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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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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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돌봄과 미래 이사장
김용익
金容益 | Kim Yong-ik

파일:김용익의원.jpg
출생
1952년 10월 10일 (71세)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남산리 당골마을[1]
본관
광산 김씨[2]
재임기간
참여정부 제2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
2006년 1월 27일 ~ 2008년 2월 24일
제8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2017년 12월 29일 ~ 2021년 12월 28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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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대전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보건학 /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예방의학 / 박사)
리즈 대학교 (보건학 / 석사)
런던 대학교 (보건정책학 / 박사 후 과정[1] )
병역
전시근로역(질병)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
약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주임교수
보건복지부 의료보험통합추진기획단 제1분과장
보건복지부 의약분업실행위원회 위원
대한예방의학회 이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비상임이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제2대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비서관 (참여정부)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교실 의료관리학연구소장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원장
제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6번 / 민주통합당)
제5대 민주연구원 원장
제8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문재인 정부)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 이사장


1. 개요
2. 생애
3. 이력 및 활동
3.1. 의료보험 통합일원화, 의약분업
3.2.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장, 사회정책수석, 비전2030 등
3.3. 19대 국회의원 시절
4.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4.1.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문재인 케어) 추진
4.2.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작업
4.3. 코로나19로 인한 건강보험의 우수성 부각
5. 기타
5.1. 공공의료
5.2. 원격의료
5.3. 커뮤니티 케어
6. 평가
7. 선거 이력
8. 여담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교수, 정치인,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제19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현재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 이사장이다. 건양대학교 설립자 김희수 총장은 그의 둘째 숙부이다.


2. 생애[편집]


1952년 10월 10일 충청남도 논산군(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당골마을에서 의사였던 아버지 김승수(金昇洙)[3]와 어머니 진주 소씨 소판희(蘇判喜)[4] 사이의 5남 4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전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84년∼2013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로 재직했다.

대학시절 ‘송촌 의료봉사회’에 들어가 본과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매주 주말마다 판자촌 진료를 하고 방학 때는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1987년 9월 국내 최초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의료관리학교실을 설치하여 보건의료를 연구대상으로 의학에 사회과학 및 인문과학 분야의 지식과 방법론을 활용, 보건의료 관련 제반현상 분석과 그 기전의 이해, 구체적 대안 제시 등의 길을 열었다.

1987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고 1989년 통합의료보험 중심의 건강보험법 주창 등 일찍부터 보건의료개혁에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1998년부터는 참여연대에서도 보건의료분야의 활동을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의약분업 실행위원,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중반인 2006년부터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2009년 9월 23일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의 창립 일원이며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2012년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6번으로 국회의원이 되어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민주당 제4정책조정위원장,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지방자치발전특위 위원,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6년 8월부터 2017년 5월까지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을 지내면서 민주당 집권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후보 선거캠프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설계하였다.

2017년 12월 29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임명되었다.

2020년 12월 29일자로 이사장 임기가 1년 연임되어 2021년 12월 28일까지 재임했다.

2022년 9월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를 창립하고 현재 이사장이다.

3. 이력 및 활동[편집]



3.1. 의료보험 통합일원화, 의약분업[편집]


1994년 ‘의료보험 통합일원화를 위한 범국민 연대회의’를 구성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직장‧농어촌‧도시로 나뉜 366개의 의료보험조합을 통합해 건강관리보험공단 설립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의료보험 통합일원화는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는데 당시 김용익은 의료보험통합추진기획단 제1분과장을 맡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에 의약분업 논의도 전개됐다. 김용익은 보건복지부 의약분업실행위원으로 의약분업을 추진하며 의사와 약사 사이를 오간 끝에 의약분업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당시 의사들의 집단 휴진 등 완강한 반대를 겪었다.

2000년 7월 1일 의료보험 통합일원화로 단일 보험자인 현재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설립됐으며 의약분업이 함께 실시됐다.


3.2.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장, 사회정책수석, 비전2030 등[편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기 전부터 정책자문을 맡았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장으로 보육과 유아교육 등 분야를 맡았다.

위원회 초기 1,300억 원이었던 보육 및 유아교육 예산이 2조 원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2006년 2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어 교육·보건·복지·노동·환경·여성·문화·관광·체육·지방자치 등의 사회정책 전반을 아울렀다.

