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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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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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9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9 KBO 리그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9 KBO 리그 홈런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9 KBO 리그 타점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9 KBO 리그 장타율왕





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06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점왕

파일: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구 로고.png2009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파일:일구상 로고.jpg 2009 일구상 최고 타자상


김상현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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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
KIA 타이거즈 등번호 46번

구한성
(1994~1997.5.19.)

김상현
(2000~2002.7.30.)


방동민
(2002.7.31.~2003)
LG 트윈스 등번호 59번
방동민
(1995~2002.7.30.)

김상현
(2002.7.31.~2004)


김성대
(2007)
LG 트윈스 등번호 7번
김재현
(1994~2004)

김상현
(2007~2008)


김광삼
(2009)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최종인
(2007)

김상현
(2009~2009.4.19.)


강철민
(2009.4.20.~2011.5.19.)
KIA 타이거즈 등번호 27번
강철민
(2009~2009.4.19.)

김상현
(2009.4.20.~2013.5.5.)


신승현
(2013.5.6.~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백인식
(2013~2013.5.5.)

김상현
(2013.5.6.~2014)


조한욱
(2015~2016)
{{{#ffffff [[kt wiz|kt wiz]] 등번호 19번}}}
이광근
(2014)

김상현
(2015~2016)


배제성
(2018~)




파일:기아김상현.jpg

김상현
金相賢|Kim Sang-Hyeon

출생
1980년 11월 12일 (43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군산초 - 군산남중 - 군산상고 - 대불대
신체
190cm|95kg|B형#혈액형
포지션
3루수외야수, 1루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2차 6라운드 (전체 42번, 해태)
소속팀
해태-KIA 타이거즈 (2000~2002)
LG 트윈스 (2002~2009)
KIA 타이거즈 (2009~2013)
SK 와이번스 (2013~2014)
kt wiz (2015~2016[2])
저니맨 외인구단 (2017~2018)
지도자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 (2018)[3]
SDF 투칸스[4] 감독 (2023~)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4년 11월 18일 ~ 2006년 11월 17일)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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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배우자, 슬하 1남
응원가
LG 트윈스 시절
동요 모두 다 뛰놀자[1]
닐라리맘보[2]
KIA 타이거즈 시절
김추자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3][4]
신해철 - 안녕[5][6]
이루마 - Kiss The Rain[7][8]
싸이 - 연예인[9]
싸이 - 챔피언[10]
SK 와이번스 시절
신해철 - 안녕[11]
kt wiz 시절
신해철 - 안녕[12]
Ray Parker Jr. - Ghostbusters[13]
트니트니 - 홈런[14]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도핑 루머
4.2. 자위행위 사건에 대한 해명 논란
5. 여담
5.1. 별명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SDF 투칸스[5] 감독.

3루수로 데뷔하였으나 수비 미숙 및 주전 경쟁 등을 이유로 외야수로 전업하였다가 kt 시절엔 대부분 1루수를 맡았다. 이후 독립구단 저니맨 외인구단에서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8년 1월 말 감독이 되었다가 같은해 5월초에 개인사 문제로 팀을 퇴단했다. 현재는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겸 자영업자로 일하고 있다.

등번호는 KIA 타이거즈 입단 초기에는 46번 - LG 트윈스 이적 후 59번 - 상무 제대 후 7번 - 2009시즌 개막 후 26번 - KIA 타이거즈로 이적 후 SK로 팀을 옮긴 후에도 27번을 계속 사용하고[6][7] kt wiz에서는 용덕한이 27번을 가져가면서 19번을 달게 되었다. 어쩌면 복선 이후 용덕한이 오정복, 홍성용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김상현의 번호는 19다.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로 팀에서는 떠났지만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 이후 2009 시즌 우승의 주역이자, 팀에 과시한 각별한 애정때문에 어느 팀을 가든 항상 응원하게 되는 선수. 하지만 LG 트윈스 팬들에게는 많은 기회를 받았음에도 그걸 자기 발로 차버리고, 나갈 때 LG를 간접 디스한 인터뷰 때문에 불구대천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SK 와이번스 팬들에게도 희대의 루즈-루즈 트레이드인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때문에 그다지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을 듯. kt wiz 팬들이야 뭐... 그래도 파워 하나만큼은 KBO 리그 역대급에 들어갈 정도로 절륜하고, 2009 시즌의 어마어마한 임팩트 때문에 딱 공갈포스러운 통산 성적에 비해 팬덤들 사이에서 주목도는 높은 선수이다.

그러나 야외 차안에서 자위행위 사건이라는 불미스럽고 치욕적인 사건을 일으켜 자신의 야구인생의 모든 커리어가 멈춰서게 되어 버렸으며, 자신은 물론 팀에게도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붙여주며 커리어를 마감했다.


