이온즈 (2000~2001)
SK 와이번스 (2002)
현대 유니콘스 (2003~2007)
우리-서울 히어로즈 (2008~2009)
지도자
넥센 히어로즈 1군 배터리코치 (2010~2014)
LG 트윈스 2군 감독 (2015~2017)
LG 트윈스 QC코치 (2019)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2020)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21)[2]
LG 트윈스 2군 감독 (2021)[3]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 (2013 / 2015 / 2017 / 2023)
프런트
LG 트윈스 스카우트 총괄 (2018)
해설위원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22~2023)
경력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2005)
KBO 재능기부위원 (2023~)
KBO 전력강화위원 (2023~)
병역
방위병 (1994~1995)
응원가
LG 시절 : - We Will Rock You[4]

1. 개요
3. 지도자 경력
4. 해설자 경력
5. 고교야구 지도자 경력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현대 유니콘스, 히어로즈의 야구 선수, 現 서울고등학교 감독.

김동수-조인성-유강남으로 이어지는 LG 트윈스 포수 프랜차이즈의 중추이다. 리그 전체로 봐도 선배 이만수, 후배 박경완과 더불어 KBO 리그의 포수 계보를 이을 정도로 뛰어났던 대선수이다. 등번호는 백인천이 감독으로 있었던 1990~1991년까지는 12번, 1992년 이후로는 계속 2번을 사용하였다.

투수 리드로 정평이 나 있었고 타격도 넓고 깊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 덕에 홈런에서 손해를 보았지만 팀내 홈런왕에 오른게 4차례일 정도로 장타력울 보유한 선수였다. KBO 포수 200홈런[5] 기록 보유자 6인 중 한 명.

소속 팀의 우승과 인연이 깊다. 서울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시절에도 각종 아마 대회에서 밥먹듯이 우승을 했고 프로에 데뷔한 첫해였던 1990년부터 신인왕과 함께 소속팀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이후 1994년에 다시 LG의 우승, 현대에 이적하고 다시 2003, 2004년 2차례의 KBO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3. 지도자 경력[편집]



3.1. 넥센 히어로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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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 그는 원래 친정팀 LG 트윈스의 1군 배터리코치로 옮길 뻔했으나, 김시진 감독과의 의리를 지켜[6] 남았고, 곧바로 히어로즈의 배터리코치로 선임되면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당시 기사[7]

2010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1군 배터리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히어로즈 선수 시절의 인기와는 다르게 그의 은퇴 이후 그를 대체하고 있는 포수들의 성장세가 부진하자, 히어로즈 팬들은 그의 배코 능력에 의구심을 표시하였다.[8] 2010년 이후 주전 포수로 거론되던 강귀태, 허준, 유선정, 박동원이 모조리 폭망. 다만 강귀태는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노쇠화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김동수 코치와 연관시키는 건 무리라는 주장도 있었다. 당시 햇병아리였던 박동원은 상무 입대 전에 1군 7경기에만 나왔을 뿐. 허준 역시 전형적인 2군급 포수라는 점에서 김동수 코치를 탓할 문제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2군 포수였던 허도환을 발굴해 영입한 후 공 받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한 사람이 김동수 코치다.

2012년 시즌 중 김시진 감독이 물러나고 시즌이 종료된 후 염경엽 감독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1군 배터리코치로 잔류했다.

2014년 비니 로티노의 포수 훈련을 도와 주어 포수로 선발 출전해 호성적을 거두게 하였고, 김동수가 공들여 육성했던 박동원이 7월부터 놀랍게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간 넥센 포수들의 부진이 김동수 코치 때문이 아니라 선수들의 재능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던가 하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박동원은 상무 복무 시절에도 김동수와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였으니.

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최형우가 포수 사인을 알고 쳤다고 발언하여, 욕을 먹었다.


3.2. LG 트윈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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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11월 12일부로 친정팀 LG 트윈스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999년 말 FA로 이적한 이후 약 15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온 셈. 당초 1군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었다고 보도가 나갔으나, 마침 공백이 된 2군 감독으로 최종 보직이 결정됐다.

