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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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3대 영부인.
2. 생애[편집]
1935년 음력 8월 11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서 아버지 김영한(金永漢)[3] 과 어머니 남양 홍씨 홍무경(洪戊庚)[4] 사이의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김익동(金益東) 전 경북대학교 총장,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복동(金復東)이 친오빠다. 증조부 김광규(金光圭, 1845.6.21. ~ 1922.5.6.(향년 76세))는 경상도 안동대도호부(현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1891년 증광시 진사시에 3등 138위로 입격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에 진학하였다가 어려워진 가정형편 속에서 여동생 김정숙의 진학을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으며 직후 노병수(盧秉壽)[5] 의 아들 노태우와 결혼해 그들의 집안인 교하 노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결혼 후 노태우 가족은 육사 동기생 전두환과 늘 가까이 하며 지냈는데, 김옥숙 역시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와 가까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옥숙은 이순자보다 나이가 네 살 언니였음에도 이순자가 하대를 하고, 김옥숙 여사는 이순자를 형님이라고 불렀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고종사촌 동생[6] 으로 남편의 책사 역할을 한 박철언을 매우 아꼈다. 슬하에는 딸 노소영[7] 과 아들 노재헌[8] 이 있다.
대통령 배우자가 된 이후 이순자에 대한 호칭도 재국이 엄마로 바뀌어 뒤늦게 한풀이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자 제5공화국 때문에 민주정의당이 인기가 없어서 선거가 아주 힘들었다고 하는데, 드라마 <제5공화국> 40회에도 이 장면이 나온다. 소영이 아빠는 국민들이 직접 뽑아준 대통령이고 재국이 아빠는 체육관에서 뽑힌 대통령이잖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순자는 이와 같은 일화들을 부인하며, 자신보다 나이가 네 살이나 더 많은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서로 존대했다고 회고했다. 또 남편들이 친구였던 것처럼 배우자들 간에도 우애가 돈독했으며 10년 동안 영어 공부도 같이 하고 집안일과 자녀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가깝게 지냈다고 밝혔다.
남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 외교를 옆에서 적극적으로 내조하는 등 적지 않은 활동을 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어록이 없는 대통령 배우자로 기억될 만큼, 취임 초기부터 그림자 내조를 내세우며 잠행 스타일을 고수했는데 많은 족적이 있음에도 존재감이 옅었던 남편 노태우를 닮았다.
원래는 무척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조용한 행보를 이어간 배경은 바로 전임 대통령 배우자였던 이순자 때문이었다. 이순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대외 활동을 핑계 삼아 오만하게 행동하고 갖가지 사고를 치며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에 이를 교훈삼아 조용히 지냈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 배우자로 있었던 5년 간 공개 석상에서는 대중을 향해 무조건 90도로 인사하고, 노태우 옆에서 미소를 띄운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한 적이 없으며[9] 복지기관 방문 등의 단독 일정도 무조건 비공개였다. 그래서인지 대통령 배우자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행동이 조심스러웠던 인물로 평가받는다.[10]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김옥숙은 제6공화국 수립 이후인 1988년 5월 18일, 극비리에 광주광역시 5.18 묘역을 찾아 참배를 했었다. 사망하는 순간까지 광주 시민을 유혈 진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에 적극 동조하는 부인 이순자와는 대비되는 점이다.
남편 노태우 전 대통령의 퇴임 후에도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고, 특히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 이 역시 전임 대통령 배우자였던 이순자와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다만 거동이 불편했기에 아들 노재헌을 통해 대신 사과의 뜻을 전했다. 2020년 5월 18일에는 노재헌이 광주광역시 망월동 5.18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를 찾았는데 김옥숙의 이름으로 조화를 보냈다.
김옥숙 여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매스컴에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2002년, 남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립선암으로 투병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김옥숙 여사는 그저 불편한 거동으로 남편 노태우를 극진히 간호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렇게 2021년 10월 26일 남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김옥숙 여사는 남편의 장례 3일차에 자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빈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재헌 자제는 김옥숙 여사께서 남편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을 왔다가다 하면서 살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김옥숙 여사는 남편 노태우의 장례식 중에도 빈소에 상주하지 않고 연희동 자택과 병원을 왕래했다.
2021년 10월 30일, 올림픽공원에서 거행된 남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손에 쥔 모습으로 참석, 자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헌화했고, 울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생중계를 통해 나타났다. 영결식 직후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타고 온 차로 이동하는 길에 영결식에 와 준 참석자들에게 겸손하게 손인사를 하였다.
3. 기타[편집]
- 한동안 개신교를 믿게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21년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06년 병상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실과 더불어서 아내 김옥숙도 남편을 따라 2021년 4월 경,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에 따라 노태우 전 대통령 입관식은 오웅진 신부 주례 하에 천주교 예식으로 진행되었다.
- 1988년 2월 25일, 남편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한 당일 취임식 직후 광주광역시를 찾아 극비리에 망월동 5.18 구묘역을 방문하여 참배했다.[11]
-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미 중년에 접어든 시절에도 반듯한 이목구비가 돋보이는 상당한 미녀이다. 처녀 때 미용실에 가면 미스코리아 대회 나가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두심이 김옥숙 영부인과 닮았다. 남편인 노태우 대통령도 젊은 시절에 상당히 큰 키(178cm)에 잘생긴 얼굴을 가진 미남이었다. 이러한 부모를 닮은 덕분인지, 자녀들의 외모도 출중한 것으로 유명하다. 팔순이 넘은 지금도 곱게 나이들었다는 의견이 많다.
- 모교인 경북여자고등학교에 애정이 많은 듯 하다. 영부인 자리를 떠난 후 교지 '백합'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고[12]#, 강당 커튼에 총동창회 고문 김옥숙 동문 증 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역사관 건립에 5천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
4. 둘러보기[편집]
5. 창작물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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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8월 11일.[2] 성장한 곳은 대구광역시.[3] 1905.8.7. ~ 1980.7.5. 향년 74세.[4] 1908.9.18. ~ 1997.8.9. 향년 88세. 홍종목(洪鍾穆)의 딸이다.[5] 출처 사진. [6] 작은 고모 김당한(金棠漢, 1917.1.8. ~ ?.)의 둘째 아들이다.[7]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학 석사.[8]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 졸업.[9] 1990년에 서울신문사의 여성잡지 <퀸> 창간호를 통해 단독 인터뷰한 바 있다.[10] 이순자는 정 반대였다. 땡전뉴스 시절에는 전두환은 물론 이순자의 일상도 언론에 보도됐는데, 오죽하면 이순자의 호가 '한편' 이라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한편 영부인 이순자 여사는 오늘~" 이라면서 동정 기사가 보도됐는데 그 내용은 일반 국민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시시콜콜한 일들이었다.[11] 노태우 부인 김옥숙 여사, 1988년 5·18 묘역 극비 참배 전모 - 중앙일보(2019.8.29.)[12] 기고한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위치는 참으로 묘한 자리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공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인으로서 개인적 자유를 갖기도 힘든 자리입니다.[13] 제5공화국에서는 육영수 역할로 잠깐 등장했다. 다만 박정희 재임 당시 과거 회상 씬 정도로만 나온 것이라 비중은 적다.[14] 주로 왕후나 영부인 역할을 자주 맡는다.[15] 공교롭게도 성을 제외한 이름이 동일하다. 송옥숙은 영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