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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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파일:체육훈장.png
연도
2005년
이름
김병현
분야
스포츠
사유
체육발전유공
체육훈장거상장(3등급)

김병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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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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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RI_2001_WSChampion.gif파일:BOS_2004_WSChampion.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01
2004

파일:2002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2002

파일: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로고.svg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1998




김병현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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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번호 49번
브라이언 코리
(1998)

김병현
(1999~2003)


에드가 곤잘레스
(2003)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51번
케빈 톨라
(2003)

김병현
(2003~2004)


테리 아담스
(2004)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9번
제이슨 영
(2004)

김병현
(2005)


호세 메사
(2006)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8번
팀 올슨
(2005)

김병현
(2006)


제이슨 허쉬
(2007~2008)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9번
호세 메사
(2006)

김병현
(2007)


팀 하리칼라
(2007)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49번
맷 허지스
(2006)

김병현
(2007)


아르만도 베니테즈
(2007)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38번
브라이언 몰러
(2006)

김병현
(2007)


다니엘 바론
(2007)
{{{#E3D4AD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번호 32번}}}
랜디 초트
(2006~2007)

김병현
(2007)


밥 위크먼
(2007)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23번
랜디 메신저
(2005~2007)

김병현
(2007)


앤드류 밀러
(2008~201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99번
나카무라 노리히로
(2009~2010)

김병현
(2011)


카와타 히사시
(2012~2013)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9번
조평호
(2011.6.14.~2011)

김병현
(2012~2014.4.9.)


김영광
(2014.4.10.~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45번
김영광
(2014~2014.4.9.)

김병현
(2014.4.10.~2016)


팻딘
(2017~2018)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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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병현.jpg

김병현
金炳賢|Kim Byung-hyun

출생
1979년 2월 15일[1] (45세)
광주광역시 북구
거주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위시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광주수창초등학교 (졸업)
무등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법학 / 중퇴)
신체
178cm, 87kg, A형
포지션
투수[2]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97년 고졸우선지명 (해태)[3]
1999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ARI)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5번, 현대)[4]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2003)
보스턴 레드삭스 (2003~2004)
콜로라도 로키스 (2005~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1)
넥센 히어로즈 (2012~2014)
KIA 타이거즈 (2014~2016)
멜버른 에이시스 (2018/2019)
지도자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 인스트럭터 (2018)
해설위원
MBC 야구 해설위원 (2019~2020)[5]
병역
예술체육요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상훈
체육훈장 거상장
기록
무결점 이닝 (2002.5.11.)[6]
소속사
파일:ELpark_메인-CI-영문.png[7]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MLB 로고.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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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배우자
한경민(1981년생)(2010년 결혼)[1]
자녀
장녀 김민주(2011년생)
장남 김태윤(2014년생)
차남 김주성(2017년생)
형제자매
1남 3녀 중 장남[둘째]
종교
불교개신교[2]

1. 개요
3. 피칭 스타일
3.1. 투구폼
3.2. 김병현의 보직 논란
4. 은퇴 이후
4.1. 해설자
4.2. 방송 활동
4.3. 자영업자
6. 수상 경력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삼진을 잡는 능력만큼은 나보다도 뛰어나다."

랜디 존슨[8]


"저런 X같은 을 던지는 투수는 MLB에서 당장 퇴출시켜야 된다."

블라디미르 게레로[9]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아시아인 최초[10]내셔널 리그[11]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자 한국인 최초로 월드 시리즈란 큰 무대를 밟아본 선수이다.[12]

한국, 일본, 미국, 호주, 도미니카 공화국 등 무려 5개국의 프로야구 리그에서 뛴 이력이 있다.

은퇴 이후에는 방송인 겸 '광주제일햄버고'라는 햄버거집 등 여러 식당을 운영하는 요식업 사업가로 활동중이다.