2006년 김용익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은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의 부과와 징수업무를 일원화해 통합하고, 이를 국세청으로 일원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당시 모든 언론에서 사설 등을 통해 정책지지를 표명하는 등 커다란 호응을 얻었으나 각 공단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4대사회보험징수통합 정책은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일원화하였다.

2006년 8월 노무현 정부에서 발표한 ‘비전2030’작성에 참여했다.

비전2030은 2030년까지 한국의 복지수준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청사진이었으나 재원조달 계획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비전2030에 담긴 내용은 보수진영에서도 정책공약으로 벤치마킹하는 등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재조명 받고 있다.


3.3. 19대 국회의원 시절[편집]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 입성 후 보건복지위원회,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특위 등에서 활동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과 정책위 제4정조위원장 등을 맡았다.

2013년 4월,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며 일주일씩 두 차례에 걸쳐 단식투쟁을 벌였다.

2014년 5월,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여 연금액을 감액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연계 기초연금안'을 밀어붙이자 이에 반발해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였으나, 노동·시민단체의 사퇴 철회 요구로 거두어들였다.

메르스 사태 때 민주당의 대책을 주도했다. 메르스의 교훈을 살리고 또 다른 감염병 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전국 각 시도에 400병상 규모의 감염병 전문 병원을 설립하자는 법안을 2015년 6월 발의했으나,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원안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커지자 KBS 등 여러 언론에서 당시 법안 발의자인 김용익 의원을 주목하며 다루었다.

전공의들의 수련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전공의특별법 제정, 장애인 건강증진을 위한 장애인 건강권 보장법 제정 등 다수의 의료 관련 입법 성과를 냈다.

또한, 보육시설에 대한 공공성을 확대하고자 영유아보육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국회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 수가를 크게 개선하였다.

김용익 의원 입법의 주된 내용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필수 공공부분에서 공공역할의 확대 등을 통한 ‘사회적 통합’으로 요약된다.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13번째로 나와 2시간 4분 동안 발언했는데 "대통령이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국회를 압박한다.", "아, 어쩌라고? 대통령이면 다야?" 라고 발언을 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이후 트위터 계정명을 ‘김용익과 어쩌라고’로 하는 등 김용익을 대표하는 발언이 됐다.

20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4.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편집]


2017년 12월 29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취임식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일명‘문재인 케어’와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임기 중 이뤄야 할 가장 큰 임무로 꼽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팬데믹 상황 속에서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우수성을 대내외로 알렸다.

2020년 12월 29일자로 이사장 임기가 1년 연임되어 2021년 12월 28일까지 재임했다.


4.1.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문재인 케어) 추진[편집]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일명 ‘문재인 케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 하여 중한 병에 걸린다 해도 가계가 파탄 나는 일 없이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는 동시에 모든 수가의 이윤 폭을 균일하게 적정수가로 조정하여 의사들이 비급여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보험 하나만으로 병의원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4.2.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작업[편집]


건강보험 도입 40년 만인 2018년 7월에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 시행됐다.

1차 개편을 성공적으로 마쳐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고 서민층의 보험료 부담을 크게 낮췄다는 평가다.

1차 개편의 성공적인 시행 결과로 ‘공공기관 혁신 성과’공유를 위해 「2018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전체 공공기관장과 관계부처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리적 제도설계, 철저한 사전준비, 충분한 현장대응의 사례로 발표되었다.


4.3. 코로나19로 인한 건강보험의 우수성 부각[편집]


2020년 코로나19 유행은 건강보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코로나19 치료비용 가운데 80%를 부담하고 있고 나머지 20%는 정부가 부담하고 있어 코로나19 대응의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김용익은 한겨레신문 칼럼(2020.4.23.) 에서 “국민들이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면 코로나 대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코로나19 확진자의 기저질환을 확인하여 중증도 판단의 결정적 자료를 지원하고 있는데 단일 보험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했다.

2020년 5월 KBS와 서울대학교가 공동으로 시행한 코로나 이후 한국사회 인식조사에서 국민의 87.7%가 건강보험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이외에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인 사회적 가치실현과 안전을 위해 보건의료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5. 기타[편집]



5.1. 공공의료[편집]


김용익은 건보공단 이사장 부임 후에도 언론 등을 통해 코로나19 재유행 대비를 위해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 공공병원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전체 병상 수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상 수의 확대를 강하게 주장했다.


