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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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축구연맹
Korea Professional Football League

파일:U-20 김은중호 김은중.jpg

이름
김은중
金殷中 | Kim Eun-Jung

출생
1979년 4월 8일 (4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4cm, 78kg, 280mm, A형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대전 시티즌 (1997~2003)
베갈타 센다이 (2003 / 임대)[1]
FC 서울 (2004~2008)
창사 진더 (2009)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0~2011)
강원 FC (2012~2013)
포항 스틸러스 (2013 / 임대)
대전 시티즌 (2014)
코치
대전 시티즌 (2014 / 플레잉 코치)
AFC 튀비즈 (2015~2017)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7~2020)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21 / 수석 코치)
감독
AFC 튀비즈 (2017 / 감독 대행)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22~2023)
기타
한국프로축구연맹 (2023 / TSG 위원)
국가대표
15경기 5골 (대한민국 / 1998~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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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1]
학력
서울성내초등학교 (졸업)
동북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명예졸업)
병역
면제[2]
등번호
대전 시티즌 - 18
베갈타 센다이 - 9
FC 서울 - 22, 18
제주 유나이티드 - 18
강원 FC - 18
포항 스틸러스 - 10
MBTI
ENFJ
서명
파일:김은중서명.png}}}


1. 개요
2. 축구인 경력
2.1. 선수 경력
2.1.2. 국가대표 경력
2.2. 지도자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수훈
5. 논란
5.1. 신의 손 사건
6. 여담
6.1.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부임설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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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파일:Screenshot_20210912-222404_YouTube.jpg

"대전은 첫사랑이자 끝사랑"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으로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중학교 시절 공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 상태에 이르렀으나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 축구 선수에게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좁은 시야를 극복하고 K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 되었다.[2]

최은성, 이관우 등과 함께 대전 시티즌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 중 한 명으로 비록 원 클럽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선수 생활의 시작과 끝을 모두 대전에서 보냈으며 대전 구단 역사상 두 번 기록된 모든 우승[3] 당시 기여한 선수다.

클럽 경력으로만 보면 저니맨에 가깝다. 2003년 한 시즌간 일본 생활을 거친 후 FC 서울로 이적했으며 중국으로 갔다가 제주 유나이티드로 온 2010년에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지기 시작했다. 결국 2010년 K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이후 강원 FC로 이적했다가 임대 신분으로 포항 스틸러스에 갔는데 포항에서 프로 커리어 사상 첫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대략 11년 만에 대전 시티즌으로 돌아와 대전에게 두번째 우승 트로피와 1부 리그 승격을 선물한 뒤 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은퇴하며 대전의 위대한 전설로 남았다.

지도자로는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2022년부터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23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며 지도력 역시 입증해나가고 있다.


2. 축구인 경력[편집]



2.1. 선수 경력[편집]



2.1.1.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은중/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2. 국가대표 경력[편집]


그는 신태용과 함께 대표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선수였다.

김은중이 자신의 대표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던 것은 1998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였다. 당시 이동국과 위력적인 투 톱을 이루어 공격진을 이끌며 대한민국에게 8번째 우승을 선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에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199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나이지리아[4]에도 이동국과 함께 주전 공격수로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이후 수많은 축구 팬들이 이동국-김은중 투톱의 재현을 염원했지만 현실에서는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 양 선수의 소속팀과 대표팀 활약 시기가 계속 엇갈렸다. 그나마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호흡을 맞춘 정도고 성인연령대 국가대표팀에서는 2004년도 바레인과의 평가전에서 함께 선발출장해서 2:0승리를 이끌었지만 이게 국대에서도 듀오의 마지막이었다. 참고로 이 경기는 대한민국 감독으로서의 본프레레의 데뷔전이었다. 대한민국판 꿈의 투톱이자 영혼의 투톱이었다.

그나마도 당시 대표팀이 3-4-3포메이션을 주로 사용, 원톱 자원인 이동국 김은중이 같이 뛴 일은 드물었다. 주로 이동국이 선발로 투입되고 경기 양상에 따라 김은중이 교체 투입되는 수순. 거기에 서로 교체된 경우도 있어 아시안게임 6경기 중 두 사람이 같이 뛴 시간은 146분에 불과하다. 꿈의 투톱이 꿈의 투톱인 이유는 역시 AFC U-19 대회 한일전일 것이다. 예선에서 한 판, 결승에서 한 판 붙었는데 이동국과 김은중이 두 경기에서 서로 한 골씩 사이좋게 뽑으며 연거푸 2:1 승리를 거뒀다. 특히 마지막 결승전 김은중 패스 후 이동국 터닝슛으로 일본이 가라앉아 버렸다. 세간의 평가만이 아니라 이동국, 김은중 두 사람 모두 종종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서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고는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프로팀에서 모두 이 둘의 재결합은 이뤄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춘 바레인전도 이동국이 골을 넣으며 승리는 했지만 뭔가 두 사람끼리 호흡으로 탁! 하고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없어서 아쉬웠던 경기였다.

