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 친척 나이 출생 국적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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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시우 친척 나이 반려견 가족 국적 단위[편집]


나의 가족 친척 반려견 및 친구 아닌 나이 기록서함
이제는 친척 유의어 관계 소통되는 나의 친척 출생정보 기록서 이다, 하 우리 친척들은 거의 전라도 쪽이지만 경상도 경기도 대전 서울 광주 에도 있긴있다 거의 대부분 이 친가쪽은 전남 외갔쪽은 경남 이라고 보면 되고 해외에는 우리친척은 없고 다른가족에 또다른 친척이 미국에 있다,. 그리고 다음은 바로 우리 가족이데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형님 딸여동생 누나 삼촌 고모부 고모 이모 사촌 오촌 시댁 손주 막내 등 여러 가지 학생들과 잘 저응으로 완전 해피엔딩 거의 우리가족중에서는 백인종30% 황인종200% 으로이며 거의 나까지 포함에 황인종이 거의 많다 물론 피부색이 모발색중 횐색 검정 갈색 인 친척도 있고 검정머리 황인색 인종도 있다 그래서 우리중 한사람은 한국과 미국 프랑스, 중국, 이란, 인도, 이탈리아,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국적을 가진사람도 있고 거의 한국국적이 많이 있어서 대부분이 다 한국 국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KOREA USA 한국가족이라고도 불리고한미가족 미국 한국 합쳐 한미가족이라 고도 많이 불리지만 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우리가족은 해외여행은 요새 잘않가는 편이지만 국내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라서 항상 마스크 도 착용해야하고 또 계절에 따라 중국세끼 들 떄문에 우리는 완전 고생 힘들다 요새는 계속 아시아만 코로나는 아니라 모든게 아닌 동북아시아만 코로나가 시마고 확률이 310,0000% 정도로 높아 항상 실외에서는 상가 학교 매점 시설 공고장소에서도 마스크를 꼭 모든시민들은 착용하여 껴야하는걸 우리가족중에서는 잘지켰으나 시우란 얘는 말도않듣고 마스크를 싫어해서 미착용 할려한다,. 그렇다보니 자기는 해외국적 에서는 마스크 미착용 해도 되서 좋았다 최고다
그래서 친척가족 중에서는 시우는 외국좋와하고 전라도좋와하고 가족들과친척들과친구사이에서도 가장많은편이다 그리고 형님은 친구가 많이 있고 도윤이형 은 멋진형이다 도윤이형은 친구도 아주 많이 있고 형은 친구도 많이 있고 시우만 혼자 친구가 없는편이지만 외토리같이 자기는 기분좋아한다 가족이라도 제발 네가 바란데로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고 해서 기분좋고 또한 우리는 더잘 될것이라는 점도 있다 우리 친척은 전국지역에는 다 없고 몇개 지역에 만 친척들이 있어서 아마 시우는 더 기분좋고 요새 친척이 많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있으나 우리친척은 데게 많고 가장 좋다 30명을 넘을만한 수로있다,. 그리고 우리가족중에서는 반려견 강아지도 가족으로 키우니까 포함되며 이제는 많은 데게 큰 기족이다. 그렇다. 우리는 잘산다.


2. 친척 나이 순위[편집]


출생연도

지금부터 시작하는 김시우의 친척 가족 출신 나이 성암 성별 국적 고향 에 대해서 작성하여 기록 목록한 배열표기서 입니다.
그럼 김시우 의 친척 출생년도 순위 단위 순서대로 에 배열목록 실제 진짜 자라거나 태어난 지역 과 자기 생년월일 입니다,
이제는 우리는 친척 남의 가족 과 아는 사이를 가진 분 노인 젊은나이 중간아저씨나이 도 많고 그렇다.!


