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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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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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4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2.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1998
2000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84 KBO 리그 승리타점왕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4번
팀 창단

김용철
(1982~1988)


김병수
(1990~199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4번
김이수
(1984~1986)

김용철
(1989~1992)


강태윤
(1993~199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4번
결번

김용철
(1993~1997)


이순철
(1999)
{{{#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4번}}}
함학수
(1995~1997)

김용철
(1998~2000)


결번



김용철
金容哲|Kim Young-Chul

출생
1957년 9월 21일 (66세)
경상남도 부산시 중구
(現 부산광역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동광초 - 대신중 - 부산상고
포지션
1루수, 3루수, 좌익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롯데 자이언츠 창단멤버
소속팀
한일은행 야구단 (1976~1981)
롯데 자이언츠 (1982~1988)
삼성 라이온즈 (1989~1992)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1993~1994)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1995~1997)
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1998~2000)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02)[2]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2003)[3]
롯데 자이언츠 감독대행 (2003)[4]
경찰 야구단 감독 (2005~2008)[5]
해설위원
MBC ESPN 야구 해설위원 (2005)
SPOTV 야구 해설위원 (2014)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연도별 주요 성적
5. 여담
5.1. 미디어에서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대구 드림즈 실업야구단 감독.

김용희, 최동원 등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80년대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유명하다.

2. 선수 경력[편집]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 일찍부터 야구에 입문했다. 부산상고 시절 3루수로 주로 뛰었는데, 2학년 때는 화랑대기 우승멤버였고, 3학년 때부터 활약하기 시작하며 황금사자기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었으나, 아버지의 별세로 가세가 기울자 당시 실업 최강의 팀인 한일은행 야구단으로 직행한다.[6] 이 때 24번을 달게 되는데, 어린시절 일본프로야구를 보던 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4번을 달고 있던 나카하타 키요시[7]의 타격 자세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때마침 한일은행 야구단에 24번이 비어 있었기에 골랐다고 한다.[8]

당시 감독이 김응용이었는데, 고등학교 막 졸업하고 들어온 새내기에게 바로 주전 4번타자 3루수를 맡기면서 신임을 표했다. 김응용이 자신의 고등학교 후배에게 베푼 호의라기 보다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장신인 184cm의 키를 갖춘 김용철의 타격 재능이 워낙 좋은 편이었다. 실업리그 타격상을 차지하면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는 등 코끼리 감독의 기대에 100% 부응한다.[9][10]

파일:/image/sports/2009/baseball/expert_contents/pdh/ec_content/expert_389/1248452790_file_image_1.jpg
프로 출범 후에는 고향 팀인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서 경력을 이어갔다. 가장 유명한 대목이 1982년 KBO 올스타전. 홈런 3개를 치면서 MVP가 유력하던 시점에 올스타전 3차전에서 선배인 김용희가 친 만루홈런 한 방에 MVP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인생은 그래서 한 방. 그래도 상복이 아주 없는 편은 아니라서 KBO 골든글러브를 두 차례 수상한 바 있다.

파일:external/imgmmw.mbn.co.kr/29022C00-C4E6-4DB4-ADFC-B7AF9B60CA0B.jpg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심판판정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최동원과 김용희(오른쪽 끝), 김용철.
그리고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의 창단 후 첫 우승에 한 몫을 했다.

1988년 최동원이 주도한 선수회가 구단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그에 대한 보복이 가해졌다. 그는 최동원의 트레이드에 대해 구단에 항의를 했고 끝까지 선수회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보복으로 트레이드된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국시리즈 실패의 원흉으로 몰린 장효조[11]를 상대로 트레이드된 것. 최동원, 김시진의 트레이드까지 합쳐 총 4:5 트레이드로 인해 그는 삼성으로 이적했고, 1992년 거기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image/sports/2009/baseball/expert_contents/pdh/ec_content/expert_389/1248453633_file_image_1.jpg

은퇴한 후에는 삼성 라이온즈현대 유니콘스의 타격코치를 거쳐, 2002년 수석코치로 친정 팀 롯데 자이언츠에 복귀한다.

