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1961)

덤프버전 :


김성수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제34회
(1998년)


제35회
(1999년)


제36회
(2000년)

송능한
(넘버 3)

김성수
(태양은 없다)


장진
(간첩 리철진)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김성수
金成洙 | Kim Sung-su


파일:김성수 감독.jpg

이름
김성수(金成洙, Kim Sung-su)
출생
1961년 음력 6월 19일[1] (62세)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1가 50번지
신체
175cm, B형
학력
세종대학교 어문학부[2] (영어영문학 81[3] / 학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4] / 석사 과정 중퇴[5])
데뷔
1993년 단편 《비명 도시》

1. 개요
2. 생애
3. 연출 특징
4. 필모그래피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영화 감독, 1961년생.


2. 생애[편집]


1961년 음력 6월 19일(양력 7월 31일)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1가 50번지에서 2남 3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대학교 어문학부 영어영문학과[6]를 졸업하고[7]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에 영화연출 전공 석사 과정에 입학했으나 1989년 <그대의 웃음>이라는 단편영화를 촬영해본 뒤 아카데미 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고는 중퇴했다.

그 뒤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 공부를 하며 1993년 단편 영화 《비명 도시》로 호평을 받았다.그러던 중 박광수 감독의 <베를린 리포트>, 그리고 박광수 감독 밑에서 함께 연출부로 일했었던 이현승, 여균동 감독의 <그대 안의 블루>,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 <세상 밖으로>의 시나리오를 각색하기도 하였다.

첫 상업 영화 데뷔작은 1995년 12월에 개봉하고 이병헌, 이경영, 김은정이 주연을 맡은 런어웨이.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비트(1997년작/서울관객 35만), 태양은 없다(1998년작/서울관객 33만) 두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알려진 감독이 되었다.

그 뒤 무사를 내놓았는데, 들인 돈에 비해 국내 흥행 성적(180만)은 나빴지만 프랑스에서의 성공(70만) 등으로 나름대로 훌륭한 작품으로 불렸다. 하지만 후속작인 장혁, 이나영 주연의 영어완전정복(92만)의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10년 동안 활동이 없었다.[8]

그러다가 2013년 재난영화 감기로 10년 만에 차기작을 맡았으며, 전국 관객 311만을 기록하여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하며 재기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영화의 완성도는 상당히 떨어졌다.

1990년대 도시 젊은이들을 다룬 영화와 2000년대 무협 영화 모두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들었지만, 여러 면에서 운과 완성도, 무엇보다 흥행이 따라 주지 않은 케이스. 무엇보다 후반 두 작품을 하도 크게 말아먹어서...

2016년 9월에 아수라로 컴백했다. 어느덧 미청년에서 미중년이 된 과거의 페르소나 정우성,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황정민[9], 곡성으로 연기력은 물론 원톱 배우로서의 가능성도 증명한 곽도원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그러나 막상 개봉 후 평가는 영 좋지 않았다. 배우들은 대체로 호연을 했으나 주연인 정우성의 연기와 전체적인 각본이 별로라는 평. 사실 평론가들 평가는 호불호는 좀 갈려도 의외로 준수하다. 대체로 6~8점 정도를 줬다. 네이버 평점도 네티즌보다 평론가 점수가 더 높다(...). 사실 이 영화가 대한민국 대중들의 취향에 잘 맞지 않는 건 사실이다.[10] 어쨌든 개봉 첫날에 47만 관객으로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오프닝 최대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이후 입소문이 안 좋게 퍼져 관객수가 급감하면서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350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하고 최종 259만 명으로 흥행에 실패. 하지만 2018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조폭과 정치인의 스캔들을 터트린 후 VOD 판매량이 급증해 손익분기는 넘었다고 한다.


3. 연출 특징[편집]


90년대를 청춘 영화계를 평정했던 감독이며, 2000년대 이후 10년 간의 공백기를 가지다가, 다시 현대 상업 영화로 돌아온 감독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연출 스타일이 확고한 감독이었지만, 2010년대를 기준으로 연출 스타일이 다른 방식으로 전환된 감독이다.