3. 시우 친척 가족 자매 친한 나이 국적 목록서[편집]


친척 나이 순위 , 주민센터
늙은 나이 편 , 할아버지 할머니 과거 옛날
친척출생연도, 레고시리즈
이름성암,,, 고향지,,,면목국적닉네임
1899년생 Yutdol 놀이
배윤열 신라 녀자 한국
1935년생 LEGO pabriren
김달용 광주 남자 한국
1935년생 LEGO tuhks2
공수남 김해 녀자 케냐
1937년생 LEGO farrik17
김달천 광주 남자 한국
1938년생 LEGO system3
황선자 김해 녀자 한국
1938년생 LEGO mursten
한복순 광주 녀자 한국
1944년생 LEGO 139
황정규 김해 남자 미국
1948년생 LEGO 194
김귀임 진해 녀자 중국
1957년생 LEGO 500
이익희 하동 남자 대만
1959년생 LEGO 281
이지호 여수 남자 한국
1959년생 LEGO 310
김춘자 여수 녀자 한국
1961년생 LEGO 400
김희숙 진해 녀자 키르기스탄
1962년생 LEGO 810
김동춘 광주 남자 아르헨티나
196?년생 LEGO ???
정민자 울산 녀자 몽골
1963년생 LEGO 219
김미숙 진해 녀자 한국
1964년생 LEGO 316
김병식 청도 남자 카자흐스탄
196?년생 LEGO 317
황상익 김해 남자 우크라이나
1965년생 LEGO 315
손영법 창원 남자 인도
중간 나이 편 ,아저씨 아줌마 현재 지난
1965년생 LEGO 041
김경수 광주 남자 미국
1965년생 LEGO 674
이강미 진해 녀자 중국
196?년생 LEGO ???
한철수 목포 녀자 한국
1966년생 LEGO 520
김창호 진해 남자 한국
1968년생 LEGO 205
김정호 광주 녀자 한국
1968년생 LEGO 350
김희순 진해 녀자 라트비아
1969년생 LEGO 239
오성진 서울 남자 말리
1969년생 LEGO 046
김정란 광주 녀자 튀르키예
1971년생 LEGO 119
김인수 광주 남자 한국
1971년생 LEGO 644
김수연 진해 녀자 홍콩
1972년생 LEGO 354
황우익 김해 남자 한국
1972년생 LEGO 370
조은경 김해 녀자 한국
1974년생 LEGO 353
황희정 창원 녀자 멕시코
1975년생 LEGO 659
이한경 순천 녀자 중국
1977년생 LEGO 420
황재영 창원 녀자 한국
1979년생 LEGO 588
황두관 창원 남자 한국
젊은 나이 편 , 형님 누님 미래 현재
1985년생 LEGO 6636
김영롱 창원 녀자 한국
1987년생 LEGO 4010
이재율 진해 남자 태국
1992년생 LEGO 6398
김우창 진해 남자 한국
1993년생 LEGO 6545
이재근 진해 남자 베트남
1993년생 LEGO 6625
김은하 광주 녀자 독일
1995년생 LEGO 4608
김현우 광주 남자 한국
1996년생 LEGO 4604
손지명 진해 남자 한국
1999년생 LEGO 4603
황혜원 부천 녀자 한국
1999년생 LEGO 6533
김소영 광주 녀자 프랑스
어린 나이 편 , 딸 아들 이제 지금
2001년생 LEGO 6631
손창준 창원 남자 한국
200?년생 LEGO ????
김도희 광주 녀자 카타르
2001년생 LEGO 6635
황동욱 진해 남자 한국
2002년생 LEGO 6635
김도윤 창원 남자 한국
2002년생 LEGO 6639
황동주 부천 남자 한국
2003년생 LEGO 7237
김시우 창원 남자 중국
2005년생 LEGO 7035
오지원 서울 녀자 호주
2006년생 LEGO 7744
김서진 원주 녀자 체코
2011년생 LEGO 7498
김별이 울산 수컷 독일
201?년생 LEGO ????
행복이 양산 암컷 몰타
2020년생 LEGO 60971
이하윤 창원 녀자 한국

친족외척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자신과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들(혈족) 중, 일정 범위 안의 가까운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고종(姑從), 내종(內從), 외종(外從), 이종(姨從) 등이 포함된다.

