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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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수철
출생
1965년 (58-59세)
출생지
경상남도 거창군
거주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범죄유형
아동 성범죄
전과
강도강간 등 전과 12범
범행기간
1987년 ~ 2010년 6월 7일

1. 개요
2. 생애
3. 사건
4. 사건 이후
5. 여담
6. 여파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010년 6월 7일 대낮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안으로 걸어들어가 당시 초등학생 2학년[1]이었던 여아를 납치해서 아동 성폭행을 저지른 성범죄자. 범행 당시 45세였다.


2. 생애[편집]


그는 1965년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아 부산 소재 고아원으로 보내져 3년간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성폭행을 당했고 서울로 상경한 뒤 18살 때 공장에서 일하던 경리에게 애정을 고백했지만 거절당한 후 여성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는 체포 당시 경찰서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김수철은 2007년 폭행죄로 2년간 복역한 후 찾은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출소 후 3개월만 제공되는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연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김수철 정신질병 때문에 형사책임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시사iN

그는 이미 관련 전과가 무려 12범이나 되는 상습범이었다. 그동안 저질러 온 범행들을 보면 그의 간이 큰 듯 하다. 1987년에는 22세의 나이로 가정집에 침입해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강간해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절도, 폭행 범죄를 수두룩히 저질러 왔다. 특히 성범죄 대상은 남녀를 가리지 않아 2006년에는 15세였던 남자 청소년을 채팅으로 꼬여내 성추행을 저지르고 합의를 통해 풀려난 전력까지 있었다. 참고로 '1990년 이후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대상자를 한정했던 경찰의 성범죄자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 이전에도 폭행 혐의로 수감되었고 범행 8개월 전인 2009년 10월 순천교도소에서 출소한 그가 당시 살던 쪽방(즉, 범행 장소)으로 이사 온 것은 2009년 12월경이었다. 주민들의 진술에 의하면 김 씨는 동네 주민들에게 이상하고 불쾌한 인물이었다. 대표적으로 “동네 골목길을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거나 트렁크나 내복 바람으로 구멍가게에 들르는 것, 지나가는 주민들을 음흉하게 쳐다보거나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마흔이 훌쩍 넘은 혼자 사는 남자가 10대 청소년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3. 사건[편집]


2010년 6월 7일 오전 9시경 김수철은 술을 마신 상태로 영등포구에 위치한 어느 초등학교의 교문을 통과했고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학교의 운동장에서 50여분간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학교를 마친 뒤 운동장에서 방과후 수업을 기다리던 피해 여아 이모 양을 커터칼로 위협하여 피해자를 데리고 학교 정문을 나가 480m 정도 떨어진 자신의 자택 방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그가 피해자를 끌고 가는 과정은 CCTV에도 포착되었으며 목격자들은 "아무 소리 없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같이 가니까 부녀지간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

사건 이후 피해자는 김수철이 범행 후 곯아떨어진 틈을 타 탈출에 성공했지만 중상을 입어[2] 5~6시간에 걸친 대수술과 6차례 정도의 장기간의 치료를 해야만 했다.

김수철은 당일 오후에 깨어나 피해자가 탈출한 사실을 깨달았지만 도망은커녕 태연하게 동네 식당에 가서 냉면을 주문해 먹는 믿기 힘든 대범함을 보였다.[3] 이후 사우나에 다녀오다가 귀가하던 중 주변을 수사하던 경찰과 대치해 커터칼을 휘두르면서 격투를 벌인 끝에 검거되었다. 위 사진에서 턱에 얼음 찜질을 하고 있는 것도 격투 중에 자해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격투에서도 경찰관 1명이 상해를 입었다.


4. 사건 이후[편집]


체포 후 제2의 조두순이라고 불렸는데 범행 수법도 납치 후 성폭행으로 유사했을 뿐더러 피해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8월 20일 서울남부지법이 김수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판결문

2010년 10월 15일 항소심인 서울고법도 김수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 상고심 판결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2015년에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무기징역은 20년이 지나서 반성하는 여지가 보인다면 심사를 통해 가석방이 가능한데[4] 그렇게 나올 경우를 대비해서 출소해도 30년은 전자발찌를 부착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물론 죄목이 아동 성범죄고 1987년에도 특수강도강간을 저지른 이력이 있다 보니 가석방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 전자발찌를 찰 일은 없다.

