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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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0대 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
김재철
金在哲 | Kim Jae Chol

파일:김재철.jpg}}}
출생
1953년 12월 18일 (70세)
경상남도 사천군 삼천포읍 (現 사천시)
재임기간
제29-30대 파일:MBC 로고.svg 대표이사 사장
2010년 2월 26일 ~ 2013년 3월 26일
학력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 / 학사)
웨일즈대학교 대학원 (매스커뮤니케이션학 / 석사)
소속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1]
입사
1979년 문화방송·경향신문 기자
경력
문화방송 보도국 국제부 도쿄특파원
문화방송 보도국 제2사회부장
문화방송 보도국 국제부장
문화방송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문화방송 정책기획실 정책보좌역
문화방송 보도제작국 부국장
문화방송 보도제작국장
울산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
청주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
제29-30대 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사천시·남해군·하동군 당협위원장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2.1. 언론인 시절
2.2. 문화방송 사장 시절
2.3. 문화방송 사장 퇴임, 그 이후
3. 소속 정당
4. 여담
5. 저서
6. 수상경력




1. 개요[편집]


파일:김재철 기자 시절.jpg
문화방송 기자 시절(1987년 MBC 뉴스데스크 중에서)

대한민국의 전직 언론인이자 제29~30대 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이다.


2. 생애[편집]


1953년, 경상남도 사천군 삼천포읍(현 사천시)에서 태어났다. 삼천포국민학교 재학 중 부산으로 이주하면서 부산남부민국민학교로 전학갔다. 그후 서울로 이주하여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출처),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졸업했다.


2.1. 언론인 시절[편집]


1979년 문화방송·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하여 초기에는 보도국 제2사회부에 소속되었다가 편집부(1980~1981), TV편집부(1981), 사회부(1981~1984 / 1986~1989), 보도제작부(1984~1986) 등을 거치며 취재 현장에서 뛰었고, 특히 보도제작부에 몸담던 1986년에는 남극에서의 생중계 관계로 남극에 파견된 적도 있어서 한국인 방송기자로선 최초로 남극 땅을 밟았고, 이에 따라 남극 조약 가입의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로 그해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또한 1987년 자연 다큐멘터리 <꿀벌의 세계> 및 1991년 8.15 특집 <조총련>의 제작에 각각 참여해 한국기자협회로부터 한국기자상을 2차례(1987, 1992년) 받는 데 기여하는 등 나름대로 관록을 지닌 기자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의외일 것 같지만 1992년에는 50일 파업에 참여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89년 '보도제작국' 신설로 보도제작부(1990년 이후 명칭은 보도제작1부)로 배속되었다가, 1992년 정치부를 거쳐 1994년 4월 국제부로 옮기며 차장대우로 승진한 후,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나 3년을 이곳에서 뛰었으며 1996년 차장급으로 올랐다. 1997년 귀국 후 휴식기를 거쳐 1998년 부장대우 승진 후 정치부로 돌아갔다가 1999년 3월 수도권부(제2사회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처음 간부직에 올랐다. 동년 12월 국제부장으로 이동된 후 해설위원(2000~2001/2002), 정책기획실 정책보좌역(2001~2002), 시사제작1국/보도제작국 부국장(2002~2004), 보도국 부국장(2004), 보도제작국장(2004~2005) 등을 두루 거쳐 2005년에는 울산MBC 사장으로 임명된 후 3년여 간 재직했다가 2008년 최문순 본사 사장의 퇴임이 임박되자 방송문화진흥회의 차기 MBC 사장 공모에 나섰다가 1차 심사에서 탈락했고, 엄기영 사장 취임 뒤 청주MBC 사장으로 발령났다.


2.2. 문화방송 사장 시절[편집]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저희는 잘하고 있는데, 윗물이 이런 거야.

노홍철, 8주년 특집 무한상사

2010년에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차기 MBC 본사 사장 공모에 응모하여 구영회(전 MBC 미술센터 사장), 박명규(전 MBC 아카데미 사장) 등 나머지 상대 후보 2명을 제치고 사장직에 선임됐으나, 내정 당시 엄기영 사장이 강제로 쫓겨났다는 의혹이 있는 데다가[2]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의 친분[3] 때문에 낙하산 인사, 편향 인사 논란이 있었다. "김재철 사장,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 맞고 깨진 뒤 좌파 정리했다" 라는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던 김우룡이 2010년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서 문제성 발언을 했다(관련기사). 이 인터뷰 내용으로 인해 그 논란이 증폭되었다.

