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학(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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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자료



1. 개요[편집]


1922년 3월 15일~1983년 9월 30일

광복군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군인.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 수여.


2. 생애[편집]



1922년 평안남도 용강군 출생. 중국 서주 지역에서 항일 지하운동을 하던 중 1945년 몽성 지역에서 광복군 제3지대에 현지 입대 하였다. 1주일 간 심사 후 서주 지역으로 잠입해 초모 공작 및 서주 지역 내 광복군 조직망 강화를 하였다. 1945년 5월 4일 일본군의 학병 환영식 및 위안회를 틈타 학병 김재기를 접선하고, 학병 탈출을 도모하였다. 해방 후 광복군 특파단으로 김국주, 문수열과 함께 방부 지구 특파단으로 한인 교포들의 안전과 귀국을 위해 활동했다.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하고, 정보장교로 활동하다 1960년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후 1963년 군납진흥회장[1]에 취임하였으나, 1964년 강세희 전임회장[2] 살인교사혐의로 구속되었고,1965년 무죄로 풀려났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을 받았고, 1983년 9월 30일 원호병원(현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 위암으로 별세했다. 사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3. 참고자료[편집]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운동사 제6권, 독립군전투사(하), 414, 415, 416, 5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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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임회장은 야인시대로 유명한 홍영철이 맡았다.[2] 군납진흥회 초대회장이며 후임은 홍영철이 맡았고, 그 뒤를 김병학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