혼인으로 이어진 관계의 사람들(배우자 및 배우자의 친척)은 '인척(姻戚)'이라 한다. 혈연혼인을 통하여 이루어진 친족을 통틀어 '친인척'이라 한다.


4. 상세[편집]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데 대한민국 법에 '친척'이라는 용어는 없다. 대한민국 법에 등장하는 용어는 '친족'과 '인척'이다. 친척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나 법에 친척이라는 용어는 없다.

법률 용어 '친족(親族)'은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를 포함한다.

친척을 8촌 기준으로 삼는 것은 유교에서 유복친(有服親), 즉 죽으면 상복을 입어야 하는 친척 관계를 친가의 8촌 형제(삼종형제, 족형제)까지로 잡은 데에서 비롯한다. 족자(族子)라는 말이 유복친이 아닌 조카뻘 되는 사람을 뜻하는데, 족자를 족형제의 아들이라고 본다면 8촌 형제의 아들, 그러니까 딱 유복친이 아니면서 가장 가까운 조카를 가리키게 되니 결국은 친척이 아닌 먼 조카뻘 되는 사람이 족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대한민국 법에서는 친가의 8촌까지만을 친족으로 정의했는데, 남녀평등에 위배된다 하여 이걸 8촌 이내의 혈족 전체로 확대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촌수 개념으로 친척간의 관계를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친척 간 호칭이나 촌수 계산은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개념인데, 호칭이야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조금의 암기가 필요하고 조금 더 복잡한 거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촌수 계산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촌수 계산의 원칙은 기준 인물을 중심으로 위나 아래로 향할 때(즉, 직계 존속이나 직계 비속)는 +1을 더하는 것 . 옆으로 가는 길은 없고, 옆으로 가려면 일단 위쪽으로 올라가서 공통조상을 밟은 뒤 아래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 이를 쉽게 '옆으로 가면 +2'라고 외우기도 하지만 이렇게 외우면 5촌 이상을 계산할 때 지뢰를 밟을 수도 있으니 그냥 위아래로만 외우는 게 낫다. 참고로 부부끼린 촌수가 없다. 대신 배우자의 친족으로 넘어가면 거기서부터 인척이 된다.

예를 들면 자신을 기준으로 사촌이 4촌인 이유는 자신의 1대 직계 존속인 아버지로 올라가서 +1, 다시 그 아버지의 직계 존속인 할아버지로 올라가서 +1, 그 할아버지의 자식인 큰아버지/삼촌으로 다시 내려와서 +1, 그 큰아버지/삼촌의 아들/딸인 사촌으로 내려와서 +1 하여 합계 4가 되기 때문. 그냥 쉽게 아버지의 형제니까 1+2, 그 자식이니 다시 +1 이런 식으로 해도 4가 나온다. 기준점에서 해당 친척과 +1, +2만 제대로 하면 촌수 계산은 매우 쉽다. 5촌의 경우도 아버지의 4촌이니 1(아버지)+4= 5촌인 것. 이런 식으로 계산해보면 홀수 촌수는 자신보다 홀수대로 위아래고, 짝수 촌수는 동렬 혹은 짝수대로 차이가 난다. 예: 당숙은 나와 1세대 차이, 삼종조부(8촌)은 나와 2세대 차이.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이니 2촌인데, 짝수 촌수니까 나랑 동렬인가요?"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촌수는 기본적으로 방계 혈족과의 관계를 계산하기 위한 것으로 직계 존/비속과의 관계에서는 촌수로 호칭하지 않는다. 다만 촌수 계산의 편의상 부여한 숫자일 뿐.

