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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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한민국 대법관
김지형
金知衡 | Kim Ji-hyung

파일:김지형대법관.jpg
출생
1958년 4월 21일 (65세)
전라북도 부안군
학력
전주고등학교
원광대학교 법경대학 법학과
현직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재임기간
대법관 (이용훈 대법원장 제청 / 노무현 대통령 임명)
2005년 11월 21일 ~ 2011년 11월 20일
경력
제21회 사법시험 합격
제11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동부지법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대법원 대법원비서실장
대법원 대법관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장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장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1. 개요
2. 생애
3. 대법관 재임 시절
4. 대법관 퇴임 이후
5. 여담
6. 경력



1. 개요[편집]


대법관,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대한민국변호사이다.

대법관 재임 시절에는 '독수리 5형제'[1]로 알려졌다.


2. 생애[편집]


1958년 4월 22일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전주고등학교원광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79년 21세의 나이로 제2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2]

1984년 판사로 임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사건을 맡게 되면서부터 노동법 분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노동법 분야에 뛰어든 것은 1989년 독일 괴팅겐 대학 유학이 계기였다고 하는데, 오랜 역사를 자양분으로 노동법 연구가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뤄지는 독일에 대비되는 우리 노동법의 척박한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법관으로서 어떤 분야에 힘을 쏟아야 할지 명확한 좌표를 설정하게 되었다고.

이후 `노동법해설', `근로기준법해설' 등의 명저를 내놓았고 노동전담부 재판장을 맡아 선고한 판결들 가운데 다수는 대법원에 상고돼 판례로 남기도 했다.


3. 대법관 재임 시절[편집]


참여정부시기인 2005년 11월,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으로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임명 과정에서 천정배 당시 법무부장관이 사법연수원 동기모임에서 대법관 후보로 김 후보자를 거명한 후 대법관으로 지명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성전환자 호적정정을 인정하는 등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에 힘썼다. 그러나 2009년 이건희 전 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핵심 인사 8명에 대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의 상고심 재판 주심을 맡으며 비배임 판결이 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법원 내 드문 노동법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노동법실무연구회를 대법원 정식연구회로 발족해 직접 회장을 맡아 연구활동을 계속했고 2010년 8월에는 국내 최초의 노동법 주석서인 `근로기준법주해'(전3권)를 내놓기도 했다. 김지형은 퇴임사에서 "법 해석과 적용에 능통한 `유능한 법관'이 되기보다는 더디더라도 법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가치를 고민하면서 찾아가는 `좋은 법관'이 되라고" 후배 법관들에게 조언하며 그 해답을 진정 `인간에 관한 것'이라고 믿는 노동법에서 찾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 대법관 퇴임 이후[편집]


노동법의 대가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게 퇴임을 기념하여 노동법실무연구회의 첫 논문집 `노동법실무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지냈다. 특히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이후 정부로부터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되어 2019년 4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4개월간 전국 9개 석탄화력발전소의 노동안전보건 실태 파악, 석탄화력발전소의 노동안전보건 개선과제 및 재해 재발방지 대책 권고안 마련에 힘썼다. 김지형 위원장 "원하청구조의 책임공백이 김용균 죽음 원인"


5. 여담[편집]


  • 진보성향 대법관으로 독수리 5형제라는 평가에 대해 김지형 대법관은 "멀쩡한 사람이 조류가 돼버렸다"며 가벼운 불평을 남기기도 했다.

  • 법원 내 손꼽히는 노동법 권위자로 <노동법 해설>, <근로기준법 해설> 등 노동법 관련 단행본과 논문을 저술했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법률 해석으로 소장 판사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

  • 2005년 대법관 임명 당시 비 서울대 출신의 40대 고법 부장판사라는 점에서 서울대, 법원행정처 근무가 필수였던 '대법원 순혈주의'를 완화시킨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 당시 대법관 14명 중 유일한 비서울대(원광대) 출신이었다.

  • 장인(김용구. 사시 9회. 1935-2023)도 판사 출신 변호사이다.


6. 경력[편집]


  • 1979 제 21회 사법고시 합격(사법연수원 11기)
  • 1980.03 원광대학교 법경대학 법학과 졸업
  • 1984.09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 1986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 1989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판사
  • 1989 독일 괴팅텐대학교 법관 해외장기연수
  • 1991 광주고등법원 판사
  • 1991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파견
  • 1993 서울고등법원 판사
  • 1995 서울지방법원 판사
  • 1996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부장판사
  • 1998 사법연수원 교수( 형사재판실무, 노동법, 독일법 등 강의)
  • 2001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민사항소 노동전담부 재판장)
  • 2003.02 특허법원 부장판사
  • 2003.09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2003 대법원 대법원장비서실 실장
  • 2005.09 사법연수원 연구법관
  • 2005.11 ~ 2011.11 대법원 대법관
  • 대법원 산하 노동법실무연구회 회장
  •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 2013.03~ 2014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
  • 2013.04 ~ 2015.04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
  • 2014.09 ~ 2015.08 국세청 조세법률고문
  • 2016.01 ~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 2014.01 ~ 2016 법무법인 지평 고문변호사
  • 2017. ~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 2017.07 ~ 2017.10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
  • 2018.03 ~ 2022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 2019.04 ~ 2019.07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장
  • 2020.01 ~ 2021.12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 명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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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보성향의 대법관인 김영란, 전수안, 이홍훈, 박시환, 김지형을 묶어 이르는 말. 전수안 대법관은 "몇몇 판결에서의 독수리 5형제로서가 아니라 저 자신의 수많은 판결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2] 최연소 합격은 아니다. 당시 최연소 합격자는 만19세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합격한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이학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