선임 과정에서의 잡음과는 달리 임기 동안에는 여러 이벤트와 공연, 행사 등에 관심을 쏟아 <우리들의 일밤> 코너 '신입사원'과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안우정, 김영희 등 후배들과 고안했고, 2011~2012년 사이에 '코리안 뮤직 웨이브'를 태국 방콕, 일본 도쿄 및 고베, 미국 로스앤젤레스 및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열도록 주도하여 한류 열풍을 더 강화시켰으며, 2012년에는 구글코리아와 '콘텐츠 유통 파트너십' 계약을 맺어 유튜브에 'MBC Drama', 'MBC World', 'MBC Entertainment' 등 5개 채널을 열어 MBC의 문화콘텐츠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그의 재임 시절 자행된 온갖 사건 때문에 빛이 바랬다.

먼저 후 플러스(뉴스 후) 등 여러 사회, 공익성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2011년 2월에는 상대 후보들인 구영회, 정흥보(당시 춘천MBC 사장)를 제치고 연임한 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MC 김미화, <두시의 데이트> DJ 윤도현 등 진보 방송인 하차 등 인위적 개편을 실행했고, 2012년 1월 30일부터 반 년 가까이 이어진 대규모 장기 파업인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외에도 사장 재임 시절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 와갤 대 애갤 현피사건 등 게임에 대한 왜곡 보도가 잇따르면서 정치 편향 논란을 넘어서 뉴스의 질도 급락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특히 MBC GAME의 폐국과 MBC MUSIC의 개국을 밀어붙인 안현덕 전 MBC 플러스 사장[4]이 김재철의 최측근이며, MBC GAME 폐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재철로부터 음악채널 개국 공로를 인정받아 MBC 뉴욕지사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 결정적으로 폐국 후 전직 MBC GAME의 방송 인력들의 폭로에 의해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장이 음악채널 개국을 밀어붙였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게임/e스포츠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의 주동자인 마재윤, 원종서 수준의 절대악 취급을 받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MBC GAME 폐국 사태 문서 참조.

이 사람은 게임 외에도 더빙/성우,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까일 요소가 무궁무진한데, 경영합리화를 내세우면서 격동 50년 등의 인기 라디오 드라마를 폐지시키거나, 주말의 명화최문순 사장 시절에 CSI 시리즈를 제외한 모든 외화시리즈 편성이 전멸했는데 결국 CSI 시리즈 조차도 폐지 시켜 더빙을 완전 멸종시켰다. 안 그래도 2004년을 마지막으로 추가 공채를 하지 않고 있는 MBC 성우극회의 입지도 더욱 줄어들었다.

예선까지 다 치른 2011 MSL 시즌 2를 열지 못하게 하는 등 MBC GAME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는 아듀 MBC게임을 진행하여 너무 짧게 기회를 줬다는 비판도 있다. 또 당시 새로운 포맷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던 공감토크쇼 놀러와를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새 포맷 변경 2달 만에 급작스럽게 전격 폐지시켰다. 이 때 프로그램 폐지 통보를 전달받지 못한 유재석, 김원희 등 출연진은 8년간 지켜온 프로그램에서 끝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쫓겨났다. 그래서 놀러와 마지막회에서는 MC와 게스트가 평소와 다름없이 방송을 하고 갑자기 몇 장의 출연진 슬라이드와 "그동안 놀러와를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라는 자막이 나간 뒤 끝난다. MC들이 녹화 당시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서 그 부분을 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당시 시청률 부진을 겪던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 또한 상부의 움직임에 따라 급속도로 축소 편성된 후 폐지 수순을 밟으며 MBC 시트콤의 명맥이 끊어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1981년부터 방영되며 MBC의 대표적인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던 뽀뽀뽀 역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된 종방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폐지되고야 말았다. 전형적인 사후 통보 방식으로 공영방송이라는 간판을 달고도 시청자들과 방송 제작 인력 등은 안중에도 없이 시청률, 수익, 방송사 측의 안위만 생각하는 행태였다.