A대표팀으로 올라오면서 히딩크호의 초창기에도 감독의 시야에 포착되었고 국대 차출도 몇 이뤄내곤 했지만, 모의전에만 간간이 등장했을뿐 끝내 황선홍안정환의 철옹성을 넘질 못하고 이동국, 김도훈, 박성배와 함께 영광의 순간을 함께하진 못했다. 낙마한 자원 면면만 보더라도 공격수의 화양연화 시대속에 기량을 증명할 기회조차 없었던 비운의 선수였던 것.

이후 황선홍의 은퇴 후 코엘류호에선 조재진과 함께 차세대 자원으로서 자주 등판되었고 이어지는 본프레레호 초창기까지 엔트리에 이름을 보였지만, 2004 AFC 아시안컵 중국[5]을 마지막으로[6] 대표팀에서 얼굴을 비치는 일은 없었다. 애당초 실명으로 세계구급 무대에서 활약을 보이기엔 한계가 너무도 명확했던게 중론이었다.

통산 A매치 15경기 5골.


2.2. 지도자 경력[편집]



2.2.1. AFC 튀비즈 코치, 감독 대행[편집]


2014 시즌을 끝내고 현역 생활을 지속할 것인지 은퇴할 것인지에 대해 대전 팬들의 관심이 쏠렸으며 일본 전지훈련에 불참하자 대전 팬들이 사비를 모아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사서 김은중에 보낼 만큼 대전 팬들은 김은중이 대전에 남아서 좀 더 뛰어주기를 바랬으나 결국 은퇴를 선언해 벨기에의 AFC 튀비즈[7]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전의 팬들에게는 '언젠가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또 다른 기쁨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KBS 2TV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 꽤나 장기간 벨기에 전지훈련 특별 코치로 합류해 잘 지내는 모습을 비추고 있다.[8]

2016-17 시즌 막판 레지 트루아 감독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고 팀 분위기를 잘 추스리며 가까스로 3부 리그 강등을 막았다.


2.2.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편집]


2017년 10월 김봉길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부임하며 대전 시티즌 감독 부임은 다음으로 기약하게 되었다.

한편 과거 대전 시절 동료였던 공오균과는 코치로서 다시 한 번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이후 김학범 감독 부임 이후에도 코치직을 유지한 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으며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아쉬운 점으로는 연장 전반 13분여째 일본의 TATSUTA선수의 부상으로 장내가 어수선할 즈음 황희찬 의 두 번째 득점 리플레이 장면에서 이민성 코치과 함께 선수를 독려해주는 샷이 나왔으나 도쿄 대첩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뤄서인지 배성재 캐스터에게 호명이 되질 못했다. 연장 후반 시작 전 대표단 단합샷에선 김학범 감독을 필두로 이민성 코치와 함께 중계 화면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2020년 P급 강습회에 참가한 것이 확인됐다. #.2021년 이민성 수석 코치가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수석 코치로 승진했으며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는 대표팀을 지도했다.

올림픽 종료 후 김학범이 물러나고 황선홍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본인도 코치직을 그만두었다.[9]


2.2.3.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은중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월 15일 대한축구협회 감독선임위원회는 김은중 전 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대한민국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은중 본인에게는 첫 정식 감독 커리어다.

계약 기간은 2022년 1월부터 2023 FIFA U-20 월드컵 본선까지며 만일 U-20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계약은 중도에 해지된다.

2023년 3월 1일부터 U-20 월드컵 진출권이 달린 2023 AFC U-20 아시안컵 우즈베키스탄[10] 대회에 나선다. 8강전에서 중국을 격파함으로써 U-20 월드컵 진출권을 획득했다.

2023 FIFA U-20 월드컵[11] F조에서 프랑스를 꺾는 등 1승 2무 조 2위로 3회 연속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어냈다.

6월 2일 에콰도르와의 16강전에서 이영준의 선제골에 힘입어 3대 2로 승리하고 2회 연속 8강에 진출했다.