2. 선수 경력[편집]




3. 피칭 스타일[편집]


}}}
2003 ALDS 1차전에서 마크 엘리스와의 승부에서 던진 98마일[13]

파일:본투케이.jpg

전성기엔 언더핸드 스로면서도 평균 140km대 중후반, 최고 158km/h[14][15]를 던지는 엄청난 강속구를 자랑했으며[16], 뱀처럼 휘어지는 프리즈비 슬라이더와 업슛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기본적으로 언더핸드기에 위의 움짤처럼 무브먼트도 뛰어났으며 거기다 업슛, 싱커, 프리즈비 슬라이더, 백도어 슬라이더가 홈플레이트에서 각각 상하좌우로 휘어지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25EC%2597%2585%25EC%258A%259B.gif


파일:BK_Slider.gif

업슛
슬라이더

}}} ||
싱커

특히 그 중에서도 프리즈비 슬라이더는 엄청난 각도로 날카롭게 휘어졌던 터라 위의 이미지처럼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임에도 타자는 그것이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인 줄 착각하여 휘두르는 일이 있었을 정도다. 여기에 특유의 구위와 메이저리그에서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언더핸드 투수라는 유니크함[17]이 더해지면서 김병현은 전성기 시절 동안 말 그대로 리그를 완전히 씹어 먹었다. 이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탈삼진율까지 기록하며 Born to K(탈삼진을 잡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일명 BK 라는 별명을 얻었으며[18], 1이닝 9구 3탈삼진(무결점 이닝)[19][20]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약 40여 명의 투수밖에 이루지 못한 일대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파일:byunghyunkim.gif}}} ||
전설의 데드볼 삼진

언더핸드 특성상 좌타자한테 불리하기 때문에 좌타자 한텐 약했다. 좌타자를 상대할 때는 바깥쪽에 슬라이더를 넣거나 몸쪽으로 많이 붙여서 넣기 때문에 위같은 상황도 발생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50107093914254.jpg

랜디 존슨과 함께.

당시 랜디 존슨과 그의 등번호의 합이 정확히 100(51+49)이었던 까닭에 둘이 이어서 던지면 완벽하다는 농담이 있었으며, 장신(長身)인 랜디 존슨이 던진 직후 김병현이 나와 언더핸드로 던질 경우 이전까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 타자들은 공이 갑자기 지하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21][22] 덕분에 랜디 존슨의 별명인 '빅 유닛'에 빗대어 김병현에게 '리틀 유닛'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정작 김병현 본인은 이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랜디 존슨은 "삼진을 잡는 능력만은 나보다도 뛰어나다."란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며, 블라디미르 게레로[23]로부터 "저런 지저분한 공을 던지는 투수는 MLB에서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는 립서비스성 발언을 듣기도 했다. 게레로의 김병현 상대 통산 성적은 9타수 3안타 2홈런 3타점 2삼진이다.

자신의 공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지 적극적인 승부를 즐긴다. 일본의 대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김병현을 경기장에서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보통 투수들은 자신의 정교한 컨택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김병현은 자신의 구위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떠나서 상대하는 타자가 누구인지 전혀 관심 없는 듯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24][25] 이런 스타일 덕에 아드리안 벨트레[26], 스캇 롤렌[27] 같은 선수들은 찍어누르고 새미 소사제프 켄트[28]처럼 당대 최고였던 선수들에게도 좋은 성적을 뽑았지만 이게 안 통하는 배리 본즈, 알버트 푸홀스, 치퍼 존스, 앤드류 존스[29]같은 선수들에게는 약했다. 즉 언더핸드치고는 유니크한 구속과 구위에 더불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타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삼진을 잡겠다는 엄청난 배짱으로 당대의 대타자들과 경쟁한 뛰어난 투수였다는 것.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부러진 배트로 인해 발목부상의 여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 선수이다.

발목 부상 이후에는 심한 제구 난조를 보였으며, 2007년에는 리그 전체 사구 1위를 하기도 하였다.
파일:AFA69E8F-9EF7-4503-A479-874411AC70C3.jpg

김병현은 2002년 시즌 첫 양키스 등판에서 세이브 후, 마운드서 부터 좌중간 담장까지 공을 힘껏 던져서 여유있게 넘겨버렸는데, 그의 공이 약 330피트 정도의 거리를 비행했다고 비공식 확인되어 현지에서도 이슈가 된 바 있다.[30] 김병현은 당시 행동에 대해 "반항의 행동이었다. 양키스에게 너희들만 펜스 밖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넘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3.1. 투구폼[편집]


}}}
2000년 당시 투구폼으로 이 세트 포지션으로만 던졌다.

