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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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만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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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02, 2007 KBO 퓨처스 남부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04 KBO 퓨처스 북부리그 다승왕

한화 이글스 등번호 30번
예상효
(1999~2000)

김백만
(2001~2003)


윤근영
(2005~2006)
한화 이글스 등번호 28번
윤현민
(2005)

김백만
(2006~2009)


전현태
(2010~2015)



파일:부산정보고김백만.jpg

김백만
金伯萬 | Kim Baek-man

출생
1982년 8월 12일 (41세)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양정초 - 부산개성중 - 부산고
신체
183cm, 86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2차 1라운드 (전체 5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1~2009)
지도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0~2015)
부산정보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5~2021)
경일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2)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3~)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4~2005)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프로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82년생 3인자에 대해 말이 많은데 진짜 3인자는 김백만입니다[* 스톡킹에서 심수창과 정용검, 장원삼이 이대호에게 찾아가 물어볼 때도 "김백만이가 3등이죠~"라고 인증했고, 그나마 "빠따로는 국가대표 했던 근우", 태인이, 경어이.. 다 아니죠. 라고 누누히 말했다.]

이대호, 82년생 동기들 중 고교시절 추신수 이대호 다음이 누구였냐는 질문의 답

부산고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우완 투수로, 부산고등학교 투수코치를 거쳐 부산정보고 감독을 맡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개성중학교[1]를 거쳐 부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부산 지역 예선에서 호투했고 부산고가 1999년-2000년 2년 연속으로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했으나[2] 스포트라이트는 동기생 에이스에게 집중돼 가려진 감이 없지 않았다. 신문기사. 신문기사2.


2.2. 프로 경력[편집]


2001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았을 만큼 기대치는 꽤 컸고, 당시 1차 지명인 김태균(1억6천만원)보다 높은 계약금(2억원)을 받고 입단했을 정도.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고등학교 동기 정근우에 적시타를 맞으며 2군행 버스를 타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정근우, "친구 (김)백만아, 미안하다"

유독 쟁쟁한 선수가 많았던 부산의 82년생 선수들은 추신수, 이대호, 정근우, 채태인, 김경언, 장민석, 이우민 등 야수가 많았는데, 투수로서는 김백만이 항상 첫 손에 꼽히곤 했다. 그만큼 아마추어 시절 기대가 컸던 선수였으나 프로에서는 아마추어 시절의 기대치만큼 잘 하지 못했다. 훈련 때 악바리처럼 열심히 한다는 평을 받곤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통산 1군 6시즌 78경기 151.1이닝 4승7패5홀 방어율 5.71. 선발과 불펜을 왔다갔다 하면서 쓰였는데 선발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불펜에서는 추격조로 그럭저럭 하는 정도의 선수였다. 아마추어 시절의 기대치가 컸고, 또한 이러니저러니 해도 군 복무하던 해를 제외하면 매년 1군 마운드를 밟았던 만큼 조금 더 도전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일찌감치 프로생활을 접었다.

그나마 이 김백만이 묻혔던 이유는 3년 뒤 KIA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한 김주형15년 동안 유망주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김백만은 일찍이 은퇴 후에 제자를 양성해내며, 부산고 투수코치로 재직했었다가 3년 후배인 김수형에게 넘겼는데, 이 김수형은 그 김주형을 고의사구로 거른 장원준의 동기이다. 당시의 김백만 기대치는 장원준보다 높았던 셈이다. 어쩌면, 김백만의 안티테제가 장원준인 것.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부산고등학교 선배 야구인들의 권유로 28살의 나이에 2010년부터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부임했고, 이민호, 송주은 등을 키워냈다. 이민호는 NC 우선지명, 송주은은 2차 1라운드.

부산고등학교 투수코치 직을 고교 3년 후배 김수형[3]에 넘기고, 부산정보고 감독으로 부임했다.부산정보고 돌풍, 그리고 감독 김백만

2018년 그가 지휘봉을 잡은 부산정보고 야구부에서 처음으로 프로선수배출했다. 전사민은 2차 2라운드.

2018년 롯데기 야구대회에서 부산 정보고가 경남고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4:1스코어로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고 동시에 김백만 감독 본인 역시 대회 우수 감독상을 수상, 제자인 남지민 선수와 김현준 선수가 각각 수훈상, 우수선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고교시절 및 프로 초년생 때 일화, 지도자로서의 삶 등에 대해 인터뷰하였다. 아마야구 그들이 만드는 세상<3> 30대 젊은 고교 야구 감독의 이유있는 반란

2019년에는 창단 후 첫 전국대회 8강(황금사자기) 진출의 쾌거를 이뤘고 제자 남지민이 한화의 지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자신의 19년 전이 그랬던 것처럼 남지민도 2차 1라운더였다.

2021시즌이 끝난 뒤 경일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4. 여담[편집]


정근우가 고교 졸업 당시 추신수의 미국행 때문에 지명을 못 받았다는 설에 대해 반례로 언급되는 이름이다.

동갑내기 프로야구선수들이 부산에 많았다. 추신수, 김백만, 정근우(이상 부산고), 이대호, 장민석(이상 경남고), 채태인, 이우민, 차정민(이상 부산상고), 김경언, 김덕윤, 송산, 백승룡(이상 경남상고), 이명우(부산공고)[4] 등이 같은 해에 활약했다.

1982년생 부산지역 고교야구 1인자는 추신수, 2인자는 이대호, 3인자에 대해 야구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나 개요 문단에서도 보이듯이 이대호는 김백만을 3인자로 찍었다. 3인자 후보로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채태인,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대표로 뽑힌 정근우 그리고 '내 아이가?'라고 말한 김경언 등이 있다. 다만 프로에서의 활약을 따지자면 3인자는 정근우가 맞긴 하다.

5. 관련 문서[편집]



[1] 동기생은 김경언이 있으며, 김경언은 경남상고로 진학했다.[2] 2000년 대회 덕수정산고과의 준결승에 선발등판하여 2학년 에이스 류제국과의 맞대결에서 완투승을 거뒀다.[3] 부산고-고려대를 거쳐 LG(신고선수로 입단)에서 뛴 사이드암 투수로, 장원준, 박근홍과 동기생이다.[4] 이명우는 유급하여 1982년생 친구들보다 한 해 늦게 고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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