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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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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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파일:체육훈장.png
연도
2005년
이름
김태균
분야
스포츠
사유
체육발전유공
체육훈장기린장(5등급)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4
2,376안타[1]
2017년




김태균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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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우승 엠블럼 V4.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10

파일: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은메달
2009

파일: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0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6 플레이오프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2 KBO 리그 타격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8 KBO 리그 홈런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8 KBO 리그 장타율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2, 2013, 2014, 2016 KBO 리그 출루율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5,2007,2012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자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5년 6월 KBO 리그 월간 MVP
이호준
(NC 다이노스)

김태균
(한화 이글스)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보유 기록
한 경기 최다 볼넷
6회[1]
한 시즌 최다 출루
310출루[2]
최다 연속 경기 출루
86경기[3]
역대 우타자 최다안타
2209개[4]


김태균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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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52번
오주상
(1997~1999)

김태균
(2001)


조현수
(2002)
한화 이글스 등번호 10번
김승권
(1995~2001.4.27.)

김태균
(2002)


조현수
(2003)
한화 이글스 등번호 52번
조현수
(2002)

김태균
(2003~2009)


김강
(2010~2011)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52번
헤이우치 히사오
(2002~2009)

김태균
(2010~2011)


마스다 나오야
(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52번
김강
(2010~2011)

김태균
(2012~2020)


KBO 영구 결번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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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02김태균.png

한화 이글스 No.52
KBS N SPORTS 해설위원
김태균
金泰均 | Kim Taekyun

출생
1982년 5월 29일 (41세)
충청남도 천안시[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천안남산초등학교 (졸업)
천안북중학교 (졸업)
북일고등학교 (졸업)
대전대학교 공과대학 (지반설계정보공학[2] 05 / 학사)
대전대학교 대학원[3] (지반설계정보공학 / 석사 과정 수료)
신체
185cm, 122kg[4][5], AB형
포지션
1루수[6], 지명타자[7], 3루수[8]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1차 지명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1~2009 / KBO)
치바 롯데 마린즈 (2010~2011 / NPB)
한화 이글스 (2012~2020, 2021[9] / KBO)
프런트
한화 이글스 단장 특별 보좌 (2021)
해설위원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21~)
병역
예술체육요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3위)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TK 스토리[10]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별명왕 김튜브파일:유튜브 아이콘.svg김태균[TK52]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투태균의 야인구단[11]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운동부 둘이 왔어요[12]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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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내 김석류(2010년 결혼~현재)
장녀 김효린(2011년 10월생)
차녀 김하린(2018년 3월생)
등장곡
장미하관 - '오빠라고 불러다오'[1] [2]
응원가
[ 응원가 보기 ]
패티김 '서울의 모정'[1][2][3]
Ricky Astley 'Together Forever'[4][5]
랜덤게임 테마+술게임 노래 '마셔라 마셔라 쭉쭉쭉쭉'[6][7]
다비치 '8282'[8][9]
Immediate Music - Electric Romeo[10][11]
The Beach Boys - Sloop John B[12][13][14]
구단 자작곡 (2020) 링크[15]

종교
불교[3][4]
상훈
체육훈장 기린장
에이전트
재믹스씨앤비
취미
영화감상, 먹방
MBTI
INFP

1. 개요
3. 은퇴 이후
3.1. 단장 특별 보좌 경력
3.2. 해설위원 경력
3.3. 방송 활동
5. 평가
5.1. 경기 외적인 멘탈 이슈
6. 수입 및 선수 가치
6.1. KBO 리그 시절 연도별 연봉 및 계약금
6.2. 연봉 오버페이 관련
9. 여담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언제나 한화 이글스는 저의 자존심이었고 자부심이었습니다.

2020년 10월 22일, 은퇴 기자회견에서의 김태균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KBS N SPORTS 해설위원. 선수 시절 포지션은 1루수.

KBO 역대 우타자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선수다.[13] 선수 시절 사용한 등번호 52번은 한화 이글스 역대 네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주요 기록으로는 은퇴 시점 기준으로 통산 출루율 3위[14][15], 통산 타율 7위[16], 통산 홈런 공동 11위, 통산 타점 3위, 통산 볼넷 2위 등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신인왕, 타격왕, 홈런왕, 장타율왕, 출루율 등 여러 커리어를 모두 가진 기록 보유자이다.[17]

이외에도 대한민국 스포츠인 중에서 최다 별명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2020년 10월 21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며, 2021년 5월 18일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이 되었고 5월 29일 SSG 랜더스와의 홈경기에서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을 진행했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태균/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 수상[편집]



2.1.1. KBO 리그[편집]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 MVP / 신인왕
    • 신인왕 (2001)
    • 플레이오프 MVP (2006)
  • 타이틀
    • 타율 1위 (2012)
    • 홈런 1위 (2008)
    • 장타율 1위 (2008)
    • 출루율 1위 4회 (2012, 2013, 2014, 2016)
  • 골든글러브
    •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회 (2005, 2008)
    •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2016)


2.1.2. 일본프로야구[편집]


파일:NPB 로고.svg
  • 우승
    • 일본시리즈 우승 (2010)
    • 타점왕 (2010)


3. 은퇴 이후[편집]



3.1. 단장 특별 보좌 경력[편집]


2021년부터 정민철 단장을 보좌하는 어드바이저 역할을 수행 할 것이라고 한다. 정민철 단장은 훗날 감독을 맡을 수도 있으니 프런트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참고로 한화의 단장 보좌 자리는 2013년부터 2년간 한용덕 전 감독이 맡은 적 있다. 김태균은 1년동안 단장 보좌 역할을 맡았다.