}}}
2001년 전반기 투구폼[31]

2001년 중후반기 투구폼

}}}
2002년 전반기 투구폼

2002년 후반기 투구폼

}}}
1999년, 2003~2004년까지 사용한 투구폼

2005년부터 메이저리그 마지막까지 사용한 투구폼

위 투구폼을 보면 일반적인 언더핸드 투수와는 다른 점이 있는데
허리를 굽히지 않고 다리를 들어올린다는 점이다. 세트 포지션은 조금씩 다르게 던졌는데 구속을 끌어올릴려고 사이드암까지 던지기도 했고 가끔씩 중간 언더핸드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3.2. 김병현의 보직 논란[편집]


김병현이 선발 욕심을 부린 탓에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며, 그가 그대로 마무리를 했었더라면 마리아노 리베라, 트레버 호프먼에 버금가는 투수가 되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팬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보직의 특성상 한두 시즌 반짝한 뒤 사라지는 마무리 투수가 많아서 사실상 야만없급의 의미없는 가정이다. 솔직히 말해, 계속 마무리로 남았다 한들 꼭 대성하리란 보장도 없었을 뿐더러 MLB 역사에서 김병현 수준의 커리어를 남긴 투수는 무지하게 많다.(...) 다만, MLB는 100년이 훌쩍 넘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김병현은 부상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선발로 출전하여 매우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커리어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부상으로 인해 본래 구위를 잃은 뒤의 일이다. 요컨대 부상이 문제가 된 것이지, 보직과는 별다른 관계없었다는 이야기라는 관점도 있다.

김병현의 부진이 시작된 것은 2004년으로,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선발로도 불펜으로도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5년 콜로라도 입단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조정방어율 100을 넘기지 못하고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발목을 맞은 2003년 시즌에는 훌륭한 성적을 냈으나 이후 부진이 시작된 것으로 볼 때, 부상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시점에서 김병현은 보직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코칭스태프와의 충돌 등으로 인해서 감독이나 코치 등과 불화를 겪는 경우가 많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애리조나를 떠나 타격이 강한 AL동부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2005년에는 투수들의 지옥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는 콜로라도로 트레이드 되었다.

결국 정리해 보자면 김병현은 혹사와 부상 이후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할 시기에 각 구단들의 이해타산으로 인해 트레이드로 팔리는 선수로 전락하면서 부상관리는 커녕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기에는 어려운 팀들을 떠돌게 되었고 그에 따른 누적된 대미지로 커리어가 일찍 꺾인 선수로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특히 화려했던 애리조나 시절에 너무 구른 나머지 커리어에 타격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풀타임 마무리로 뛰기 시작한 00년부터 최전성기라 볼 수 있는 02년까지 김병현이 던진 이닝은 포스트시즌 포함해서 각각 70.2 - 107.2 - 85이닝인데 이건 불펜 투수로써는 엄청나게 많이 이닝을 소화한 거다.[32] 부상도 부상이지만 이때의 혹사가 선수생활 전체를 갉아 먹었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언더핸드 투수들은 특유의 투구폼 때문에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심하고, 김병현이 했던 투구폼 또한 상당히 다이나믹한 투구폼으로 몸에 무리를 주는 폼이다. 거기다 몸이 늦게 풀리는 타입이라 불펜에서 거의 선발투수급으로 공을 던지고 나서야 경기에 등판했다는 증언과 더불어 언제든지 출동준비를 해야하는 소방수 혹은 마무리 투수로 커리어 초반을 보냈다고 생각해보면 실제 경기에서 던진 것보다도 대미지가 컸을 것이다.

이 때문에 김병현의 바람처럼 선발로 완전 전향했다면 전성기가 좀 더 연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선발은 5인 로테이션제 때문에 그나마 계투보다는 관리를 받는 편이고, 준비시간도 길어지는 등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도 좋기 때문이다. 상술된 2003년 시즌만 봐도 7월부로 마무리 전향해서 정규시즌 끝나는 9월 29일(거의 10월)까지 거의 3달 동안 42경기를 찍었는데 이건 관리 부실을 넘어 엄청난 혹사다.[33] 03시즌 보스턴에서의 막판 마무리 전향(+혹사)이 전성기를 일찍 마감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김병현이 마무리 전향 없이 2003년을 풀타임 선발로 소화했다면 좀 더 관리받을 수 있었을 테고, 그만큼 전성기도 좀 더 연장되었을 것이다.