LG 2군 감독 부임 후에는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그냥 2군에서 유망주를 잘 육성하고 있을거라는 팬들의 기대도 있었지만 2017년부터 그의 지도력에 대한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잘 하고 있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2군 경기 직관을 다녀온 엠엘비파크의 썰쟁이들의 말에 의하면 투수 혹사는 김성근급이고 고졸 신인 고우석을 3연투를 시키는 상식 밖의 기용을 했으며 선수들을 폭압적으로 윽박지르고 강압적으로 대한 데다 2군 코치들 전체와 감정싸움까지 벌였다는 썰까지 존재하는 등 현장에서 아주 평가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거기에 자기가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 중 하나라고 해도 대놓고 2군 코치들에게도 고압적으로 대했다고 하니. 커뮤니티의 썰이라는 건 걸러들어야겠지만 결과적으로 감독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물러난 걸 보면 문제가 있기는 있었던 듯. 출처1(삭제됨) & 출처2

2017년 시즌 후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이 LG 감독에 부임하고, 양상문 감독이 단장으로 가고, 송구홍이 단장에서 2군 감독으로 좌천되면서 해고된다는 썰이 있었는데, 결국 썰대로, 류중일의 감독 선임, 양상문의 단장 선임, 송구홍의 2군 감독 좌천이 발표되었다. 따라서 해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다만 류중일 신임 감독, 유지현 신임 수석코치와는 한양대 선후배 관계고, 신임 감독이 WBC 대표팀에서도 코치로 썼었던 만큼 1군 코칭스태프에 합류할 가능성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고[9], 혹은 본인이 자존심을 버리고 그냥 2군 코치로 남아 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사실 넥센에서 LG로 이적해 올 때, 즉 넥센 배터리코치 시절 평가가 좋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이번에 LG에서 밀려날 시 재취업이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10] 결국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인다.[11]

그리고 스카우트팀으로 전보되었다는 카더라가 돌았고, 전국체전에서 모교인 서울고등학교의 경기를 관전 중인 모습이 포착되었었는데, 이후 2017년 11월 14일 정식으로 오피셜이 뜨면서 새롭게 신설된 스카우트팀 총괄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확정 되었다.

2019 시즌부터는 퀄리티 컨트롤 코치로 옮기기로 했는데 차명석 단장이 새로 만든 자리로서 코치진에 포함되는 건 아니고 프런트에 가까운 역할. 엠팍의 일부팬들은 전력 분석하다가 성격 드러내고 선수들 갈구진 않을까 걱정하는 중.

2020 시즌에는 주니치 드래곤즈로 연수를 떠난 이종범의 후임으로 2군 타격코치에 부임했다. 타격코치로는 이천 트윈스가 퓨처스리그 대부분의 타격지표를 싹쓸이해 성과를 냈다.

류지현 1군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함에 따라 수석코치 승격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20년 11월 18일 수석코치에 선임됐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

2021년 9월 13일 1군 코치로 올라온 황병일을 대신하여 2군 감독을 맡게 되었다.

2021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3.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편집]


코칭 능력과는 별개로 꾸준히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로 차출되어 활약한 바 있다. 넥센 배터리코치 시절이던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를 맡은 걸 시작으로 LG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2015 WBSC 프리미어 12,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로 활동했다.

이후 진갑용이 대표팀 배터리코치를 맡게 되면서 한동안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하다가, 2023년 6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의 배터리코치로 선임되어[12]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왔다.


4. 해설자 경력[편집]


2022 시즌부터 SBS Sports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발탁되었다. 말솜씨가 좋은 편이 아닌지 자주 버벅인다. 졸립고 무색무취하다는 평이 대다수다. 그래도 보기 드문 포수 출신 해설가[13]로서 신선하다는 평가도 나오는 중.[14]
2024년 부터 서울고등학교 감독직을 맡게되여 SBS해설위원 마이크를 내려놓게되었다

5. 고교야구 지도자 경력[편집]


2023년 10월 30일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15]

6. 여담[편집]


  • 드라마 부활 14회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동 드라마에 출연하였던 탤런트 함석훈[16]과 친분이 있어 촬영하게 되었다.

  • 드라마 질투에서 김동수가 홈런 친 장면이 나왔다.

  • 레전드 40인 올스타에 선정 되지 못한게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41위~50위 명단에도 없다.


파일:attachment/ahn2.gif 파일:external/sports.chosun.com/6cz82003_7.jpg

  • 2006년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도중 안영명에게 분노의 싸대기를 날리기도 했다. 안영명이 김동수의 등짝으로 날아가는 공을 2연속으로 던졌다. 한 번이면 모르겠는데 2번째 같은 코스로 공이 날아가니 진실은 던진 당사자만이 알겠지만[17] 당한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던 상황. 그리고 마운드로 달려나가던 김동수는 너무 흥분했는지 도중에 넘어져서 더 격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벤치에 있던 송진우에게 플라잉 니킥을 등짝에 맞는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정확하게는 김동수가 송진우의 니킥에 정통으로 맞은 것은 아니었는데 심광호가 얼결에 어느정도 블로킹을 한 모습이 된데다가 한화 이글스에서도 뛰었던 송지만이 엉겁결에 니킥의 희생자로 같이 엮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싸우려는 것도 아니고 말리러 나왔다가 봉변 당해서 송지만이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18] 당시 양 팀을 대표하던 최고참 선수 두 명이 (김동수, 송진우) 뜨거운 파이팅을 선보이는 등 인상깊은 벤치 클리어링이었기에 이후에도 자주 인구에 회자된다.

