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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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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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TV부문 여자 코미디연기상
제26회
(1990년)


제27회
(1991년)


제28회
(1992년)

동작그만

김지선
(쇼 비디오 자키)
박미선
(청춘행진곡)


이경애
(한바탕 웃음으로)
TV부문 여자 예능상
제38회
(2002년)


제39회
(2003년)


제40회
(2004년)

김미화
(개그콘서트)

김지선
(개그콘서트)


조혜련
(코미디하우스)




김지선
金智善[훈음] | Kim Ji Sun


파일:김지선_프로필.jpg

출생
1972년 2월 5일[1] (52세)
전라북도 고창군[2]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58cm, 48kg, A형, 230mm
학력
염광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방송연예과 / 중퇴)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연극 전공 / 학사)
가족
2남 2녀중 둘째, 부모님
배우자 김현민(2003년 5월 17일 결혼 ~ 현재)
장남 김지훈(2004년 6월생)
차남 김정훈(2005년 11월 21일생)
삼남 김성훈(2007년 10월 2일생)
장녀 김혜선(2009년 9월 30일생)
종교
개신교[3]
소속사
티엔엔터테인먼트
데뷔
1988년 KBS 비바청춘 #
1990년 KBS 코미디 탤런트 선발대회 대상 수상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연예계 활동
3. 수상 경력
4. 그 외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개그우먼이자 연예계 다산의 아이콘. 2022년 기준 젊은 층에는 다산으로 유명한 코미디언, 그 이상 나이대에는 개그 콘서트꽃봉오리 예술단 코너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것은 제2의 전성기에 불과하다. 김지선이 개그 콘서트에서 활약하던 때는 이미 김미화 바로 뒷세대 정도로 대선배급이었다. 유재석보다도 1년 선배이며, 1990년대 스튜디오 꽁트세대의 마지막에서 개그 콘서트에 넘어와 선배들이 모두 밀려나거나 무대를 바꿀때 홀로 버티면서 후배들과 같이 개그 콘서트에서 코너를 뛰었던 마지막 생존자다. [4]


2. 연예계 활동[편집]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8년에 KBS의 '비바청춘'[5]에서 활약 # #하여 방송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개그맨 데뷔는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소리를 듣던 인재였다. 뛰어난 연기력과 발성 덕분에 이때부터 코미디 천재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기대에 맞게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90년 5월에 열린 KBS 코미디 탤런트 선발대회 대상을 받아 KBS 공채[6]로 데뷔했고, 신인 시절부터 쇼 비디오 자키 - 남남북녀의 북한 사투리 개그로 이미 주목 받는 신인이었다. 염광여자고등학교 시절 이미 아마추어 신분으로 TV에 나가 북한 사투리 개그를 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개그 신동이나 마찬가지였다. 1991년 '괜찮아유'에서 최양락의 부인으로 등장했고, SBS 개국과 동시에 SBS로 건너가 활동했고, 몇 년 만에 인기 개그우먼이 됐다.

개그우먼으로서 상당히 춤 솜씨도 좋았는데[7][8]이 장기를 잘 살려서 '꾸러기 콘테스트'라는 SBS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패러디한 '서태순과 아이들'이라는 코너에서 김경식, 윤정수와 같이 팀[9]으로 호흡을 맞췄고 진 히로인으로 등장했다.[10] 당시 김지선은 이 코너가 인기가 너무 좋았고 나이트클럽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와 멤버들과 같이 행사를 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저축을 했었다고 한다. # 이후로도 비교적 끊임 없이 개그와 예능 양면에서 활약한다.

1991년작인 영구와 땡칠이 4편인 홍콩할매 귀신에도 너구리각시로 등장한다. 당시 아직 신인이었으므로 싼맛에 선배 심형래를 따라 캐스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뭐 심형래 영화에서 후배 동원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촬영 중에는 얼굴을 다치는 바람에 어머니를 울게 만들었다고 한다.

개그콘서트에서 맡은 코너들은 꽃봉오리 예술단, 집에서 사제끼기, 9시 언저리뉴스, 봉숭아 학당의 아줌마 역 여럿(그 중 하나는 섹시 컨셉) 등이며, 맡은 코너는 대체로 중박 이상 치는 수준이었다.

2018년에는 새로운 홈쇼핑의 여왕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 뷰티 디바이스, 헤어트리트먼트 등 게스트로 출연하는 제품마다 매진과 매출 1위를 기록했다. 관련 자료.

