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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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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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17번}}}
정혁진
(1982~1983)

김진욱
(1984~1992)


박상근
(1993~1998)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00번}}}
결번

김진욱
(1993)


공의식
(1997.6.8.~1997)
두산 베어스 등번호 82번
결번

김진욱
(2006~2013)


스즈키
(2014)
kt wiz 등번호 72번
이광근
(2014~2016)

김진욱
(2017~2018)


김강
(2019~)




파일:김진욱 해설.jpg

김진욱
金鎭旭 | Kim Jinwook

출생
1960년 9월 25일[1] (63세)
경상북도 영천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중앙초 - 춘천중 - 북일고 - 동아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84년 1차 지명 (OB)[2]
소속팀
OB 베어스 (1984~1992)
쌍방울 레이더스 (1993)
지도자
분당중앙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98~1999)
구리인창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0~2004)
두산 베어스 재활군 투수코치 (2006)[3]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07~2010)[4]
두산 베어스 재활군 코치 (2010~2011)[5]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11)[6]
두산 베어스 감독 (2012~2013)
kt wiz 감독 (2017~2018)
해설위원
sky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5~2016)
TV 조선 -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해설위원 (2023)
BGM
10CM - 아메리카노[7]
응원가
Java Jive - I love coffee I love tea[8]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연도별 성적
4. 해설자 경력
6. 기타
7. 역대 감독 전적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야구인. 현역 시절에는 한국프로야구 OB 베어스의 언더핸드 투수로 활약하였고, 두산 베어스의 2군 투수코치 및 불펜 코치를 거쳐 2012년부터 두산 베어스의 제8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skySports 해설위원을 하다가 조범현 감독의 뒤를 이어 kt wiz의 2대 감독이 되었다.


2. 선수 경력[편집]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9] 영천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가서 중학생 시절을 춘천에서 보냈다. 이후 고등학교는 천안시에서 다녔는데 이는 당시 북일고등학교가 전국에서 각지의 야구 인재를 쓸어 모으던 시절이라서 그 역시 스카우트되면서 북일고로 진학한 것.[10] 북일고에서는 결국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부산의 야구 명문 학교인 동아대학교로 진학했다. 오히려 대학 무대에서 더 활약했는데 동아대학교를 우승 시키고, 선수 자신은 국가대표가 되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110181331861006120.jpg

파일:external/pds.joins.com/201110100343777012_2.jpg
젊었을 때는 연예인급 외모였다.기타사진들

1984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1차 15순위의 지명을 받아[11] 입단한 그는 1992년까지 통산 221경기에 출장해 53승 71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3.61를 기록했다.[12] OB 입단은 당시 OB의 연고지가 충청남북도였기 때문에 연고지 선수 지명의 자격으로 들어온 것. 언더핸드 투수로 선발로 뛰면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던 선수였다. 당시 김성근 감독 체제의 OB는 투수들을 돌려 막으면서 박철순의 공백을 메우느라 바빴는데, 이 때 윤석환과 함께 신인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하던 선수 중 하나였다.

최고 구속 147km/h의 빠른 공을 주 무기로 변화구를 가미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타입으로, 싱커나 체인지업이 주무기였던 일반적인 언더핸드 투수와 다소 다른 유형이었다.

베어스 프랜차이즈에서의 입지는 한 마디로 "암흑기의 에이스". OB가 암흑기에 접어든 1988년과 1989년에 10승을 거두면서 팀의 에이스로 마지막 자존심을 세운 선수였다. 선수 생활 후반기에는 점차 흔들리면서 결국 은퇴는 OB에서 하지 못하고, 1993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이적했으나 7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은 후 선수 생활을 접었다.