당시 김수철은 18세였던 가출 여성 청소년과 몇 달간 동거하고 있었다고 하며 경찰 조사에서 청소년에 대한 성매수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고 법원에서 공문서부정행사와 절도 사건도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당 학교에 다니던 학생은 인근 초등학교로 전학갔으며 피해자는 반 년이 넘어도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고 했다.#[5]

5. 여담[편집]


위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문신이 있다. 사건으로부터 꽤 오래전에 새긴 문신이어서 그런지 문신의 퀄리티가 저질이다.

인터넷에 조두순의 얼굴이라며 돌아다니는 사진은 대부분 김수철의 사진이다. 조두순의 얼굴은 2019년 4월 24일 MBC에서 공개되기 전까지는 공개된 적이 없었다.

이 사람도 조두순과 같이 술을 먹고 범죄를 저질렀으며 심지어 조두순과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범죄를 많이 저질렀는데 왜 이 사람은 무기징역이고 조두순은 12년이냐는 말이 있다. 물론 알다시피 조두순은 해당 문서에서 언급되었듯이 원래 무기징역이 구형됐는데 조두순의 심신미약 건에 대해 검사가 확실하게 반박하지 못했기 때문에 12년이 나온 것이며 우발적인 범죄라는 점도 고려되었다. 반면 김수철은 누가 봐도 제정신으로, 그것도 계획적으로 성폭행을 저질렀고 대놓고 학교로 쳐들어가 아이를 납치해서 그러한 범행을 한 점에서 조두순과 비교해서 죄질이 훨씬 나쁘다고 평가되었으며 가정파괴범으로 15년이나 살고도 다시 비슷한 급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 법정에서 그가 교정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한 사유로 작용했다. 즉, 이 사건만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으로 볼 때 판사가 그를 사회에 절대 내보내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판단하여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이다.

6. 여파[편집]


이 사건으로 인해 학교의 허술한 보안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는데 당시에는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 주간 경비원이 없었고 주간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았다. 조두순 사건에 이어 김수철 사건이 터지자 많은 학부모들이 교육부에 '학교 수위를 부활시켜 달라'는 청원을 했고 서울은 사건 다음해인 2011년부터 학교보안관 제도를 도입해서 학교에 주간 경비인력을 충원하고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2010년 2월의 김길태 사건과 6월의 이 사건 이후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를 소급해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특정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법(전자발찌법)' 개정안이 7월부터 시행됐다. 6월에는 어린이 상대 성범죄자에게 성충동을 억제하는 약물치료를 받게 하는 '성범죄자 성충동 약물치료법(화학적 거세법)'도 통과됐다.

경찰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장기 복역 성범죄 전과자를 찾아내 우범자로 관리하기로 했다.`뒷북대책' 경찰 성범죄 장기복역자 특별 관리-연합뉴스

피해자 가족이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책임이 인정되어 일부 승소했다.서울시, 김수철 성폭행 피해자에 배상-연합뉴스

김수철 사건 이후에도 초등학교에서의 아동 성폭력 사건이 벌어져서 문제가 되었다.영암 女兒 성추행…4년 전 '김수철 사건' 판박이-연합뉴스

2010년 2월 김길태 사건의 파장으로 4월에 법무부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이 개정되어 신상정보 공개가 보다 쉬워졌다. 김수철 사건은 준칙 개정 후 적극적으로 정보가 공개된 첫 사례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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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2년생.[2] 회복이 되어도 항문은 이전의 70% 정도의 기능만 할 수 있는 정도로 알려졌다.#[3] 사실 범죄를 저지른 자택도 경찰서에서 불과 2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이였다.[4] 하지만 실제 가석방은 수형 생활도 물론 보지만 그것보다 먼저 따지는 게 죄질이다. 그래서 죄질이 나쁘면 나쁠수록 가석방으로 나오기는 힘들어지며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흉악범들 중 가석방으로 나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5] 이 기사엔 김길태 사건의 피해자 부모 이야기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