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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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김익노
金益魯


파일:external/rokps.or.kr/134.jpg

출생
1905년 4월 15일
경상북도 칠곡군
사망
1962년
본관
수원(水原).
1. 개요
2. 생야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 본관은 수원(水原).


2. 생야[편집]


1905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연일군 서면 택전리(현 포항시 남구 연일읍 택전2리)[1]으로 이주하여 영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농업대학 실과를 수료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삼우공업주식회사 사장, 남선민보사 사장, 한국독립당 경상북도당 선전부장, 독립신문 경상북도 지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이후 달성군-대구부 농회 기수, 대구시 시정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징계자격위원회 주사에 임명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징계자격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를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고 같은 해 6월 선거무효 판결이 내려져서 9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상대 후보의 표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1960년 재보궐선거에 또 출마를 시도했으나(...) 1960년 1월 22일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최해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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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항시사 제 3권 제 9편 인물 제2장 인물 5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