통산 세 차례 두 자리수 승수를 거두었고, 동아대학교 시절의 명성에 비해서는 크게 대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OB의 암흑기 시절에 활약한 괜찮은 투수였다. 특히 1989년에는 천하의 선동열과 선발 맞대결을 벌여 (1피안타 완봉승 및) 1:0 승리를 거두고, 40여 일 만에 또 1:0 완봉승을 이끌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13] 이보다 앞선 1987년에도 맞붙어 15이닝 무승부를 일구어 내기도 했다.[14] 그래서 "선동열 킬러"라는 별명이 있었다. 당시에는 나름대로 인기도 있어서 1989년 올스타전에서는 투수 부문 팬 투표 1위로 동군 선발 투수로 등판하기도 했다. 외모도 잘 생긴 편이라서, 항상 "미스터 베어스"라고 일컬어질 정도였다. 외모 때문에 올스타의 동군 베스트9에 뽑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1987년에는 주로 마무리로 뛰며 4월 19일부터 5월 13일까지 13이닝 연속 노히트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연속이닝 노히트 최고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 기록을 2016년 같은 팀의 마이클 보우덴이 14이닝 무피안타를 기록하면서 경신했다.

선수 시절에 제일 유명한 에피소드는 1988년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내정되었는데, 경기 며칠 전 외야에서 러닝으로 몸을 풀다가 김광림의 프리배팅 타구에 하필이면 영 좋지 않은 곳을 강타당하며 수술을 받은 일이 유명하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대타로 장호연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 선발로 등판하여 사상 최초의 개막전 +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는 것.[15] 그래도 고자의 위기를 벗어나 복귀하여 10승 투수는 되었다. 둘 다 대단하다.

2.1.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4사구
탈삼진
WHIP
1984
OB
25
118
6
11
2
0
3.05
107
68
43
1.40
1985
30
143
10
8
0
0
3.02
134
65
57
1.32
1986
28
81⅔
4
6
3
0
4.08
81
44
41
1.49
1987
32
150⅓
4
7
6
(3위)
0
2.57
120
61
81
1.18
1988
29
139⅓
11
8
2
0
3.10
116
53
73
(5위)
1.16
1989
33
158⅓
11
9
3
0
3.35
130
71
95
1.19
1990
18
78⅓
2
12
0
0
6.66
90
42
38
1.60
1991
9
35⅓
2
6
0
0
5.86
39
23
13
1.67
1992
17
69⅔
3
4
0
0
4.52
68
33
48
1.3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4사구
탈삼진
WHIP
1993
쌍방울
10
17⅓
0
0
0
0
7.27
25
9
6
1.85
KBO 통산
(10시즌)
231
991⅓
53
71
16
0
3.68
910
469
495
1.33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4
5완투
1완봉
1985
4완투
2완봉 (4위)
1986
1완투
0완봉
1987
7완투
2완봉
1988
5완투
2완봉 (5위)
1989
8완투
4완봉 (2위)
1990
1완투
0완봉
1991
1완투
1완봉
1992
1완투
0완봉
통산
33완투
12완봉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진욱(1960)/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해설자 경력[편집]


파일:external/pds.joins.com/201504261141771776_553c50beed7b4.jpg
감독님 거 참 잘 생깄네요

2015년 3월 28일 skySports에 영입되어 4월 7일 kt vs. SK 경기 중계방송부터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임용수 캐스터와 호흡을 맞추는 일이 많았다.

해설위원으로서는 대부분 호평이다. 본인 특유의 경상도 억양 때문에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내용 자체는 좋은 편이다. 일단 내용에 있어서는 이순철의 대척점으로, 칭찬을 정말 많이 한다. 김진욱 감독 칭찬을 세 보려다 포기하는 일도 있으며, 심판이 공 던지는 걸 보고까지 칭찬을 한다. 하지만 이게 마냥 물렁하게 칭찬만 하는 게 아니고, 각각의 상황에서 각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시청자들에게 아주 정확하게 짚어 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논란은 있을지언정 전현직 해설자들을 통틀어 감독으로서의 성과가 가장 좋았던 사람이 김진욱이다. 1군 경험은 두산 베어스의 2년 뿐이기는 하지만, 오랜 2군 감독 경험과 다사다난했던 1군 감독 경험을 토대로 다방면에서 야구를 설명할 줄 안다. 더욱이 자신의 선수 시절 기록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 일절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두산 감독 시절 발굴한 선수들에 대해서도 완전히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며 야구팬들 사이에서 인격자로 칭송을 받기도 한다. 겸손갑 귀피신 !