한편,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시즌 중에 은퇴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는데[18], 팀이 리빌딩하는 상황이고, 조금이라도 여운을 남길 수 있을 때 은퇴하는 것이 맞단 생각이 들어서 은퇴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기회를 주고 싶어서 떠난 거냐는 질문에는 조금 다르단 식으로 답했다. 말 그대로 본인이 이제는 은퇴해야 할 때라고 강하게 느꼈다고 보는 게 맞을 듯. 물론, 후배들이 잘했으면 하는 마음은 매우 크다고 한다.


3.2. 해설위원 경력[편집]



파일:김해설 23.png

2023 시즌 프로필 사진

2021년부터 KBS N 스포츠[19]에서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같이 데뷔한 해설위원은 KBO리그 내 별명 양대산맥으로 유명했던 박용택.

정규리그 첫 해설은 4.7. LG 트윈스 vs kt wiz 경기.[20] 이후 4.13.~15. 한화 이글스 vs 삼성 라이온즈 시리즈에도 참여했다. 작년까지 뛰었던 친정팀 한화 경기에서도 별다른 편파가 없고, 전달력도 준수해서 괜찮은 평을 받았다. 또한 중계 중에도 온갖 자뻑과 드립을 선보이며 웃음도 줬다. 그 와중에 해설하면서도 별명은 계속 늘고 있다.

4월 22일 한화 이글스 vs 키움 히어로즈 경기에서 안 좋은 목상태로 인해 이닝을 거듭할수록 목소리가 점점 안 좋아지더니, 8회 들어서는 웃픈 극한의 쉰 목소리로 해설을 진행했다. 특히 9회가 압권이었는데 캐스터는 김태균의 목소리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다가 장난으로 계속 말을 걸었고, 김태균 본인도 본인 목소리에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2022년 10월 6일 한화 이글스 vs 키움 히어로즈 경기에서 한화가 우여곡절 끝에 끝내기 승리를 하긴 했지만 자신의 친정팀의 한심한 경기력에 대한 분노를 애써 참는게 느껴질 정도로 평소의 해설 스타일과는 다르게 경기 후반에 친정팀에 대해 독설을 서슴없이 쏟아내었다.[21]

선수시절 몇 번의 말 실수가 있었고, 스마트한 이미지는 아닌지라 걱정이 많았으나 현재까지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의외로 말주변이 좋고 선수들을 따스하게 바라본다는 평이다.[22][23]


3.3. 방송 활동[편집]


은퇴 발표를 한 직후 각종 방송, 인터뷰 등에 다수 출연하며 선수 시절보다도 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2021년 3월 11일 별명왕 김튜브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는데 개인 일정이 바빠서 어느 순간부터 한동안 방치하다가 2023년 11월 7일 신규 채널을 오픈했다.

또한 2021년 4월 19일에는 박용택과 함께 KBS Joy의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했다.[24]

2021년 7월 15일 <한 걸음씩>이라는 노래를 발표하며 가수 데뷔를 했다.#

7월 29일엔 휴가를 간 컬투 김태균을 대신해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의 일일 DJ를 맡았다.

2021년 8월 21일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세번째 순서로 나와 YB나는 나비를 불렀다.# 무대에 오르기 전 음반도 낸 가수라며 자신있게 나섰으나 시작부터 음정과 박자를 모두 놓치며 큰 웃음을 줬다. 다행히 처음부터 다시 불렀을 때 꽤 준수한 가창력을 보였다. 결과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부른 최병철에게 패배했다.

은퇴 후 해설 위원으로 있으면서 자신에게 조언을 구한 타자들[25]에게 아낌없이 노하우를 알려주고, 그 조언을 들은 타자들이 후에 폼이 눈에띄게 좋아지면서 타격이 부진한 팀의 팬들이 농담반 진심반으로 타격코치로 모셔오자는 반응이 종종 보인다. 그리고 김태균은 그 에피소드를 해설중에 풀면서 자뻑한다.

2021년 9월 19일 추석특집으로 진행된 복면가왕 듀엣 특집에 컬투 김태균노래 실력까지 꼭 닮은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 붕어빵 친구 팀으로 출전하였다. 결과는 복면가왕 족보에 이름 새기러 왔습니다! 명창가문 25대손 팀에 밀려 1라운드 탈락.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같이 야구와 관련된 웹예능을 준비하고 있음을 밝혔고, 이후 TV조선에서 투태균의 야인구단을 시작했다.

