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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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成鐸[1]
1922년 2월 28일 ~ 2007년 4월 28일 (향년 85세)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 본관은 김해(金海)[2], 호는 풍곡(豊谷)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2. 생애[편집]


1922년 2월 28일 경상남도 울산군 강동면 어물리(現 울산광역시 북구 어물동)에서 태어났다. 대저공립보통학교(現 부산 대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칸다미사키쵸(神田三崎町)에 있던 타이세이(大成)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신흥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문엽공업조합 이사장에 취임했고, 자신의 호를 딴 풍곡무연탄광주식회사, 성풍탄광주식회사, 풍국해운 등을 경영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정해영이 자유당에서 제명되자,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군 을 선거구에 출마했다. 이에 무소속 정해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는 무소속 정해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1961년 초 공민권 제한 대상이 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최영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3]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내부공천에서 탈락하자 민주공화당에 불만을 품고 한국독립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려다가 당시 울산 출신의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의 회유로 후보를 사퇴하고 민주공화당 설두하 후보를 지지하였다. 이로 인하여 신민당 최영근 후보는 낙선하고 민주공화당 설두하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후 국민당에 입당해 중앙운영위원을 지냈고,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신민당 최형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4월 28일 오후 7시 45분 급성 폐렴으로 별세했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군 을)


17,682표 (48.92%)
당선 (1위)
초선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군 을)

[[무소속|
무소속
]]

8,444표 (20.54%)
낙선 (3위)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시·울주군)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_글씨만.png
]]

31,087표 (45.15%)
낙선 (2위)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시·울주군)

파일:한국독립당(1963년) 흰색 로고타입.svg

1,818표 (2.08%)
낙선 (3위)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시·울주군)

[[국민당(1971년)|
파일:국민당(1971년) 흰색 로고타입.svg
]]

14,233표 (14.46%)

[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는 간혹 김성택(金成澤)으로 잘못 표기돼 있기도 하다.[2] #[3] 이때 민주당 최영근 후보는 31,101표(45.17%)를 득표했고, 김성탁은 31,087표(45.15%)를 득표해 표차는 불과 14표(0.0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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