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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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유도 남자 -81kg 금메달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독일 국기.svg 올레 비쇼프
(200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재범
(2012)


파일:러시아 국기.svg 칼무르자예프 카산
(2016)


김재범
金宰範 | Kim Jae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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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85년 1월 25일 (39세)
경상북도 김천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김천서부초등학교 (졸업)
김천중앙중학교 (졸업)
동지고등학교 (졸업)
용인대학교 (학사)
용인대학교 (박사)
종목
유도
체급
-81kg
소속
한국마사회
신체
180cm, 84kg
종교
개신교(장로교)[1]
가족
아버지 김기홍
어머니 김관희
배우자 정진희(1987년 9월 27일)
딸 김예담(2013년 9월 4일), 둘째(2015년 4월)[2]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소개
2. 선수 경력
3. 평가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음주운전 논란
5. 수상 기록
6. 기타



1. 소개[편집]


죽기살기로 했어요. 그러나 졌어요. 그때는, 지금은 죽기로 했어요. 이겼어요. 그게 답입니다.

2012 런던 올림픽 유도 -81kg 결승전 직후 인터뷰


대한민국의 前 남자 유도선수.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리스트이며, 대한민국 유도 최연소 그랜드슬래머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데뷔 전[편집]


1985년 1월 25일,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아버지 김기용 씨와 어머니 김관희 여사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지금과는 달리 어린 시절에는 과묵하면서도 섬세한 아이였으며, 누나만 두 명 있다 보니 누나들의 장난감을 공유하던 게 일상이어서 바비인형 같은 걸 갖고 놀던 소년이었고, 어릴 때부터 다른 애들에 비해서 키가 작고 몸이 약했던 김재범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이던 1992년, 부모님의 권유로 유도에 입문했으며, 또래 학생들보다 왜소한 체격이었던 김재범은 중학교에 진학해 최경량급인 48㎏급에서부터 차근차근 기본기를 쌓았고, 이후 신체 성장 속도에 맞춰 55㎏급 ~ 73㎏급의 순서로 체급을 올려가며 유도 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무렵부터 그의 숨겨진 ‘악바리 근성’과 경량급에서부터 축적된 ‘화려한 테크닉’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3]


2.2. 2003년[편집]


청소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유망주로 떠올랐다.


2.3. 2004년[편집]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선 당시 전년도 세계선수권 우승자 이원희와 결승에서 맞붙었지만 패했고, 서로 파트너로 태릉선수촌 생활을 시작했다. 올림픽 이후 열린 청소년 세계선수권 -73kg 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기량이 급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2.4. 2005년[편집]


이원희가 부상에 시달리면서 2005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따냈다. 2005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초반에 탈락하고 나서 슬럼프가 오기 시작했다.


2.5. 2006년[편집]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는 1, 2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모두 이원희를 이기고 우승했지만 3차 준우승+국제대회 성적 점수로 이원희에게 밀려 선발되지 못했다. 그 이후엔 기량이 급상승하던 왕기춘에게[4] 밀렸다. 지속적인 감량으로 제실력을 내기 힘들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며 73kg에서 81kg로 올리는 모험을 선택했다.


2.6. 2008년[편집]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전에서, 당시 국내 -81kg급에서 국제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며 최강으로 평가받던 송대남을 상대로 접전 끝에 승리하며 선발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체급을 올린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작은 기술로 점수를 따거나 상대의 지도를 유도하여 경기시간을 다 소진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그 결과, 각 경기마다 처절한 혈투를 펼쳤고, 연장접전을 2번이나 벌이며 체력이 고갈되었다. 가까스로 결승까지는 올라가긴 했지만 독일의 올레 비쇼프에게 힘을 쓰지 못하고 유효 하나를 내줘 패해 은메달을 따냈다.[5]


2.7. 2009년[편집]


체급에 슬슬 적응하기 시작했고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2.8. 2010년[편집]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과 2010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했다.


2.9. 2011년[편집]


2011 세계선수권에서도 2연패를 달성하며 -81kg급 최강자로 우뚝 서는데 성공했다.


2.10. 2012년[편집]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유도의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고, 예상대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결승까지 올라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저번 올림픽때 결승에서 패배를 안겼던 올레 비쇼프를 시종일관 밀어붙이며 유효 2개를 얻어내 우승에 성공했다.


2.11. 2014년[편집]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복귀하여 -81kg급 금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을 차지했다.


2.12. 2016년[편집]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도 도전했지만, 부상이 악화되었고 이를 끝으로 은퇴했다.


3. 평가[편집]


선수 생활 초기엔 빠른 스피드로 다리 기술을 걸어 점수를 얻어내고 경기시간 5분을 버티는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해서 '미스터 파이브 미닛'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다. 중반 이후부터는 업어치기의 완성도를 높이고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체력을 보강하여 끊임없이 공격을 시도하는 등 좋은 경기 운영능력을 보여주며 상대를 압도했다.


4.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4.1. 음주운전 논란[편집]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번 연속 음주운전에 걸려서 불구속 처분을 받았다.


5.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2012 런던
-81kg
은메달
2008 베이징
-81k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0 도쿄
-81kg
금메달
2011 파리
-81kg
동메달
2009 로테르담
-81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0 광저우
-81kg
금메달
2014 인천
단체전
금메달
2014 인천
-81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05 타슈켄트
-73kg
금메달
2008 제주
-81kg
금메달
2009 타이페이
-81kg
금메달
2011 아부다비
-81kg
금메달
2012 타슈켄트
-81kg
은메달
2015 쿠웨이트 시티
-81kg
유니버시아드
은메달
2007 방콕
-73kg


6. 기타[편집]



  • 은퇴한 이후로는 경기도 수원시에 '김재범 유도관'을 차려서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마사회 코치도 겸임하고 있다.

  • 국제 대회 커리어로만 보면 전기영 다음으로 꼽힌다.

[1] 2012 런던 올림픽 결승 우승 후 기도하는 세리모니를 하였을 만큼 매우 독실하다. 출석 중인 교회명성교회.[2]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이 진행 중이던 2014년 9월 인터뷰에서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으며, 임신 2개월 째라고 언급하였고, 2015년 3월에 '다음 달에 둘째가 태어난다'라고 언급하였다. 성별은 첫째처럼 딸인지 아니면 아들인지는 불명.[3] 당시 김재범을 지도한 이무희 동지고 감독은 “재범이는 예의가 바르고 항상 적극적인 자세로 훈련하는 선수였다.”며 “3학년에 진학한 뒤에야 출전한 대회마다 우승을 휩쓸며 이름을 날렸고 유도 명문 용인대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4] 지금이야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졌지만, 당시 왕기춘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첫 출전한 2007년 세계선수권을 우승한 신성이었다. 이 우승 기록은 현재까지도 한국 유도선수중 최연소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남아있다.[5] 은퇴 관련 기사에서는 체력의 부하도 있었지만 메달을 확보했다는 마음에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후회는 있을 수 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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