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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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김주찬의 플레이 스타일을 자세하게 다룬 문서이다.


2.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짧게 요약하면 8888577의 암흑기 롯데가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포텐셜 덩어리였다. 16시즌 기록한 23개의 홈런, 14시즌 기록한 3할 5푼에 근접한 타율과 4할에 근접한 출루율, 10시즌의 65도루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굉장히 다재다능한 툴을 가진 타자였다. 수비 역시 중견수로는 애매하지만 코너 외야수로는 리그 상급. 롯데에 와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백인천이지만 김주찬에게서 5툴 플레이어의 잠재력을 본 것은 적어도 노망은 아니었다. 다만 백골퍼 자신에게 그 잠재력을 제대로 키워낼 능력이 남아있지 않았을 뿐이지. 롯데가 신인 김주찬을 제대로 육성했다면 비록 배드볼 히터라고는 해도 코너 외야를 든든히 지키면서 3할에 두자릿수 홈런, 30+ 도루를 안정적으로 찍어주는 먼치킨 테이블세터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롯데는 김주찬의 타격과 수비 툴을 제대로 잡아주질 못했고, 김주찬은 오랫동안 1루수나 좌익수로도 수비 호러쇼를 연발하는 똑딱이 배드볼 히터로 남았다.[1] 나이를 먹으면서 타격 짬이 쌓이고 조원우 코치의 힘으로 수비가 개선되면서 자신의 운동능력이 빛이 나기 시작했으나, 정작 노화가 시작되면서 몸이 운동능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상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부상으로 인해 기껏 갖춰둔 수비와 주루 능력을 점점 활용하기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에서는 준수한 외야수로의 커리어를 쌓았다.

준수한 타격 능력과 100m를 11초대에 끊는 최상급의 스피드[2]를 갖췄기 때문에 포텐셜 자체는 높다고 평가받았으나, 백인천 감독의 교정에 의해 비교적 간결하던 스윙폭이 매우 커졌다.[3] 전형적인 장타를 노리는 풀스윙이 된 것. 우리나라 선수들이 대체로 떨어지는 공에 약한 편이기는 하지만 김주찬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공에는 냅다 방망이가 돌아가며 헛스윙이 되고 말았다. 약점이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는 탓에 2스트라이크가 되기 전에 결과를 보지 못하면 대부분 삼진. 그래서 볼삼비가 아주 나쁜 선수이기도 하다.[4]

즉 야구센스보다는 터미네이터 급으로 우수한 신체능력과 본능으로 야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이른바 "몸야구" 유형의 선수.[5] 우수한 신체능력으로 공격력은 좋으나, 미세한 부분이 부족하여 주루 플레이가 거칠고 수비가 매끈하지 못하다. 그래서 팬들은 타격하는 뇌, 주루하는 뇌, 수비하는 뇌가 따로 있어 뇌가 탈착식이라고 깠다.

수비는 경험을 쌓으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초기에는 주전 외야수, 특히 중견수로서는 리그 최하위를 다투기도 했다.[6] 송구에 대한 트라우마 덕분에 다른 내야수 포지션은 보지 못하고 1루수로 출장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1루수로서도 그다지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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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그의 수비[7]

하지만 불안한 수비에 비해 타격 능력은 상당히 좋은 선수. 이를 두고 수비 때랑 공격 때랑 뇌를 갈아끼운다고 표현한다. 김주찬의 타격 스타일은 전형적인 배드볼 히터. 커리어하이급 성적을 찍고 있는 2016년에도 출루율은 시즌 내내 3할 8푼에서 9푼을 왔다갔다 했는데, 16시즌 내내 타율은 3할 5푼대에 OPS 9~10할을 유지한 것을 생각하면 매우 낮은 편이다. 그의 배드볼 히팅 성향은 루킹삼진 숫자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이전에도 루킹삼진의 숫자가 적었지만 16시즌에는 555타석에 들어서며 루킹삼진이 단 1개에 불과했다. 즉 컨디션이 좋을 때는 존을 가리지 않고 전부 안타로 만들지만 슬럼프일 때는 어처구니 없는 공에 스윙을 하기도 한다.

