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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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하원 문장.svg 미국 연방 하원의원 (캘리포니아 41구)
제97~102대
빌 로워리

제103~105대
제이 김


제106·107대
게리 밀러


미합중국 제103-105대 연방 하원의원
제이 창준 김
Jay ChangJoon Kim | 김창준[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ay_Kim.jpg

출생
1939년 3월 27일 (85세)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 청운정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국적
대한민국미국
배우자
준 김 (이혼)
제니퍼 안 (재혼)
학력
대전중학교 (졸업)
보성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법학과 / 중퇴)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토목공학 / B.S. · M.S.)
한양대학교 (정치학 / Ph.D)
병역
대한민국 육군 의병 제대
종교
기독교 (개신교, 감리회)[2]
소속 정당


의원 선수
3 (하원)
의원 대수
103, 104, 105
약력
프린스턴 대학교 겸임교수
공화당 명예고문위원
국무부 외교행정비서관 (1986~1988)
캘리포니아 제41구 연방하원의원 (1993~1999)

1. 개요
2. 생애
3. 논란
4. 여담
5. 선거 이력



1. 개요[편집]


한국계 미국인 정치인. 영어명은 제이 창준 김(Jay ChangJoon Kim)으로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미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또한 아시아계 최초로 미 연방 하원의원 3선을 기록한 인물이면서 동양인 최초의 공화당 출신 연방의원이다.

2. 생애[편집]


1939년 3월 27일,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 청운정(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대전중학교서울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중퇴한 뒤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학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후에 대한민국 서울 한양대학교에 정치학 명예박사를 수여 받았다.

그는 1976년 토목설계 회사인 제이킴 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2명으로 시작하여 130명의 직원과 미국 서부 3개 주에 사무소를 둔 미국 상위 500위 설계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엔지니어로서 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미국 서부 5개 주의 엔지니어 면허를 가지고 있다.

1990년 캘리포니아의 다이아몬드바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1991년 다이아몬드바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1992년에 그는 새로 형성된 제41 선거구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미 하원에 당선되어 미 의회에 당선된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이 되었다. 또한 국외에서 정치적 공직에 당선된 최초의 한국인이자 미 연방 의회에 당선된 최초의 아시아계 이민자가 되었다.

미국 공화당 소속으로 1992년, 1994년, 1996년 3번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1998년에는 공화당 당내 경선에서 같은 다이아몬드바 시장 출신이었던 게리 밀러에게 패배했고 , 2000년에 지역구를 옮겨 제42 선거구에서 4선에 출마하였으나 예비 선거에서 Elia Pirozzi에 패배하면서 이후 정계를 은퇴했다. 결과적으로 Pirozzi는 본 선거에서 당시 현직 하원 의원이 었던 Joe Baca(민주당)에게 패배하였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연방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은 김창준 이후 무려 20년이나 지난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 되어서야 나왔다. 당선인은 민주당 소속의 앤디 김(뉴저지 3구) 후보.[3][4]

2007년부터 그는 Washington Korean-American Forum이라는 싱크탱크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재임하며 언론사에 칼럼을 기고하거나, 강연회를 주최했다.

2011년에 그는 한국에서 김창준 미래한미재단을 설립하여 한국의 중소기업인들에게 세계시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전문 지식을 제공하고 미국의 중소기업정책 및 지원 시스템 등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는 활동을 하였으며, 2012년에는 김창준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자신의 정치적, 전문적 경험을 활용하여 한국의 정치지도자 양성을 돕고있다.

2013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그는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임명되었고, 중소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을 돕는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미국과 한국에서의 위치를 통해 양국 간의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고 새롭게 실시된 자유 무역 협정은 양국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서 번성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도널드 트럼프당선을 예측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비하라>라는 저서를 발간하였다. 당시 한국 언론의 힐러리 편향이 너무 심하다고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가 한국인 최초의 미연방국회의원으로서 활동 중인 미국연방국회의원협회(Former Members of Congress. 이하FMC)에 Korea Study Group을 만들기 위해 한미 양국을 오가며 활동하였으며 2017년에 이 연구그룹이 신설되게 되었다. 독일, 일본, EU에 이어 FMC 내에서 네번째로 설립된 것이며 이 연구그룹을 통해 FMC 소속의 전현직 미 연방국회의원들과 한국 정재계가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그는 2020년에 김창준미래한미재단과 김창준정경아카데미를 김창준한미연구원으로 통합하여 한미간 민간교류 활성화와 후학양성 이라는 두가지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김창준한미연구원의 이사장으로서 2019년부터 매년 5월~7월 사이 미국 전직연방상하원의원 방한단을 맞이하여 10여일간의 일정으로 공공기관, 지자체, 기업들과의 만남을 갖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방한 행사는 그가 미국 FMC의 멤버로서 직접 FMC와 소통하여 구성하는 프로그램인만큼 이 교류를 통한 기대효과와 사후관리 영역의 확장성 및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3. 논란[편집]


후배 한국(계) 연방 하원 의원들이 탄생했는데 기분이 어떠냐 - “물론 기분이 좋지만 ‘한국계’는 섭섭하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니까. 뭔가 한국 사람 같아 보이지 않고, 또 남편이 흑인이고, (물론) 어머니가 한국 여자니깐 마땅히 한국계이지만 100% 한국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 보인다”

앤디 김 의원에 대해서 - “부인이 아랍 계통이고 애들도 그렇고, 한국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이런 것을 봐서는 약간 저거(하)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 반갑다.”

