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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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코칭스태프>
72 박승민 · 73 이희근 · 74 최윤석 · 77 정현석
· 80 고동진 · 86 김남형 · 90 김정민 · 92 최원호 [[감독|

]]
· 88 박재상 · # 김재걸 · # 정경배 · # 김우석'''
<퓨처스 코칭스태프>
71 이대진 · 75 박정진 · 79 마일영 · 81 김성갑
· 82 박윤 · 83 남원호 · 87 추승우 · 89 정범모

<잔류/재활군 코칭스태프>
57 정우람 · 70 강동우 · 76 윤규진 · 91 이상훈

<트레이닝 파트>
84 이지풍 · 김형욱 · 김연규 · 최우성
김재민 · 서진영 · 배민규 · 김소중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입대선수등록선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김성갑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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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갑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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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반지

1985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3.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03
2004
2018








김성갑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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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손상대
(1983~1984)

김성갑
(1985)


김종갑
(1987~1988)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12번
팀 창단

김성갑
(1986~1987)


지성규
(1988~1990)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5번
김종수
(1986~1987)

김성갑
(1988~1990)


조양근
(1992)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번
정영기
(1989~1990)

김성갑
(1991~1995)


김상국
(1996~1997)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81번
고원부
(1994~1995)

김성갑
(1996~1998)


결번
결번

김성갑
(2000~2007)


팀 해체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
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76번}}}
팀 창단

김성갑
(2008)


정인교
(2009~2010)
{{{#fff [[서울 히어로즈|서울]]
/
[[넥센 히어로즈|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1번}}}
이순철
(2008)

김성갑
(2009~2015)


정재복
(2016~2017)
SK 와이번스 등번호 81번
하세베
(2015)

김성갑
(2016~2018)


장재중
(2019)
한화 이글스 등번호 81번
이상훈
(2021~2022)

김성갑
(2023~)


현역




파일:한화23 김성갑 코치.png

한화 이글스 No.81
김성갑
金性甲 | Kim Sung-Gap

출생
1962년 5월 3일 (61세)
경상북도 성주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구수창초 - 경상중 - 대구상고[1] - 건국대[2]
신체
168cm, 66kg, A형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5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5)
빙그레 이글스 (1986~1990)
태평양 돌핀스 (1991~1995)
지도자
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 (1996~1998)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 (1999)
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 (2000)
현대 유니콘스 2군 수비코치 (2001~2002)
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 (2003~2005)
현대 유니콘스 2군 주루·수비코치 (2006)
현대 유니콘스 1군 주루·수비코치 (2007)
우리-서울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2008)
서울 히어로즈 2군 수비코치 (2009)
넥센 히어로즈 1군 작전·주루코치 (2010)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 (2011)[3]
넥센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2011)[4]
넥센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12)[5]
넥센 히어로즈 감독대행 (2012)[6]
넥센 히어로즈 2군-화성 히어로즈 감독 (2013~2015)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6~2018)
한화 이글스 잔류군 총괄 코치 (2023)[7]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023~)[8]
본관
광산 김씨
가족
배우자 안숙현
딸 김유나(1985년생), 유이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프로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연도별 주요 성적
5. 여담
5.1. 유이 아버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 빙그레 이글스, 태평양 돌핀스 소속 야구 선수. 現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애프터스쿨 출신 배우 유이의 아버지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168cm의 작은 키임에도[9][10] 대구상고, 건국대학교 야구부(체육교육과 1981학번) 시절에는 4번 타자를 칠 정도의 강타자였다. 그러나 이는 아마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썼기 때문.


2.2. 프로 경력[편집]


프로에 입단한 후 아마 야구 시절의 파워는 사라졌고, 타율도 항상 규정 타석을 채운 야수 중에서 최하위 권을 맴돌아 "한국의 멘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11] 통산 타율은 0.235이고 한 때 2할 8푼대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신 수준급의 내야 수비를 자랑했다.


파일:빙그레이글스 김성갑 선수.jpg

파일:빙그레 이글스 엠블럼.svg 빙그레 이글스 선수 시절

1985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방위병으로 복무 중이던 1986년 1월 20일, 투수 성낙수와 함께 전력보강 선수 지원 차원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그래서 전성기는 빙그레 이글스 시절. 하위 타선에서 상위 타선에 기회를 주는 역할을 많이 했으며, 김영덕 감독과의 불화로 1991년 2월 태평양 돌핀스에 현금 트레이드 된 후에는 노련한 2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1987년 10월 3일부터 1988년 7월 20일까지 67경기 연속 3루수 무실책 기록을, 1988년 3루수 시즌 최소 실책(3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파일:태평양돌핀스 시절 김성갑.jpg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94~1995).png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12]

김영덕 감독과의 불화로 1991년 2월 태평양 돌핀스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태평양에서는 주로 2번 타자로 출장했다.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 돌핀스의 마지막 타자였다. 마지막 4차전에서 LG 마무리 투수 김용수에게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나는 모습으로 LG의 우승을 확정짓는 제물이 된 것.