파일:170829-2-139869.jpg
롯데 자이언츠 감독 대행 시절.
그리고 2003년 막장의 끝을 보여주던 백인천 감독이 중도 해임되자, 2003년 시즌 중 감독 대행을 맡아 무난하게 시즌을 소화한다.

감독대행 기간동안의 승률은 4할에도 못미치는 3할 9푼이었지만, 대행 부임 당시의 롯데 승률이 0.258인데다가 팀 전력을 감안해 본다면 충분히 선방한 것이며, 시즌 막판에는 정식 감독 승격 역시 유력한 상황이었다. 김용철 본인 역시 46세로 젊은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당시 43세의 젊은 감독인 조범현SK 와이번스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프로야구에서 40대 감독 유행이 불자 더욱 더 가능성이 있던 상황이었다.[12]

그런데 시즌 막판이던 2003년 9월 27일, 사직 야구장 경기에서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던 이승엽이 찬스를 맞이하자 고의사구를 지시했는데, 이승엽의 홈런을 기대하던 분노한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오물을 투척하고 난입하는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이 당시 56호 신기록 홈런볼을 잡아 경매에 붙이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관중석이 외야부터 차고, 삼성 경기에는 잠자리채가 등장하던 시기였다. 당시 프로야구가 한창 침체기였던 데다 하위권을 맴돌던 롯데의 성적 때문에 주말 경기마저 텅텅 비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직구장에 만원 관중이 든 것이 바로 이 때.[13][14] 토요일 17시 경기가 이례적으로 지상파 중계로 잡혔을 정도였다. 이 날 이승엽의 기록은 삼진-뜬공-땅볼이었고, 이후 8회초 네 번째 타석에서 문제의 상황이 벌어졌다. 김용철 대행은 당시 투수였던 가득염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했고, 이후 오물 투척 등으로 인해 경기 지연이 발생했다. 이날 소요사태로 인해 중계가 중간에 끊긴것도 모자라 경기가 무려 1시간 30분이나 중단됐고, 그럼에도 진정되지 않자 전투경찰까지 출동하고 결국 김용철 대행이 그라운드에 나와 직접 마이크를 잡고 고의사구를 지시한 계기에 대해 팬들에게 설명을 하며 사과해야 했다. 이 장면은 SBS 스포츠뉴스까지 방송되었다.

9년이 지난 2012년, SBS Sports 야구본색 <크레이지 롯데>편에 출연해 설명을 하였는데, 이 날 상황은 이랬다. 8회 초 삼성이 2점 앞선 가운데 박한이가 안타, 후속 타자 박정환 번트로 1사 2루 득점권 상황을 만들었다. 당시 롯데가 최하위였던 시점이라, 홈런을 맞고 팀도 패배하면 그 충격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여, 단지 전략적인 이유만으로 고의사구를 선택했다고 한다.

시즌 후 롯데가 양상문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결국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지 못했는데, 이 사건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이후 2005년 MBC ESPN에서 해설을 하다가 경찰 야구단 감독으로 야구계에 컴백, 2008년까지 재직하다가 그 해 6월 개인사정을 이유로 사임했다.[15]

2011년 미국 야구 연수 관련 프로그램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2014년까지 SPOTV 해설위원으로 있었다.