“그런데 100% 한국 사람이면 더욱 좋겠는데, 순종, 순종, 저와 같은 순종이면... (웃음)”


2020년 미국 양원·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소속 메릴린 스트릭랜드 당선자[5]를 두고 민주당이여서 아쉽다고 한 것까지는 본인이 공화당원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큰 문제가 없지만, 순종이면 좋았을텐데 라고 발언하여 인종차별 논란을 빚었다. # 다음날 즉각 사과하였다.

김창준 의원은 후에 해명하기를, '한국에서 태어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자랐거나 미국태생이여도 한국문화에 대한 문화적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사람이 당선되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였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며 당선인 선서 때 한복을 입고 나올 정도로 한국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정체성을 갖고 있던 스트릭랜드 당선자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이란 추정도 있었다. 인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활동을 해왔던 김창준 의원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었다는 변호 주장도 있다. [6]

그러나 문제의 발언이 단순히 '발언의 취지는 좋았다'와 '언론이 자극적으로 보도했다'로 쉴드칠만한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창준 의원은 어린 시절 이민간 게 아니라 20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살며 한국 대학에서 공부도 했던 사람인데, '순종'이란 표현의 뜻과 뉘앙스를 몰랐을 리 없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국에서 소수인종으로 살아온 사람이라, 게다가 일반인보다 여러 사회문제에 익숙할 수 밖에 없는 정치인이라, 미국 사회에서 인종문제가 얼마나 민감한지 모를 리도 없다. 유감스럽게도, 스스로가 차별받는 것에는 분노하면서 남을 차별하는 것에는 둔감한 사람들이 있다.[7] 문제의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일 가능성이 있다.[8]

김창준 의원은 현재 80대의 고령인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해당 발언 이후 진심으로 사과문을 밝힌 김창준 의원에게 단 한번의 실수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굴레를 씌우는건 지나친 비약이라는 것. 한마디로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김창준 의원이 활동해왔던 캘리포니아주의 다이아몬드 바나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던 제41선거구의 경우 히스패닉만 2022년 기준 58.1%이며, 흑인은 9.4%, 아시아인은 5.4%의 비율을 보인다. 미국은 실제로 군대나 정부, 정치계에서의 인종차별은 연방헌법 상 더욱 엄격하게 단속하고 규제한다. 즉 은퇴 후 고령이 되어 나온 첫 실언이다.

해당 발언은 고령의 김 의원이 적합한 단어를 구사하지 못한 순간적인 실수에 더 가깝고, 바로 다음날 진심으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언론을 통해 사죄하였다.


4. 여담[편집]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
캘리포니아 41구


101,753 (59.62%)
당선 (1위)
초선
1994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
82,100 (62.13%)
재선
1996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83,934 (58.46%)
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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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자: 金昌準[2]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와싱톤 한인 교회의 장로이며, 한국에 있을 때는 새에덴교회에 출석한다.[3] 영 김 후보도 당선이 유력했으나, 우편투표 결과가 뒤늦게 집계되면서 상대 후보가 당선되었다. (영 김 후보는 2020년에 같은 상대 후보를 꺾고 당선됨으로써 이를 설욕하게 된다)[4] 그리고 앤디 김 의원이 2022년 중간선거에 당선되면서 26년만에 한인 3선 의원이 됐다.[5] 아버지가 흑인,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워싱턴 주 타코마시장을 지냈으며, 미 의회 최초의 한국계 여성 정치인 중 한명이다.[6] 이 인터뷰가 나올 당시에는 아직 캘리포니아의 몇몇 선거구에서 결정이 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이후 그의 바람대로(?) '순혈' 한국계 2명이 당선되긴 했다.[7] 예를 들면 미국의 일부 흑인들이 피부색 때문에 자기들이 차별받는 것에는 거세게 항의하면서, 정작 자신들도 다른 유색인종(아시아인, 히스패닉)에 대해 차별하는 경우가 있다.[8] 실제로 김창준 의원처럼 미국으로 이주한 1세대 한국계 사이에서는 같은 유색인종인 흑인이나 히스패닉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이들 노인 세대는 미국으로 이주했든 한국에 거주하든 간에 인종문제나 인종차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혼혈인에 대해 딱히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튀기'란 표현을 쓸 정도다. 심지어 그게 나쁜 말인 줄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받아 뻣속까지 박힌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와 순혈주의가 원인일 수도 있고, 기득권 계층인 미국 주류사회(당연히 주로 백인)에 대한 동경심이 타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비뚤어진 방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