  • 입단 동기인 이병훈 해설위원이 사사구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MBC, LG 시절에 함께 선수 생활을 했을 때의 일화로 일 년에 홈런을 한 자릿수밖에 치지 못했지만[19], 그게 전부 다 잠실구장 XX존[20]으로 빨려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결승타, 결승득점 등으로 받는 보너스를 가장 많이 받은 선수도 김동수라고.

  • 프로 입단 첫 해와 2년차까지를 빼고는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현역 내내 등번호 2번을 고집했다. 입단 초기에 2번을 달지 못했던 것은 감독이었던 백인천이 2번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 외모만 보면 마냥 순할 거 같은 사람좋은 인상이지만 실제 성격은 딴판으로 야구계에서도 성깔이 격렬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벤치 클리어링 때마다 상대투수를 향해 달려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류택현OB 베어스 소속이던 시절에 사구를 맞고난 후 힘이며 성깔이며 어디가도 안 밀리는 타이론 우즈의 태클에 그대로 고꾸라진 굴욕도 당했다. 류택현이 그 후 LG에서 오랫동안 뛰면서 김동수에게 "그 때 자기가 동수 형 때문에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을 정도. 위에 언급된 안영명 빈볼 사건 때도 마찬가지로 그의 격한 성격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추가로 이 빈볼은 구대성이 지시했다고 한다. 이유는 한양대 신입생 시절 김동수에게 쌓인게 있었는지 얄미워서 안영명에게 시켰다고 말했다.[21]

  • 박명환야구TV에서 조용훈이 푼 일화에 따르면, 조용훈과 같은 방을 썼던 황두성, 정민태, 전준호 등이 모두 조용훈을 포기하자[22] 김동수와 같은 방을 쓰게 됐다고 한다.[23] 김동수가 아침 9시에 기상해서 커튼을 걷고 조식을 먹으니 술 먹고 놀다가 새벽 3-4시에 잠드는 조용훈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도 2000년대에는 선배가 어쩌다 한번씩 후배에게 놀다 오라고 하는 경우라도 있었다지만 1980~90년대는 얄짤도 없었다. 일례로 사직의 별 최동원은 배터리를 이룬 후배 한문연과 같이 숙소를 쓰면서 낮경기를 하는 날마다 9시 안에 무조건 자도록 했다.

  • 코치 활동을 하면서 옆 사무실을 쓰는 두산 베어스의 코치나 프런트 등과 친하게 지낸다. 잠실야구장에서 같이 담배를 사거나 커피를 사서 마시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 야구게임 9M 프로야구에서 라이센스를 못 땄는지 김두성이라는 가명으로 출시했다.

  • 원조 홈런존 저주를 가진 타자라 볼 수 있을 듯하다. 1998년 현대 아토스 홈런존을 4회에 맞추면서 총 100만원을 타게 되었는데, 같은 해를 끝으로 LG에서 팀을 옮기게 되었고, 이후 삼성,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은퇴했다.

7. 관련 문서[편집]