2021년 10월 24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스폐셜 가족으로 두 딸들과 등장했다. 이후에도 계속 출연하였으며 2022년 3월부터 공식 홈페이지에 고정가족으로 소개가 올라오면서 정식으로 합류. 야구선수 출신들 중 최초로 고정출연을 하게 되었다.[26] 그러나 출연한지 8개월만에 하차하였다.

2022년 3월 29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MBN 예능 빽 투 더 그라운드의 고정멤버로 합류했다.

이미 먹방 유튜버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현주엽과 함께 유튜브 채널 '운동부 둘이 왔어요'에서 먹방을 하며 만담을 나누는데, 김태균이 어딘지 모자른 모습을 보이고 현주엽이 딴지를 거는 모습이 꿀캐미를 보여주고 있다. 현주엽에 지지 않는 먹성은 덤이다. 한국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본인의 영향인지 동갑내기 절친 이대호, 채태인과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최지만, 전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유희관윤석민 등 야구계에서 활약한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들이 자주 게스트로 출연하는 편.

2022년 9월 15일부터 KBS joy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인 내일은 천재에 고정출연했다.

2023년 1월부터 강호동이 진행하는 SBS 예능 프로그램인 이상한 나라의 지옥법정에 고정출연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태균/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평가[편집]


"당일 경기를 앞두고 투수 미팅할 때 타자 연구에서 유독 해법이 나오지 않는 타자가 김태균이었다. 어떤 코스에 공이 들어와도 배트와 공과 닿는 면적이 평균적으로 KBO 타자들 중 가장 크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어딜 던지라고 투수에게 시켜야할지 갑갑했던 기억이 난다."

차명석


"전신을 이용해서 때려야 하는 나에 비해 몸 전체를 쓰지 않고도 70%의 힘만으로도 담장을 넘기는 파워가 있다. 축이 되는 뒷다리가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부러웠다. 나하고는 타격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대조되지만 제일 닮고 싶은 선수가 김태균이다."[27]

이승엽


4번 타자 치고 적어보이는 홈런 수와 팀 성적 때문에 저평가를 당하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커리어 대부분을 약팀에서 출전하며 만들어낸 성적이 이 정도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KBO 리그로 한정지었을때, 역대 우타자들 중 김태균보다 확실하게[28]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타자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29] 우타자라는 부분을 빼고 봐도 3000타석 이상 타자 중 통산 wOBA에서 김태균보다 앞선 타자는 오직 양준혁 밖에 없다.

대한민국 야구 올타임 라인에 꼽히는 이대호와 동갑내기 우타 내야수라는 공통점으로 라이벌로 묶이며 종종 비교되었는데,[30] KBO리그에만 한정할 경우 오히려 wRC+로는 통산에서든 커리어하이에서든 김태균(통산 149.8/ 커리어하이 195.6)이 이대호(통산 140.1./ 커리어하이 194.2)를 앞선다. 다만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데 이대호는 최전성기를 포함한 5년을 해외리그에서 보냈기에 KBO리그 스탯으로 한정하면 김태균 보다 전성기의 성적이 최소 3년은 빠져있기에 누적과 비율 모두 KBO 스탯으로 한정시 하위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더붙이자면 전체 커리어로 본다면 이대호의 우위가 확실하다.

5.1. 경기 외적인 멘탈 이슈[편집]


김태균의 문제점으로 흔히 멘탈 문제가 지적된다. 이 문제는 일본 진출 이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줄곧 밝히면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 점, 여기다 "팀도 동료도 없었다"라고 자신이 용병이라 차별받았다는 발언[31][32]니시오카 츠요시 재일 아웃팅 뒤통수 드립이 두루두루 겹쳐 두부멘탈 인증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전만 해도 김별명이라 불리며 야갤 최고의 스타였지만, 일본 복귀 이후로 야갤 공식 비호감으로 등극.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15억 연봉을 받는 30대 중반 고참임에도 소위 말하는 보스 기질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즉, 한 팀의 중심타자로는 충분하지만 리더로는 모자란 선수라는 것. 하긴 데뷔 때부터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같은 까마득한 선배들 아래에 있다가 일본에서 돌아오니 졸지에 고참이 된 경우라 리더십이 있는 게 더 이상할지도. 하지만 2015년에 주장다운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 주며 리더십은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경기 외적 멘탈 논란과는 달리 타석에서의 멘탈은 흔들림이 없다. 긴장을 전혀 하지 않고 심지어 가뜩이나 경기가 안 풀리는 상황에서 어이없는 스트라이크 콜을 받아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다음 투구에 집중한다. 어지간해서는 초구를 치지 않고 반드시 보는 건 이런 침착함과 무관하지 않다.