그리고 KBS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개승자에 변기수팀 와일드카드로 출연하여 18년만에 공개 코미디 무대에 나왔다. 까마득한 후배들의 약올림과 견제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본연에 충실했다.

2023년 3월 5일, KBS 걸어서 환장 속으로에 출연하여 장성해진 자녀들을 공개하였다.

3. 수상 경력[편집]


  • 1990 KBS 코미디 탤런트 선발대회 대상
  • 1991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코미디연기상
  • 2003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예능상
  • 2009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여자 최우수상
  • 2011 MBC 방송연예대상 우정상
  • 2012 보건복지정책홍보 유공자 시상식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 2012 SBS 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베스트 엔터테이너
  • 2013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 2014 SBS 연예대상 러브FM부문 라디오 DJ상


4. 그 외[편집]


동갑의 잘생긴 남자와 결혼했고,[11]아들만 셋을 낳다가 2009년 가을, 넷째로 을 낳아서 다산 개그우먼으로 잘 알려져 있다.[12] 세바퀴에서는 아예 다산이 아예 하나 기믹화. 이후 3남 1녀와 함께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도 자주 출연해서 올바른 엄마상을 많이 보여 준다.

그토록 바라던 딸이 생겼음에도 남편이 계속 낳자고 졸랐다고 한다. 실제로 어느 아침 프로그램에서 남편이 "아직 호적등본에 남은 칸이 있는데 이걸 다 채우고 싶은 욕심이 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김지선 본인은 결사 반대였고 결국 4명 출산으로 마무리를 지은 셈. 라디오 스타에서도 자녀는 3명까지만 생각했는데 넷째는 언제 생겼는지 짐작이 안 갔다고 하였으며 이 소식에 자신의 어머니 왈 "사위, 해도해도 너무 한 거 아니냐?"는 일침을 날렸다고 한다. 일례로 세바퀴에서 짧은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 본인 근처에 다가오면 남편 입을 쪽 찢어버리겠다는 내용이라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다산의 여왕 또는 신이 내린 자궁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13] 그 덕에 개그 콘서트 10주년 특집 봉숭아 학당에서 출산드라패러디번식드라로 등장해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번식드라로 출연했을 때도 이미 만삭이었다. 이 때문인지 현재 다자녀 캠페인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더욱 대단한 것은 방송생활을 겸하면서 아이 넷을 전부 모유 수유로 키웠다는 것. [14]

자기관리가 굉장히 철저한데, 아이 넷을 낳고도 20대 시절보다 더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15] 세바퀴에서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위해서는 아내도 늘 긴장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아이 넷을 낳은 비결이 역시 거기에 있었던 듯. 스스로 성형한 것을 밝히기도 했다. 나름 자기관리의 일환인 듯하다.

정선희와는 염광여자고등학교 동창, 뽀로로 성우로 유명한 이선과는 대학 학과 동기다. 덕분에 장남이 어릴 적 밥 투정을 하자 연락하여 뽀로로 목소리를 내서 아들 밥 투정을 고쳐달라고 의뢰하자 전화로 뽀로로 목소리를 내어 고쳐줬다.

상술된 내용대로 개그우먼 시절 맡은 활달한 역할에 비해 실제 성격은 의외로 내성적이다 못해 소심한 부분도 강하며 마음도 여리다고 한다. 워낙 어릴 때 데뷔를 해서 젊은 선배 포지션을 맡게 됐을 때도 후배들을 갈구거나 혼낸 적이 없고 오히려 후배들이 다른 선배들에게 혼나고 왔을 때 토닥이던 성격이었다고 한다. 중년이 되어 본인이 소심해졌다고 느낄 때는 이영자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는데, 김지선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부터 봐 온 이영자는 김지선을 어릴 적과 다름 없이 "애기"라고 부르며 상담해줬다고...

우리말 겨루기에서는 54회에서 같은 방송사 후배 코미디언 정철규와 팀을 이루어서 4단계까지 진출했으며, 647회에서 우승했다. 1대 100에서는 41회와 52회에 100인으로 출연해서 각각 최후의 5인과 4인에 들었으며 1인으로는 134회와 336회, 496회에 출연해서 각각 7/5/6단계까지 생존했다.

맹구의 대사 중 "선생님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요" 대사 흉내에 일가견이 있다.