단순화시켜서 생각하자면 부계 혈족간의 관계에 한정해서 4촌은 할아버지가 공통의 조상인 친척, 6촌은 증조할아버지가 공통의 조상인 친척, 8촌은 고조할아버지가 공통의 조상인 친척이 된다. 그 이상의 친척도 물론 존재할 수 있고 촌수도 계산할 수 있으나, 이 이상 넘어가면 대개 남으로 보며, 법적으로도 8촌을 초과하는 친척은 그냥 남이다. 물론 예전 집성촌 같은 곳에서는 9촌 이상의 친척도 알고 지낼 정도이기는 했다.

사실 친척의 범위를 이 정도로 넓혀서 보는 나라는 과거의 중국과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에서도 일단 사촌 이상의 친척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기는 하나(5촌: いとこちがい; 6촌: はとこ, またいとこ)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지는 않고, 이런 단어가 있는지도 모르는 일본인들도 꽤 많다. 영미권에서는 아예 사촌 이상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 굳이 표기하자면 커즌 앞에 '세컨드(육촌), 서드(팔촌)' 같은 식으로 달아서 표기를 해야 한다.[1] 오촌은? '내 아버지의 사촌', '내 어머니의 사촌' 같은 식으로 말해야 한다. 다만 사촌 이상의 친척에 대해서도 한국과 같이 친척의식이 강한 나라는 드물다. 예전엔 아예 동성동본 금혼법이 존재했을 정도이니. 일본의 경우엔 민법상 육촌까지를 친척의 범위로 친다.

터키나 아랍 지역에서도 꽤나 복잡한 친척 관계를 갖는다. 가령 터키어의 경우 친가 쪽 친척과 외가 쪽 친척을 부르는 호칭이 서로 다르며[2] 심지어 과거의 일부 다처제 전통이 있던 시절에는 둘째 부인의 자식과 둘째 부인의 친척, 셋째 부인의 자식과 친척 등을 부르는 호칭들이 다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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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개인주의적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여성의 인권 신장 등으로 호칭에 관해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사실 형제, 자매들이 적어도 4명에서 많게는 8명도 되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은 자녀를 가져도 외동이들도 아주 많아서 앞으로는 친척 관계별 호칭을 일일이 잘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생길 걸로 예상한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서는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친척들끼리의 왕래도 과거보다는 적어진 편이다. 그나마 친척 중에 서로 마음이 어지간히 맞거나 친한 사람이면 자주 보기도 하지만, 별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사실 말만 친척일 뿐 거의 그냥 남남 관계랑 차이가 없거나 아니면 어려운 사람 수준이다.[3]

1990년대, 2000년대 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친가쪽 아니면 외가쪽 모든 식구들이 모여서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기본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자식을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8명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결혼도 일찍해서 60세 정도만 되어도 손주들까지 많아 한 집안이 아주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1990년대, 2000년대에 가정에서 가장 큰 어르신 역할을 하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2020년대인 지금 거의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 상황. 여기에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결혼도 늦어지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가족, 친척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이는 장면을 보기가 아주 어려워진 상황이다.


5. 금혼(禁婚) 문제[편집]


8촌 이내의 혈족과는 혼인이 금지된다. 그런데 부계/모계를 불문하고 8촌 이내의 혈족친족 범위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나치게 범위를 넓혔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이게 뭔 소리냐 하면, 자신의 '외할머니의 고종 사촌의 손자'라던가 하는 경우도 부/모계를 불문하면 일단 8촌의 친족 범위 안에 들어간다(...). 이런 경우는 진짜 모르고 사귀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하러 갔더니 결혼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예시로는 이렇게 들어 놓기는 했는데, 실제로 혼인신고서에서는 동성동본 여부만 체크하고, 동성동본인 경우에 8촌 이내인가 아닌가만 따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경우 특수하게 걸리지만 않으면 혼인신고가 정상적으로 접수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맹점. 부계 성씨 위주로 파악하는 구 호적법의 특성상 모계 친족의 경우는 부계 친족에 비해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상 부/모계의 8촌 친척 범위라는걸 다 파악하기는 무리라는 주장의 반증이 되기도 한다. 친족 관련 민법 조항 개정 이전의 친족 범위는 부계 8촌, 모계 4촌이었는데, 이게 남녀평등에 어긋난다고 해서 남녀 공히 8촌까지로 늘린 것.

