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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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매체에서
4. 참고문헌


金貞肅
1931년~ (92/93세)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외교관.

김일성의 고종사촌 여동생이다.

2. 생애[편집]


1931년 평남 대동군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빠인 김일성이 북한의 수령으로 등극하면서 소련으로 유학, 레닌그라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54년 5월, 북조선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부장을 거쳐 1959년 10월 북조선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1964년 5월, 사로청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1965년 2월 조선학생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초기에는 청년사업에서 일했다. 북한 정무원 부총리, 외교부장을 역임하는 허담과 결혼하였다. 그의 언니 김신숙양형섭과 결혼하였다.

그러다가 1965년 12월 조선-라틴아메리카 친선협회 부위원장, 1969년 2월 조선-쿠바 연대성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외교 분야에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1971년 12월 조선직업총동맹 중앙검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남편인 허담은 대단한 호인으로 적이 없는 인물이었으나 반면 김정숙은 대단히 탐욕스러워서 남편을 더 높은 자리에 앉히려고 안달이었고, 성격도 포악하여 공업출판사 사장에 임명되었을 때 출판사 당비서를 하도 못살게 굴어서 참다 못한 당비서가 김정숙을 도끼로 찍어버린 사건도 있었다. 김정숙은 목숨을 건졌고 해당 당비서는 당연히 총살당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1986년 3월 민주조선 책임주필에 임명되었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1988년 3월 조선로동당 6기 13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1987년 4월, 김일성 75세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8년 12월, 조선-핀란드 친선협회 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고 1991년 5월에 남편 허담이 병환으로 사망했다. 1992년 4월에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아 이중수훈자가 되었다. 1993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에 위촉되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9년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잇달아 당선되었으며 정준기의 퇴갤 이후로 공석이었던 조선대외문화련락위원회 위원장직에 2009년 12월에 임명된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고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을 받았다.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2016년 5월, 강석주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7년 4월, 최고인민회의 13기 5차 회의에서 외교위원회가 부활함에 따라 외교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9년 4월, 1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 및 외교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2019년까지는 여러 공개활동에 다녔으나 고령의 나이가 문제였는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서 탈락되었고, 대외문화련락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부위원장 서호원이 차지하였다.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 14기 5차 회의에서 외교위원회 위원에서 소환된 것으로 보인다.

3. 매체에서[편집]



4. 참고문헌[편집]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21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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