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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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관료, 변호사이다.
여담으로,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한자 이름도 같고 역시 고대 법대 출신인 법학 교수(1961년 생)가 있다.
2. 생애[편집]
1939년 3월 29일 강원도(현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서 태어났다. 울진 후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사법시험(제8회)에 합격해 대한민국 공군 군법무관(공군 검찰부장)으로 복무하였다.[2] 전역 후 판사로 근무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영덕군-청송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찬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황병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제13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울진 원자력 발전소 유치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로 낙선하였다. 낙선 후 노태우 대통령 임기 말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 때 민주당 김대중 대표최고위원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하면서 김대중과 인연을 맺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당파국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봉화군-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3]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지지를 선언하며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봉화군·울진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김광원 후보에 밀려 16표 차로 낙선하였다. 같은 해부터 2001년까지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영남권 건전보수를 자임하며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중도 사퇴하였다.
- 웬만한 국회의원 선거 최소득표차보다 적은 표차였지만 같은 선거에서
문세표 사건3표차로 당락이 갈린 곳(경기 광주)이 있어서 묻혔다.(...) 물론 완전 묻힌건 아니고 TK에서 민주당 후보로 거의 당선될 뻔 했기에 상당한 주목을 받긴 했다. 1996년 총선에서 안동시 갑 선거구에 권오을이 통합민주당(1995년)으로 당선된 이후, 민주당계 정당 당선자는 계속 없다가 김중권 낙선 16년이 지나고서야 민주당 국회의원(김부겸, 홍의락)이 나왔고, 아직도 대구가 아닌 경상북도에서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없기 때문에 경북에서는 이게 가장 전설적인 기록이긴 하다. 그러나 사실 김중권은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출신에, 김부겸은 꼬마민주당 활동을 하다가 한나라당에 합류했고, 홍의락은 민주당계(그 가운데 민평련 쪽)가 맞으나 무소속으로 당선되었기에 순수 민주당계 의원의 TK 입성은 아직도 요원하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터지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김광원 후보에게 또 졌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김광원의 후임(?)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강석호 후보에게 연거푸 낙선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통합당 김두관 후보 캠프의 고문을 맡았다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3. 선거 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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