5.2.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편집]


이하 내용은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대비해서 라이언 사도스키가 네덜란드 대표팀 헨슬리 뮬렌 감독에 제공한[33] 한국 대표팀 분석 보고서 중에 김태균 부분이다. #

  • 덩치 큰 오른손타자. 수비는 별로지만 빼어난 타자다. 지난 시즌 석 달 동안 4할 타율에 근접했고 3할 6푼대로 시즌을 마쳤다. 타율이 올라가면서 장타력이 떨어졌는데 이건 일본프로야구 생활의 영향일 수 있다. 중견수가 우중간 쪽으로 몇 발 옮겨야 한다. 뜬 공이 그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벤지 몰리나 만큼 느리기 때문에 내야수들은 어깨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깊숙히 위치를 잡아야 한다. 내 경우엔 속구를 낮은 쪽으로 집중적으로 던졌고 변화구는 유인구로만 썼다. 브레이킹볼에도 매우 강하다. 수비 때는 움직임이 둔하다. 푸시 번트를 고려해볼 만하다.

  • 내야수들은 송구가 가능한 한도 안에서 최대한 깊이 서야 한다. 2루수는 1-2루간으로 치우쳐야 한다. 유격수의 어깨가 좋다면 깊은 3-유간으로 옮겨도 된다. 발이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3루수도 뒤로 물러나야 한다. 좌익수는 좌중간으로 조금 옮긴다. 중견수와 우익수는 우중간을 좁힌다.

6. 수입 및 선수 가치[편집]



6.1. KBO 리그 시절 연도별 연봉 및 계약금[편집]


김태균의 연도별 연봉 및 계약금
연도
연봉
계약금
비고
2001년
1,500만
1억 6,000만
-
2002년
4,000만
-
2003년
3,500만
2004년
1억 500만
2005년
1억 5,500만
2006년
2억 4,000만
2007년
3억 1,000만
2008년
2억 9,000만
2009년
4억 2,000만
1기 누적: 18억 1,500만
2012년
15억
-
2013년
15억
2014년
15억
2015년
15억
2016년
16억
20억
1차 FA
2017년
16억
2018년
16억
2019년
16억
2020년
5억
5억
2차 FA
2기 누적: 154억
통산
금액 총액
18시즌
172억 1,500만

단일시즌 연봉은 김광현이 81억을 받으며 1위를 차지했지만, 누적수입은 2019년까지 국내에서 두 번의 FA계약을 한 김태균이 더 많다. 현역 시절 KBO에서 계약으로만 벌어들인 금액은 172.15억으로 이중 연봉은 145.55억이다. 한편 김태균의 일본프로야구에서의 수입은 인센티브 포함 최대 7억엔이었으나 2011년 중도퇴단한 고로 얼마만큼 수령했는지는 모른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2017년까지 KBO리그 야구선수 연봉/계약금 누적수입 1위: 김태균(161억 7,500만원)
  • 2017년까지 KBO리그를 경험한 야구선수 중 누적수입 1위: 박찬호(약 998억원)
  • 2017년까지 한국인 야구선수 중 누적수입 1위: 박찬호(약 998억원)[34]
  • 2017년까지 KBO리그 2년이상 경험한 한국인 야구선수 중 누적수입 1위: 이승엽(KBO리그 수입 약 90억원, NPB에서 요미우리와 4년간 30억엔 계약)


6.2. 연봉 오버페이 관련[편집]


2012년 일본에서 한화로 복귀하면서 15억을 받게 된 뒤 수년간 압도적인 차이로 연봉 1위를 계속 마크하면서 그 때부터 늘 따라다니게 된 표현이 연봉값을 못하는 타자라는 꼬리표였다. 15억씩이나 받으면서 홈런도 못치는 똑딱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는 연봉 차이에 비해 놓치고 있는 부분이 김태균은 일본에서 돌아온 뒤 4년간 FA 계약 대상이 아닌 관계로 계약금 없이 1년 단위 계약을 갱신하며 연봉만 15억씩 수령하였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2012년부터 4년간 60억짜리 FA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계약금 포함 4년 50억원 이상의 대형 FA계약이 종료된 적이 있는 선수들의 연봉과 그 기간 동안의 합산 War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5]

김태균과 고액 FA 계약 타자 sWar 비교
선수
계약 규모
계약 기간 sWar
전체 금액/계약 기간 sWar
김태균
4년 60억
(2012~15년)
19.76
약 3억 400만
이택근
4년 50억
(2012~15년)
12.04
약 4억 1,500만
김주찬
4년 50억[36]
(2013~16년)
11.07
약 4억 5,200만
강민호
4년 75억
(2014~17년)
10.21
약 7억 3,500만
정근우
4년 70억
(2014~17년)
11.82
약 5억 9,200만
이용규
4년 67억
(2014~17년)
5.03
약 13억 3,200만
이종욱
4년 50억
(2014~17년)
7.58
약 6억 6,000만
박용택
4년 50억
(2015~18년)
11.92
약 4억 2,000만
최정
4년 86억
(2015~18년)
19.13
약 4억 5,000만

보다시피 최정과 비교적 계약 규모가 작은 박용택 정도만 12~15시즌 김태균의 가치와 비견될 수준이고, 2012년부터 작년까지 활약한 4년짜리 대형 FA중에 최정 말고는 누구도 김태균보다 나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연봉 대비 김태균보다 좋은 성적을 올린 타자들이 존재할 수 있으나[37][38], 적어도 FA 선수들의 계약금까지 감안한다면 2012~15 시즌 동안 연봉값을 전혀 못한 먹튀 수준의 타자는 절대 아니라고 불 수 있다.