외국에서도 사촌 이상의 친척을 아예 남으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기는 한 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는 '육촌간의 혼인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라는 구절이 등장하기도 한다.


6. 기타[편집]


십촌이 넘는 먼 친척은 '촌외(寸外)'이다. 촌외의 반대말은 '촌내(寸內)'이다.


7. 참고 항목[편집]





단편 애니메이션 The LEGO Story
세상의 모든 지식 채널의 레고 브랜드 역사 소개 영상

이 동영상들은 레고 사에서 레고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단편 애니메이션 The LEGO Story와 목공소부터 시작된 레고 사의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지식 채널의 영상이다. 이 영상들을 한 번 보고 이 문단을 읽어보는 것을 권장한다.

파일:attachment/레고/530px-Ole_Godtfred_Kjeld_Oles_60th_birthday.jpg
파일:attachment/레고/IX4kR.jpg
올레의 60세 생일 때 찍은 사진이다. 맨 위가 초대 회장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가운데가 2대 회장인 고트프레드, 아래가 3대 회장인 켈이다.
오늘날의 레고 시리즈의 발판이 된 최초의 플라스틱 브릭이 포함된 레고 시스템 제품의 박스아트의 모습이다. 참고로 박스 표지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2대 회장인 고트프레드의 자녀들로 남자아이가 3대 회장 켈이다.

레고 창업자인 올레는 1891년 4월 7일에 덴마크 필스코프에서 10째로 태어났다. 올레는 1916년에 목공소인 '빌룬 기계목공사'(1895년 설립)를 사들였는데, 집과 목공소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던 이 건물은 1924년 올레의 두 아들들[4]이 난로에 불을 피우는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그대로 태워버렸다.[5] 올레는 큰 집을 새로 지었지만, 빚을 지게 되었고, 거기에 대공황의 타격을 입고 1932년에는 폐업 직전까지 몰린다.[6]

1932년쯤부터 올레는 나무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올레가 쉬는 동안 자투리 조각을 깎아 만들었다고도 하고, 폐업 직전까지 몰린 상황에서 직원들을 대량으로 해고한 후에 대규모 작업이 어려워져 작은 장난감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이 장난감은 제법 인기를 끌었고, 이 장난감을 주력 사업으로 삼으며 레고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 1934년이었다. 원래는 집에서 담근 레드 와인을 상품으로 내걸고 이름을 모집받았지만, 다행히도 이 레드 와인이 어지간히도 맛이 없었던지 아무도 제안을 하지 않아서 결국 올레 자신이 레고라는 이름을 제안해 수상했다.[7] 사업은 순조로웠고, 1939년에는 직원을 10명으로 늘릴 만큼 성장했다. 특히 올레의 3남인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은 아버지의 이 장난감 사업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기에 10대 시절부터 직접 모델 개발에 참여하곤 했다. 결국 고트프레드는 1950년에 30살의 나이로 상무이사로 취임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1940년덴마크가 항복해서 나치군의 아래로 들어가자, 수입 장난감의 판매가 금지되었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레고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1942년 3월에 또 불이 났다. 그래도 재건은 빠르게 진행되어 연말에는 이미 560㎡의 새 작업장이 완공되었다. 그리고 1944년에 레고사는 정식 기업으로 등록되었다. 1947년에 레고 사는 합성수지의 도입을 결정하고 작은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구입하는데, 이는 덴마크에서 최초였던 걸로 알려져 있다. 원래 올레는 비싼 영국제 대형 사출 성형기를 구매하려고 했지만 고트프레드가 사정을 한 끝에 작은 것을 구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전해진다.[8] 레고 사에서 생산한 최초의 플라스틱 장난감은 금붕어 모양 딸랑이가 되었다. 그 뒤를 이은 제품은 페르구슨 트랙터였다.[9] 이 트랙터는 부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걸 개발하는데 진짜 페르구슨 트랙터 한 대 값이 들었지만, 곧 그 정도는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트랙터 장난감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49년에 레고 사가 출시한 플라스틱 장난감 중에는, 오늘날 알려진 레고 블록의 전신이 있었다.[10][11] 그런데 이 블록은 1953년에 레고 브릭으로 이름을 바꿨음에도 인기를 끌지 못했다. 블록끼리의 접합이 약한 것이 문제였는데, 이 점은 1957년에 블록 아래에 파이프를 만들어서 해결되었다. 상단 동영상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연필의 동그란 끝 부분이 브릭의 위쪽 홈 사이에 껴서 빠지지 않는 걸 보고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해인 1958년 1월 28일 고트프레드는 이 모든 방식을 특허로 신청하였고 이는 현재의 조립형 레고 블록의 시작이 된다.[12]