1995 시즌 종료 후, 태평양을 인수해 새로 출범한 현대 유니콘스가 세대교체 차원에서 그에게 은퇴 및 코치직을 제시하였고, 이에 응하며 은퇴하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3.1. 현대 유니콘스[편집]


1995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후, 곧바로 현대 유니콘스의 수비코치로 임명되면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였다. 중간에 외환위기로 인한 코치 감축 과정에서 1999년 한 해 동안 팀을 잠시 떠나 서울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인스트럭터를 맡다가, 2000년 시즌을 앞두고 다시 복직해 현대가 해체되기 직전인 2007년까지 수비코치를 맡았다.

3.2.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편집]



파일:external/sports.donga.com/40867862.1.jpg


현대가 해체되고 히어로즈 재창단된 후에도 코치직을 유지했다. 2011년, 원래는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으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시즌 중 1군 수비코치로 보직을 변경하면서 박흥식에게 2군 감독을 넘겼다. 그리고 시즌 후 이광근 수석코치의 SK 이적과, 2군의 이명수, 정명원 코치가 두산으로 이적함에 따라 1군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2012년 9월 17일 뜬금없이 김시진 감독이 경질되면서 잔여시즌 동안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못지 않게 감독 경질로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어떻게든 추스리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깊게 보인다. 대행 시절 무난하게 팀을 수습한 덕분에 시즌 후 후임 감독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박흥식 타격코치, 김동수 배터리코치 등과 함께 넥센의 새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염경엽 주루코치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3년 염경엽 감독 체제로 들어서면서 다시 2군 감독으로 복귀했으며[13], 화성 히어로즈로 2군이 새롭게 개편된 뒤에도 2군 감독을 2015년까지 맡았다. 2군 감독 시절 자신의 아래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박정준, 지석훈, 차화준 등을 트레이드하여 앞길을 틔워 주는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트레이드 관련 뒷이야기

그 외에도 열악한 상황 속에서 2군을 잘 이끌어 8월 11일 현재 남부리그 1위에 퓨처스리그 승률 1위로 끌어올리고 있었으나, 막판에 상무에 역전을 당하여 55승 6무 39패 (승률:0.585)를 거둬 남부 리그 2위로 마감하였다.[14] 사실 2군이 1군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록 남부리그 2위로 마감했지만 넥센 히어로즈KBO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꽤 비중있는 공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3.3. SK 와이번스[편집]



파일:SK 김성갑 코치.jpg


2015 시즌 종료 후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돌연 코치직 사임을 발표했다. 후임 감독이 된 염경엽 감독과도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같이 지낼 것으로 예상했던 SK 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울 만한 일. 그러나 그는 그동안 쉴 틈 없이 지도자 생활을 했다면서[15] 당분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16] 물러난다고 밝혔다. 사실 트레이 힐만 감독이 가정사 때문에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힐 시점에 이미 본인도 시즌 후 사임하겠다고 구단에 미리 말해 놨다고 한다.


3.4. 한화 이글스[편집]


이후 약 4년간 야인으로 휴식기를 보내다가, 2022년 10월 31일 한화 이글스 육성군 총괄코치로 영입되면서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이로써 과거 빙그레 이글스 선수 시절이던 1990년 이후 32년 만에 이글스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되었다.

그러다가 2023년 5월 11일 경기 직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경질되고 최원호 감독이 1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2군 감독을 맡게 되었다.

2023년 시즌 후 이대진 1군 수석코치가 2군 감독으로 보직을 변경 받으면서[17] 위치가 애매해졌다. 물론 11월 1일부터 진행되는 마무리 캠프에는 명단이 들어있기 때문에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 잔류군 총괄로 다시 돌아갈수도 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5
삼성
11
6
.000
0
0
0
0
0
0
0
1
.000
.14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6
빙그레
80
196
.219
43
5
1
1
21
20
5
27
.314
.219
1987
108
382
.230
88
19
1
0
12
52
9
31
.285
.287
1988
101
257
.253
65
11
2
1
31
28
5
18
.323
.300
1989
103
284
.243
69
18
2
4
45
47
12
50
.363
.352
1990
89
210
.219
46
5
1
3
18
29
17
35
.295
.32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태평양
87
217
.194
42
5
0
1
14
24
14
24
.230
.273
1992
102
240
.288
69
5
1
0
24
27
7
34
.317
.372
1993
50
138
.232
32
6
1
1
15
14
3
19
.312
.321
1994
97
219
.237
52
6
1
3
15
23
2
26
.315
.318
1995
114
267
.228
61
10
1
0
23
32
4
39
.273
.325
KBO 통산
(11시즌)
942
2416
.235
567
90
11
14
218
296
78
304
.298
.318

5. 여담[편집]


  • 건국대학교 선배인 홍서범친분이 있다.[18]

  • 야인으로 지내던 도중 그를 사칭하고 다니는 사람이 나타나서 딸인 유이가 주의를 당부하는 일이 생겼다. 결국 이 남성은 2020년 1월 30일 재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 이용규김선빈 이전의 KBO 원조 단신 선수이기도 하지만, 1992년 당시 60kg으로 KBO 역대 최경량 기록도 보유중이다. 현재까지도 깨지고 있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선수들의 피지컬이 더 좋아지기 때문에 영원히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5.1. 유이 아버지[편집]


파일:/image/382/2012/12/17/50465585.10_59_20121217071620.jpg

2009년 들어서는 야구 외적인 것 때문에 유명세를 탔는데, 바로 유이의 아버지로 밝혀진 것. 차녀[19]인 유이는 김성갑이 빙그레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 청주에서 태어났다. 현역 시절에는 최단신 선수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어다녔지만[20][21] 유이는 173cm의 장신을 자랑한다.