2016년에 체결한 4년 84억 계약 역시 지금까지의 리그 탑클래스 활약과 원팀 프랜차이즈, 그것도 충청도 출신의 성골 한화맨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크게 과한 지출이라고 보기 어렵다. 성적 역시 계약 첫 해 전경기 출장 및 sWar 5.5를 기록하는 등 홈런을 제외하고 리그에서 최상위권 타격을 보여줬고, 손꼽는 매우 뛰어난 타자 중 하나로 MVP 폼의 최형우가 없었다면, 타율, 안타, 타점, 출루율 부문 4관왕으로 MVP를 타도 손색 없을 시즌이었다.[39]

하지만 이후 3시즌 sWar을 합친 게 고작 4.93으로 2016년 한 해의 sWar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FA 기간 4년간 sWar 10.43을 기록하면서 먹튀가 됐다.

2020년 2차 FA 당시 1년 10억(보장 연봉 5억, 옵션 5억)에 재계약을 하면서 또 한번 오버페이 논란이 일어났지만, 말년+프랜차이즈 대우를 해줬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과는 sWar이 -0.34를 기록하면서 에이징 커브 직격탄을 맞으며 시즌 중 은퇴했다.

물론 김태균의 연봉에 대한 이슈가 집중적으로 나온 것은 15억 연봉으로 주목받은 2012~15 시즌까지의 일이었고, 이 시기 받은 비난이 매우 부당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그렇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2016~19 시즌 1차 FA 당시에는 이보다 심한 오버페이의 선례가 많아서 비교적 비난은 적게 받았다.


7. 이대호 vs 김태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대호 vs 김태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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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태균/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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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창기 김태균 데뷔 때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꽤나 용모가 괜찮았다. 지금 모습을 보면 상상이 안 가지만 한때 별명이 대전 장동건이었을 정도로 소녀팬들에게서 인기가 좋았다. 신인 때에 비해 몸이 불긴 했지만 그나마 좀 괜찮았던 2005~6년경 김태균 리즈짤들. 아래 사진은 2006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날 찍은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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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T.K.KIM 이라는 별명을 밀고 있어서 응원가에도 TK라는 말을 넣었으나 이로 인해 TK 출신이라는 개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 한화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다가 2019 시즌부터는 팀 내 최고참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후배들과 격식없이 지내는 편이다.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장비를 나눠주고 갓 1군에 올라온 후배들에게 자주 식사도 함께 한다고. 어느날 장운호한테 깔려 있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고,[40] 정은원에게 장난을 치거나 본인이 경기 중 실수를 하면 자책하고 팀 분위기를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편. 절대 군기 잡을 사람은 아니라는 게 한화 팬들의 총평이다.# 이런 본인의 성격 탓에 군기반장 역할은 송광민이 해 온 듯 하다. 하지만 송광민도 성격이 온화한 편인데다 한용덕 감독 또한 선수들을 풀어 주는 편이라 2018년 한화는 굉장히 팀 분위기가 자유분방했다는 듯. 그렇다고 해서 선배들한테는 잘 못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한화를 거친 김태균의 선배인 선수들은 하나같이 김태균이 선배한테 참 잘한다고 칭찬했다.

  • 매우 뛰어난 기량을 지녔으나 선수 본인이 베테랑이 된 시점에 한화 이글스가 암흑기를 겪었을 뿐더러 많은 돈을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까는 인터넷 여론이 합쳐져 기량에 걸맞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이다.[41] 이는 2012년 한화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로 인한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지만[42] 과거 젊은 시절 장종훈과 프랜차이즈 타자 간판을 바꿔 다는 과정에서 장종훈이 김태균에 밀려 은퇴한다는 프레임이 생겨나 장종훈을 응원하던 올드 팬들에게 찍힌 게 매우 크다. 보통 김태균이 어이없이 까이는 기사의 댓글 작성 내역들을 보면 모두 응원 연차가 상당한 올드 팬들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화팬들의 대다수들은 이러한 기조를 상당히 싫어하고 있다. 젊은팬층이 많은 SNS 내의 김태균 관련 소식에는 당연히 저평가하는 움직임과 이유없이 까는 댓글들이 없고,[43] 당장 구단 내 유니폼 마킹 TOP 순위권에서 김태균은 1위에서 내려온 적이 거의 없었다.[44] 하지만 포털 사이트 댓글창의 특징상 대다수가 나이가 있는 팬층과 고정적인 인원이 매번 상주하다보니 소수의 억지가 다수의 의견으로 보여지게 된다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 #,#,# 이것들을 보면 알겠지만 진짜 터무니없는 이유로 까인다.[45]