롯데 시절에는 배드볼 히팅 성향에 선구안까지 꽤 떨어지는 편이었던지라 높은 타율에 비해 출루율은 많이 떨어지고 BB/K 비율도 좋지 못했다. 당시 팀 내에 마땅한 리드오프감이 없어 주로 1번 타자로 출장했지만, 2번 타자가 더 적절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기아 이적 후에는 거의 2번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11 시즌에 접어들면서 비록 88경기 출장이긴 해도 371타석 동안 BB/K 비율이 0.71로 상당히 향상되었다.[8] 그러나 타격 스타일은 여전히 볼넷과 삼진이 모두 적은 배드볼 히터라, 어디까지나 이전보다 선구안이 나아졌다는 것이지 볼넷을 골라 출루하는 타입의 리드오프는 아니다. 장타 생산력은 아주 뛰어나지는 않으나 톱타자치고는 좋은 편으로, 출루율이 높은 선수가 아님에도 꾸준히 4할 전후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적절히 뜬금포를 쏘아주고 빠른 발로 2루타, 3루타 갯수를 늘려 장타율을 유지하지만 꼭 한두달 부상으로 휴업해서 누적 스탯은 별로.

수비 역시 2011년을 거치면서 사람이 바뀐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아졌다. 특히 타구 판단력이 좋아져 이전의 빠른 발만 가지고 수비를 하던 모습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상대 팀의 타구가 펜스로 가면 팬들이 "아, 2루타구나" 하고 먼저 생각하게 했던 갑갑한 펜스플레이 역시 많이 보완되었는데 조원우 전 외야 수비 코치의 역할이 큰 듯. 그래서 앞에 써놓은 어이없는 수비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송구 역시 평균급은 되는지라 2012 시즌 기준 56경기를 좌익수로 출전해 보살 3개를 기록하였고, 2008년부터 쭉 매년 3~5개 가량은 기록하고 있다. 2012 시즌 전준우, 손아섭과 함께 보살 4위 안에 롯데 선수가 3명이 포함되는 위엄을 달성. 오히려 좌익수로서는 수비력이 상당히 준수한 선수가 되었다. 그래도 준수한 어깨에 비해 송구가 아주 정확한 것도 아니고, 빠른 발에 비해서는 여전히 수비범위가 충분히 넓지 않은 등 기아 이적 후 중견수를 보기에는 수비력이 조금 모자라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잦은 부상도 풀타임 중견수를 맡길 정도의 신뢰를 주지 못했고 결국 이는 이용규를 놓친 2014시즌 이대형 영입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루에서 그의 최대 강점은 폭발적인 가속력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김경문 감독이 당시 팀내에서조차 주구장창 팬들에게 욕을 먹던 김주찬을 선발하여 의문을 자아내었는데, 김경문 감독이 밝힌 선발 이유가 "안타가 나왔을 때 1루에서 3루까지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주자"라는 것이었다. 두 베이스 이상 주루에서는 김주찬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게 중론.

현역 야구 선수 중에서 가장 도루 센스가 좋다고 평가받는다. 스타트나 순발력뿐만 아니라 슬라이딩을 할 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연결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는 평. 기아에서 선수생활 후반기, 30대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에도 주자로써 득점상황 등 빨리 뛰어야하는 상황들에서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엄청난 주력을 뽐냈다. 다만 부상 방지때문인지 1루로는 전력질주를 하지 않는 편이다. 즉, "마음먹고" 뛰면 많은 나이에도 주력 하나만큼은 국내 탑급 선수이며, 기아에서 순수 주력만으로 김주찬과 비교될 수 있는 선수는 로저 버나디나정도가 유일했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신체조건에 비해 야구센스가 부족해 이리저리 까였지만, 2011년 이후로 이 문제가 많이 보완되면서 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발돋움하였다. 그 결과 2012 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서 외야수 최대어로 떠올랐고 50억 대박을 터뜨리면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였다.