또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에게 충분한 시간도 없이 3개월 만에 마이너리그를 패스시키며 무리하게 굴린 것도[34] 커리어에 타격을 줬을 것이다. 마이너리그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히 야구 기술만 아니라 20살의 어린 선수들이 갑작스럽게 많은 이닝을 던져서 버두치 리스트에 걸리지 않도록 루키부터 AA까지 단계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이닝수를 늘려가며 프로선수의 몸을 만들어주고, 프로선수로서 1년간 풀 시즌을 치르며 몸 만드는 법, 부상 관리법, 혹독한 마이너의 환경에서 멘탈 단련 등 오래 살아남는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마이너에서 야구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김병현의 선수 생활을 되돌아보면 공은 뛰어났지만 이런 부분들이 부족해서 결국 재능에 비해 롱런하지 못했기 때문. 김병현이 등판전 공을 많이 던지지 않으면 몸이 안 풀렸다던가 하는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바로 이런 거 고치는 법을 마이너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서비스타임 조절한다고 콜업시기 장난치는 지금과는 달리 대런 드라이포트, 아리엘 프리에토라는 최고의 유망주를 2년 연속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 무대에 데뷔시키는 등 리그 전반적으로 마이너 기간을 줄이고 재능있는 놈은 팍팍 올려 쓰는 분위기였으며 박찬호 역시 1994년 메이저 리그를 곧바로 경험할 수 있었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재능있다고 급작스럽게 올린 선수들이 상술한 경험부족, 자기관리 미비 등으로 많이 망가져나갔고 이후로는 리그 전체적으로 김병현처럼 실력이 좋다고 급작스런 월반보다는 마이너를 착실히 밟게 하는 육성방침을 취하고 있다. 결국 너무 엄청난 천재성 때문에 급속도로 콜업된 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된 아이러니한 케이스. 참고로 김병현이 계약금으로 받은 225만달러는 90년대는 당연하고, 2020년대에 와서도 30억원에 달하는 웬만한 1라운더 유망주들이나 받는 거금이다.

후에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언급이 되기를 자신이 그 이후에 부진한 이유는 보직보다는 부상관리에 대한 소홀이 크다고 말했다. 배트에 맞은 뒤에 일찍 나가고 싶어 급하게 회복된게 크다고 한다.


4. 은퇴 이후[편집]



4.1. 해설자[편집]


은퇴 이후 경력을 살려 메이저리그 경기 해설을 시작했다. 2019년 5월 2일 객원해설을 통해 MBC TV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류현진 선수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를 김나진 아나운서와 허구연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2019년 6월 5일에도 지난 5월 2일에 이어 MBC TV 류현진 선발경기 9승 도전 경기를 중계했다. 이날은 허일후 아나운서와 김형준 기자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번엔 류현진이 상대할 팀으로 자신이 전성기를 보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중계를 맡았다. 그리고 중계전 이 날 아침에는 김선우 해설과 함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류현진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9년 6월 23일 경기에서도 김선우 해설위원과 함께 류현진 경기를 중계했다.

사실상 2019년에 MBC 해설위원으로 데뷔하였다.

7월 15일(한국시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 허구연 해설위원과 함께 해설을 맡았다.

2020년 5월 5일 MBC에서 중계한 KBO 리그 키움KIA 경기의 해설을 맡으며 KBO 리그 경기의 해설도 맡기 시작했다. 이 후 5월 24일 기아 타이거즈 대 SK 와이번스의 경기의 해설도 맡았다.

호주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을 살려 간만에 질롱코리아 22-23시즌 해설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평가는 꽤나 준수한 편. 같은 투수 출신인 김선우가 투수와 타자 사이의 수싸움과 심리전, 예측에 강점을 보인다면, 김병현은 투구 구종 분석과 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편. 류현진의 제구 난조 원인으로 틀어진 자세를 지적하고, 양현종의 투구 폼을 후배들이 반드시 따라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발언 등으로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중간중간 유머도 곁들이면서 중계를 잘 하고 있다.