세바퀴 여성 고정 출연자들[16]의 단톡방이 있어 매일 연락하고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한다. 영상 1, 영상 2.

최근에 CTS기독교TV "내가 매일 기쁘게"라는 간증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을 정도로 상당히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현재의 직분은 집사이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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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음] 슬기 착할 [1] 빠른 연생으로 1971년생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2] 성장은 서울특별시에서 했다.[3] CTS기독교TV의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집사 직분이다.[4] 실제로 임하룡 심형래 이성미 그리고 박승대가 개콘에 고정으로 합류 했지만 각각 3개월 3주 2주 2주만에 하차를 하였고 김지선만 유일하게 출산으로 인해 하차할때까지 3년여간 개그 콘서트에서 활동을 하였다[5] 고등학생들이 출연하여 장기를 뽐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남희석, 유재석,정선희, 서춘화 같은 미래의 개그맨들이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훗날 가수가 되는 김경호도 출연했다.[6] 봉숭아 학당에서 김준호랑 연기하는 장면 중 당시 코너 그렇습니다 패러디 장면에서 6기라고 공개된 바 있다. 참고로 거기 원래 주인공 임혁필은 13기고, 김준호는 14기다.[7] 개그 콘서트 봉숭아 학당 초기에 댄서 기믹으로 나오기도 했다. 근래에 댄스에 능한 대표적인 개그우먼들인 신봉선이나 김신영보다 몇 단계 위의 내공이다.[8] 이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9] 군기 서열이 심했던 개그계 특성상 고등학교 졸업 직후 곧장 데뷔한 김지선이 선배였지만, 나이가 김경식보다 더 어린데다가 김지선만 유일하게 KBS 출신이라 처음에는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단, 김지선의 사적인 실제 성격 자체는 당찬 꽁트를 하던 개그 이미지와 달리 내성적이고 권위적이지 않은 편이라 후배를 혼내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었고, 나이 많은 후배를 하대하지 않았다. 많은 수의 SBS 개그맨 선배들 눈치 때문에 오빠라고는 부를 수 없어서 '경식씨'라 부르고 김경식은 '선배님'이라 부르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친해져서 김경식이 '지선선배'라 부르며 반존대말까지 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김경식 자체도 선배 대우를 잘 하는 성향에 내성적인 면이 있어 친해졌어도 김지선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훗날 세월이 흘러 김지선이 경식오빠라고 불렀을 때도 지선선배라고만 불렀다고 한다. 윤정수의 경우는 빠른 나이인 것까지 같은 동갑이라 김경식처럼 처음에는 존대했지만, 나중에 친구를 먹었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 동갑 후배보다는 연상 후배가 더 불편한 건 어쩔 수 없고, 두 사람 다 윤정수에 비하면 성격들인 내성적인 게 컸던 듯.[10] 이 코너가 사실상 최초의 코믹 댄스 코너나 다름없었다.[11] 현재 남편은 아기띠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 중이다. 이전에는 대학로에서 오징어 요리 식당을 운영하여 체인점까지 꾸렸다. 지금은 청주시에만 매장이 남아 있는데, 현재 남편은 식당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12] 넷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시어머니가 "너는 애 낳는 것이 재밌냐?"라고 물으셨다고... 본인은 "자식들에게 재산 많이 물려주는 것보다, 세상살이에 의지되는 형제자매를 물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13] 그녀의 대표 별명으로는 다산 지선이 있었다.[14]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모유 항목 참조. 선배 박미선의 조언을 따른 것인데, 그 때문에 스케줄 중간에 유축을 하거나 유축을 하지 못 할 때는 바늘로 가슴을 찌르기까지(!) 하면서 버텼다고 하며 스케줄이 끝나고 돌아오면 새벽에는 직접 수유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절친이자 본인처럼 다산 연예인인 김혜연의 아이에게도 젖동냥도 해 줬다고 한다. 스케줄이 불규칙하고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은 연예인들이 일찍 단유를 하고 분유수유로 돌아서는 일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체적 무리가 크게 따름에도 모유수유를 했던 김지선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15] 20년 전 모습과 비교를 하면 오히려 가녀린 외형이라고 할 정도로 차이가 매우 크다.[16] 본인을 포함하여 박미선, 이경실, 선우용여, 조혜련, 양희은, 이경애, 안문숙 8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