6월 5일 나이지리아와 가진 8강전에서 연장 전반 5분, 이승원의 코너킥을 최석현이 헤더골로 연결해 2회 연속 4강에 진출했다. 경기 후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다가 선수들의 물벼락 세례에 웃음기를 되찾은 모습을 보였다. 영상 이제 한국 시간으로 2023년 6월 9일 금요일 새벽 6시 이탈리아와 4강전을 치렀다.

한편 옆나라 일본에서는 모리야스 하지메 전술의 매운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하고 있다.

6월 9일 이탈리아와의 4강전에서 체사레 카사데이에게 선제골을 내줬고 이승원이 패널티킥 골로 동점을 만들었으나 시모네 파푼디에게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내줘 결국 1:2로 패배하고 3, 4위전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3위 결정전 상대는 우루과이에게 패한 복병 이스라엘이다.

6월 12일 이스라엘과의 3위 결정전에서 선제골을 내줬으나 이승원의 동점골로 1:1 동점을 맞췄다. 그러나 후반전에 체력이 방전된 탓에 2골을 내리 헌납하면서 1:3으로 패배해 최종 순위 4위로 대회를 마쳤다.


2.2.4. 이후[편집]


대회 종료 후 계약 기간 종료와 함께 지휘봉을 내려놓았으며 K리그 기술연구그룹(TSG)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프로의식이 뛰어나다. 성실한 플레이를 하고 동료를 잘 이끌며 투지가 좋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PK 기계'라는 별명답게 페널티킥도 무척 잘 찬다. 활동량은 남부럽지 않고, 스트라이커로서 근거리에서 위치선정도 좋고, 중거리슛도 뛰어나지만 박스 근처에서의 결정력이 유독 좋았던 선수이다. 박스 근처에서 강하게 차는 슛보다 정확하게 차는 슛의 빈도 수가 더 많았다. 대신 동료를 이용하는 노련한 플레이에 능하다.[12] 최전방에서 활약할 수도 있고, 약간 내려온 위치에서 연결하는 역할도 충분히 소화 가능하다. 노련해서 그런지 헤딩 경합과 같은 사항에서 자잘한 반칙 유도라든가 라인 부근에서 상대편 맞고 나가서 공격권 얻어내는 것 등등에도 능하다. 피지컬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꼼수나 기술적 능력을 바탕으로 타겟 플레이도 훌륭하게 소화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원톱으로서의 박주영의 대두 이전까지는 00년대 중반 조재진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현대적인 원톱형 스트라이커였다.

다만 내려온 위치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할 경우 외눈인 게 아쉽다. 박스에서 멀리 떨어져서 공간감이 필요한 정교한 패스를 할 경우 타이밍은 환상적이지만 동료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강 감으로 찍어서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박스 근처의 약한 패스는 경험도 있고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지만 넓은 공간을 정교하게 이용하는 패스를 할 때는 정확하게 연결하기 어려워한다. 그리고 무릎 부상 이후 상당히 신체적 능력이 저하된 바 있다. 이 부상 때문에 서울에서 한참 잘 나가다가 침체기를 겪으며 중국으로 이적하고 만다.

외눈이라는 장애를 극복한 것은 대단하고 존경할 만한 점이지만 아무래도 두 눈이 멀쩡했다면 동기인 이동국과 함께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서도 크게 활약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많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편집]




4.3. 수훈[편집]


  • 체육훈장 맹호장: 2002


5. 논란[편집]



5.1. 신의 손 사건[편집]


FC 서울 시절이던 2005년 5월 29일, 친정팀 대전 시티즌과의 홈 경기에서 서울이 0:1로 끌려가던 전반 10분, 대전 골키퍼 최은성과의 1:1 찬스에서 골키퍼를 제치고자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최은성이 김은중을 몸으로 걸어 넘어뜨리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문제는 김은중이 최은성을 제치는 과정에서 손으로 공을 툭 쳤고 최은성과의 접촉은 그 이후에 일어났던 것이었으며 명백한 핸드볼 상황이 페널티킥으로 둔갑된 것이다.