  • 흔히 '야추루틴' 등으로 불리는 특유의 타격루틴이 있다. 방망이를 사타구니 밑에 넣어 우뚝 세우고 장갑 찍찍이를 떼었다 붙인 다음 헬멧을 고쳐 쓰고 불알 밑에 끼웠던 방망이를 끄집어내어 방망이로 바닥을 톡톡 몇 번 짚고 허리를 그윽하게 한바퀴 돌려준 다음 손목스냅으로 방망이를 한두번 돌린 후 어깨에 걸치고 유혹하듯 까딱거리며 엉덩이를 쭉 빼서 자세를 낮추고는 섹시하게 씰룩거려주는 한화 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따라해보고 싶어지는 마성의 자세. 흔히 타격루틴 길기로 유명한 박한이보다도 더 길다.

  • 과거엔 헬멧 더러운 걸로 유명해서 기사까지 난 적이 있었다. MLB에선 크레이그 비지오 등이 하는 것으로 배트를 손에 고정시키기 위해 송진을 바르는 경우가 있는데, 헬멧에 발라놓고 헬멧을 손으로 문지르는 식으로 손에 바르는 것. 스틱 형태로 나온 제품을 손에 직접 바르는 타자도 있고, 헬멧에 발라놓는 선수도 있는데 헬멧에 발라놓고 손으로 머리를 만져서 묻히면 손을 보면서 바르지 않아도 되어서 대기타석에 있을 때 투수의 투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면서 끈끈이를 바를 수 있어 좋다고. 김주찬, 최준석 등이 비슷하게 헬멧파였으나 이 둘은 소속팀이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라 검은색과 남색, 비교적 어두운 헬멧이라 티가 덜 나는데 비해 김태균은 주황색 헬멧을 착용해서 유독 확 티가 나서 더럽고 녹슨 듯 꼬질꼬질한 헬멧, 소위 말하는 매니 라미레즈 헬멧의 대명사로 유명했다. 이것도 야구 팬들 사이에선 일종의 빈티지 스타일로 씹는 담배나 니커보커 스타킹처럼 하나의 멋으로 인정받았었는데, 이 스타일의 한국내 대표처럼 여겨진 것이 김태균. 이후 한화가 헬멧 색깔을 검은색으로 바꾸고 김주찬이 빨간 헬멧을 쓰는 기아로 이적하면서 한동안은 김주찬이 더러운 헬멧으로 더 유명해졌던 시기도 있었다. 이후 2010년대 후반부터는 최준석은 은퇴, 김주찬과 김태균은 스틱형에서 최근 등장한 스프레이 캔 형태의 제품으로 갈아타서 이젠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젊은 선수들은 광나는 깔끔한 헬멧을 선호해서 더러운 헬멧은 미국에 비해 비주류파라, 더 간편한 형태의 제품이 등장한 이상 앞으로는 더더욱 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까지 지저분한 헬멧을 고수했던 선수는 나이가 좀 있는 용병선수였던 KIA의 버나디나.


  • 그가 은퇴한 이후 순수하게 그의 성향을 물려받은 후배는 없으나 볼넷을 얻어내는 능력은 정은원이, 장타력과 타점 생산력은 노시환이 물려받았다.


  • 형제자매로는 누나가 한명 있다. 과거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가 한창이었던 당시에 누나가 아들을 낳았는데, 김태균이 홈런을 치자 미국 현지 중계진이 누나의 출산을 축하하는 중계 멘트를 친 적 있다. 그 이유는 경기 진행전 김태균이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는게 아쉬워서 통역을 데리고 중계진을 찾아 누나의 출산을 축하하는 멘트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중계진은 김태균에게 홈런을 치면 해주겠다고 승낙했고, 진짜 김태균이 홈런을 때려내면서 나온 것. 이때 나온 별명들이 김삼촌, 김전파, 김축포, 김청탁, 김통역, 김부탁, 김대동, 김방문. 와중에 누나는 천안 본가에 있는데 미국 방송에 부탁을 해서 그런 부탁을 한줄 몰랐다고 한다.

  • 왓챠에서 촬영한 클럽하우스를 통해 현재 한화 이글스 프런트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했다.[46]

  •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하여 밝힌 내용에 따르면 원래 야구라는 종목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원래 야구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시켜서 얼떨결에 한 것이라 야구부에서 도망치고 잡혀오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본인의 길이 야구임을 깨달아서 결국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야구라는 종목에 대한 애정은 부족해서 타 팀의 사정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타 팀에 대한 정보는 동료들에게 질문해서 겨우 해결했다고 한다.

