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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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이름
김영일
출생
1955년 9월 30일
사망(추정)
2000년 5월 10일 (사망 시 향년 44세)

북한의 정치인이자, 외교관. 김일성의 아들이자 김정일, 김만일,[1] 김경희의 이복남동생이자 김경진, 김평일의 남동생. 즉, 김일성의 4남이다. 김만일이 유아 때 사망했으므로 일반적으로는 3남으로 인식된다. 유력 대권주자까지는 아니었지만 형 김평일과 함께 김영일은 김정일에게는 경계 대상이었다.

2. 생애[편집]


어릴 때에는 말을 잘 안듣는 아이였던 듯한데, 담임선생에게 선생 동무가 우리 아버지보다 세오?라고 반항하며,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이를 전해들은 김일성이 김영일이 보는 앞에 담임선생을 불러다 놓고 다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그 이후로 김영일은 담임선생의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자라서는 김정일과 썩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정일은 차기 후계자 자리에서 김평일과 대립하던 관계였고, 김영일은 대권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경계의 대상이었다. 김정일은 김평일과 경쟁하면서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전영화를 대폭 만들고 주체사상탑을 건설했으며 자신이 곁가지라 부르는 김성애 일가의 비리를 계속 폭로했다. 이러한 김정일의 노력(?)으로 김정일은 아버지처럼 전제권력을 손에 쥐었고, 형 김평일이 유고슬라비아 주재 무관으로 쫓겨났고, 그 동생 김영일도 쫓겨났다. 김일성 종합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한 다음에 1980년 동독 훔볼트 대학으로 유학을 갔고 영어 공부를 위해 몰타에 체류한 적도 있다. 북한 제2자연과학원 공학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한때 잘 나갔으나 2년 만에 김정일의 압력으로 쫓겨났다. 누군가 김영일과 대화하기만 하면 즉각 조직지도부 담당지도원이 무슨 생각으로 곁가지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가?라고 마구 추궁을 하니 일을 할 수가 있나. 담배 한가치만 나눠 피워도 추궁이 매서웠으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결국 독일 주재 북한대표부 과학참사관으로 쫓겨났다.

2000년 5월 16일, 어떤 대북소식통은 김영일이 독일에서 간경화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하필이면 그때가 중대한 행사가 열리기 직전이라서 김영일이 암살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김영일이 최근 간 질환을 앓아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김평일에 비해 활동이 줄어든 것이다.'라고 확인사살했다.

여담으로 김정일 정권 말기에 북한의 내각 총리를 지냈던 김영일(2007년~2010년 재임) 및 당 국제부장을 지낸 김영일(1947)과는 동명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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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4년 ~ 1947년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