3.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FA 후에는 프야매의 멘토링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2013시즌 그의 기아 이적 후 비슷한 유형의 타자인 신종길이 타격에 눈을 떴고, 2014시즌에는 이대형이 고향에 돌아와 몸야구 트리오를 결성하더니 갑자기 컨택 능력을 회복하며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물론 드립이고 실제로 도움줬다는 얘기는 없다.

2015년부터는 부상 문제로 도루를 자제하고 있다.[9] 대신 장타에 눈을 뜨면서 홈런도 잘치는 중장거리 타자로 변모하고 있다. 2016년에는 20홈런과 100타점을 넘으면서 개인 기록을 깨는 중. 백골퍼가 거포로 키우려고 했던 게 괜한 짓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이 덕분에 기아에서는 현 트렌드인 강한 2번타자에 걸맞게 주로 2번타자로 나서면서 활약했다. 그렇게 2018년 까지 4년 연속으로 두 자릿 수 홈런을 터뜨리며 큰 부상없이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2019년에는 세월의 무게를 거스를 수 없는 듯 부상으로 인해 100경기 출전에 그쳤다. 무엇보다도 장타력이 많이 하락하면서 3홈런, 장타율이 0.374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불혹이 된 2020년에는 아예 경기 출전 수가 6경기로 급감하며 활약상이 전무했고 그대로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기아에서의 전체적인 모습은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제 몫을 다 하면서 당초 거품이라고 평가받던 FA 50억도 혜자였다는 평을 받았다.

[1] 물론 이때도 뜬금포가 은근히 많아서 순장타율이 그렇게까지 낮은 타자는 아니었다.[2] 야구선수 중에 이 정도로 빠른 선수는 정말 드물다. 애초에 100m를 11초에 뛸 수 있다면 육상쪽을 본격적으로 했어도 에이스급의 포텐을 가졌을 것. 물론 빠른발만 있다고 다 되는건 아니다. 역대 선수 중 가장 빠른 발을 가졌다고 하는 오태근을 떠올려본다면 말이다. 나중에 오태근조다 더 빠른 기록을 가져왔다던 신민재가 10초 8대의 기록으로 0.5초만 단축시킬 수 있다면 육상 국가대표는 몰라도 어지간한 대회의 메달을 싹쓸이할 수 있는 엄청난 속도이다.[3] 정작 당시 암흑기를 겪던 박정태는 타격폼을 간결하게 수정해 후반기에 날아다녔다.[4] 그러나 부활한 후로는 볼넷이 매우 적지만 삼진도 많지는 않은 전형적인 성공한 배드볼 히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메이저리그로 치면 칼 크로포드일억리 선생, 혹은 게선생과 유사한 수준. 사실 멀리 미국 갈 거 없이 전성기 라뱅만 극단적인 배드볼 히터이지만 적은 삼진 덕에 볼삼비가 막장이 아니다.[5] 김주찬 외에 고종욱, 장민석, 신종길, 이대형, 노수광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 한국에선 상당히 드문 타입인지라 제대로 된 노하우가 없어 코칭스태프들이 육성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나마 이 계열에서 성공한 선수라면 LG의 이병규 정도. 다만 이병규의 경우에는 최상급 수비 센스도 탑재하고 있다.[6] 2007 시즌 막판에는 그 보기 어렵다는 글러브 토스 홈런을 만들어 준 일도 있었다(…). 당시 경기의 중계가 없어 영상은 없지만 사진이나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2008 시즌에는 부상 전까지 준수하게 수비하다가도, 부상 이후는 OME급 수비를 보여주었다.[7] 이 때, 실제로 유재웅의 머리를 직격하는 송구를 해서 그 공이 관중석까지 튀어 날아갔다.[8] 이 정도의 비율은 BB/K 비율이 높기 마련인 각 팀의 1번 타자들과 비교해도 중간은 되는 정도. 롯데에서 2011 시즌 1번을 맡은 전준우보다는 훨씬 나은 수준이다.[9] 그래도 주력 자체는 떨어진 것이 아닌지라 2016년에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로 싸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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