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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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26년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강면 토성리에서 태어났다. 주기철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조만식 장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광복 직후 평양 신사를 불태웠으나, 조만식의 "네가 할 일은 신사를 태우는 게 아니라 공부에 전념하는 것"라는 조언에 월남해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주요한의 선거 사무장을 지냈으며, 민주당 선전차장으로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못 살겠다 갈아보자' 구호 선정에 참여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양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최규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양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김영삼, 박준규 등과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같은 해 말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에 몸담았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후 박정희가 실권을 잡으면서 박준규 등과 함께 여당인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제6대, 7대,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철원군-화천군-양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0년에는 교양지인 월간지 <샘터>를 창간하였다.[4] 당시 잡지는 벗겨야(...)한다는 한 업계 관계자의 조언에 "댁은 벗기시오. 나는 입히겠습니다"라고 했다고.
3선 개헌을 마지막 출마라는 다짐을 받고 적극 추진하였으며, 1971년 민주공화당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0.2 항명 파동 당시 항명을 제대로 막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원내총무직에서 사퇴하여야 했다. 개인 증언 따르면 10월 유신 당시에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해 '박정희 그릇이 그것 밖에 안되냐'며 일갈했다고 한다.[5]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유신정우회 제1기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춘천시-춘성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공화당 손승덕 후보와 신민당 김준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정치규제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정치를 잠시 멀리하고 월간지 샘터 발행에 전념하였다.[6]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철원군-화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제13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재산 공개 과정에서 축소 공개 등이 논란이 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이 때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배신감을 나타내었다.[7] 이후, 1994년부터 2002년 3월까지 서울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하였다.
2016년 5월 17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철원에서 4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가장 자랑스러워한 업적은 토교 저수지였다고 한다.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본래 1923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1926년생이 맞으며 6.25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후 호적재정리 때 실수로 올라간 걸 수정하지 않고 내버려둬서 23년생으로 기록되고 있다.[2] 인근의 두단리·석암리와 함께 전주 김씨 집성촌이다.[3] 이북5도위원회 기준으로는 평양시 토성리.[4] 2020년에 창간 50주년 및 500호 발행을 기록했다. 현재 그의 아들 김성구 씨가 발행인을 맡고 있다.[5] 물론 이런 증언들은 후일 샘터를 통해 나온 증언이므로 어느정도는 에누리하고 들어야 한다. 본인이 '평안도 기질'이 있다고 하고 덧붙였으니 분명 직언하는 스타일은 분명했다고 봐야한다.[6] 샘터사의 대표 김성구 씨가 김재순의 아들이다.[7] 그도 그럴 것이 김재순은 민자당 내 민정계 중에서 드물게 김영삼을 지지하고 동료 민정계 의원들의 욕을 들으면서까지 변호해 주었다. 재산 공개 과정 당시 청와대에서 문제 삼은 것 중 하나가 하남에 있던 별장이었는데 알고보니 그 별장은 김영삼도 놀러갔던 곳이었다(...).[8] 양구군[9] 1961.5.16 자격정지(5.16 군사정변)[10] 철원군-화천군-양구군[11] 1기[12] 춘천시-춘성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13] 전반기 국회의장[14] 1993.3.31 의원직 사퇴[15] 민주당에 흡수 합당[16]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