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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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의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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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27회 FIBA 아시아 챔피언십 베스트 5



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

파일:김민구 스킬트레이너.jpg

김민구
金敏九

출생
1991년 6월 24일 (32세)
경기도 수원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90cm|체중 78kg
포지션
농구선수(가드[1] / 은퇴)
학력
매산초등학교 (졸업)
삼일중학교 (졸업)
삼일상업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스포츠지도학 / 학사)
프로입단
2013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전주 KCC)
현역시절 등번호
23
병역
병역면제 (장애)[2]
소속
선수
전주 KCC 이지스 (2013~2019)
원주 DB 프로미 (2019~2020)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20~2021)
코치
삼일상업고등학교 농구부 A 코치(2022~2023)
삼일중학교 (2023~)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3. 프로 선수 시절
4. 은퇴 이후
5. 논란 및 사건사고
6. 플레이 스타일
7. 여담
8. 역대 프로필 사진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의 前 농구 선수. 김종규, 두경민과 함께 경희대 BIG 3로 유명했으며, 제 2의 허재라고도 불리우던 기대주였다. 그리고 프로 입문 첫 시즌에도 왜 이러한 기대를 받는지 알 수 있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으나, 음주운전+졸음운전+안전벨트 미착용이라는 최악의 판단으로 교통사고를 겪고 고관절을 다치는 큰 부상을 입으며 선수 커리어에 큰 위기를 맞이했고 부상 회복 후에는 그 여파로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을 보여주다가 은퇴를 선언했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편집]


삼일상고를 거쳐 경희대학교에 입학한 후, 1학년부터 돌풍을 일으키면서 팀의 주전 가드로 맹활약했다. 1학년인 2010년에는 중앙대학교의 아성에 밀려 우승에 실패했지만, 2학년인 2011년과 3학년인 2012년에는 동기인 두경민, 김종규와 함께 경희대의 전설을 주도하면서 2011년과 2012년 한국대학농구리그에서 경희대의 2연패를 이끌었고, 선수 자신은 2년 연속 대학농구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대학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국가대표로 선발된 김민구는 2013년 아시아농구선수권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상대팀들은 무명의 신인이였던 김민구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고, 대회기간 동안 김민구의 폼 또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4강전인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쇼타임은 농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3-4위전에서도 대활약하면서 대한민국이 16년만에 세계 대회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해당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대학생의 신분으로 아시아 베스트 5에 뽑히기도 했다.


3. 프로 선수 시절[편집]



3.1. 전주 KCC 이지스 시절[편집]


파일:허재 감독 김민구 지명.jpg
2013년 9월 30일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주 KCC 이지스에 지명받아 입단하였다.

2013-14시즌 전국체전때문에 1라운드 중반에야 합류할수 있게 되었는데, 10월 26일 서울 삼성 썬더스전에서 프로무대 첫 경기 출전을 하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12득점에 7어시스트라는 기록을 남기고, 팽팽하던 그날 경기에서 연패를 끊는 승리를 거두는데 기여했다. 전날 두경민에 이어서 성공적인 개막전을 치렀다. 참고로 이런 활약을 오전에 팀에 합류해서 호흡을 맞췄는데도 불구, 안정된 플레이를 보이자 팬들은 환호했다.

신인답지 않게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고 명실상부한 KCC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르는 중. 경희대 시절 동료인 김종규두경민보다 평가가 높다. 특히 같은 포지션인 두경민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슛팅력에선 두경민이 앞선다는 평가이지만 나머지 패싱력, 시야, 게임 리딩, 드리블은 김민구가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재 감독이 김민구의 재능에 극찬을 하면서 농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는 선수라면서 NBA에 도전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인터뷰를 할 정도로 한국농구의 기대주로 주목받았으며 당시 KCC 코치였던 NBA 신인왕 출신 척 퍼슨 코치도 김민구의 NBA 진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물론 제레미 린보다 재능이 뛰어나다고 극찬하기도 하였다. 다만 피지컬과 체력 문제를 더 보강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조언을 하였다. 하지만 시즌 시작 후 몇몇 부족한 모습들을 보이며, 적응기간을 갖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NBA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국내 가드들과의 매치업에서는 우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지만 김선형을 상대로 별 활약이 없기도 하였고, 삼성전에서도 크게 힘을 쓰진 못했다.