2016년 10월 12일에는 SK 와이번스 후임 감독 후보로 거론 중이라는 한 시민기자의 기사가 흘러 나왔지만 감독 선임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이후 2023년 대구 드림즈 실업야구단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82
롯데
71
253
.300
76
13
0
10
39
39
6
41
30
.403
(5위)
.470
1983
97
327
.281
92
21
(3위)
2
14
38
47
8
38
47
.354
.486
1984
97
346
.327
(3위)
113
(2위)
24
(2위)
2
21
(2위)
67
(3위)
61
(3위)
8
39
50
.398
(5위)
.590
(2위)
1985
106
367
.223
82
16
1
7
36
27
7
36
45
.290
.330
1986
102
365
.288
105
26
(1위)
1
10
57
(5위)
43
13
35
39
.354
.447
1987
103
382
.314
120
(4위)
32
(1위)
2
7
59
(4위)
49
11
42
33
.386
.463
1988
102
380
.292
111
21
(3위)
2
18
(3위)
69
(2위)
65
(4위)
15
34
26
.356
.500
연도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89
삼성
103
342
.304
(4위)
104
18
0
11
64
(4위)
60
3
32
38
.362
.453
(5위)
1990
84
268
.257
69
13
0
12
58
40
1
24
25
.316
.440
1991
108
268
.250
67
8
0
15
46
32
2
32
37
.339
.448
1992
51
117
.248
29
0
0
6
22
16
0
16
12
.341
.402
KBO 통산
(11시즌)
1024
3415
.283
968
192
10
131
555
479
74
369
382
.355
.461


5. 여담[편집]


  • 온라인 게임 마구마구에서는 84년도 레어카드가 조금 느리지만 1슬롯에 하이점프캐치를 가지고 있는 카드로 출시되어 있다.

  • 마구마구 2014 for kakao 에서는 가명 손경민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모든연도와 레전드카드가 전부 2루수로 나와 있다. 알다시피 김용철은 프로 생활 통틀어 외야와 3루수를 본적은 있지만 주 포지션은 1루수다. 즉 2루수로 뛴 기록 자체가 없다![16] 돈밖에 모르는 돈마블놈들 수준[17]


  • 프야매에서는 제대로 1루 레전드로 나왔지만 문제는 1루에 이미 마해영이라는 걸출한 레전드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김용철을 쓸 이유가 없다. 결국 양대 야구게임 모두에서 고통받는 중(...).

  • 슬러거에서는 오버롤 97.4 라는 내야, 외야, 포수 부분에서 최고점을 기록하고 있다.


  • 2015년부터 현재까지 다문화야구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다.


5.1. 미디어에서[편집]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도 등장하는데, 역할을 맡은 배우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무휼 역할로 잘 알려진 조진웅이 맡았다.[18] 다만 영화에서는 최동원과 같은 경남고 출신으로 나온다.[19] 거기다 최동원과 10년째 같이 야구한 것으로 언급된다. 실제로는 1살 많으니 선배.

다만 영화에서 최동원을 '고독한 에이스'로 캐릭터를 잡으면서 김용철은 최동원을 사사건건 질투하는 졸렬한 소인배 캐릭터로 다루는 왜곡을 보였다. 김용철은 여기에 대해서는 영화적 각색이라고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씁쓸함을 감추지는 않았다. 실제로는 김용철과 최동원은 돈독한 관계였고, 최동원이 선수회 관련으로 탄압받는 와중에도 끝까지 구단의 탈퇴 각서를 거부하면서 싸워 준 선수가 김용철이다. 감독 입장에서야 그런 친한 사이니까 오히려 마음껏 망가뜨려도 되겠다 한 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영화 중반 부터는 눈 부상 상태에서도 경기 균형을 깨는 적시타를 날리거나, 락커룸에서 최동원을 위해 팀원들을 각성시키는 등의 꽤 멋진 역할로 탈바꿈 한다.

이 영화에서 해태 타이거즈김일권과 주로 싸우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 당시에 해태에서 김용철과 대립각을 세웠던 선수는 서정환이었다.[20] 해태 : 롯데의 어느 경기에서 김용철이 2루 도루를 시도해 2루수인 서정환이 볼을 잡아 태그해 타이밍상 완전히 아웃이었는데 심판의 애매한 판정으로 세이프가 된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 열받은 서정환이 2루 베이스에 주저앉아있는 김용철을 위협하려고 돌려차기가 나가서, 까려다 발이 김용철 머리 5센티 앞에서 겨우 멈추는 장면이 고스란히 텔레비전 중계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진 일이 있었다.

