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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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 문헌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920년 8월 19일 평안남도 강동군 원탄면 표대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가서 명치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던 1944년 1월 일본군 평양사단내 48공병부대에 강제 징병되었다. 당시 평양사단은 42, 43, 44 보병부대 및 47포병부대와 48공병부대, 50치중병부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부대에 각기 배속되었던 학병들은 1944년 7월 초년 훈련병 과정을 마치고 병영 생활에 익숙하게 되자 42부대를 중심으로 집단 항거를 계획했다.

평양사단내 각부대 학병들은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하였다. 김문식은 48공병부대 소속으로 이 계획에 참여하였고, 학병조직의 제2지대 분지대 지휘를 맡았다. 처음에는 평양사단병영의 폭파가 계획되었으나, 폭약과 탄약의 입수가 어려워서 보류되었고, 일단 부대를 탈출한 뒤 한국과 만주 국경지대와 부전고원 등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다 때가 오면 평양사단을 폭파하기로 하였다.

1944년 10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를 진행했는데, 각 부대간의 연락이 제대로 되지않아 부득이 거사일을 한달 뒤인 11월 1일로 연기하였다. 그러던 중 한인 헌병보조원이 이 계획을 탐지하여 일본군 헌병대에 밀고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김문식은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일본군 군법회의에 넘겨져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8.15 광복 직후 출옥했다. 이후 서울로 월남하여 조용히 지내다 1995년 8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김문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5년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3. 참고 문헌[편집]


  •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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