2. 선수 경력[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워가 상당히 좋아서 앉은 자세, 즉 자세가 무너져 무릎이 땅에 닿은 상태에서 파워 무릎샷! 타격을 했는 데도 잠실구장을 넘길 정도로 파워 하나만큼은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좋은 타자다. 야구 방망이가 부러졌는데 공이 담장을 넘어가버린 적도 있었다. LG 트윈스 시절 최훈의 LG 트윈스 전지훈련 카툰을 보면 김상현의 파워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하지만 장타력이 있는 우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좌투수 상대로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8]

또한 선구안도 그리 좋지 않은 것이 단점.

수비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 3루수를 보던 시절에도 수비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외야수로 전향한 후로도 마찬가지. 파이팅이 넘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안불안하다. 다만 어깨는 강한 편이어서 종종 인상적인 보살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력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지만 힘이 좋은 타자다 보니 타구의 속도가 빨라서 땅볼이 병살로 많이 이어진다, 의외로 도루도 적지 않게 기록한 편.


4.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4.1. 도핑 루머[편집]


일부 야구 팬들은 김상현도 심정수와 마찬가지로 약물 사용 유력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평균 2할 4푼대의 타율에 8홈런씩 치던 타자가 갑자기 3할 1푼대의 타율에 36홈런을 때려냈고 그 직후 다시 타격 성적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고질적인 무릎 연골 부상까지 달고 살고 있다. 2009년 KBO가 약물 검사를 실시한 바 있고, 심정수와 더불어 약물 의혹이 제기되는 선수 중 한 명. 게다가 심정수는 본격적으로 홈런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도 꾸준히 2~30홈런을 쳤었지만, 김상현은 그 전까지 위에서 적었듯이 2할 4푼대의 타율에 가끔씩 뜬금포만 기록했을 뿐 1군에서 두 자릿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던 만년 유망주에 불과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김상현이 약물을 복용했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일단 파워는 LG 시절부터 인정받아왔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타격 폼이 무너지거나 배트가 부러졌음에도 잠실야구장 담장을 넘긴 적이 있을 정도로 힘 하나는 좋았으며, 상무 시절에 홈런왕을 차지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LG 팬들도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근데 하필 제대했는데 코치가 김용달[9] 2009년 KIA에서의 무시무시한 성적은 원래 가지고 있던 파워툴이 잠실을 떠나며 날개를 달고, 모처럼 건강한 시즌을 보낸 최희섭과의 우산 효과에 역대급 플루크가 더해져 나오게 된 성적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시즌이 타고투저 양상을 띄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사항. 그리고 타격폼을 봐도 알겠지만 애초에 무릎에 무리가 엄청나게 가는 타격폼이다. 김상현이 홈런 치는 장면을 보면 무릎을 굽히면서 하체에 거의 모든 힘을 싣는 것이 보인다.

또 2009년 이후 부진했던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렇게 부진했던 2010년 ~ 2012년에도 찍히면 넘어가는 장타력은 여전했다.[11] 2009년 이후 부진한 이유는 타 팀에서 김상현의 약점을 분석하여 대처하기 시작했고, 잦은 부상으로 인해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점, 2011시즌 이범호의 영입으로 인한 수비 위치 변경 등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같이 중심 타자 역할을 해줘야 할 최희섭매년 땡깡부리느라 세트로 망해버린 게 한 몫 했다. 그리고 sk 시절에도 잠실구장 장외 홈런이 될 뻔한 비거리를 날리는 거 보면 힘 하나는 박병호와 더불어 현역 최고 수준이다

결정적으로 KT 위즈 첫 해인 2015년 8월 말 현재 타율 0.272 22홈런 68타점을 기록 중인데 중심 타자로서의 클라스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에 2009년이 약물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플루크 시즌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댄 블랙 등 KT의 외국인 타자들의 활약이 더 유명하지만 팀 내 타격 지표를 보면 김상현이 1위다.

그리고 현재 김상현의 통산 순장타율(장타율-타율)은 0.191로, 3,0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27위다. 이는 심재학, 김성한, 홍현우, 김성래, 한대화보다 높다. 정확한 타격이 문제지 힘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이 들어맞는 기록이다.

또한 선수 말년시절인 2016년도에는 수원구장에서 무려 비거리가 145m인 중앙으로 넘기는 홈런을 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제대로 된 물증도 없이 약물 복용자로 확신하고 까대는 건 곤란하다. 원래 갑자기 잘 하면 상대 팀에서 표적으로 검사를 요구하기 마련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도핑 테스트에서 문제된 적이 없다.