  • 현주엽과 같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운동부 둘이 왔어요> 2023년 6월 28일 업로드 분에서 본인이 밝히길 김해 김씨 양반이다라고 말했다.

  • 자신의 생일에 본인의 등번호 52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9.1. 별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태균/별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래는 별명이 많은 타자였지만, 2012년 연봉에서 따온 15억짜리 시리즈[47]를 사용해서 2012년부턴 그다지 다양한 별명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 2012년부턴 별명택에게 별명제조능력이 점점 밀리는 것 같다. 2014년에는 FA 시장의 거품으로 인해 연봉 15억이 오히려 적은 거 아니냐며 재평가 받으면서 김저렴 시리즈가 유행했다. 현재 시각에서 보자면 김태군에게 별명을 붙히는 것은 일종의 으로서 자리잡았었다고 볼 수 있다.


10. 관련 문서[편집]


[1] 한화 이글스 역대 영구 결번 선수 중에서 유일한 충청남도 출신이자 한화그룹이 운영하는 북일고등학교 졸업자다.[2] 2011년 3월 방재학부 지반방재공학 전공, 2016년 3월 건설안전방재공학과, 2022년 3월 건설안전공학과를 거쳐 2023년 3월 재난안전공학과로 개칭되었다.[3] 한화 이글스대전대학교와 양해각서를 체결해 선수 활동을 하면서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으며 송창식, 윤규진 등도 같이 입학했다. 다만 대학원 과정까지 수료한 선수는 김태균이 유일하다.[4] 2022년 3월 건강검진 기준, 현역 시절에는 107kg 정도였으나 은퇴 후 10kg정도 쪘다고 한다.[5] 운동부 둘이 왔어요에서 몸무게를 쟀을 때 122kg였다고 밝혔다.[6] 선수생활 대부분을 1루수로 보냈다. 한동안 지명타자로 주로 나오다가 20시즌에 약 5년만에 전업 1루수로 돌아왔지만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KBO 2014경기 중 1372경기, NPB 172경기 중 163경기로 통산 2186경기 중 1535경기 출전)[7] 국내 복귀 이후 그 비중이 높아지다가 2016년부터 1루수로 로사리오가 주로 출전하면서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2018년부터는 사실상 전업 지명타자에 가까웠다.[8] 신인 시절인 2001년과 2002년에 주로 3루수로 뛰었다. 이후에는 이범호송광민이 3루수를 보면서 거의 1루수로 고정이었지만, 시즌 후 캠프 때마다 3루수 연습을 하거나 가끔 경기 후반 1루수에서 3루수로 옮겨 수비했다.[9] 실제 선수 은퇴는 2020년에 했지만, 은퇴식이 있던 2021년 5월 29일 대전 SSG전 은퇴경기 특별엔트리를 통해 4번타자 1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경기 개시 직후 노시환과 교체됐다. 그리고 이 사례가 KBO 은퇴경기 특별엔트리 1호이다.[10] 네이버스포츠와 함께 진행하는 야구 칼럼[11] 동명이인 개그맨 김태균과 같이하는 야구 유튜브[12] 현주엽과 같이하는 먹방 유튜브[13] KBO 누적 통산 야수 WAR 순위[14] 출루율은 실질적으로 김태균을 상징하는 스탯으로 KBO에서 장효조와 함께 유이하게 출루율왕을 4차례 차지하였다.[15] 양준혁과 할푼리까진 .421로 같지만 모에서 살짝 밀린다.[16] 2018년까지만해도 전체 2위, 현역 1위였으나 2년간 부진으로 인한 하락과 박민우가 3천타석을 채우며 6위까지 밀리게 되었다.[17] 은퇴 시점 기준 KBO 역대 통산 타자 WAR 순위 4위[18] 보통 그 팀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선수 대부분이 정말 성적이 처참할 정도로 무너져서 도저히 현역으로 뛸 수 없단 판정을 받게 될 때까지 뛰는 경우가 많다 보니 김태균 정도의 경력자가 이렇게 시즌 중에 그만두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19] 부인 김석류의 전 직장이기도 하다.[20] 4월 3일 SSG vs 롯데 경기가 정규리그 첫 해설이 될 뻔했으나 해당 경기가 우천순연되면서 무산되었다.[21] 9회말 박정현이 어이없이 번트실패를 하자 "연습을 안하나요?", "지금 한화는 덕아웃에서 감독, 코치, 선수 다 따로 놀고 있다." 등의 팬들도 순간 놀랄 정도의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하주석이 수비에서 계속해서 미스를 하자 "하주석은 팀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타격보다는 수비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 수비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하주석의 가치는 계속 낮아지는 거다"라고 친정팀 후배에게 애정어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22] 다만 좋은 실력에도 간판급까진 가지 않고 있는데 본인이 방송 활동이나 개인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 해설로써 큰 욕심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대신 KBS에선 박용택을 간판급으로 밀어주고 있다.