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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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택
金春澤


파일:김춘택.jpg

생몰
1670년(현종 11) ~ 1717년(숙종 43)
출생지
한성부(現 서울특별시)
본관
광산 김씨

1. 개요
2. 상세
3. 가족 관계
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조선의 문신으로 사계 김장생의 직계후손. 숙종의 첫번째 장인 김만기의 손자이자 사씨남정기를 지은 김만중의 종손자이며, 인경왕후의 조카이다. 김만중이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의 소설을 집필하자 이것을 한글로 번역해서 궁녀들에게 배포하기도 했으며 장희재를 몰락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리고 인현왕후의 복위 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는데 그래서 이러한 시를 저자거리에 퍼뜨렸다.


2. 상세[편집]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이니 철이 없는 호랑나비 오락가락 하더이다.


장희빈이 중전에 있을 때에는 제주도로 유배당하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 결국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 데에 성공하자 그 공으로 숙종에게 벼슬을 받을 뻔했으나 장희재의 집안 사람들과 내통해서 일을 꾸민 점 등으로 인하여 공은 세웠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전면취소되고 제주도로 또다시 유배당했다. 인현왕후를 복위시킨 공훈에 대해서는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난 시점인 고종때가 되어서야 보상을 받았다.

일설에는 숙빈 최씨와 내연의 관계라는 소문이 있다. 아마 둘이 동일한 1670년 생 동갑인 데다가 숙빈 최씨와 긴밀한 관계였던것이 그런 소문을 낸 원인으로 보이지만 김춘택이 당시 기준으로 워낙 잘생겨서 더 퍼졌다는 얘기도 있다.

뭐 경종 독살설에 비하면 그다지 흥하진 않은 썰이고, 영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소론, 남인 계열의 음모론[1] 정도에 불과하다.


3. 가족 관계[편집]




4. 대중매체[편집]


- 어쩐지 김춘택이 사용한 야비한 술수는 모조리 삭제되고 젊은 영웅으로 활약하고 있다. 극중에서 장희재의 전부인 '자근아기'(홍진희 분)와 내통한 것도 장희재가 조강지처인 자근아기를 내치고 숙정이라는 젊은 미인을 들어앉힌 것에 자근아기가 스스로 김춘택에게 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단 장희재가 숙정을 들어앉히고 자근아기를 내친 것이나 김춘택이 자근아기를 포섭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 최상훈이 연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 영웅의 면모가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현왕후 근본주의자처럼 극단적인 성격인 것도 묘사된다. 일단은 장희빈에 맞선 긍정적인 쪽에 비중이 좀더 가있긴 하지만. 재미있는 게, 이 작품에서 송일국의 어머니인 김을동 씨는 장희빈의 측근 상궁으로 출연했다. 사실상 모자가 드라마에서 적으로 만난 것이다.

- 무슨 일인지 이름이 심운택으로 개명당했다. 그리고 어째 동이의 정부 비슷하게 묘사되면서 동이와는 지나치게 친하게 묘사된다. 처음에는 뭔가 좀 없어보이는 양반집 도련님풍으로 등장하다가 관직에 올라서는 제법 양반다운 풍모를 보이며 동이의 최측근으로서 계속 활동하였으며 제주도로 다시 유배되는 장면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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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춘택의 아들이 영조라는 음모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