다만 전달하는 내용이 호평받는 것과 달리 전문 해설이 아니었고 특유의 말끝을 흐리는 말투 때문에 해설위원들에 비하면 전달하는 방법 측면에서는 부족한 편이다. 말투로 인해 전달력이 다소 불분명하고 멘트 톤도 졸리다는 말이 있으며, 무의식 중에 가끔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사투리 억양이 나오는 일은 많지 않은 편이고[35][36], 전달력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해설의 내용 자체가 좋다보니 종합적인 평가는 좋았다.

4.2. 방송 활동[편집]


출연 날짜
방송사
방송명
역할
비고
2013년
8월 4일
파일:SBS 로고.svg
맨발의 친구들
특별출연
16회
2019년
7월 10일
파일:MBC 로고.svg
라디오 스타
게스트
625회
9월 28일 ~ 12월 7일
파일:SBS 로고.svg
정글의 법칙 in 순다열도
출연진

10월 6일
파일:JTBC 로고.svg
뭉쳐야 찬다
게스트
16회
11월 5일 ~ 2020년 7월 10일
파일:MBC 로고.svg
편애중계
MC

11월 25일 ~ 12월 2일
파일:MBN 로고.svg
자연스럽게
게스트
17회 ~ 18회
12월 4일
파일:엠넷 로고.svg
2019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시상자

12월 22일 ~ 2021년 1월 31일
파일:JTBC 로고.svg
뭉쳐야 찬다
출연진
27회 ~ 82회
2020년
2월 18일
파일:JTBC 로고.svg
정산회담
게스트
2회
2월 29일
아는 형님
219회
3월 22일
파일:MBC 로고.svg
복면가왕
참가자
247회
6월 3일
파일:SBS 로고.svg
백종원의 골목식당
특별출연
120회
7월 26일 ~ 8월 2일
파일:tvN 로고(2012-2021).svg
서울촌놈
게스트
3회 ~ 4회
7월 28일, 8월 18일
코리안 몬스터 - 그를 만든 시간
1회, 4회
12월 5일 ~ 2021년 2월 20일
파일:KBS 2TV 로고.svg
트롯 전국체전
출연진
12월 14일 ~ 2021년 1월 4일
축구 야구 말구
6회 ~ 9회
12월 7일
파일:SBS 로고.svg
펜트하우스
특별출연
12회
2021년
2월 7일 ~ 7월 18일
파일:JTBC 로고.svg
뭉쳐야 쏜다
출연진

7월 24일 ~ 10월 2일
파일:채널A 로고.svg
내일은 야구왕

7월 27일
파일:JTBC 로고.svg
해방타운
게스트
10회
8월 16일 ~ 현재
파일:MBC 로고.svg
안싸우면 다행이야
출연진
[37]
8월 29일 ~ 현재
파일:KBS 2TV 로고.svg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121회 ~
9월 5일 ~ 9월 1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
게스트
397회 ~ 398회
2022년
1월 10일 ~ 현재
파일:채널A 로고.svg
슈퍼 DNA 피는 못 속여
출연진

5월 7일 ~ 8월 20일
파일:KBS 2TV 로고.svg
청춘야구단: 아직은 낫아웃

10월 18일
파일:SBS 로고.svg
신발 벗고 돌싱포맨
출연진
with 유희관, 홍성흔

2019년 7월 10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김수철의 '못다핀 꽃 한 송이'를 열창했는데 숨겨온 노래실력을 과시했다.

2019년~2020년 MBC 편애중계에 야구팀 해설위원으로 고정 출연했다.

2019년부터 JTBC 예능 뭉쳐야 찬다에 고정 출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선수단 문서를 참조. 2021년 뭉쳐야 찬다의 후속작인 뭉쳐야 쏜다 - 전설들의 농구대잔치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2020년 12월 5일부터 방영중인 KBS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에 전라도팀 코치로 출연한다. 가수 출신이 아닌데 트로트 서바이벌에 멘토로 출연하는 것에 대해 제작진 측은 편애중계에서 보여준 트로트에 대한 애정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

2020년 12월 7일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특별출연해 대사 한줄 없지만 충공깽을 선사하였다. 직접 보자(...) 참고로 이 장면은 같이 등장한 배우들이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2021년 7월 24일부터 채널A에서 내일은 야구왕에 출연한다. 김병현은 감독 역할로, 초등학생 어린이 야구팀을 꾸려 제1회 황금사자기 어린이 야구대회에 출전시킨다고 한다.


