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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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광복군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923년 11월 23일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전수대학 졸업 후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군 소위로 복무하다가 1944년 간부후보생 훈련 도중 무장탈영을 주도하였고, 류재영, 성동준, 박영 등 7명을 이끌고 탈출하였다. 중국군 제3전구 충의구국군 사령부에 도착하여 미군 고문관에게 일본군 정보를 제공하였고, 이 사실이 중국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다. 그 후 광복군에 편입되어 징모3분처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 1949년 헌병학교 졸업 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 육군 소령으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의 전속부관으로 복무하던 중 전투 현장으로 찾아갈 것을 간청하였고, 직접 전투에 뛰어들다가 7월 29일 경북 예천에서 전사하였다.

1961년 학병동지회에서 완도군전적비를 건립하였다.


3. 여담[편집]


장경순국회부의장과 일본 유학시절 친구였으며, 회고록 "나는 아직도 멈출 수 없다." 에서 생전 일화들을 언급하였다. 장경순 전 부의장의 회고에 따르면 믿음직한 거구에 서글서글하고 밝은 성품이었다 한다. '풍운아'로 지칭할만큼 거침없는 면모를 보였으며, 무장탈영을 직접 주도하였고, 당시 남경사관학교에서 유일한 탈출 사례였다. 해방 후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 독립군 출신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을 하자 직접 찾아가 힐책했다가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육군헌병감 최영희 장군이 헌병학교 입학을 권하였고, 육군 헌병으로 복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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