사실은 이통사를 바꿔가면서 분납포를 친다 카더라[12]


4.2. 자위행위 사건에 대한 해명 논란[편집]



2020년 4월 9일 임용수 캐스터의 개인 유튜브 방송인 '임용수의 토크백'이 김상현을 찾아가 당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상현의 주장에 따르면 길에서 주차를 해놓고 차량의 창문을 열고 흡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여름이었고 담배를 피고 있을 때 창문을 열지 않으면 연기가 안에 남기 때문에 창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때 더워도 창문이 열려있을 때 에어컨을 틀 수가 없기 때문에 옷을 펄럭이며 부채처럼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그것이 오해를 불렀다고 한다.[13]

또 사건 이후에 구단에도 알리기 껄끄러워서 혼자 마음고생을 하다가 구단을 자진탈퇴한 뒤, 경찰서로 갔는데 경찰이 벌금만 내면 조용히 처리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김상현은 사건을 조용히 끝내고 싶어서 벌금을 내는 걸로 처리를 했는데 갑자기 어떤 기자가 기사를 낸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한달 뒤에 기사가 났고 검찰에도 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여담으로 김상현은 아직까지 신고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하였는데, 진심으로 신고자와 삼자대면을 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러한 김상현의 해명에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애초에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해명했으면 될 일을 왜 굳이 이제와서 해명하느냐는 것이 그 이유고, 해명한 내용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이 잘못한 게 전혀 없는데 경찰 말만 듣고 순순히 벌금을 낼 생각부터 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 뒤로 설령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더라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법적 다툼을 하거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법 등이 있다. 유죄가 인정되면 당연히 KBO의 징계도 받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거액의 연봉과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명예도 잃게 된다는 것을 김상현 본인이 더 잘 알 것인데 저런 행동도 없이 조용히 넘어가려고 그냥 혐의를 시인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14] 때문에 팬들의 반응도 영 좋지 않다.

게다가 창문을 내리고 저속주행을 하며, 자위행위를 하다가 성범죄로 걸려 벌금 냈다는 사례는 의외로 구글링을 검색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의외로 많은 편이다. 본인이 했으니까 시인했다고 한 거나 다름없는 것이지, 본인의 커리어가 불명예로 끝나게 생겼는데, 이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을 리가?[15]

후술할 인터뷰에서도 그 당시에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언급이 있다.


5. 여담[편집]


  • '빠던이 굉장히 맛깔스럽기로(?) 유명하다. 배트 플립은 보통 투수나 상대팀을 자극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상대팀 팬들은 불쾌해 하거나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상현의 배트플립같은 경우는 너무 자연스럽고 맛깔스러워서 타격의 연결동작으로 보인다고 하는 의견도 있어 선호하는 팬도 있다.[16]
파일:김상현빠던.gif

  • 2020년에는 '김상현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운영중이라고 박명환야구TV에서 박명환이 언급한 바 있다. 엘리트 출신 선수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


  • 원래 2013년이 아닌 2009년에 SK로 갈뻔했다고 한다. 당시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한 이진영의 보상선수를 선택해야 하는데, 최동수에 의하면 당시 김성근 감독이 LG 쪽에서 작성한 보호명단을 살펴본 뒤 이승호와 김상현 둘 중에 누가 더 낫냐고 물어보자 최동수가 이승호를 추천하여 SK는 이진영의 보상선수로 이승호를 선택했다고 한다.즉 그때도 LG 20인 보호명단에 못들었다는 소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상현은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로 KIA로 트레이드되어 가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17]가 있다. 그리고 그 해 KIA가 우승했는데 우승의 주역이 바로 김상현이었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이 삐진 나머지 최동수한테 전화를 걸어 뭐라했다고 한다.

  • 최강야구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유격수 시험에 참가했지만 캐치볼 단계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며 자위행위 논란 탓인지 방송에서도 통편집되었다.


5.1. 별명[편집]


"곤조, 곤잘레스 김, 김곤조" - 라티뇨스런 얼굴 모양에서 기인. 반짝 성적으로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약상현으로 불린다. 2009년 KIA로 이적한 뒤에는 "LG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이미지로 '김상사', 이후 기적과 같은 미라클 타이거즈를 이끌면서 '해결사'라는 이미지가 굳혀졌다. 다만 SK로 이적한 뒤 구단에서는 '해결사'라는 닉네임보다는 '김상사' 이미지를 더 밀고 가려는 듯하다.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약상현도 약하다면서 씹곤조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전병머[18]라고 부른다. 지금은 묻혔지만 과거엔 싱하형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kt wiz 20인외 특별지명으로 kt로 이적하자 3사의 팀을 다 겪어본다는 이유로 "야구계의 언락폰"이라 불리고 있다.

