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패션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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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김동수(金東洙)[1]

8-90년대에 활동한 모델로 대한민국 출신의 패션모델들 중 최초로 유럽에서도 맹활약하며 성공을 거둔 인물.


2. 생애[편집]


1남 4녀중 넷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는 큰 키 덕분에 농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졸업 직후인 1978년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어느 날 지나가던 남자 흑인 모델이 김동수에게 '당신 모델인가요?’라고 물었고,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모델 콘테스트에서 3위 입상을 했다고 한다.[2]

처음에는 그저 입상을 했다는 것에 놀라워하고 있었는데, 1등에게 돌아가야 할 기회가 마침 그녀에게 왔다. 콘테스트 주최측이 그녀에게 프랑스에 가지 않겠냐고 제의했고,그때부터 그녀는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모델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어 한 마디도 제대로 구사할 줄 몰라서 파리에서 바로 돌아와야했고, 배고픈 신인 모델 생활을 견뎌내길 3년. 칼 라거펠트, 지안 프랑코 페레, 입생로랑 등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동양계 모델로는 최초로 패션쇼의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서양의 유명 패션쇼에서 맹활약한 뒤 1985년 귀국해서는 앙드레 김, 지춘희, 이신우, 하용수, 진태옥, 이영희 등 국내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 무대에 서면서 한국 모델계의 고정관념을 깨도록 만들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패션업계는 예쁜 얼굴에 165cm전후의 모델들을 선호하였으나 1985년 김동수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판도는 완전히 바뀌어, 큰 키를 가진 모델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오랜 기간 탑모델로서 활약한 경험을 살려 '모델학' '김동수의 핸드백엔 먹을 것이 가득하다' 등의 저서를 썼으며 2000년부터는 동덕여대 스포츠학과[3] 교수직을 맡았고, 2007년에는 초대 모델학회 회장직도 맡았다.


3. 여담[편집]


  • 남편은 미국인[4]노엘 코퀴야드이며, 식품 무역회사 카길의 대표이사를 맡은 적도 있다.

  • 그녀의 아들인 코퀴야드 안드레 진(김진)은 한국 럭비 사상 첫 귀화 선수가 되어 주목받았다.[5] 2020 도쿄 올림픽 한국 럭비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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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G 트윈스의 김동수 코치와 이름 한자가 같다. 그런데 사실 김동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한자를 동일하게 사용한다.[2] 사실 큰 키에 개성있는 얼굴로 한국에서는 외모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듣지 못했는데, 미국에서 ‘뷰티풀’이라는 찬사를 들었다고 한다.[3] 동덕여대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스포츠학과가 체대가 아닌 자연과학대학 소속이며 커리큘럼도 스포츠과학 이론에 관한 것이다. 하위 전공으로 스포츠모델과가 있다. 김동수는 처음엔 스포츠학과 교수를 맡았으며, 이후 특수대학원인 공연예술대학원 연극심리학과 모델 전공을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4]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Coquillard가 프랑스식 성인 데다가 아들의 이름도 프랑스식인 Andre다.[5] 한국명은 김진이다. 현재는 대한민국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 선수이자 OK금융그룹 럭비팀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