4.3. 자영업자[편집]



파일:김병현 광주제일햄버고 사장 프로필.jpg

2015년 말 광주 전대후문에 라멘집을 열어 본격적으로 국내 요식업계에 발을 들였으며, 2018년 말부터는 서울 해방촌에 태국음식점도 경영 중이다. 은퇴 후에는 광주 금남로4가역 인근에 '광주제일햄버고'라는 수제 햄버거 가게를 개점했으며,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와 서울 청담동에도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원체 장사 수완이 좋아서 미국에 있을 때도 2004년 개업한 UMI SUSHI(샌디에이고의 스시 가게)가 2023년 현재도 운영 중이다.


5. 성격 및 일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병현/성격 및 일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수상 경력[편집]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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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월 19일. 빠른년생 적용으로 1978년생과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빠른 생일이 아니라 1년 후배인 박용택이 김병현을 깍듯이 대한다.[2] 마무리 투수, 선발 투수[3] 지명 거부 후 성균관 대학교 입학.[4] 현대 해체 후 선수단과 프런트를 기반으로 재창단한 히어로즈로 지명권이 인계되었고, 한국 복귀 후 계약은 2012년에 이루어졌다.[5] 2019년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해설만 했지만 2020년부터는 KBO 리그 해설도 하게 되었다.[6] 한 이닝 동안 9구로 3K를 잡은 경우를 의미하며 해당 이닝은 유튜브 등에 널리 퍼져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다.영상[7] 2023년 5월 25일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 관련기사[8]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팀 동료였는데, 이 말을 한 랜디 존슨은 4시즌 연속 300K+에 절대 경신하는 것이 불가능한 놀란 라이언의 탈삼진 기록 다음가는 역대 2위의 통산 탈삼진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삼진이 대폭 증가한 2012년 이전까지 한 시즌 좌완 K/9 기록 1~6위를 독식했고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탈삼진형 투수 중 하나이다. 그런 그 존슨이 인정했을 정도면 말 다했다.[9] 2018년 명예의 전당에서 2회만에 92%의 득표율을 받고 명전에 들어간 MLB 역사상 최고의 배드볼 히터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내야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존 바깥으로 빠지는 공도 홈런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이다. 게레로는 2009년 8월 15일 볼티모어와의 경기에서 크리스 틸먼이 던진 홈플레이트 앞에서 바운드된 공을 안타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저런 배드볼 히터가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웬만한 선수들은 치는 게 힘들 정도 라는 말이 된다.[10]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선수는 1998년 뉴욕 양키스의 이라부 히데키다. 단 이라부는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등판을 하지 않았기에, 김병현은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 시리즈에 출전하고 우승한 선수라는 표현이 정확하다.[11] Baseball Reference 참고. 김병현의 월드 시리즈 우승기록은 2001년 애리조나만 해당된다. 2004년은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2004년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아예 들지 못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기록은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 들은 경우에만 인정된다. 예시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날드 아쿠냐 주니어2021년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팀인 애틀란타가 우승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개인 커리어 월드 시리즈 우승은 0회이다. 