[1] 1968년생은 주민등록상 나이고 실제는 1967년생이다. 그래서 학교 동기들이 모두 1967년생이다.[2] ~9월 12일[3] 9월 13일~[4] (we will we will rock you 부분에 맞춰) 동~수~동~수~ 김동수! 김동수! 동~수~동~수~ 김동수! 김동수! 이 응원가는 양준혁을 거쳐 최동수에게 이어지게 된다.[5] 주전 포수 활동 시즌이 한 시즌이라도 있는 선수에 한해 봐도 여섯 명뿐이다. 박경완-이만수-홍성흔-김동수-강민호-양의지.[6] 김시진 감독과는 한양대 선후배 사이인데다 과거 현대 시절 선수와 코치, 선수와 감독 사이로 같은 팀에 있었다는 인연이 있다.[7] 최근 히어로즈 우타 강타자 이택근이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돼 가기로 합의했으나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승인 유보로 멈춰져 있습니다. 이렇듯 히어로즈에서는 LG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단 선수 뿐만 아니라 코치, 프런트 등 히어로즈 전신격인 현대 유니콘스 출신들이 대거 LG 트윈스로 적을 옮겼습니다.이택근 이전에는 베테랑 좌완 투수 이상렬이 방출되자마자 LG 유니폼을 입은 것을 비롯해 코칭스태프에도 현대내지는 히어로즈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시즌 종료 후 현대 출신이었던 김재박 감독과 정진호 수석 코치, 김용달 타격 코치 등이 모두 물러났지만 신임 사령탑인 박종훈 감독을 비롯해 아직도 많은 수의 현대 출신들이 있습니다. 지난 시즌 운영팀장으로 프런트에서 근무하다가 1군 수비 코치로 옮긴 염경엽 코치, 삼성을 거쳐 지난 해 친정팀 LG로 복귀한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 지난 시즌 히어로즈에서 건너온 2군의 김인호, 장광호 코치 등이 있습니다. 또 프런트에는 김진철 스카우트팀장과 백성진 스카우트, 운영팀에서 외국인 선수 영입을 담당하고 있는 엄홍씨 등이 있습니다. 현대 출신들이 곳곳에 많아 ‘LG 유니콘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전성기 시절을 일구며 각자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팀재건에 나선 LG 트윈스가 적극 영입했습니다. 물론 살림살이가 어려운 히어로즈에서는 제대로 대우를 못받거나 함께 하지 않은 인사들로 여러 가지 면에서 생활하기 좋은 LG 트윈스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히어로즈 아니 김시진 감독을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환경인 LG행을 마다하고 김시진 감독 곁을 지킨 ‘의리의 사나이’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시즌 종료 후 플레잉 코치에서 포수 코치로 정식 임명된 김동수(41) 코치입니다. 올 시즌 종료 직후인 10월초였습니다. 새로운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던 LG 트윈스는 LG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김동수 코치를 1군 배터리 코치로 영입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김동수 코치와도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룬 상태였습니다. 역시 김 코치를 내년 시즌 1군 주축 코치로 활용할 작정이던 김시진 감독도 김 코치의 LG행을 인지하고 아쉬워했습니다. LG 고위 인사로부터는 “감독님, 김 코치 보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감사의 말까지 들었습니다. 10월 2일 김동수 코치는 인천 집에 있던 김시진 감독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LG의 코치 영입 제의를 알렸습니다. 김 감독은 작별 인사차 온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 감독은 “함께 하고 싶지만 더 잘해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어쩌겠냐. 더 나은 환경에서 열심히 하라”며 덕담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난데 없이 김 코치가 굵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 코치는 “감독님하고 오랫동안 야구하고 싶었습니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사실 김 코치는 전날 이광근 수석 코치를 만나 히어로즈에 잔류할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코치가 김 코치를 설득하는 한편 염경엽 LG 운영팀장에게 “동수는 안된다”며 브레이크를 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제대로 모르던 김 감독은 “잡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했으니 김 코치는 설움이 복받친 것입니다. 김 코치가 떠난 후 김 감독은 이광근 수석 코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코치는 “동수가 남기로 했죠”라고 물었고 김 감독은 “어디든 가서 잘해라”며 보냈다고 했습니다. 깜짝 놀란 이 코치는 “감독님 그게 아니고 동수가 감독님께 남겠다고 말하러 갔는데...”라며 답답해 했습니다.급해진 이 코치는 김동수 코치를 바로 찾았고 김 코치는 마침 인천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이 코치는 부랴부랴 함께 있던 후배들인 심재학, 홍원기 코치를 대동하고 인천으로 달려와 김시진 감독과 김동수 코치를 만났습니다.나중에야 상황을 파악한 김 감독은 그 자리에서 “동수야 미안하다. 니가 남을 생각인 것을 몰랐다. 나와 함께 해보자”며 적극적으로 김 코치를 붙잡았습니다. 김 코치도 “LG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감독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며 최종적으로 히어로즈 잔류를 확정지었습니다. 