파일:경상남도 휘장.svg 경상남도특례시


파일:창원시 CI.svg

창원시
昌原市
Changwo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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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에 레고 사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호엔베스테드에 레고 브릭에 완전히 매료된 독일인 사업가인 악젤 톰센을 사장으로 하는 독일 법인을 설립했다.[13] 이후 해외진출은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이어졌다. 성장은 순조로워서, 1964년에는 47개국에 진출하게 되었다. 다만 기쁜 일만 있는것은 아니었다. 1958년 3월 11일에 창업주인 올레가 오늘날의 레고 브릭의 탄생을 보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떠났고, 결국 이전까지 상무이사로 일하면서 실질적인 경영과 제품 개발을 맡아왔던 3남 고트프레드가 곧바로 2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고트프레드는 취임 직후인 1959년에 새로운 레고 세트의 디자인을 구상하고 관리하는 전담 부서인 레고 푸투라를 설치하는 한편,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으로 진출하기 위한 지사 설립에 매진한다. 그러나 1960년 2월 4일 레고 사에서 또 화재가 일어난다. 다행히 이번에 불탄 건 이미 수익이 많이 감소한 목각 완구 부서 건물이었고 레고 사는 이를 계기로 레고의 목각 완구 생산을 중단하고 레고 시스템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어째 화재를 당할수록 흥하는 기업같다.

1963년에 고트프레드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레고의 10대 원칙을 제창했다. 이는 그로부터 9년 전 코펜하겐의 Magagin du Nord 백화점의 구매과장에게 들은, "현재 출시된 모든 장난감에는 무언가 고차원적인 규칙이 없다"는 불평을 들었던데서 기인한다. 고트프레드는 자사의 제품들 중 플라스틱 벽돌 장난감이 아래 규칙에 가장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각 완구의 단종과 맞물려, 이때부터 레고 사는 가장 완벽한 장난감에 체계적인 구조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아 '레고 시스템'이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여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가족 친척 등 여러 사촌 남매 할아버지 이웃사촌 친정댁 시댁 에 나이 친구 손주 손녀 모든 아비지 처재 어머니 할머니 외가족 해외가족 을 정보 길고해둔 봐에 따라 모두 한국 출신 이며 아시아계 또는 한민족 아시아인 이다 백인종 황인종 까지 있으며 우리는 거의 대표적인 가족으로 친척이 타지역 에 출신 또는 거주도 한다 그렇다 이제는 친척 절대 남의 아닌 모르는것이 아닌 가족과에 자매 맺은 부부 2차 3차 4차 가족 이다 여러나라에서도 말이다.
우리가족은 모발색이 갈색 검정색 등이다, 비만인 사람도 있고 날씬한 몸매를 가진 사람도 있다 어르신 젊은이 어린이 학생 도 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친척또한 가족과 함꼐 흥미를느끼고 는 하고 많은 놀이도 한다 여기까지 김시우의 친척 국가한국 지역 출생 나이 정보 기록서 였다 다음주 게획은 없다.

