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용(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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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용 (金珍龍 / Kim Jin-Ryong)
생년월일
1982년 10월 9일 (41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남도 진주시
신체 조건
182cm
학력
진주봉래초 - 진주중 - 진주고[1] - 한양대
포지션
스트라이커, 윙어
소속 클럽
울산 현대 호랑이 (2004~2005)
경남 FC (2006~2008)
성남 일화 천마 (2009~2011)
강원 FC (2011~2013)
포항 스틸러스 (2012, 임대)
느그리슴발란 FC (2014~2015)
DRB-하이콤 (2016)
경남 FC (2017)
국가대표
2경기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우승 경력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前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2. 클럽 경력[편집]


한양대 시절부터 김호곤 감독 눈에 들어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에 자주 선발됐다. 한양대 3학년을 마치고는 2004년 신인 자유 선발을 통해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다. 그러나, 울산 입단 후 고질적인 발목부상을 안고 다니며 결국 2004 아테네 올림픽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그러나, 2005년 박주영과 경쟁 끝에 삼성 하우젠 컵 득점 2위에 오르는 등, 기량이 만개해 5월 본프레레호에 깜짝 발탁됐다. 그러나 9월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후기 리그에 모습을 나타내진 못했고, 팀이 K-리그 우승컵을 드는 장면을 그라운드에서 보지 못했다.

2006년 신생 팀인 경남 FC와 계약 기간 3년에 연봉 5억이라는 최고 대우로 고향 팀으로 이적했다. 첫해 박항서 감독 아래 리그 및 컵대회에서 30경기 7골 4도움을 기록하며 팀 공격에 압장섰다. 특히, 울산에서 중앙 공격수로 뛰었던 것과 달리 경남에선 측면 윙어로 나서며 활발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2007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발목 수술을 받으며 시즌 아웃됐고 팀은 까보레뽀뽀를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잊혀진 선수가 됐다.

2008년 31경기 6득점 3도움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시즌이 끝나고 김동현과 트레이드 되며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게 된다. 조광래 감독이 전력 외 선수라 판단해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았고, 신태용 감독의 눈에 들어 성남으로 이적한 것이다. 당시 경남 팬들은 프렌차이즈 스타를 쉽게 떠나 보낸 것에 대한 심한 반발이 있었고, 구단도 2009년 1년 간 등번호 18번을 결번 처리하는 등, 지역 연고 출신 스타에 대한 예우를 보여줬다.

2009년 성남 첫해엔 초반에 주전으로 나서다 또다시 발목 부상을 당하며 5개월 간 아웃됐고, 이후 모따, 라돈치치, 조동건에 밀리며 주로 후반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하지만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11년 여름, 이창훈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강원 FC로 이적했다. 강원에서 후반기 꾸준한 기회를 받으며 다시금 부활을 노렸고, 이듬해 포항 스틸러스로 1년 임대 후 완전이적 조건으로 옮겼다.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차전 감바 오사카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종료 직전 이명주의 슈팅이 골키퍼를 맞고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달려들면서 차넣어 포항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전경쟁에서 밀려나고, 리그와 FA컵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며 시즌을 마쳤고 포항이 완전영입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2013년 강원으로 임대복귀했다. 그러나 김학범 감독의 경질 이후 강원에서도 전력외 자원으로 분류된데다가 팀마저 강등당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됐다.

2014년 말레이시아의 네기리 셈빌란 FC와 2년 계약을 체결해 8골을 넣는 등 쏠쏠한 활약을 했다. 2016년에는 같은 리그 DRB-하이콤에서 1시즌 뛰었다.

2017년, 고향 팀 경남 FC로 이적하며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팀의 우승과 K리그 클래식 승격에 기여하며 시즌을 마쳤다.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며 시즌 마지막 홈 경기인 36라운드 성남 FC전에서 진경선과 함께 구단이 성대한 은퇴식을 치러주며 고향 팀에서 박수 받으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


3.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5년 8월 4일 동아시안컵에서 북한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동아시안 컵 이후 월드컵 최종예선 사우디전(17일) 대비 친선경기 겸 벌어진 2005년 8월 14일 "남북통일축구"에서 득점을 올렸다. 다만 이 경기는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해 A매치 득점으로는 기록되지 않는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포지션은 중앙 및 측면 공격수. 이렇다할 특기나 신체조건, 결정력이 있다기보단 공격수로 필요한 여러 자질을 갖추고 있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모든 능력치를 고루 가지고 있어서 잘만 성장한다면 대형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으나 여러 번 부상을 당하며 잠재력을 키우기는 어려웠고, 본인의 젊은 시절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대중적으로 급격히 인지도를 얻고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던 2005년이 뻗어나갈 시기였지만 바로, 그 해 후반기에 십자인대 부상[2]을 당하며, 타격을 입었다.


5. 우승 경력[편집]






6. 관련 문서[편집]




[1] 경남 FC의 U-18 팀이지만, 김진용이 재학 중일 때는 경남이 창단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경남 유스 출신은 아니다.[2] 기사에 따라 인대파열은 아니고 무릎부상이라고만 보도한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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