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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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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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강남구 을)
제17-18대
공성진[1]

제19대
김종훈


선거구 분리
전현희[2]
이은재[3]





파일:김종훈 본부장.jpg

출생
1952년 5월 5일 (71세)
경상북도 대구시
(現 대구광역시)
배우자
김현지
자녀
1남
학력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졸업)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경영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불교 (법명: 해송)
소속 정당

[[무소속|
무소속
]]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
현직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
약력
제8회 외무고등고시 합격
주 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 3등서기관
오트볼타 대사관 2등서기관
주 캐나다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특전담당관
외무부 의전담당관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의전심의관
외무부 국제경제국 심의관
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 공사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지역통상국장
샌프란시스코 영사관 총영사
APEC 고위관리회의 대표
APEC 대사
한미자유무역협정 한국측 수석대표
제4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이명박 정부)
제64차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총회 의장
제66차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총회 의장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강남구 을 / 새누리당)
새누리당 국제위원회 위원장
재단법인 한미동맹재단 이사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운영위원
1. 개요
2. 상세
3. 소속 정당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외교관, 정치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제19대 국회의원 등 역임.


2. 상세[편집]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6~2008년 한미 FTA 체결에 관여하였고, 특히 2008년의 추가협상 때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총책임자로서 최선봉에 나섰다. 그런데 FTA 추가협상이 마무리된 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가협상 내내 라면으로 끼니를 주로 때웠다"라는 말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국익을 좌우하는 그러한 중차대한 추가협상의 총책임자라면 팀원들을 일단 잘 먹이는 것이 의무라고 할 수 있는데, 라면만 먹이면서 일을 시켰다면 이건 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 어쨌든 한미 FTA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적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2011년 9월 공개한 한미 FTA 협상 미 외교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김종훈은 2006년 협상 당시 개성공단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훈령을 무시했고, 심지어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모르게 한미FTA 대가로 미국 측에 개방, 쇠고기, 자동차에 대한 추가이익을 위한 추가협상까지 약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4월 쇠고기, 2010년 12월 자동차 재협상으로 현실화 되었는데,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한미 FTA 추가협상은 순전히 김종훈 1인으로 인하여 벌어진 일이 된다. 물론 김종훈 본인은 이 사실을 부인하였다.

2012년 2월 20일 <SBS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했는데, 자신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강북 출마설에 대해 “어디 저 컴컴한 데, 그런 데서 하라는 건 또 다른 측면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강북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

결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정동영 후보와 맞붙었다. 당시 정동영 후보와 TV 토론을 하면서 특유의 달변으로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강남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국회의원에 무난히 당선되었다.[1] 전임자였던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는 바람에 고난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무난히 당선되었다. 김종훈으로서는 이 선거에서 노원구 갑에 출마한 김용민 후보의 과거 성인 인터넷방송에서의 막말들 중 노인 비하성 발언이 발굴된 것이 엄청난 호재였다. 김용민 막말이 이슈화되면서 자연스럽게 김종훈의 상대 후보 정동영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어 표심이 김종훈에게로 완벽하게 기울었기 때문이다.



제19대 국회에 입성한 후에는 심히 존재감이 없는 국회의원으로서 조용한 나날을 보냈다. 사실 2009년 4월 국회 외통위에서 “이거(국회)를 기본적으로 없애버려야 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국회에 들어가서 자기 소신을 펼친 셈이 되겠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41,757표(44.41% 2위)를 득표하는 데 그치면서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 홍사덕 후보가 민주자유당 김만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이후 24년 만에 보수정당 후보가 강남 지역에서 패배한 것으로, 새누리당 총선 완패의 상징적인 케이스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역 현안에 대해서조차 그냥 잘하겠다는 식으로 뭉개고 넘어간 것이 각종 현안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던 전현희 후보와 뚜렷한 대비를 보이면서, 지역 민심을 완전히 잃었다는 분석이다.[2]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바른미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2017년 2월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로 선출되고, 2019년 3월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었다.

재미있게도 바른미래당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합당하면서 지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결했던 민주평화당 전 대표인 정동영 의원과 같은 민생당 소속이 되었다.[3]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했으며[4][5] 민생당의 선거 대참패[6] 이후 민생당을 탈당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3.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2
정계 입문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 2016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16 - 2017
탈당[7]

[[바른정당|
파일:바른정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18
창당

[[바른미래당|
파일:바른미래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8 - 2020
합당[8]

파일:민생당 흰색 로고타입.svg

2020
합당[9]

[[무소속|
무소속
]]

2020 -
탈당[10]
정계 은퇴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을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73,346 (59.48%)
당선(1위)
초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1,757 (44.41%)
낙선(2위)


역대 선거 벽보



5. 둘러보기[편집]





파일:새누리당 흰색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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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정동영 후보도 40%를 얻어서 초유의 결과를 냈다.[2] 여담으로 울산 동구 선거구의 본인과 동명이인 무소속 후보가 출마해 새누리당 안효대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만약 본인이 당선되었으면 성태, 경환에 이은 3번째 동명이인 국회의원이 배출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종훈 외에도 동명이인 후보들도 한 명은 당선되고 한 명은 낙선했는데, 경기 남양주시 을의 또 다른 김성태가 출마하였으나 낙선했고, 경남 김해시 을김경수는 당선되었으나 강원 강릉시김경수는 낙선, 경기 용인시 갑이우현은 당선, 옆 지역인 용인시 병이우현은 낙선하였다.[3] 근데 사실 이건 김종훈의 정치성향이 변했다기보다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당적에 신경을 안쓰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4] 대신 김광종이 김종훈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였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민생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미래통합당 박진 후보와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득표율: 1.31%)[5] 만약 자신의 지역구였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에 출마했어도 당선은 고사하고 선거비용 보전도 어려웠을 것이다.[6]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 전원이 낙선해 원외로 전락했다.[7]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탈당.[8] 국민의당과 신설 합당.[9]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 신설 합당.[10] 총선 직후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