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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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9. 김유성.png


인천 유나이티드 FC No. 29

이름
김유성
金有成 | Kim Yu-sung

출생
2001년 3월 31일 (23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포지션
골키퍼
주발
오른발
신체
187cm, 80kg
유소년
이호초 - 안동중 - 대건고[1]
프로입단
2020년 인천 유나이티드 FC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0~ )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경기 0실점 (대한민국 U-23 / 2022~)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국적의 인천 유나이티드 FC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골키퍼.


2. 클럽 경력[편집]



2.1. 유소년 시절[편집]


김유성은 본래 제천제일고에서 활약하던 골키퍼였지만, 2학년 시기에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스 팀인 대건고로 전학을 갔다. 전학 이후 처음에는 최문수에 이은 2선발 골키퍼로 활약했고, 최문수의 졸업 이후에은 주전으로 도약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최원창이 이끄는 쓰리백의 뒤에서 팀을 든든하게 지켰고, K리그 주니어 전기리그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김유성은 당시 3학년 멤버 7명[2] 중 유일하게 우선지명을 받지 못했다. 이는 K리그의 유스 관련 규정에 의한 것인데, 해당 클럽의 유스 팀에 3년 이상 소속된 선수만이 우선지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김유성은 1학년을 다른 팀에서 보냈으므로 대건고에 소속된 기간은 2년이었기 때문에 이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이유가 아니었어도 이태희, 김동헌, 민성준 등 선배 골키퍼들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어서 경쟁이 쉽지 않았고, 실제로 선배 최문수는 이로 인해 우선지명을 풀고 수원 FC에 입단했다. 당초 김유성은 K리그 내 다른 클럽으로 프로 직행한다는 루머가 도는 등 행선지에 대해 여러 추측이 돌았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편집]


그러나 민성준의 해외진출설이 나오는 등 상황이 급변했고,[3] 그 과정에서 김유성의 행선지 역시 변화가 있었다. 결국 김유성은 우선지명을 받지 않았지만 대신 자유선발 신인 신분으로 인천에 합류하면서 프로 직행에 성공했다. 2020년에는 22세 이하 자원이라는 메리트로 인해 종종 교체명단에 들어오긴 했으나, 출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21 시즌에도 교체 명단에 2회 포함됐으나 출전하지는 못했다. 인천이 잔류를 확정지으면서 38라운드 광주전에 어린 선수들을 대거 투입할 당시 김유성의 출전도 고려했으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데뷔전 기회는 무산됐다. 그래도 이태희와 김동헌의 군 문제 및 여전히 젊은 나이 등을 고려해서인지 시즌 종료 후 1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

2022 시즌을 앞두고 정산은 팀을 떠났지만, 민성준이 인천에 복귀하면서 전과 비슷한 경쟁 구도가 계속 이어졌다. 김동헌이 리그 전체로 봐도 주목할만한 기량을 보여주면서 주전으로 확고하게 올라섰고, 이태희 역시 경험을 바탕으로 무난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천은 주로 이 두 선수를 기용하여 시즌을 보냈다.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인천은 져도 크게 잃을 게 없는 상황에 놓였고, 로테이션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팀이 민성준을 선택하면서 데뷔 기회를 뒤로 미뤄야 했다.

지난 해에 맺은 재계약이 1년이어서 다시 FA 대상자가 되는 상황이었고, 청소년 대표팀 차출 이후 다른 팀으로부터 관심도가 높아졌었다. 뛰기 위해서라면 이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시즌 종료 후 다시 인천과 2년 재계약을 맺으면서 팀에 잔류했다.#

2023 시즌에는 인천이 계속해서 골키퍼 로테이션을 시도하면서 김동헌, 이태희, 민성준이 모두 고르게 경기에 나섰다. 다만 어린 선수고 경험이 부족한 김유성에게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FA컵 16강 경남 FC전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81분 김동헌과 교체되면서 마침내 데뷔전을 치렀다. 투입되자마자 슈퍼세이브를 기록했고, 이후 힘이 실린 펀칭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며 남은 시간을 무실점으로 지켜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2022년 황선홍이 이끄는 올림픽축구국가대표팀 10월 국내 소집훈련에 처음으로 소집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안정감과 선방 능력을 두루 갖춘 골키퍼로 평가받는다. 선배 민성준이나 김동헌과 마찬가지로 김유성 역시 페널티킥 선방 능력이 꽤 높게 평가받는 편이다. 골키퍼 중에서는 민첩하고 유연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편이라 좋은 선방을 종종 보여주지만, 이에 비해 종종 핸들링 미스를 보여주는 점이 아쉽다.

여타 골키퍼에 비해 두드러지는 부분은 동물적인 감각. 인천 내 선배 골키퍼들이 막는 거리를 계산한 뒤 확실하게 손을 뻗는 방식으로 플레이한다면 김유성은 그만큼 정교하진 않지만 몸의 어느 부위든지 일단 뻗어서 막아버리는 편이다. 간혹 보면 신기할 정도로 기묘한 선방이 나오기도 한다. 한번 기세를 타면 전부 막아버리는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컨디션에 따라 기복도 있는 편. 펀칭도 꽤나 선호하는 편인데, 펀칭의 세기가 굉장히 강하다.

필드플레이어에서 골키퍼로 늦게 전향한 편이라 기술적인 면에서는 준수한 편이다. 2022년 38라운드 전북전 워밍업 도중 프리킥을 차본 적이 있는데, 그대로 유효슈팅을 성공시키면서 직관왔던 팬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5. 여담[편집]


  • 고등학교 시절부터 개성 넘치는 헤어스타일로 많은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서는 골키퍼 정대세라고 부르기도. 이 특이한 머리 스타일은 딱히 고집하는건 아니지만, 스스로 잡은 일종의 컨셉이라고 한다.

  • 처음부터 골키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센터백을 보다가 스트라이커로 전향했는데 체격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적자 골키퍼를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김이섭 골키퍼 코치의 언급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부터 골키퍼로 전향했다고 하니,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선수로서는 전향한 시기가 꽤 늦은 편이다.

  • 재학했던 학교들의 소재지가 전부 다르다. 초등학교는 경기도 안산시에, 중학교는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으며, 고등학교는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인천광역시로 넘어왔는데, 축구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이사를 자주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4]

  • 후보로 이름을 올려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고 있을때, 도원아재들이 머리만 보고 정대세냐고 한적이 있다고 한다.

[1] 1학년 때 제천제일고등학교에서 활동하다 전입.[2] 김유성을 포함해 강지훈, 박형빈, 정성원, 최세윤, 최원창, 최준호 7명으로, 이들 중 프로 직행을 택한 선수는 김유성, 정성원, 최세윤, 최원창 4명이며, 강지훈은 중앙대학교를 거쳐 독일 아마추어 리그 소속, 박형빈은 아주대학교 진학을 택했고, 최준호의 근황은 불분명하다.[3] 민성준은 콜업된 뒤 콜업 직후 바로 J2리그몬테디오 야마가타로 2년간 임대 이적하는 방식으로 해외 무대에 진출했다.[4] 사실 자신이 하는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운동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가는 것은 체육계에서 종목을 막론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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