기존의 해설자 중 비슷한 스타일인 이효봉 해설의 경우 자신의 독점적 입지를 다소 상실한 셈이 된 듯하다고 볼 수 있으나, 이효봉은 2015년 스카이스포츠 먼데이 나잇 베이스볼에서 진행자 최희에게 김진욱을 견제하는 마음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다는 표정으로 "김진욱 위원은 40년 전 중학시절 같은 지역 타학교 에이스 선수로 만나, 잊을 수 없는 경기를 보여준 분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감명을 받았던 경기였고 그 경기 이후 김진욱 위원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만큼 멋진 선배였다. 그때 이후로 야구계 선배로써 인격적으로도 훌륭하신 분이라 항상 존경하는 분이다.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게 된 것도 너무 좋고, 견제같은 생각은 해본적도 없다."고 밝혀, 전혀 원망의 마음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명백히 표현했다. 다만 두산 해설을 할 때에는 두산 선수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자학센스가 늘어간다. 게다가 소위 어이없는 발언을 치는 것이 탁월하다. 감독시절에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인터뷰를 섣불리 하지 않는 신중한 모습이었으나 해설위원이 되자 그에 대한 반동인지 빈도가 적지만 가끔씩 촌철살인급으로 내지르곤 한다. 특히 임용수와 궁합이 굉장히 좋은 편인데 21일 한화-kt전이 연장으로 돌입하자 정신줄을 놓은 듯(...) 해설 내내 둘이서 다양한 만담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7년 kt wiz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한동안 해설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TV 조선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해설위원으로 합류하게 됐다.

5. 스타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진욱(1960)/감독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기타[편집]