그 사건 이후로는 딸상사, 우투우딸... 같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겼다. 또, 자위로 인해 임의탈퇴했다고 임의퇴라는 말도 유행했었다.


6. 관련 문서[편집]


[1] 본래 3루수와 가끔 1루수를 보는 코너 내야수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외야수로 뛰다 2015년 kt wiz로 오면서 장성호와 같이 1루수로 뛰게 할 계획이었고 본인이 1루는 부담을 느낀다고 했지만 팀에 1루 거포가 마땅치 않아 1루수로도 종종 출장했다. 댄 블랙이 있을 때는 본래대로 좌익수지명타자 자리에 서기도 했다.[2] 공연음란 혐의로 불구속 입건 후 이에 대한 팀 자체 징계안에 따른 임의탈퇴.[3] 프로야구 초창기 MBC 청룡백인천 경우처럼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4] 동탄 소재의 16세 이하 유소년 야구팀.[5] 동탄 소재의 16세 이하 유소년 야구팀.[6] 참고로 타이거즈에서 27번은 김봉연전직 선수 이모씨가 사용했던 번호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유명한 번호.[7] SK로 이적하면서 본래 27번을 쓰던 우완투수 백인식이 김상현에게 번호를 양보하고 본인은 송은범의 46번을 가져갔다. 그리고 백인식 이전 27번 번호의 주인은 인생의 승리자.[8] 통산 vs우투 0.266 60홈런, vs좌투 0.224 21홈런. 커리어하이인 2009시즌의 기록은 더 심해서 vs.우투 0.354 32홈런, vs.좌투 0.220 4홈런. 이를 반영했는지 프로야구매니저에서 09 김상현의 교타력을 보면(노말카드 기준) 표면적인 교타력은 66이지만 히든 능력치로 보면 우교타 85, 좌교타 48이라는 아름다운 능력치를 받았다.[9] 아주 농담은 아닌 것이, 김용달은 LG 시절 제대로 키워낸 장타자가 거의 없다. 박병호, 이성열 등 수준급 슬러거 유망주들이 있었음에도 김용달은 이들을 키워내기는 커녕 자기 의견을 안 듣는다거나 아무리 해도 답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대형같은 단타자는 김용달 밑에서 골든글러브를 따기도 했지만 LG 시절 김용달은 서용빈보단 낫지만 장타자와는 인연이 없는 코치긴 했다.[10] 이대형 타율 0.261 출루율 0.341, 김주찬 타율 0.276 출루율 0.324, 김상현 타율 0.215 출루율 0.312로 애초 타율이 기본적으로 받춰줘야 1할에 가까운 타출갭도 빛을 발한다.[11] 2010년에도 타율은 .215에 불과했으나 홈런이 21개나 되었다. 또 이 당시 부상으로 79경기밖에 뛰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갈포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당시 출루율은 이대형은 커녕 김주찬보다도 낮았으며[10] 장타율도 결코 높은 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득점권에 강했던 것도 아니었다. 더 쉽게 말해서 공갈이라고 까였던 2013년 이범호보다 못 하면 못 했지 나을 게 없었다고 할 수 있다.[12] 해태/KIA를 제외하고 김상현이 거쳐간 팀이 모두 모기업이 통신업체를 갖고있는 구단들이다. LG 트윈스LG U+, SK 와이번스SK텔레콤, kt wizKT. 덤으로 해태/KIA를 제외하고 김상현이 거쳐간 팀들이 셋 다 수도권이기도 하다.[13] 더운 날인데 담배 피우는 몇 분 동안 창문을 여느라 차량 에어컨을 끄는 판단이 이상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에어컨은 공기의 순환도 겸하기 때문에 담배 냄새가 차 안에 모두 퍼진다. 해명의 당위성이 없어서 문제일 뿐이지 이 말 자체는 옳다.[14] 2018년에 성폭행 누명을 쓴 박동원조상우를 봐도 그렇다. 두 선수는 검찰에 의해 무혐의로 끝났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조사 기간중에 경기 출전을 그만큼 못했다는 이유로 연봉의 절반이 삭감됐다.[15] 대표적으로 이경영도 이경영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이 터지고 난 훗날 "난 성범죄자 아니다."라고 그렇게 언플을 했었다가 대중들이 통수를 맞은 전적이 있다는 것이다. #[16] 애초에 한국이 배트플립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도 있다.[17]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종모가 술회하기를 조범현 당시 감독은 김상현의 영입을 반대했고 김종모 당시 수석코치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18] 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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