또한 2012년에 약 6개월간 계속되던 MBC의 장기 파업인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기간 동안 김태호 PD의 해임 및 무한도전 폐지 움직임의 주동자였다. 정확하게는 처음에는 김태호 PD[5]를 해고하고, 무한도전을 외주업체 제작으로 전환하려고 했다가 김태호 PD 없이는 무한도전이 이전만큼의 완성도와 재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자 아예 무한도전을 폐지하려고 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한도전 팬덤은 그야말로 분노가 폭발했다. 이전부터 무한도전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지속적으로 내려간 경고 조치로 인해 방통위의 표적 심사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서 외압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팬덤에게는 그야말로 불난 집에 석유통을 집어던진 격이었다. 그로 인해 이 시기 포털사이트에 김재철을 치면 '김재철 암살'이라는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떴을 정도로 MBC GAME의 폐국 때를 넘어서는 어그로를 시전했다.[6]

게다가 경남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창원MBC(구 마산MBC)[7]와 진주MBC를 MBC경남으로의 무리한 통합을 강행한 장본인으로,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지역민들에게 아주 악명이 높다. 통합을 밀어붙이기 위해 승부수로 사표를 제출했으나 결과적으로 김 사장의 사표는 반려되었고 통합이 단행되었다.[8][9] 이러한 계열사들의 통폐합은 2015년 강릉-삼척(MBC강원영동), 2016년 청주-충주(MBC충북)로 이어진다.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이 끝나자, 파업 참가자들을 경기인천지사, 드라마마케팅부, 용인드라미아, 사회공헌실, 미래전략실 등으로 전보시키거나, MBC 아카데미[10]에 보내 샌드위치나 브런치 만들기 등 재교육을 시켰다.

여하튼 19대 총선18대 대선 등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면서 '두 번의 노조 파업에도 불구하고' 사장직에 계속해서 재직했다.

2.3. 문화방송 사장 퇴임, 그 이후[편집]


그러나 2013년 3월에 일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해임될 예정이었으나, 정식 해임 이전에 사표를 쓰고 셀프 퇴직하면서 3억 원이나 되는 퇴직금을 온전히 수령했다. 사임 후 약 2달 동안 안광한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으로 메웠다.

사장 퇴임 후에 새누리당에 입당했으며,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자신의 고향인 사천시장 출마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96표를 얻어 정만규 前 사천시장(1081표)과 차상돈 前 사천경찰서장(725표) 후보 등에게 모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한 송도근 후보가 당선되었다.

낙선 후 '뮤지컬컴퍼니에이'를 세워 대표이사로 재직해왔고, 한때 제주도의 지역민영방송국인 JIBS가 상임고문으로 영입하려고 했으나 JIBS는 이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결국 김재철은 재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그리고 MBC에 특별퇴직 위로금 2억여 원을 달라고 청구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관련기사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2017년에는 현직 지역구 의원인 여상규바른정당으로 옮기면서 공석이 된 새누리당 사천, 남해, 하동군 조직위원장에 선임되었다. 기사 그렇지만 이 당협위원장도 하위 커트라인에 걸리면서 박탈당했다.

이후 19대 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경남 유세 현장에 참석해 홍준표와 함께 얼굴을 비췄다. 조직위원장은 모두 참가했는데 김재철도 당시 사천남해하동 조직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촉발된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적폐청산의 일환으로 이명박 정부 당시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국정원과 협력해 공영방송 장악에 가담하고 부당인사한 의혹을 받았다. 11월 8일 국가정보원 공모 방송장악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됐다. 관련기사 이에 전직 형사가 본 - 김재철 전 MBC사장의 구속영장 기각의 의미라는 글도 나왔다.

2018년 1월 17일 방송장악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관련기사

2019년 2월 7일에 유튜브 채널 '김재철의 단디해라'를 개설하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체제에서 김재철은 황교안의 언론 특보로 활동했다.

