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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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kt 소닉붐
역대 주장
(나산-골드뱅크-코리아텐더-KTF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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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330066> 1997~1998 ||<#330066><rowcolor=#fff>
1998~2004
||<bgcolor=#ff4500> 2004~2005 ||<bgcolor=#ff4500> 2005~2007 ||<#ff3300>
200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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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20%><rowbgcolor=#f7f7f7,#191919> 이민형 ||<width=20%> 김용식 ||<width=20%> 손규완 ||<width=20%> 김희선 ||<-2> 신기성 ||
||<bgcolor=#000000> 2010~2012 ||<bgcolor=#000000> 2012~2015 ||<bgcolor=#000000> 2015~2017 ||<bgcolor=#000000> 2017~2019 ||<bgcolor=#000000> 2019 ||
||<rowbgcolor=#f7f7f7,#191919><width=20%> 조동현 ||<width=20%> 송영진 ||<width=20%> 조성민 ||<width=20%> 김영환 ||<width=20%> 김우람 ||
||<bgcolor=#000000> 2019~2020 ||<bgcolor=#000000> 2020~2021 ||<bgcolor=#000000> 2021~ 2023 ||<bgcolor=#000000> 2023~ ||<|2><bgcolor=#ffffff><width=40%> 파일:kt 소닉붐 워드마크.svg ||
||<rowbgcolor=#f7f7f7,#191919><width=20%> 김영환 || 김현민 ||<width=20%> 김영환 ||<bgcolor=#e0ffdb,#073300> 문성곤 ||





경희대학교 농구부 코치

KYUNGHEE UNIVERSITY BASKETBALL TEAM

파일:김우람코치.jpg

김우람
Woo-Ram Kim

출생
1988년 1월 26일 (36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5cm|체중 82kg
직업
농구선수(가드/ 은퇴)
농구코치
학력
서대전초등학교 (졸업)
대전중학교 (졸업)
낙생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졸업)
종교
개신교[1]
프로입단
2011년 2군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전주 KCC)
병역
신협 상무 (2014~2016.01)
소속
선수
전주 KCC 이지스 (2011~2013)
부산 kt 소닉붐 (2013~2021)
코치
경희대학교 농구부 (2021~)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의 전 농구 선수. 2군 드래프트 출신으로 1군 무대까지 진출해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여러차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면서 코트를 떠난 비운의 선수였다.


1.1. 2017-18 시즌[편집]


시즌 초반 들어 폼이 떨어진 것이 눈에 띄었고 돌파 성공률과 야투율, 3점슛 성공률 모두 좋지 않은 상태였다.

11월 4일 오리온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다. 당일 경기 컨디션이 괜찮았는데도 불구하고 전력 누수가 생겨버렸고, 결국 11월 8일 김현민에 이어 KT내 2번째 시즌아웃 선수가 되어버렸다.


1.2. 2018-19 시즌[편집]


이후 그는 묵묵히 재활에 몰두했고 드디어 장장 510일 만에 6강 플레이오프 창원 LG와의 경기에서 복귀했다. 시즌 후 주장에 임명되었다.


1.3. 2019-20 시즌[편집]


2019-2020시즌 김영환을 대신해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7월 10일 건국대와의 연습경기 도중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 되어 2019-2020시즌에 뛸수 없게 되었다. 기사


1.4. 2020-21 시즌[편집]


시즌 최종전인 삼성전에서 오랜만에 복귀했다. 17분 54초를 뛰며 7득점, 2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PO때처럼 엔트리에 승선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PO 엔트리에는 승선한 뒤 경기당 평균 5분 가량을 소화했다. 팀은 3전 전패로 스윕패를 당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되었다.

시즌 후 5월 22일, 결혼식을 올린 뒤에 FA가 되었으나 재활기간이 이어지면서 그를 불러줄 구단은 없었고 결국 결렬이 되어 미계약자 신분으로 남았다가 실제로는 은퇴했다.

그와 동시에 이 시즌 종료 후, KT가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단행하며, 조성민, 조상열, 클리프 알렉산더[2]와 함께 부산 kt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선수로 남게 되었다.


1.5. 은퇴 후[편집]


우승연 코치가 광주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이직하면서 모교 경희대학교 농구부 코치에 합류하였다. #


2. 플레이 스타일[편집]


기본적으로는 한국 농구에서 선호하는 퓨어 포인트 가드가 아닌 듀얼 가드였다. 돌파도 잘했고 슈팅 능력이 최대 강점이었다. KCC 시절에는 D리그의 데릭 로즈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 경기를 보면, 스크린을 받지 않고도 단독 돌파를 했거나, 틈을 보면서 3점 슛을 쏘는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자유투 성공률 역시 뛰어났으며 매 시즌 85% 이상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한 최상급 자유투 슈터였다.




3. 관련 문서[편집]



[1] 독실한 크리스천이다.꿈은 이루어 진다_김우람(농구선수), 내가매일기쁘게20170706.[2] 이 쪽은 대구 가스공사에 합류하면서 대구 농구의 부활을 함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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