[23] 사실 선수시절에도 후배들과 장난을 자주 치는 편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 당시 한화의 군기반장은 송광민정현석이었다고 한다.[24] 하필 해설위원한 자리가 KBS다.[25] 문상철, 김동엽, 송우현[26] 단 첫째인 효린이의 경우 초등학생이라 초반에만 등장하고 거의 둘째 하린이 위주로 출연하였다.[27] 타격 이론 중 대표적으로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승엽과 같이 무게 중심을 이동하여 타격하는 찰리 로의 타격 이론과 김태균처럼 하체의 중심 이동 없이 허리의 회전하여 타격하는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 이론이 있다. 후자의 경우 몸에 반동을 주지 않고 바로 스윙을 하기 때문에 공을 오래 볼 수 있어 정교한 타격이 가능하고 허리 회전으로 힘이 실려 장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장타를 만들기 위해 허리, 옆구리에 강한 힘을 요구하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크고 김태균 같은 경우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기 타율과 장타율을 크게 까먹었다.[28] 세부적으로 조금 더 뛰어난 수준이 아닌 한 클래스가 더 높은 타자를 의미하는 것이다.[29] KBO 역사상 김태균과 비교되는 우타자들인 이만수, 장종훈, 김동주, 심정수, 최정, 박병호, 그리고 동세대 라이벌인 이대호 등과 비교해서 KBO 내에서의 기록과 달성한 업적을 놓고본다면, 김태균은 결코 이들에게 뒤처지지는 않는다.[30] 2000년대엔 각자 팀의 4번 타자이자 국가대표 1루수로서 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리를 구축하며 리그 최고의 우타자로 사실상의 동급 취급을 받았다가 김태균의 부상 후유증과 NPB에서의 실패, 이대호의 7관왕과 NPB에서의 성공과 MLB 진출로 2010년대엔 이대호의 확실한 우위로 굳혀졌다. 김태균도 이대호가 한수위임을 쿨하게 인정하였고, 이대호를 대한민국 역사상 손꼽히는 최고의 타자 중 한명이라고 평가한다.[31] 이 발언이 욕먹는 이유는 본인의 발언과는 달리 정말 팀과 동료가 없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데도 괜히 한일 감정을 유도하는 듯한 언플을 했기 때문이다. [32] 김태균이 일본에서 뛰던 시절 주전포수였던 사토자키 토모야는 본인의 유튜브 방송에서 일본인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던 용병으로 프랭크 볼릭과 함께 김태균을 꼽았다. 따지고 보면 김태균이 먼저 말 안 하고 다가가지 않은 것이 크다. 거기다가 니시오카 등 김태균에게 먼저 다가가서 챙겨준 선수들도 있었음에도 저런다는건...[33] 뮬렌 감독은 2013 시즌 사도스키가 소속돼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마이너리그팀의 타격코치였다.[34] 단, 추신수가 텍사스와의 7년 1억 3,000만달러 계약기간을 모두 채운다면 추신수가 역전한다.[35] 스탯티즈 기준[36] FA 일수를 충족하지 못하여 2017 시즌 종료 후 FA 재자격 획득[37] 박경수, 김경언처럼 수준 이하의 커리어를 보내고 높지 않은 금액을 받았지만 예상치 못한 잠재력을 터뜨린 케이스 말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38] 그나마도 12~15시즌 합산 War 5위[39] 물론 니퍼트의 다승, 방어율, 승률 3관왕+우승 프리미엄이 더해져 못 탔을 확률이 높긴 하다. 실제로 니퍼트처럼 3관왕(타율, 안타, 타점)을 수상한 최형우는 sWar 2정도 높았는데도 수상하지 못했다.[40] 이건 아마 근육이 쑤셔 눌러달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긴 하다.[41] 더 웃긴 건 자팀 지역 성골이자 꾸준히 높은 스탯을 내주는 프랜차이즈 타자인데도 쉴드쳐주는 팬이 많이 없다. 네이버 댓글을 보면 3할을 치든 2~30 홈런을 치든 100타점 이상을 올리든 말든 무조건 까이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이유는 아래에 서술.[42] 이대호는 포스트시즌도 몇 차례 출전한데다, MLB 진출, 도쿄 대첩의 화룡점정 등 실적이 쌓여서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43] 이마저도 가끔 네이버 댓글과 같이 이유없이 억지로 까이는 댓글들이 있는데 프로필을 들어가보면 역시 중장년층인 것을 볼 수 있다.[44] 2016년, 2019년을 제외하면 관련 기록 집계 이후 매년 1위였다.[45] 발 느려서 볼넷 나가봐야 소용 없다는 이유로 까이는데, 그렇다고 못 나가면 또 못 나간다고 까일 것이다.[46] 특히 두산 베어스키움 히어로즈를 예시로 언급하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한화 이글스 프런트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47] 김태균이 안타를 치면 15억짜리 안타, 홈런치면 15억짜리 홈런, 땅볼치면 15억짜리 땅볼, 삼진을 당하면 15억짜리 삼진,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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