2020년 2월 7일, 원세훈과 방송장악 공모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21대 총선에 사천시ㆍ남해군ㆍ하동군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지만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 후 미래한국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낙천했다. 다음 총선 때는 70세가 넘어가므로 사실상 정계활동은 이번이 마지막인 셈이다.[11]

2021년 3월 11일,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유지하여 형이 최종 확정되었는데, 방송장악 혐의는 무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는 유죄였다.# 같은 해 뮤지컬컴퍼니에이 대표로서 가로세로연구소와 합작으로 뮤지컬 《박정희》를 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출연 배우들에게 출연료를 미지급했다는 논란이 터져나왔다.(#)[12]


3.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7
정계 입문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20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20
탈당[13]

[[미래한국당|
파일:미래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창당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합당[14]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0 -
당명 변경

4. 여담[편집]


  • 일본 구마모토시울산광역시의 자매결연에 기여했다. 구마모토현에 의하면 울산광역시에서는 처음에 이 제안이 왔을 때 당연히 침략자의 고장과 자매결연을 맺기 싫다며 거부했지만, 구마모토현 측에서 위의 '우루산마치(울산정)'의 명칭이나 기타 일화, 사료 등을 인용해서 "가토가 비록 침략자의 입장이기는 했지만 조선을 깔보거나 증오하지 않고, 오히려 어느 정도 조선의 문물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조선을 대하고 있었다."라며 열심히 설득하고 MBC의 김재철 전 사장이 중개를 서서 자매결연에 성공했다고 한다. 해당 홈페이지에서는 김재철 사장이 자매결연에 기여했다며 크게 광고하고 있다.


5. 저서[편집]


  • 바람아 또 오데가노?: 김재철 전 사장이 말하는 '나와 MBC' - 조선뉴스프레스. 2014.


6. 수상경력[편집]


  • 국민훈장 석류장 (1986)
  • 제2회 BJC 보도상 제작상 (1991)

[1] 기소로 인한 당원권 정지[2] 사실 이에 대해서는 엄기영 본인의 원래 성향이 한나라당이라는 설 등 여러 설이 있었으나, 엄기영 전 사장 본인이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사장직 사퇴는 단순히 '내가 나갈 테니 더이상 MBC를 건들지 마라'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고 한다. 강원지사 출마의 경우, 처음부터 본인이 '강원도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이후 2011년에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은 민주당으로 갈 경우에 MBC=민주당 언론이라는 이미지 우려를 염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예상한 것과 달리 그 처참한 토론 실력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것은 본인의 주장이다.[3] 김재철은 고려대 출신이고, 이명박 대통령 역시 고려대 출신이다.[4] 정작 이 사람은 과거 MBC GAME HERO 프로게임단의 구단주를 맡은 적이 있었다. 겉으로는 게임단과 MBC GAME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MBC GAME 폐국에 앞장선 또 하나의 만악의 근원이다. MBC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게, MBC GAME이 수익이 안 되고, 당시 게임 관련 논란이 수도 없이 발생하던 차에 폐지를 결정한 것인데 과연 이런 결정이 비판받아 마땅한 것인가에 대한 이견도 존재하지만, 전부 음악채널 만들기 위한 핑곗거리에 불과하다.[5]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김태호의 정치 성향은 진보적이다. 2008년 무한도전 방송 중에 '광우병 송아지' 같은 자막을 드러낸 것이 그 예를 들 수 있다.[6] 그리고 방영이 재개된 이후 시점에서 김재철의 행보에 화가 났는지, 8주년 특집 무한상사에서 노홍철이 "우리는 잘하고 있는데, 윗물이 이 따위다."면서 대놓고 김재철을 간접적으로 저격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7] 2010년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면서 변경되었다.[8] 당시 김 사장은 자신의 고향인 사천시에 자주 내려가는 행보를 보였는데 이 때부터 정치권에 눈독을 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9] 이 때 MBC 노조는 김 사장의 사임을 환영한다고 했는데 그 정도로 노조와 관계는 최악을 달렸다.[10] 일명 신천교육대라는 은어로 불리는 그 곳 맞다.[11] 그리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됨으로써 고령임을 감안할 때 사실상 정계 활동은 물건너갔다. 인과응보[12] 이후 뮤지컬 《박정희》는 김세의가 직접 연출을 맡아 재정비를 거친 뒤 공연을 재시작했다.[13] 미래한국당 합류를 위한 탈당[14] 미래통합당에 흡수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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