그러므로 김병현은 양대리그에서 우승반지를 받은것은 맞지만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것이 아니다.[12] 날고기는 선수들도 월드 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월드 시리즈란 큰 문턱에 발도 못디뎌보고 은퇴하는 케이스가 수두룩한 메이저리그에서는 엄청나게 복받은 케이스다. 코리안특급 박찬호조차도 전성기 시절이었던 LA 다져스 소속으로는 월드 시리즈 무대는 밟아보지도 못하다 선수생활 황혼기였던 2009년에서야 월드 시리즈 무대를 처음 밟았을 정도. 그러나 아쉽게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 반지는 얻었지만 끝내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는 못 얻고 은퇴했으며, 노모 히데오스즈키 이치로는 아예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밟아 보지도 못하고 은퇴했다. 다르빗슈 유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각각 2017년, 2018년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팀이 준우승에 그치면서 우승 반지를 얻지 못했다. 다나카 마사히로 역시 월드 시리즈을 경험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13] 참고로 마크 엘리스에게 98마일 - 97마일 - 96마일 - 96마일 - 80마일 슬라이더로 5구 삼진을 잡고 강판된 후 전설적인 법규를 날린다. 이후 경기는 앨런 엠브리에루비엘 두라조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고 12회말 데릭 로우라몬 에르난데스에게 끝내기 번트 안타를 맞으며 오클랜드가 승리했다.[14] 98마일. 2003년 보스턴 시절 디비전 시리즈에서 기록[15] tvN 예능 프로그램 서울촌놈 광주편에서는 156km/h라고 답했다.[16] 언더핸드 스로는 투구폼의 특성상 구속이 느릴 수밖에 없는데, 저런 폼으로 150대 후반 구속을 기록한 것이다.(메이저리그에선 평균이 95마일 이상하면 파이어볼러로 분류한다.). 단적인 예로 정대현의 구속은 130km/h 초중반 정도이다. 다만 정통 언더파라기보다는 구속을 높일 경우 거의 사이드암 각도까지 올라오는 사이드암 형태의 언더핸더이다. 임창용보다 조금 더 낮은 포인트에서 공을 던지며 손영민과 비슷한 곳에서 나온다. 전성기 때 이 투구폼에서 루이스 티안트(Luis Tiant) 디셉션 동작이 추가되기도 했다.[17] 사실 메이저리그에 언더핸드 투수가 잘 안 보이는 건 구속이 상대적으로 느린데다가 횡 변화구 위주인 언더핸드 투수들이 팔이 긴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잘 안통해서이지 언더핸드 투수 자체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아마 레벨이나 마이너 레벨에서는 심심찮게 보이며, 그래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언더핸드 스로우 투수가 생소해서 당했다라는 표현은 무리가 있는 표현이다. 게다가 김병현의 경우엔 언더 스로이긴 하나 실제로는 오버핸드 투수들이랑 구속을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을 자랑했다.[18] 사실 BK는 Byung-Hyun Kim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19] 2002년 5월 1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8회 말에 거둔 기록. 참고로 그다음 이닝에 토마스 페레즈에게 동점 홈런을 맞아 이날 선발투수였던 랜디 존슨의 승리를 날리고 말았다. 그러나 곧이어 10회에 애리조나가 주니어 스파이비의 적시타에 힘입어 역전에 성공했으며, 10회 말에 또 올라온 김병현이 경기를 잘 마무리 지으면서 이날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20] 이론에 따르면 1이닝 5구 3탈삼진도 가능하다고 한다. 대신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확률은 극악이기 때문에 별로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출처 여기서 참조하자면 1.A를 전 투수가 2스트라이크를 잡고 자신이 교체되어서 삼진을 잡는다. 2.다음 타자 B를 삼구삼진으로 잡는다. 3.여기서 야구의 특이한 룰이 돋보이는데 일단 다음 타자인 C를 상대하기 직전 야수 X에게 투수를 맡긴다. 이후 X는 사구로 출루시키는 등 이닝을 종료시키지 못한다. 4.다음 타자인 D를 X가 2스트라이크를 잡은 이후 다시 투수 자신으로 교체되고 스트라이크를 잡아 삼진 아웃. 이 때 투수 자신의 투구수는 5구이다. 대신 이 때 기록된 삼진은 D의 것이 아닌 C의 것이다.[21] 이를 랜디 존슨이 왼쪽집 2층에서 폭격하다 김병현이 바통을 이어받으면 오른쪽집 지하실에서 유탄이 날아오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22] 언더스로 투수의 강점 중 하나다. 