하지만 유이랑 있으면 아직도 어색하다고 한다. 평생 야구 선수, 코치로 있다 보니, 스토브리그 외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유이도 방송 중 '아버지랑 둘만 있으면 아직도 어색하다' 라고 말할 정도니 뭐...

사실 유이가 데뷔하기 전 2008년에 아버지를 응원하러 목동 야구장에 왔다가 중계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다. 아나운서가 이를 알아보고 "김성갑 코치의 딸입니다."라고 소개하여, '목동녀'라고 불리게 됐다. 이 날 딸 덕분에 처음으로 검색어 1위를 했다고 한다.

팀을 가리지 않고 야구팬인 사람들에 한해서 간혹 김성갑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 팬들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야구게임에서 김성갑 카드가 나올 경우.

A: 어? 94 장인어른 나왔네

B: 누가 니 장인어른임 내 장인어른임


하는 위의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편이다. 물론 장난이 반이겠지만 유이의 아버지 이미지가 현재의 인기에 한몫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넥센 선수들도 마찬가지여서, 유이가 2009년 추석을 맞아서 잠시 집에서 휴가를 보내자, 김성갑에게 명절 인사를 하겠다며 찾아온 넥센 선수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그 해 유이가 목동 야구장에서 시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넥센 선수들의 표정이 가관이다. 2군에서도 선수들이 농을 던지곤 했는데 김성갑은 '내 눈에 자갈이 들어가도 절대 안된다.'고 받아쳤다고 한다.

다만 김성갑 본인은 유이 아빠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민감해한다고 한다. 가장 근래의 예로 2012년 김시진 감독의 해임 이후 시즌 중간에 감독대행으로 선임되었을 때, 팀이 졌을 때 감독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며, 유이 아빠라는 호칭보다는 김성갑이라는 이름의 야구인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외부에서 유이 아빠로 불리면서 혹시나 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염려되는 마음에서였다고.

유이와 함께 방송에 나왔다가 김병현에게 아래와 같이 디스를 당하기도 하였다.
파일:external/tmtj1.tvcps.com/20150211_1423623526_10270700_1.jpg

6. 관련 문서[편집]


[1] 53회 졸업생이며 김용국, 이강돈, 이종두가 동기다.[2] 체육교육과(1981학번)[3] ~4월 25일[4] 4월 26일~[5] ~9월 16일[6] 9월 17일~[7] ~5월 12일[8] 5월 13일~[9] 이마저도 프로필상 키이며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 작다는 말도 있다. 게다가 몸무게도 그리 많지 않은 66kg였다. 염경엽이 64kg인 걸 감안하면....[10] 딸인 유이보다도 작다.[11] 비슷한 케이스로 태평양 돌핀스에서 같이 활약했던 염경엽이 있다.[12] 오른쪽에 김성갑을 맞이해 주는 선수는 김용국. 공교롭게도 둘 다 현대 유니콘스 출범 직전인 1995년 말 나란히 은퇴했다.[13] 공석이 된 수석코치는 이강철 전 KIA 투수코치를 영입해서 채웠다. 대신 양승관 2군 감독이 NC로 옮겼다.[14] 다만 이것만 가지고 지도력을 비판해선 안 된다. 일반 구단의 경우 9월이면 확대 엔트리가 실시되기 때문에 2군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1군으로 콜업되므로, 각 팀의 2군은 전력이 갑자기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국방부 퀘스트 중인 상무의 병장 선수들은 9월 말에 전역이어서 시즌 말까지 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15] 1995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 유니콘스에서 코치로 지냈고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8년간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SK 와이번스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1985년 프로 데뷔 이후 그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해는 1999년이 유일하다.[16] 후술하겠지만 그의 딸 유이도 집에서 아버지를 본 적이 별로 없어 어색하다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적었다. 거의 1년 내내 돌아가는 야구계의 일정상 오롯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여름 올스타 브레이크와 시즌 후 비활동기간에 불과하다.[17] 기존 1군 수석코치는 정경배 前 SSG 타격 코치가 받게 되었다.[18] 홍서범은 농대 78학번, 김성갑은 체육교육학과 1981학번. 홍서범은 야구 명문고교인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해 야구인들과도 친하다. 홍서범은 골수 LG 트윈스 팬이라 응원 대상이 되진 못했다.[19] 장녀 김유나는 유이보다 3살 위이며 수영강사로 활동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던 시절 대구에서 출생.[20] 이후 김선빈이 이 기록을 경신했다.[21] 유이가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가 키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신문기사를 보고 아버지의 키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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