2013년 12월 14일 SK와의 경기 도중 2쿼터에서 애런 헤인즈와 크게 충돌, 호흡곤란을 보이며 부축을 받으며 경기 도중 퇴장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는지 3쿼터에 복귀했지만 4쿼터는 뛰지 않았다. 문제는 김민구는 공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충돌하여 더 큰 부상의 위험성이 존재했다.[3] KCC 구단 및 팬들은 헤인즈를 성토하며 중징계를 요구했다. 실제 그 여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건 이후 경기력이 조금 다운되었다.

결론적으로 루키였지만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은 리빌딩 관계로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약체로 평가받는 팀이라 할지라도 신인이 바로 에이스에 가까운 롤을 맡았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였다. 하승진이 전역하고 트레이드로 김태술을 영입하면서, 김민구의 성장이 뒷받침되면 단숨에 팀이 우승 후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3.1.1. 음주운전 사고[편집]


2014년 6월 7일 음주운전 교통사고냈다.

이 교통사고로 고관절을 크게 다쳤는데, 처음 교통사고와 부상 소식이 들려오자 팬들은 동정어린 시선을 보냈으나, 곧 음주운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곧바로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거기에 음주 상태에서 졸음운전을 한 것도 모자라 안전벨트도 착용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팬들은 분노를 넘어 어이가 가출한 상태. 더구나 고관절 부상은 잘못하면 선수 생명까지도 끝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종목에서 스포츠 선수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데[4], 1쿼터 10분, 풀타임 40분을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는 농구 선수 입장에서도 뼈아플 수 밖에 없다. 물론 본인이 음주운전에 벨트도 안 매서 그런 일이 벌어진거니 자업자득이다.

3.1.2. 음주운전 이후[편집]


사고 이후 재활기간을 가지다. 2015-16 시즌을 앞두고 열린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의 선수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다만 몸 상태가 온전치 않기 때문에 출전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일단 출전이 가능한 상황이 된다면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사과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2라운드 경희대와의 경기를 앞두고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경기에 투입되어 7분여를 뛰었다. 경기 후 사과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아직 정상적으로 회복된 몸 상태는 아니라고 하며, 다리에 플라스틱으로 된 보조기를 착용한 채 뛰고 있다고 한다. 경기 출장을 앞두고 14개월만에 사과문을 발표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대다수이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는 반응도 존재했다.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징계 처분을 받을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015년 9월 8일, KBL은 불법도박 혐의와 관련하여 입건된 현직 선수 11명의 명단을 발표함과 동시에 김민구의 징계 내용도 함께 발표했는데, 경고조치 및 사회 봉사활동 120시간에 그쳐 징계가 너무 가볍다며 팬들 사이에서 성토가 이어졌다. 같은 시기의 타 종목 선수들의 음주운전 징계와 비교해 봤을 때, 터무니 없는 솜방망이 징계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게다가 경기출전금지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몸 상태만 회복된다면 거의 아무런 지장 없이 시즌 경기를 뛸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KCC 구단마저도 "선수가 "1년간 굉장히 심한 고생을 했다."며 자체 징계에 대한 생각은 없다고 밝혀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결국 음주운전 사고만으로도 큰 문제이지만, 더욱 더 큰 논란이 되었던 건 사고 이후의 처신 때문이었다. 사고 이후 쭉 회복기간을 가지다 2015-16 시즌을 앞두고 열린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 선수 엔트리로 등록되었는데, 대회직전까지 1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공식적인 사과나 해명, 징계가 없었다. 이렇게 반성하는 모습이나 공식적인 사과 얘기는 일절 없는 상황에서, SNS에 본인의 화보사진과 글을 떡하니 올려 팬들의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가장 큰 결정타는 사고 이후 장애인으로 등록돼 군대 면제를 받았다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였다. 군입대로 생길 2년의 공백기간을 재활 1년으로 끝낸 것이 아니냐는 팬들의 비아냥도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5-16 시즌 개막전에서 출장해 8득점을 기록했다. 심지어 큰 부상을 당한 선수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4쿼터를 풀타임으로 뛰기도 했다. 경기 후 "시즌전 신경이 30퍼센트만 돌아왔다, 보조기를 끼고 출전한다, 올해는 D리그에서 뛰게 하겠다."라던 기사는 모두 언플이었냐며 신나게 까이는 중이다. 게다가 "김민구가 징계로 받은 봉사활동은 나중에 차차 하겠다"추승균 감독의 발언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폭풍 까임 당하고 있다. 또 개막전에서 보조기 없이 뛰었다는 게 드러나며 김민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후 구단에서 김민구의 사회봉사 계획서를 KBL에 제출했지만 댓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개막전 출전 이후 비판 여론을 인식했던 것인지 일단 징계로 받은 봉사활동 120시간은 다 채웠다고 한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에밋에게 쏠리는 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외곽 슛터의 옵션으로 기용되고 있다. 1차전에서는 4쿼터에 승부를 결정짓는 3점슛 2방으로 팀 승리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득점루트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오리온의 수비 전략에 공략당하여 외곽 슛터의 롤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게다가 1차전의 문태종에게 행해진 도발이 역으로 오리온에게 스팀팩을 놓아 준 효과가 되어버려 2, 3, 6차전을 압도적으로 관광당하고 적지에서 오리온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2016-17 시즌에는 김지후에게 밀려 팀에서 존재감이 없어졌다. 출장 횟수를 세는 게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