대부분의 피처가 공을 위에서 아래로 던져 구속을 늘리는 추세인데, 이에 익숙한 타자들이 언더스로를 만나게 되면 익숙하지 않은 궤적과 구위에 헤매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거기다가 오버핸드 투수들이 떨어지는 변화구(체인지업, 포크볼)를 구사했다가 언더핸드의 업슛성 공을 보면 그냥 눈물만... 실제로 보면 언더핸드와 오버핸드가 같은 변화구를 던지더라도 던지는 지점이 달라서 각이 전혀 다르게 나온다. 즉슨 타이밍이나 치는 곳이 전혀 다르다는 말. 물론 눈에 익고 이닝이 쌓일수록 얄짤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변한 타이밍을 맞추는 타자들은 리그에서 손에 꼽는다. 그렉 매덕스가 '구종을 읽어내는 선수는 가끔 있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도 구속에 완급을 주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당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걸 구분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23] MLB 역사상 최고의 배드볼 히터로 웬만한 공은 다 치는 선수다. 게레로는 2009년 8월 15일 볼티모어와의 경기에서 크리스 틸먼이 던진 홈플레이트 앞에서 바운드된 공을 안타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24] 다만 이것과는 별개로 전체 데이터를 보면, 김병현은 이치로를 상대로 상성을 타는 모습을 보였다. 폼과 구위가 살아있던 2001년에는 1타석 상대해 아웃을 잡고 발목 부상 이후로 계속 하락세를 탔던 2003년에도 1타석 상대해 아웃으로 잡았지만, 2006년에는 3타석 상대하여 1볼넷, 2안타에 그 중 하나는 2루타로 허용했다.[25]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index/batter_vs_pitcher.cgi?batter=suzukic01&pitcher=kimby01[26] 18타석 1피안타 8K/1BB .180OPS로 압도했다. 김병현이 가장 많은 삼진을 뽑은 선수이기도 하다.[27] 21타석 3피안타 1피홈런 5K/1BB .490OPS[28] 소사: 11타석 1피안타 7K/0BB .455OPS, 켄트: 39타석 8피안타 4K/4BB .697OPS 또 켄트는 김병현이 가장 많이 상대한 타자다.[29] 본즈: 17타석 2피안타 1피홈런 1K/6BB .925OPS, 푸홀스: 15타석 5피안타 1피홈런 3K/3BB 1.283OPS,치퍼 존스: 18타석 6피안타 3K/4BB 1.127OPS, 앤드류 존스: 21타석 7피안타 2피홈런 4K/3BB 1.359OPS[30] 양키스 스타디움은 좌측 펜스 거리가 101m로 우측 펜스 97m에 비해 긴 편이다.[31] 참고로 당시 랜디 존슨 20k경기였으며 타자는 배리 라킨이다.[32] 최근 분업화로 인해 200이닝 투수가 없어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김병현은 거의 팀 1~2선발 급 투수들의 절반 이닝을 선발도 아니고 불펜으로 던졌다는 거다.[33] 단순계산해서 3달을 90일이라 쳐도 하루걸러 하루등판했다는 소리다.[34] 위의 이닝을 보면 알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고졸 신인에게 첫해부터 3년간 불펜으로 250이닝 이상 던지게 한 것을 볼 수 있다.[35] 단적으로 이순철, 박재홍 등 광주 출신 중에서도 비교적 표준어 억양을 잘 유지하는 해설위원보다도 사투리 억양이 드물다. 서재응, 최희섭, 이종범은 아예 사투리 억양을 고치지 못하기도 했으니 해설로서는 장점. 사실 사투리 억양 자체가 생활하는 지역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는데, 김병현은 성균관대 진학과 오랜 해외 및 타지 생활, 히어로즈 경력 등으로 억양이 많이 바뀌었다. 라쿠텐 시절이나 히어로즈 입단 당시 인터뷰를 들어보면 사투리 억양을 찾기 힘든 편. 나중에 KIA로 이적하며 고향에 돌아오고 사업도 하게 되면서 다시 내재돼있던 사투리가 나온 듯 하다.[36] 참고로 앞 각주에 언급된 다른 해설자들과 비교하자면 이순철의 경우 선수생활은 주로 해태에서 보냈지만 지도자 생활의 대부분을 타 지역에서 보내서 억양이 조금 덜하고, 박재홍의 경우는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수도권에서 보냈어서 억양이 심하지 않다. 반면 서재응, 최희섭, 이종범 세명은 해외시절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커리어를 해태, 기아에서 보내서 해설직을 역임하면서 사투리를 교정해야 했기 때문에 억양이 크게 강조된 것. 참고로 동남방언 억양을 구사하는 해설인 양준혁, 이승엽도 선수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삼성에서 보냈다.[37] 42 ~ 43회, 46 ~ 47회, 50~51회, 58 ~59회에 출연. 사실상 반고정 출연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