{{( 이렇게 친척 시우의 기록 정보 이자 목록서 이다 )}}
김시우 친척 나이 출신 국적 정보
[1] 그냥 한국의 종형제, 재(2)종형제, 삼(3)종형제 등의 호칭과 동일하다고 하면 이해가 쉽다.[2] 이를테면 친삼촌은 암자(amca), 외삼촌은 다이으(dayı), 고모는 할라(hala), 이모랑 외숙모는 teyze, 처남은 enişte 식[3] 어렸을때 봐도 알겠지만 친척들이 다 성격이 비슷하지는 않다. 비교적 성격이 온화한 사람이 있으면 호된 사람도 있고, 타인의 성격을 그냥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오지랖이 심한 사람도 항상 있다.[4] 칼 게오르크와 2대 회장 고트프레드다. 훗날 칼 게오르크는 레고 사의 목각 장난감 생산 중단에 반발해서 올레의 4남인 게르하르트와 함께 빌로 픽스(Bilo fix)라는 목각 장난감 회사를 창업했고 나중에 한세 텍(Hanse tec)으로 이름을 바꾸었다.[5] 불탄 이후 재건한 집은 현재에도 빌룬 시내 중심부에 남아있다.[6] 그 영향은 그대로 남아, 1972년까지 레고 사의 800크로네(약 12만원)를 넘는 모든 지출은 회장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7] 올레가 지은 레고라는 이름은 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의미인 Leg Godt(라이 커트)의 약어였다.[8] 상대적으로 저렴한 사출 성형기였어도 해당 사출 성형기를 구매하는데 당시 레고 사의 연수익의 15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인 3만 크로네가 소모되었다고 한다.[9] 실제 제품의 모습이다.[10] 다만 이 블록은 레고 사에서 발명했다고 하기는 힘든데, 영국의 장난감 디자이너인 힐러리 피셔 페이지가 설립한 회사와 동명의 조립 완구인 키디크래프트(Kiddicraft)를 레고 블록의 시초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이 블록의 샘플은 전술한 문제의 작은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구입할 때 함께 왔는데, 레고 사는 그걸 기초로 하여 자사의 블록 완구를 만들었다. 힐러리는 이것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그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된 것은 힐러리가 죽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힐러리의 딸에 의하면 힐러리는 레고에 대해 알고서 안심했다고 한다. 1981년에 레고 사는 거금을 들여 키디크래프트에 대한 권리를 사들였고 이후 레고 사의 공식 역사에서 힐러리 피셔 페이지와 키디크래프트에 대한 언급을 모두 삭제했다.[11] 레고 블록의 특허가 만료된 1978년 이후로 모조품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는데, 수많은 짝퉁 제조사 중 하나였던 타이코(Tyco)라는 회사를 레고 사 측에서 소송을 걸었으나 법원은 레고 블록 역시 키디크래프트를 모방한 제품이었다는 점을 들어 타이코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후 레고 사는 모조품 관련 소송에서 대부분 패소했다.#[12] 이 날을 기념해서 50주년인 2008년에 10184 제품이 출시되었고 켈의 편지가 설명서에 포함되어있다.[13] 고트프레드는 처음에는 독일 법인 사장의 자리를 달라는 악젤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악젤이 이미 자신의 회사를 가지고 있어 레고 독일 법인에 전력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뒤, 악젤은 빌룬을 방문해서 사장 자리를 준다면 자신의 회사를 아들에게 넘기고 레고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말해 독일 법인의 사장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