대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강력히 항의했으나 가장 억울해야 할 최은성은 오히려 껄껄 웃으면서 항의하는 동료들을 말리더니, 곧이어 히칼도의 페널티킥을 멋지게 선방해냈다.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 장면을 통해 대전의 수호신 최은성의 멘탈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고, 김은중은 그와 대비되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한동안 까임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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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담[편집]


파일:6807f5310aa86cc9090202668e966e4e(1).jpg

기억하다
돌아오다


  • 김은중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대전을 떠난 후 대전 팬들은 '기억하다, 기다리다'라는 현수막을 만들어 내걸었는데 2014년 김은중이 대전에 복귀하면서 기다리다를 지우고 '기억하다, 돌아오다'라는 현수막으로 다시 만들어 내걸었다.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10512060338532.jpg

  • 2011년 5월 11일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멜버른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후 경기 도중 쓰러져 의식을 잃은 후배 신영록을 위해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 동북중학교 3학년에 재학 시절 공에 왼쪽 눈을 맞아 망막이 떨어졌고 시력이 서서히 악화돼 결국 1998년에 실명했다. 한쪽 눈이 안보이는데도 프로에서 주전급으로 뛰었다는건 그만큼 남들보다 더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 한쪽 눈이 실명 상태여서 당연히 병역면제되었다.

  • 프로 선수로서 첫골과 마지막 경기, 마지막 골을 경험한 것이 모두 한밭종합운동장이었다.

  • 별명은 샤프, 독안룡이며 김은중이 마음에 들어하는 별명은 'SHARP18' 이다.


  • 2023 AFC 어워드 여자 감독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다. (사실은 U17 여자대표팀의 김은정 감독이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AFC에서 영문 표기가 동일한 김은중 감독의 사진을 집어넣은 자료를 배포하였다.)

6.1.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부임설[편집]


은퇴 이후 김은중은 대전 시티즌의 감독이 바뀔 때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는 하는데, 특히 2017 시즌 내내 대전이 심각한 부진을 면치 못해 이영익 감독이 사임한 이후 차기 감독 후보로 급부상하였고, 이를 가지고 대전 팬들 사이에서는 찬반 논쟁이 오가기도 하였다.

찬성하는 측의 의견은 김은중의 경우 시즌 중반 AFC 투비즈 감독 대행직을 잘 수행했을 뿐더러 대전 구단의 레전드로서 누구보다 대전 구단의 현실과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이해할 것이며 그만큼 대전 구단에 헌신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반대하는 측은 김은중은 아직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선임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특히 자칫 선동열이나 최순호처럼 과거 선수 시절 대전 구단에서 쌓았던 명성을 잃을 수도 있으며 가뜩이나 어려운 대전 구단의 현재 상황에서 김은중에 그러한 부담을 안기고 대전 감독을 시키는 것은 레전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피력하며 전적으로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설령 김은중을 감독으로 선임할 거면 지네딘 지단처럼 대전의 코치나 유소년 지도자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쌓은 후 시켜야 한다는 평이 있었다.

이후 2019년 고종수 감독이 경질되면서 또다시 후임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다.#

2020년, 기업 구단으로 전환한 대전의 감독으로 내정된 이민성과 함께 김은중도 수석 코치로 데려오는 방안이 나왔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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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안룡이란 별명도 여기서 활동하던 시절에 붙은 것. 다테 마사무네미야기현이 거점이었다. 단, 다테 마사무네와는 먼 눈 방향이 다르다.(김은중 - 왼쪽, 다테 마사무네 - 오른쪽)[2] 이태호부터 시작해 유상철-김은중-곽희주-곽태휘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외눈 축구 선수의 계보에 들어간다.[3] 2001년 FA컵 축구대회 우승, 2014년 K리그 챌린지 우승[4] 2007년 이후 FIFA U-20 월드컵으로 대회명 변경.[5]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6] 이 조차 교체 카드로서만 벤치에 머물다가 조별 리그 한경기에 늦은 시간 교체로 출전한게 전부였다.[7]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가 구단주로 있다.[8] 이을용이 청주대 축구부의 대회를 이끄느라 도중 귀국했던 탓으로 보인다. 청춘 FC와 AFC 튀비즈 간 두 번의 연습 경기에서도 굳건히 청춘 FC의 벤치를 지켰다. 이후 방송에서 나오는 설명용 자막으로는 소위 '은코치'였다.[9] 현재 황선홍의 행적을 보면 차라리 정정용을 재선임하던가 아니면 김은중을 겸임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렇게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진 못했다.[10]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11]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12] 공간을 잘 활용하는데 동료의 센스가 나쁘면 다 쓸데없는 짓이 된다는 단점도 있다. 본인이 공간을 잡고 흔들며 동료가 침투할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데 만들어 줄 공간으로 공을 몰고 침투해야 할 놈이 상대 수비를 몰고 있는 김은중에게 패스를 뿌려준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