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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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사후
4. 기타
5. 출연방송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610fc00a5952e75e16e28440a2265fc6113c1c620eeb4b6399674563fd40b409.jpg
파일:external/img.sbs.co.kr/200821987_700.jpg
1942년 ~ 2015년 3월 18일 (향년 72세)

1942년생이며 2015년 3월 18일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남도 광주부(현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생전 취약계층이 부끄럼없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2010년에 광주 동구에 있는 대인시장에서 식당을 개업해 운영했다.


2. 생애[편집]


처음엔 죽집을 할 생각이었으나 자신이 사기와 사업실패로 인해 밥 한끼를 때우기도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해서 밥값이 1000원인 해뜨는 식당을 개업했다. 일명 천원식당. 취약계층들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당당하게 밥먹을 수 있는 가격이 1000원이라고 생각해 가격을 정했다고 한다. 메뉴는 1식 3찬과 된장국이 나오는 백반. 다만, 운영을 할수록 적자를 보고 있었기에[1] 후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2012년 5월 대장암 말기로 1년 시한부 판정을 받고 화순전남대병원에서 수술 및 암투병을 시작했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 '90세 할아버지가 끼니를 잘 챙기실까 걱정된다'고 인터뷰했다. 방송에선 수술이 잘돼서 금방 식당에 나갈 수 있을거라 했었고 시장상인들과 주변기업, 시민들이 도우면서 2013년부터 운영을 재개했지만 다시 건강이 악화되면서 2015년 3월 18일 73세의 나이로 사망.식당을 계속 운영해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3. 사후[편집]


홍정희 대인시장 상인회 회장이 식당을 대신 맡아 운영하고 있고 쌀을 정기적으로 후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광주 동구에서 동구민상 특별상을 수여받았다. '1000원 백반' 고 김선자 할머니…광주 동구민 특별상 받는다.

2017년 4월 7일 VJ 특공대 방영분에 따르면 해뜨는 식당의 영업은 막내딸 김윤경씨가 맡고 있다고 한다. 김윤경씨 역시 전업으로는 식당 운영을 할 수가 없어 보험설계사 일을 병행하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4. 기타[편집]


정부의 지원금으로 빌딩을 샀다는 모함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물가와 비교하며 이웃과 정을 나눈 할머니를 추억하는 글 나눔을 실천한 할머니

5. 출연방송[편집]


  • 궁금한 이야기 Y: 희망을 나눠주는 천원식당
  • EBS 우리에겐 인터넷이 무엇인가(사망 직전 방송분)

[1] 한 달 평균 100만~2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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