  • 현역 시절 별명이 외모 때문에 '주윤발'이었다.(딸이 아버지 얼굴 그대로인데 예쁘고 키도 커서 학교에서 전지현이라 불렸다.)
  • 선수 시절의 전성기가 짧았기 때문인지 현역 감독 중 인지도가 가장 딸렸다.[16] 실제 2012년 한국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도 김진욱 감독은 다른 감독들에 비해 주목을 확실히 덜 받았고, 말수도 적었다. 게다가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우승감독 출신인 이토 쓰토무가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일부 팬들은 김진욱 바지감독 이토 실세 코치로 여겼다.
  • 파일:attachment/김진욱(야구)/Example.jpg
  • 이토 드립으로 인해 별명이 빠가진욱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이후로 보이는 행보에 진짜로 빠가진욱이 됐다. 물론 사실이 아닌 개그다. 실제로는 이토 코치랑 의견 차이가 커서 이토는 거의 놀다가 갔다고 한다. 차라리 짤이 진짜라면 팀이 이렇게 돌아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2013 시즌 이토 쓰토무치바 롯데 마린즈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선두로 올려놓자 김진욱에 대한 비판은 커져가고 있다가 치바 롯데가 DTD를 시전하고, 반대로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서 잠잠해졌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017년, 둘은 자신들이 이끄는 팀을 최하위 팀으로 만들어 버렸다(...)[17]
  • 두산 2군 코치로 있었을 때, 사기급 뎁스를 자랑하던 두산의 내야진에서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2군에 내려와 의기소침해 있던 내야수 김재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수비만큼은 국내에서 니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힘들겠지만 후배들을 위해서 뛰어주라.
2군에 있는 후배들에게 니 수비를 보여주는게 어떤 코치에게 배우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저런 수비를 하는데도 2군에 있다니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라.
저들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게 니가 할 일이다.
이 말을 들은 김재호는 2군 경기에서 날아다녔고 후배들에게도 존경스럽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었는데 그 어떤 선수가 힘이 나지 않을까. 선수들의 마음을 읽는 데 이만한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카트라이더 키배 사건 이후 추락 일보 직전의 노경은을 2군에서 다잡은 것만 보아도...
  • 말을 잘 한다. 근데 자신이 그 전에 한 말과 안맞는 팀 운용을 자주 보이며 말이라도 못하면 하는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대표적으로 '좌우놀이'에 신경쓰지 않는다 하면서 좌투수 나오는 날이면 우타자로 도배하고, 좌투수 상대 대타는 무조건 우타자만 낸다든가 한다든가, 1군 선수라도 페이스가 좋지 않은 선수는 과감히 빼겠다 말했으면서 1할을 겨우 넘기고 타구 질도 안좋은 땅볼기계 최준석은 못 써먹어서 안달하고, 초반 페이스가 좋았던 정수빈, 허경민은 잦은 결장으로 그 좋던 페이스를 다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입만 산 감독이라는 평이었지만 2013년에 부정적 여론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여러가지 실책 덕분에 한대화 한화 감독, 이만수 SK 감독과 함께 2012년 올해의 감독 삼파전 구도를 형성하였다.
  • 두 번에 걸친 트레이드 파문으로 킬진욱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물론 이 별명은 후술할 트레이드건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사장된 별명.
  • 2013년 5월 5일 경기후 인터뷰에서 홈 승부 이후 충돌로 부상당한 이진영 건으로 논란이 많았는데 홈승부 아웃을 시킨 두산선수들이 이진영이 뒹굴고 있는데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세레머니를 해서 논란이 있었던 상황에서 김진욱 감독이 이진영의 쾌유를 바란다는 인터뷰를 해서 이 부분에서만큼은 개념 인터뷰를 해 오랜만에 호감을 얻기도 했다.
  • 해임 이후의 상황, 재평가, 해설가로서의 호평과 인격자로서의 면모들이 맞물이면서 디시인사이드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커피갑, 귀피센세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잊을만 하면 찬양을 받는다. 이건 특히 NC 다이노스의 창단 감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오랜 콩라인 시절의 원흉으로 지목받기 시작한 김경문에 대한 현재 두산 팬들의 평가와는 매우 대조적인 부분이다. 투수 혹사 문제가 심각했던 김경문 체제와는 달리 김진욱은 베어스 팬들에게 선수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고, 베어스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김태형 감독 체제의 기틀을 닦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팀과 선수를 아끼는 사람으로서의 면모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시간이 갈수록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불러오자는 말은 또 나오지 않는 것이, 김태형 체제가 워낙 튼튼하다 보니... 그래도 2군 감독이나 투수코치로는 본인이 고사하겠지만 두산 팬들이 꼭 모셔오고 싶다는 의견을 심심치 않게 표한다.
  • '커피중독자'라는 별명이 있는데, 술을 잘 못 하고 커피를 하루에 '30잔' 정도 마셔서 생긴 별명이다. 슈퍼마켓에서 캔커피를 박스째로 사다 놓는다고. 다만 블랙커피는 못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 감독이 작전을 써서 통할 때는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 '커피향 작두'라는 표현을 쓴다. 그냥 보통 불릴 때는 '김커피', '커피'라고 불리며[18], 잘할 때는 커갈량이나 커명장, 삽질을 계속할 때는 당연히 돌커피 소리를 들었다. 최훈 프로야구 카툰에선 커피가 담긴 커피잔으로 표현된다. 심지어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피도 커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감독이 된 이후 5잔으로 줄였다고는 하는데, 5잔도 많이 마시는 거다. 해설가 전업 후 먼데이 나잇 베이스볼에서 밝힌 바로는, 커피를 줄이자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나 뭐라나...[19]
파일:attachment/김진욱(야구)/CoffeeDoo.jpg
아주 쌓아 놓고 드신다... 흠좀무...
  • 덕분에 주변에서 건강 걱정이 끊이지 않는데 모 해설위원 曰 : "커피만 마시면 모르겠는데 담배까지 태우시니.."
  •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임용수 캐스터와의 프로야구 중계 중 비어보이가 카메라에 잡히자 "커피는 왜 저렇게 팔지 않느냐"라는 발언불평을 하기도 했다.
  • kt로 가게 된 계기도 커피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 kt가 2021년 시즌 통합우승을 하면서 현재 감독인 이강철 감독과 조범현-김진욱 감독 재임시절 주장이었던 박경수가 우승 소감 인터뷰에서 전임감독들인 조범현과 김진욱을 언급하며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7. 역대 감독 전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2
두산 베어스
133
68
3
62
3/8위
3위[20]
2013
128
71
3
54
4/9위
준우승
통산
261
139
6
116
2 시즌
2017
kt wiz
144
50
0
94
10/10위
탈락
2018
144
59
3
82
9/10위
탈락
통산
288
109
3
176
2 시즌
총계
549
248
9
292
4 시즌