옆에 있던 이 코치를 비롯해 심재학, 홍원기 코치도 “함께 하자”며 붙잡았습니다. 결국 전격적으로 회동한 이들은 김 코치를 붙잡고 밤늦게 까지 술잔을 기울였습니다.김동수 코치가 올 것으로 믿었던 LG는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동수 코치가 “지금은 김시진 감독님과 함께 할 때”라며 정중하게 거절을 하니 도리가 없었습니다. 김 코치는 지금도 ‘히어로즈에 잔류한 이유가 뭐냐. 진짜 김 감독과 의리와 정 때문이냐’는 물음에 쑥쓰러운 표정으로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우여곡절 끝에 김 코치를 눌러 앉히는데 힘을 쓴 이광근 수석 코치는 “동수가 정말 김시진 감독님 밑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김 감독과의 의리와 정을 지킨 것이다”면서 “사실 우리 팀으로서도 유능한 김 코치가 다른 팀으로 가면 타격이 크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전력을 다 파악하고 있어 절대 타구단으로 보내면 안되는 코치”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결국 김 코치는 좋은 대우와 환경을 뒤로 한 채 ‘김시진호’에 탑승해 내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지도자 활동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LG에서 손만 내밀면 떠나던 히어로즈에서 김 감독 곁을 지킨 코치로 남게 됐습니다. 올 시즌까지 현역 최고령 야수였던 김 코치는 공수에서 안정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수들 사이에서 ‘큰형님’으로 통하는 김 코치가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야구 인생을 써가기를 기대해봅니다. 박선양 _ OSEN 야구팀장 '한국프로야구 스카우팅 노트북' 저자 [8] 일단 은퇴하자마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코치 연수를 다녀오지 않았다.[9] 하지만 이것도 힘들어 보이는 게 기존의 김정민 1군 배터리코치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김동수가 1군 코치진 보직을 잡기도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신임 수석코치인 유지현이 본인보다 무려 4년 후배기도 하고.[10] 1967년생으로 이미 1군 배터리코치와 2군 감독까지 해봤고 일본, 미국 프로야구와는 달리 한국의 야구계는 후배가 더 높은 직급의 감독이나 코치로 있을 경우 그 밑의 코치로 있기 힘든 게 현실이다. 현장 평가가 좋지 않다는 썰이 사실이라면 김동수가 프로 코치에서 밀려나면 갈 수 있는 데는 고교팀, 대학팀 코치나 해설위원, 전력분석원 등밖에 없고 그도 아닐 경우 야구와 무관한 일을 하면서 먹고 살 궁리를 하는 것 뿐이다.[11] 새 2군 감독인 송구홍은 김동수의 1년 후배이다.[12] 원래는 박경완 전 SK 감독대행이 맡을 예정이었으나 대회 개최 전 코칭스태프 인원 조정 과정에서 김동수로 교체되었다.[13] 사실 포수 출신 해설가가 흔치 않다. 90년대에 잠깐 MLB 해설로 활동했던 OB 선수 출신의 박해종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나마 지역방송 단위로 넘어가면 한 때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던 최해식이나 프로 입단 이후 잠깐 포수를 했던 최준석 정도가 끝이다.[14] 이 때문인지 포수 출신인 김태형두산 베어스 감독을 추가로 영입했다.[15] 전임 감독인 유정민 감독은 9년간의 서울고 감독 생활을 마치고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새로 창단되는 클럽팀의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16] KBL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장내 아나운서로만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그 사람 맞다.[17]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양대 시절 후배였던 구대성이 빈볼을 지시했다고 한다.[18]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김동수의 은퇴 기념으로 송진우가 달려나와 등에 플라잉 니킥을 갈긴다.[19] 이 부분은 이병훈의 오류. 김동수는 LG시절 부상이 있었던 91년과 방위 출전으로 잠실구장에서만 출장하였던 94년을 제외하고 모두 두자릿수 홈런을 때린 대표적인 슬러거 포수였다.[20] 당시엔 외야에 XX존이 있어서 이쪽으로 홈런을 치면 LG전자제품을 제공하거나 상금을 주기도 했다.[21] 스톡킹에서 구대성이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진짜 이유는 당시 경기에서 현대가 칠 수 없는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이건 분명 현대 쪽에서 싸인을 훔쳤을 거라는 확신이 생겨서 빈볼을 지시했다고 한다. 근데 지시를 받은 안영명이 2구째까지도 빈볼을 못 맞히자 속으로 "어휴 그것도 못 맞히냐 바보같은 새끼 ㅉㅉ" 하면서 대기실로 들어갔는데 잠시후 경기장에서 뭔가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났고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안영명은 맞힐때까지 계속 던졌다고 한다.[22] 조용훈이 87년생, 06년 고졸인데 황두성은 76년생, 95년 고졸(11살 차이), 정민태는 빠른 70년생, 88년 고졸(18살 차이), 전준호는 빠른 69년생 87년 고졸(19살 차이)로 전부 나이차가 큰 선배들이었다. 그런데 이 들이 계속해서 조용훈을 포기하면서 20살이나 차이나는 현대 왕고 김동수가 맡게 되었다고 한다.[23] 실제 나이로도 20살 차이, 서울화곡초등학교 2회(김동수)-22회(조용훈) 선후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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