이후 별다른 활약 없이 2018-19 시즌이 종료된 후 FA로 풀렸고, KCC와 재계약 협상이 불발되어 타팀과 협상하게 되었다. 타팀에게 아무런 관심도 못받으면서 FA 미아가 될 뻔했지만, 가까스로 원소속팀 KCC와 3500만원에 재계약을 하였다. KCC가 1차 협상 때 제시했었던 6천만원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3.2. 원주 DB 프로미 시절[편집]


2019년 5월 30일 박지훈을 상대로 원주 DB 프로미로 트레이드되어 이적했다. 이로써 2020년 1월 8일에 전역하여 합류하는 두경민, FA로 합류한 김종규원주 DB 프로미에서 뛰게 되면서 2013년 이후 6년만에 경희대 3인방이 다시 뭉치게 되었다.

10월 23일 고양 오리온 전에서 21득점 4어시스트 4리바운드 3스틸을 기록 하면서 음주운전 사고전의 기량을 짧게나마 보여주었다. 11월 2일 삼성 썬더스전에서 팀은 패배했지만 무려 27득점을 넣으며 과거로 회귀한듯한 모습을 보였다. 11월 12일 친정팀 전주 KCC 상대로 12득점 4리바운드 5어시스트 3스틸로 친정팀에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느낌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11월 21일 부산 kt 전에 부상을 당하고 12월 22일 부산 kt 전에서 복귀해 19득점 3리바운드 5어시스트 등 대활약으로 왜 김민구가 농구 잘하는 선수인지 알겠다는 캐스터의 찬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지금까지 평균득점 10.3점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언론에서 다시금 재조명을 받고 있다. 1월 8일 경희대 Big 3의 일원인 두경민이 전역하면서 경희대 Big 3가 한팀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상대로 1월 10일 두경민이 전역 후 첫 경기를 치루면서 경희대 Big 3가 코트에서 함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3.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시절[편집]


2020년 5월 11일, 계약기간 2년에 보수총액 2억 3000만원으로 울산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직전시즌 연봉인 3500만원보다 1억 9천 500만원을 더 받게 되며 인상률은 557.1%로 역대 최고 기록이다.[5] DB에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 덕분에 쉽지 않은 기록을 갈아치운만큼 김민구는 현대모비스에서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증명해야 하는 미션을 받게 됐다. 현대모비스는 양동근의 은퇴로 생긴 가드진의 공백을 김민구와 이현민으로 채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비 쪽으로 아직도 약점이 많이 보이고 내구성이 떨어져 풀타임 주전보다는 교대로 뛸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11월 19일. 전자랜드 전에서 21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팀의 역전승의 주역이 되었다.