일단 90년대에는 왕가위 감독과 이명세 감독처럼 아방가르드 성향이 있는 스타일리스트 감독이었으며, 화려하고 현란한 편집과 역동적인 촬영 기법, 푸르고 진한 색감, 고독한 느낌의 차가운 연출이 특징인 감독이었다. 당시 왕가위처럼 젊고 만화같은 영상미로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비트태양은 없다는 30년이 가까이 되는 지금 봐도 화려하고 세련된 연출을 자랑한다. 2001년작인 무사는 사극 액션 영화로, 두 대표작과는 장르와 성향이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뛰어난 영상미와 훌륭한 액션, 배우의 화려한 비주얼을 잘 사용해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영화다. 당시에는 젊은 미남 배우의 비주얼을 잘 잡기로 소문난 감독이었다.

10년의 공백기를 가진 후인 2010년대를 기반으로 스타일이 달라졌는데, 감기는 그냥 전형적인 스타일의 재난 상업영화지만, 아수라는 전작들과 조금 상반된 스타일을 지녔다. 밝고 화려한 전작과는 달리 절제된 조명 사용과 정적인 편집, 눅눅하고 칙칙한 화면 스타일, 가차없고 희망없는 스토리, 잔인한 폭력묘사, 배우의 비주얼을 포기한 듯한 과감한 연기 등 비주얼과 스타일이 돋보인 전작들과는 대비된다는 평을 받았다. 사실 이 작품에서는 전작들보다 작품의 스타일에 맞게 영상미를 절제하고 리얼하게 연출해야겠다고 감독이 밝혔다. 그래도 훌륭한 미술과 촬영, 칙칙하지만 뚜렷한 색감, 최대 명장면인 자동차 추격신은 시각적으로 극찬을 받았으며, 다른 스타일로 나아가도 감독 역량은 어디 안 간다는 평을 받았다.

4. 필모그래피[편집]






5. 여담[편집]


  • 정우성과 인연이 깊다. 거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비트와 태양은 없다에서는 대박을 쳤으나 무사는 중박, 아수라는 미미한 성공. 근데 연출 말고 제작을 맡은 중천에서는 쪽박.[11] 최신작인 서울의 봄에서도 또다시 주역으로 정우성이 캐스팅됐다.


  • 특이하게 그의 영화들 중에는 개봉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재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많다. 2001년에 개봉한 무사는 개봉시기 9.11 테러와 맞물려 조폭마누라의 흥행 광풍 속에서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다만 해외에서는 호평을 받았고 이후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2013년에 개봉한 감기는 이후 2015년 메르스 바이러스라는 국가적 재난이 일어나자 큰 관심을 받았고, 2020년에는 중국 우한시에서 벌어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현실화되었기에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2016년 복귀작인 아수라는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며 '아수리언'들을 양성하였고 2차 시장에서 수익을 거둬서 손익은 넘겼다. 그리고 2018년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조폭과 정치인의 스캔들을 터트리자, 다시 한 번 큰 주목을 받았다.

  • 씨네21에서 취재했던 이정재와 정우성의 태양은 없다 10주년 인터뷰에서 보자면 성격이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기도 굉장히 세게 잡고 지금 기준으로도 잔소리가 꽤 험악했다고. 단 이것은 스탭들에 한해서 였고 배우들한텐 안 그랬다고 한다. 무사 촬영 당시에도 중국 올로케이션 때 마찬가지라서 중국 제작진들이 지독하다고 치를 떨었다고 한다.

  • 나무위키 프로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파네라이를 찬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6 10:12:48에 나무위키 김성수(1961)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KMDb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양력 7월 31일.[2] 현재는 세종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제학부로 개편되었다.[3] 유하 영화감독과 동기동창이다.[4] 연극연출 전공[5] 1989년 단편 영화 '그대의 웃음'을 촬영해본 뒤 아카데미 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고 학교를 나왔다고 한다.[6]세종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제학부 영어영문학 전공[7]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감독과 하얀거탑의 안판석 PD와는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동기 사이였다고 한다.[8] 이 공백 기간 동안에 허영만각시탈 영화화와 장철의 독비도(외팔이 검객) 리메이크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무산되었다.[9] 아수라 이전 다섯 작품(국제시장 - 베테랑 - 히말라야 - 검사외전 - 곡성)의 총 관객수가 5,100만명이 넘는다. 한 편당 평균 관객이 천만이라는 소리.[10] 해외 평이 꽤 좋은 것이 그걸 증명한다.[11] 연출은 김성수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던 조동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