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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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유도 선수이자 체육행정가이다. 대한체육회 회장과 용인대학교 총장을 겸임한 경력이 있다.
일본 후쿠오카시에서 태어났으며 광복이 되던 3세 당시 귀국했다. 부친은 트럭 120여대를 굴리는 화물회사 사장이었으며 별도로 명태 꽁치잡이 배를 부릴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유도를 좋아했고 집에서는 유도장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포항중을 졸업하고 포항고에 합격했으나 다니지 않았으며 뒤늦게 동지상고에 입학했다가 1학년을 마친 뒤 유도 선수를 꿈꾸며 대구 대건고로 전학했다.
1961년 서울 소공동에 있던 대한유도학교에 입학했다. 실력차로 인해 좌절했으나 맹훈련을 거듭하여 기량을 향상시켰다.
196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포항시에서는 그를 위해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포항시 최초의 카퍼레이드였다고 한다.
대학 졸업 당시 수석졸업을 했고 졸업과 함께 조교로 학교에 남았다.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학생과장, 훈련과장, 학생처장, 기획처장, 부총장을 거쳐 1994년 용인대 총장에 취임했다.
유도 코치 겸 유도대학 교수,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도 감독 등을 역임했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용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0년 동안 용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대한유도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도 겸임하였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아시아유도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 대한체육회 회장 선출에서 탁구선수 출신으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이에리사를 누르고 선출되었다.
김재엽이 은퇴한 이후 유도계에서 퇴출시켰다는 논란이 있었다. 2016년에는 대한체육회가 국민생활체육회와 통합을 추진하면서, 퇴진 요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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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前 유도 선수이자 체육행정가이다. 대한체육회 회장과 용인대학교 총장을 겸임한 경력이 있다.
2. 선수시절[편집]
일본 후쿠오카시에서 태어났으며 광복이 되던 3세 당시 귀국했다. 부친은 트럭 120여대를 굴리는 화물회사 사장이었으며 별도로 명태 꽁치잡이 배를 부릴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유도를 좋아했고 집에서는 유도장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포항중을 졸업하고 포항고에 합격했으나 다니지 않았으며 뒤늦게 동지상고에 입학했다가 1학년을 마친 뒤 유도 선수를 꿈꾸며 대구 대건고로 전학했다.
1961년 서울 소공동에 있던 대한유도학교에 입학했다. 실력차로 인해 좌절했으나 맹훈련을 거듭하여 기량을 향상시켰다.
196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포항시에서는 그를 위해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포항시 최초의 카퍼레이드였다고 한다.
대학 졸업 당시 수석졸업을 했고 졸업과 함께 조교로 학교에 남았다.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학생과장, 훈련과장, 학생처장, 기획처장, 부총장을 거쳐 1994년 용인대 총장에 취임했다.
3. 은퇴 이후[편집]
유도 코치 겸 유도대학 교수,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도 감독 등을 역임했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용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0년 동안 용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대한유도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도 겸임하였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아시아유도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 대한체육회 회장 선출에서 탁구선수 출신으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이에리사를 누르고 선출되었다.
4. 논란[편집]
김재엽이 은퇴한 이후 유도계에서 퇴출시켰다는 논란이 있었다. 2016년에는 대한체육회가 국민생활체육회와 통합을 추진하면서, 퇴진 요구를 받았다.
5. 수상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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