후에 MK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좀 황당했던 게 영화에서는 내가 해태의 대도로 유명한 김일권 선배와 주먹다짐을 하는 걸로 나와요. 근데 저보다 2년 선배거든. 좁은 야구판에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데 선배하고 치고 박고라?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며칠 전에도 김 선배를 만났는데? 하하하.



6. 관련 문서[편집]


[1] 1988시즌 한정.[2] 6월 26일~[3] ~8월 5일[4] 8월 6일~[5] ~6월[6] 여담으로 본래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당시 한일은행 감독이던 김응용 감독이 직접 계약하기 위해 찾아와서 한일은행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7] 당시 요미우리의 45대 4번타자였다.[8]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24번을 달았다.[9] 당시 기존의 4번타자 또한 고등학교 대선배인 강병철이다. 강병철과는 훗날 프로때 감독과 선수로 재회해서 코시반지를 획득한다.[10] 다만 국가대표에서의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 없는데, 선배 김용희, 후배 한대화와 3루수 주전 경쟁에서 반걸음 밀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계야구선수권은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고, 1976년 네덜란드 할렘 국제야구 대회, 1980년 롯데 오리온즈 초청 경기 등 소규모 평가전에서만 출전했다.[11] 198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어이없는 외야수비로 4연패의 빌미를 주었다는 책임론이 제기되었다.[12] 실제로 2003년 시즌 43세의 조범현 감독이 이끄는 창단 초기의 SK가 준PO-PO를 모두 스윕해버리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당시 강팀이었던 현대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등 돌풍의 모습을 보여주자 더욱더 40대 감독 선임 유행이 불기 시작했고 결국 2003년 시즌 종료 후 LG가 43세의 이순철을, 두산이 46세의 김경문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고하지만 그뒤로 LG는 망했어요 한때 LG와 두산 감독 영입설이 돌았던 선동열 역시 삼성 투수코치를 1년 하다가 42세의 젊은 나이에 삼성 감독으로 승격하게 된다. 김용철을 정식 감독으로 올리지 않은 롯데 역시 43세의 젊은 양상문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며 한동안 프로야구계에 40대 감독 선임이 유행하게 되었다.같은 40대지만 성적을 못낸 유승안은 여기서 묻혔다[13] 이때 롯데의 관중 동원력이 얼마나 처참했냐면 전년도인 2002년 10월 19일 홈 최종전에 입장한 유료 관중은 겨우 69명. 심지어 이날은 평일도 아니고 토요일이었으니 말 다했다.[14] 당시 롯데 선수도 아닌 상대팀 삼성 선수의 홈런 신기록을 보겠다고 평소에 텅텅 비어있던 사직구장에 만원 관중이 들어선 것도 이 당시 롯데의 암울했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15] 시기가 이명박 정부 초기이고, 평소 건강이나 사생활 문제가 없었던지라 후술할 친노, 친민주당 정치성향 때문에 외압을 받고 사퇴했다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16] 이 왜곡이 얼마나 심각하냐면 김용철보다 한참 롯데 1루수 후배인 이대호를 예시로 든다면, 이대호가 유격수를 봤다는 정도의 왜곡으로 해석해도 좋을 정도의 표현이다. 실제 선수를 모델로 야구 게임을 만드는 게임사들은 재현에 신경을 철저히 써야할 대목이다.[17] 백인천도 상황은 비슷한데, 삼미에서 겨우 2년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2루수 레전드 카드로 나왔다. 백골프가 현역 시절, 외야수, 지명타자로 활약한 걸 보면, 마구마구측의 병크.[18] 실제로 부산 출신이기도 한 조진웅은 소문난 롯데 열혈 팬이기도 하다.[19] 사실은 부산상고 출신.[20] 여담으로 서정환과 김용철의 대립각은 선수 은퇴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최익성의 증언에 따르면 김용철의 조언을 받은 최익성의 타격폼을 서정환이 대놓고 깎아내렸다고 하며, 서정환이 삼성 감독으로 승격되자 김용철은 서정환과의 의견 대립을 이유로 사표를 내고 현대 타격코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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