5.2. 원격의료[편집]


논란이 되고 있는 원격의료에 대해 매일경제 인터뷰(2020.6.17.)에서 “의료전달체계별로 디테일하게 계획을 짠다면 갈등을 줄이고 윈윈(win-win)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를 주축으로 당사자인 의료계와 대화로 제도를 만들어 가면 가능하다”, “과거 정부처럼 원격의료를 경제부처가 서비스산업 및 ICT산업 발전 방안의 하나로 추진하면 안 된다”라고 했다.


5.3. 커뮤니티 케어[편집]


초고령화 사회 대비를 위해 김용익 이사장이 오래전부터 역점을 두었던 사업이다. 커뮤니티 케어 사업의 일환으로 2018년 11월 정부는 지역사회통합돌봄 로드맵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제1단계 사업으로서 시범사업을 통해 지역실정에 맞는 통합돌봄 모형을 개발 중이며, 행정안전부는 지역 내 노인돌봄관련 주요 전달체계의 통합운영을 추진 중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현재 이 정책 사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6. 평가[편집]


교수로서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오랫동안의 시민단체 현장 활동, 사회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 경험, 실천적 의정활동과 입법 성과 등 현실과 이론의 접목에 능하다는 평가다. 의료와 보육 등 필수분야의 공공성 강화를 주장해온 핵심 이론가로 진보진영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참여정부 시절 사회정책수석으로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근무했다.

의사 출신 의대 교수라고는 하지만 예방의학 전공이기 때문에 실제 환자를 접하지도 않고 의료 환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으로 행동으로 직접 체험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책과 논문, 데이터를 통해서 파악하며 그렇기 때문에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의료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을 편다는 평가가 많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케어.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론적으로는 괜찮은 정책일지 몰라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의료현장의 고질적인 수가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너무 탁상공론적인 정책을 펼쳤다는 평가가 의료진 사이에서 많다. 대표적으로 이국종 교수의 의견이 있는데, 이국종 교수는 해당 정책에 대해 아무 지원도 없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것과 다름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실제 의료 최전선에서 환자를 보는 의료진들의 시각은 대체로 이런 편이다.

의료진들(특히 의사) 중 의료정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김용익 사단"으로 불리는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출신들에 대해 치를 떨며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출신들은 전부 김용익의 제자이며 김용익과 비슷한 가치관[5]을 가지고 있기 때문. 무엇보다 의료관리학교실 출신들은 환자를 직접 보면서 이리저리 구르는 임상의사와는 다르게 책상 앞에서 종이와 펜으로 의료현실을 보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계 진출이 원활하며[6] 그로 인해 각종 정책에 있어서 자신들 파벌의 가치관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쉬운 것이 가장 큰 비판점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의료 정책 실세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취임한 의료관리학교실 출신 이진석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지연, 학연 등을 이용한 코드인사로 각종 공단과 공공의료기관에 의료관리학 출신이 자리잡아[7]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 이는 COVID-19 상황에서 정부의 방역 정책에 의료관리학 교실 출신들의 "정치적" 의견이 강하게 들어가 과학 방역이 아닌 정치 방역으로 이어지게 된 원인으로 지적받게 된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당시 "특정 공공의료 연구자 집단이 이 정부의 의료정책을 이끌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7.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7,777,123 (36.45%)
당선 (6번)
초선


8. 여담[편집]




9.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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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양간공파-판군기감사공파 38세 용(容) 항렬.[3] 일제강점기 시절, 1939년 7월 25일부터 1942년 7월 24일까지 충청남도 공주군 목동면(현 이인면)과 탄천면의 한지 의사(限地醫師) 면허를 취득하여 근무한 적이 있다.#[4] 소상영(蘇祥永)의 딸이다.[5] 김용익은 대표적인 의료사회주의자로, 주로 영국식 의료제도와 비슷한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자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마다 의료시스템은 모두 다르며 각자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영국식 의료제도가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없음에도 이를 밀어붙이는 것이 비판받고 있다.[6] 상식적으로 병원에서 밤낮으로 콜 받으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데이터 쪼가리 들고 정부 기관이든 언론사든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관심받을 수밖에 없다.[7] 심지어 공공의료 정책은 사실 김용익 세력의 자리 만들기라는 비판까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