김국찬이 시즌 아웃되고, 전준범도 부상인 지금의 현대모비스 주전 라인업 중에서 서명진과 함께 외곽슛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다행히 3점슛 능력은 나쁘지 않지만, 경기 기복이 심하다는 단점을 드러내고 있다.


4. 은퇴 이후[편집]


2021년 6월 24일. 자신의 생일날 현역에서 은퇴했다. 비록 전성기에 비해 기량은 많이 떨어졌지만, 본인이 현역 생활을 지속하고자 했다면 은퇴를 할 만한 기량은 아니였다. 2년전 DB에서는 핵심 식스맨으로 활약했고, 직전 시즌도 모비스에서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에 의문을 표했다. 허나 선수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무릎 상태가 거의 한계라고 판단했으며, 아쉽지만 몸이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은퇴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것으로 한때 김종규, 두경민과 함께 경희대 BIG 3라고 불리던 김민구는 30세라는 이른 나이에 8년의 선수생활을 끝으로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

은퇴 이후에는 고향인 경기도 수원에서 프라임타임 소속의 스킬 트레이너를 맡고 있다.[6]

이후 2022년에 모교인 삼일상고 농구부의 A 코치를 맡았으며 2023년 5월에 삼일중학교 코치에 부임하여 활동중이다.


5.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3월 19일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4쿼터 중요한 3점 2개로 팀의 승리를 이끄는데 기여했지만 문태종에게 도발을 했는지 신경전이 일었었다.[7] 이에 팬들은 김민구에게 비판의 댓글을 날리고 있다.

영상을 보면 팔을 들어 문태종에게 먼저 파울을 했고, 이를 뿌리치는 문태종에게 먼저 손이 올라갔고 트래시 토크를 하는 장면을 아주 세세하게 리플레이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이 말리는 와중에 "뭐!"라고 하면서 식빵을 구웠는데 문태종에게 했든 장재석에게 했든 쉴드의 여지가 없는 잘못. 욕을 하는데 나이를 따지는 행동은 어리석은 행동이기 때문에 "문태종이 아닌 장재석에게 했다"는 실드는 그저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반대로 문태종이나 장재석이 김민구에게 쌍욕을 했더라도 이건 잘못된 행동이다. 물론 경기 중에 트래시 토크를 하는 건 승부를 내야 하는 프로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손을 올리면서 욕을 한 건 당연히 잘못된 행동이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문태종은 내가 존경하는 형이자 슈터"라며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농구팬들의 반응은 이구동성으로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x발 짜증나게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지사. 같은 연배의 현역 레전드인 주희정이나 김주성 앞이라면 그런 소리를 했을 것이냐는 반응.[8] 결국 자신의 경솔한 행동들로 인해서 향후 10년간 국가 대표팀을 책임질 초특급 가드 유망주에서 2년만에 농구 팬들로부터 영구까임권을 받는 존재로 추락하고 말았다.[9]

챔피언결정전 3, 4차전이 적지 고양체육관에서 열렸는데, 김민구는 몸 푸는 순간부터 경기 끝나는 시점까지 공만 잡으면 야유가 쏟아졌다. 응원단장과 장내아나운서 등이 수차례 자제를 부탁했지만 여론의 강한 반감은 감출 수 없는 듯하다. 본인도 4차전 중요한 순간에서 연거푸 슛을 놓치는가 하면, 자유투 상황에서 엄청난 야유에 표정변화가 잡히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챔피언결정전이 끝나고 밝혀진 이야기로는 오리온 선수들의 반응은 김민구가 사과를 했고, "경기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라고 앙금이 거의 사라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6. 플레이 스타일[편집]


부상 전
다재다능한 듀얼 가드. 경희대 시절 득점에 주력한 두경민을 대신해 실질적인 포인트 가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전반적인 센스와 기술이 뛰어났던 건 물론 돌파, 점프슛 모두 다양한 스킬셋을 보유했다. 최상급의 운동능력은 아니였지만, 전반적으로 준수했으며,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인게임 덩크도 가능할 정도였다. 특히 뛰어난 바디밸런스를 바탕으로 수비수와 부딪히는 상황에서 마무리가 좋았다. 리바운드 참여에도 뛰어나 포지션 대비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단점으로는 기복이 심했고, 득점뿐 아니라 경기력 자체에 있어 업앤 다운이 심했었기 때문에 개선해 나갔어야 할 부분으로 꼽혔다.