8. 관련 문서[편집]


[1] 음력 8월 5일.[2] 1984년 당시에는 드래프트 순위가 없고 연고지 고교졸업자를 무한 지명할 수 있었다. 김진욱이 입단한 1984년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하기 이전으로 OB 베어스는 당시 서울특별시 33%를 포함, 충청권 전역을 연고지로 했다. 천안 북일고 출신인 김진욱은 지명순위 없이 그냥 연고팀이던 OB 베어스에 입단하게 된다.[3] 5월 16일~[4] ~5월 31일[5] 2010년 6월 1일~2011년 5월 30일[6] 5월 31일~[7] SBS Sports에서 이닝 사이 광고 전에 아이캐치로 틀어준다. 화면도 아예 대놓고 김커피(...).[8] kt wiz의 김진욱~ kt 승리를 위하여~ kt wiz의 김진욱! 믿! 습! 니! 다! 감! 독! 님!(x2). 원곡의 제목을 주목하라. 구단에서도 이제 대놓고 김커피 캐릭터로 밀고 있는(...) 모습. 다만 김진욱 감독 본인은 썩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9] 그래서인지 인터뷰할 때 전형적인 동남 방언을 쓴다.[10] 북일고는 김진욱이 중학을 졸업하는 해에 춘천중 졸업생을 주축으로 야구부를 창단하였다. 김진욱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북일 재단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교 시절 투수 겸 빼어난 타격의 3번 타자였다. 계속된 부상으로 투수로 등판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오랜 부상에서 회복한 고3 시절에는 1년 후배 이상군과 함께 북일고를 창단 2년 반만에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3위에 올려놓았다.[11] 앞의 주석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당시에는 연고지역고교 출신 선수를 제한없이 지명할 수 있었다.[12] 평균자책점, 통산 승수 대비 패가 많은데, 승운이 따라 주지 않기도 했고(데뷔 시즌 6승 11패 3.05), OB의 암흑기라 불리던 1990년대 초부터 성적이 추락했기 때문이다.(1990년 2승 12패 ERA 6.66...)[13] 선동열1989년에 3패를 당했는데, 2패가 김진욱의 OB에게 당한 것이다.[14] 선동열은 약 한 달 뒤 그 유명한 최동원과 15이닝 완투 대결을 해서 무승부를 했다.[15] 심지어 투구 수도 딱 99개였다고 한다.[16] 2012년 기준 8개 구단 감독 중에 김시진, 류중일, 선동열, 이만수, 한대화, 김기태는 리그를 씹어먹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며 양승호만이 선수 시절보다 더 유명세를 탄 경우. 이쪽은 다름 아닌 양승호구. 2013년에는 한대화가 빠져나가고 김응용이 한화 감독으로 왔고 정작 한대화는 KIA로 김시진은 롯데로 염경엽은 넥센의 새 감독으로 임명됐다. 염경엽은 선수시절 당시 커리어와 인지도에서는 김진욱에게 밀리나 LG 코치 시절 프런트의 배후 흑막이라는 루머로 유명세를 타서(...) 인지도가 더 높다.[17] 치바 롯데 : 퍼시픽리그 6위/KT : 10위[18] 이 때문인지 한화 소속의 투수 김진욱의 별명도 덩달아 김커피가 되었다.[19] 실제로 대부분의 커피 중독자들이 음용량을 줄이면, 금단증상 때문에 일시적으로 컨디션이 몹시 나빠진다.[20]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만나 3-1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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