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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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25년 3월 10일에 태어났다. 1946년 10월, 김일성이 직접 발탁하여 중앙보안간부학교에 입학시켜주었고 1947년 10월 강건군관학교 정치교원으로 부임, 이후 정치부 부부장, 정치부소장, 포병군관학교 정치부 부부장 등으로 일했다.

1955년 10월, 조국보위후원회 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배치되었으며 이후 조국보위후원회 함경북도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승진했다. 1958년 9월, 인민경제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이후 1961년 6월, 당중앙위원회에 배치되었다. 1968년 2월, 알바니아 주재 대사로 파견되었다. 귀국 후 1970년 3월, 중앙위원회 부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손성필의 뒤를 이어 정무원 교육부장에 임명되었다. 1974년 1월,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으며 1974년 11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보선,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교육부가 교육위원회로 개편되면서 교육위원장으로 일했고 1976년 10월, 김일대에게 교육위원장 자리를 물려주고 1977년 8월, 함경남도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77년, 6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탈락했다고 하는데 정작 발표된 부고에는 그를 현직 대의원으로 소개한 것으로 봐서는 대사전이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함경남도 인민위원장 재임 중이던 1978년 12월 1일 14시에 숙환으로 인하여 53세로 일찍 죽었다. 당중앙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김석기동지는 해방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높이 받들고 당과 국가의 중요한 직책에서 사업하면서 당과 인민정권의 강화발전과 교육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지헤와 정열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 김석기동지는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당과 혁명위업에 무한히 충실하였으며 공화국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편집]


  • 조선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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