부상 후.
음주운전 사고 이후에는 운동능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고관절 부상 때문인지 수직으로 뛰거나 점프하는 부분은 괜찮지만[10], 순간적인 움직임이나 사이드 스탭등 가로로 움직이는 동작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래도 수비력이 좋지는 않았지만, 부상 후에는 수비에 대한 대처가 어려워 김민구 출전 시 상당 시간을 지역방어를 섰다. 다만 센스와 슈팅력은 살아있었으며 돌파보다는 슛, 순간적인 센스를 바탕으로 선수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하였다.


7. 여담[편집]


  • 실력은 출중하지만 헐리웃 액션을 자주하는 플랍퍼로 안티가 좀 있는 선수였다. 특히 음주운전으로 농구력을 잃은 이후에는 이 빈도가 더더욱 늘어버렸다.

  •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공격수 곽승석과도 닮았다.[11]

  • 대학시절 별명은 구비 브라이언트. 코비를 따온 별명이다. 팀 내에서는 이한권이 지은 아베라는 별명이 있는데, 아시아 베스트 5의 줄임말이다.


8. 역대 프로필 사진[편집]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파일:김민구2020-21.png

2020-21 시즌

9. 관련 문서[편집]


[1] 대학 시절과 프로 데뷔 1~2년차 까지만 해도 포인트 가드슈팅 가드를 넘나드는 듀얼 가드였지만, 음주운전 사건 이후에는 kcc에서는 스몰포워드로 뛰다가 db에서는 상황에 따라 1번과 2번을 번갈아 보다가 모비스로 이적 후에는 1번으로 출전하였다.[2] 후술할 음주운전 중 낸 교통사고로 장애판정을 받았다.[3] 실제로 양 코치진 및 심판들은 김선형을 보느라 이 장면을 보지 못했다.[4] 그나마 재활이 성공적이었던 몇 안되는 사례로 전직 야구선수 김재현을 들 수 있는데, 그 김재현도 2002년 수술 후 2010년 은퇴할 때까지 외야 수비가 불가능해서 지명타자로만 뛰었다.# 물론 김재현의 경우 원래 LG 시절부터 외야 수비가 그닥 좋지 않았고 고관절 부상 이후에도 수비 자체를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선수 생명을 갉아먹을 위험도 있는데다 SK 타선이 나름 괜찮았기 때문에 굳이 외야로 나가지 않기로 한 것이니 어느정도 감안할 점은 있다. 참고로 이 당시 FA때 고관절 부상에 대해 구단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 하여 논란이 일었다.[5] 김민구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는 2016년 김우람(3,800만원→1억 9천만원, 400%)의 계약이 인상률 최고 기록이었다.[6]고양 오리온스 소속 농구선수였던 박찬성이 이 곳의 대표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다.[7] 문태종이 아니라 장재석에게 한 것이라는 KCC 팬들의 주장도 있었지만 밑의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문태종에게도 하고 장재석에게도 한 것이다.[8] 그리고 문태종과 김민구의 나이 차이는 16살 차이. 그러니까 삼촌 뻘 되는 선수한테 욕을 하고 시비를 건 것이다. 결국 김민구는 문태종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선후배 확실한 스포츠계에서 저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더더욱이나. 전태풍의 말처럼 혼혈선수에게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 선수들이 있지 않는가. 물론 코트 위에선 선수 대 선수로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이런 행동이 용인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9] 16시즌에 기량을 회복했기 때문에 팀내 까임지분이 많이 줄어들었다.[10] 19-20시즌 DB에서 뛸때 연장전에(!) 인게임 덩크를 꽂은 적도 있다[11] 이 사실은 배구 전문 프로그램인 스페셜 V의 부속프로였던 닥터V 대한항공 편 - 15:10부터에서 공식 인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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