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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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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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파일:천안시 축구단 엠블럼.svg

5대







김태영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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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K리그1 로고.svg

2002 · 2003


김태영의 기타 정보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Korea Football Association

파일:발라드림김태영.png

이름
김태영
金太映 | Kim Tae-Young

출생
1970년 11월 8일 (53세)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0cm, 73kg, O형[2]
주발
오른발 (양발)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레프트백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학력
녹동초등학교 (졸업)
고흥중학교 (졸업)
금호고등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학사)
소속
선수
국민은행 축구단 (1993~1995)
전남 드래곤즈 (1995~2005)
코치
관동대학교 (2006~2007)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09)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9~2012 / 수석 코치)
울산 현대 (2013)
대한민국 대표팀 (2013~2014)
전남 드래곤즈 (2015 / 수석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7~2018)
감독
천안시 축구단 (2020~2022)
행정
대한축구협회 (2023~ / 사회공헌위원장)
국가대표
105경기 3골 (대한민국 / 1992~2004)
가족
아내, 아들, 딸
서명
파일:김태영서명.pn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2.3. 플레이 스타일
3. 수상
3.1. 대회 기록
3.2. 개인 수상
3.3. 수훈
4. 통산 기록
4.1. 국가대표
5. 지도자 경력
5.1. 코치 경력
6. 행정가 경력
7. 해설자 경력
8. 논란
8.1. 천안시 축구단 감독 근무 태만 논란
10. 여담



1. 개요[편집]


다음 게임, 광주에서 스페인 반드시 또 잡겠습니다. 국민들(께서), 성원해주십시오.

2002년 6월 18일, 이탈리아전 승리 직후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전남 드래곤즈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투혼을 보여주며 4강 신화에 기여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2012년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수비 코치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동메달) 수상에 기여했다.

2020년부터 K3리그 천안시 축구단의 감독을 맡았고 2022년 8월 3일, 경질되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전남 드래곤즈 (1995~2005)[편집]


파일:4e22c1db6d094255a1c042985b76d656.jpg

동아대학교를 졸업한 후 K리그 드래프트에 반감을 가져 드래프트 참가하지 않았다. 만약 드래프트에 참가했다면 1993년 당시 신생팀인 완산 푸마에 지명될 것이 유력했기 때문에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대학을 졸업한 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하던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이후 1994년 11월 전남 드래곤즈가 창단 선언을 하자, 당시 이미 국민은행 소속으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던 김태영은 고향 팀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이미 실업리그에서 2년을 뛰었고,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던 김태영은 당시 신생팀이던 전남 수비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1997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경기에 대거 이탈했으나, 복귀하면서 다시 팀 수비를 안정화 시켰고, 팀의 리그 준우승과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을 이끌며 팀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팀의 첫 번째 전성기의 시작을 연 것이다. 김봉길이 은퇴한 이후에는 팀의 주장 역할을 맡았다. 1997년 FA컵 우승 자격으로 참가한 1998-1999 아시안 컵 위너스컵에서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는 활약을 했다.

이후 팀이 부진에 빠진데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 부임 이후 소속팀을 떠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훈련하는 시간이 잦아지자, 주장 완장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2003년까지 팀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팀을 지켰다. 그러나, 2004 시즌 중반 무릎 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오랜 기간 이탈했고, 이는 2005 시즌 은퇴로 이어졌다. 2005년 11월 6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광양 홈 경기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고향 팀인 전남에서만 11년을 뛴, 전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K리그에서만 201경기에 나서서 4골 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리그컵 49경기 3도움, FA컵 14경기에 출전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VC
· 7 김태영 · 8 최태욱
9 설기현 · 10 이영표 · 11 최용수 · 12 김병지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이민성 · 16 차두리
17 윤정환 · 18 황선홍 · 19 안정환 · 20 홍명보

C
· 21 박지성 · 22 송종국 · 23 최은성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6677aa; font-size: 0.8em"
감독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거스 히딩크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항서
스태프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국가대표로는 A매치 105경기에 나서서 3골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5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주전 수비수로 출전했다.

1992년 10월 21일, UAE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1993년 3월 9일, 캐나다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이후 미국 월드컵 1차 예선에서 활약한 이후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졌다가 1996년 3월에야 다시 선발되었다.

1997년 차범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 꾸준하게 대표팀에 선발되어 수비진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 명단에 승선하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홍명보, 최진철과 함께 3백을 형성해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에 일조했다.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3] 이탈리아전 당시에는 코칭스태프들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까봐 골절 사실을 숨기고 단순 타박상이라고 알려줘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4]

결국 보호대를 착용해 다음 경기에 나섰고, 이러한 모습이 인상을 남기며 마스크맨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현재까지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많은 축구팬들이 기억하고 있다.[5][6]

파일:external/68.media.tumblr.com/tumblr_oj0czu0iP71v87nl3o1_400.jpg
김태영의 마스크

파일:jpnmaskman.jpg
미야모토의 마스크

이 당시에 제작한 타이거 마스크는 은퇴 후 김태영 선수의 아내가 액자를 짜 왔고 그 액자에 보관한 상태로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한다.[7]

8강전 스페인전에서는 전반 5분 18초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볼을 걷어내려던 김태영의 뒤로 쇄도하며 백태클로 다리를 가격하여 걸어 넘어트렸다. 다리 사이로 두 다리를 끼어넣어 여차하면 다리가 그대로 꺾일 수 있는, 마치 포르투갈전 주앙 핀투가 저지른 반칙과 상당히 유사했지만 핀투와는 다르게 모리엔테스는 카드는 커녕 파울조차 받지 않았다.


파일:모리엔테스 백태클.jpg

파일:모리엔테스 김태영 가격 2.jpg
파일:모리엔테스 김태영 반칙.jpg


이에 그치지 않고 6분 47초에는 또다시 김태영에게 달려들며 어깨 잡고 목을 짓누르고 엎어트리기까지 했으나, 주심은 파울 선언에 그치는 불이익을 당했다.

그러나 4강 독일전에서 결승골 실점의 빌미가 된 패스 미스를 범한 흑역사도 있다.[8][9]

여담으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룸살롱 마담들을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남성적인 매력이 있다는 것이었다.[10] 하지만, 설문조사가 진행된 2002년 당시 김태영 선수가 거의 30대 중반이었던만큼, 그 연령대의 선수를 냉정한 외국인 사령탑이 눈도장 찍을 정도면, 어머니, 부인 등 가족들의 철저한 내조가 뒷받침되었다고 보는게 옳다.

2003년 코엘류호 출범 이후에도 유상철, 최진철과 함께 수비 라인을 형성하여 2004년 본프레레호 출범 이후 2004 AFC 아시안컵 중국에도 선발되어 7월 19일 요르단과의 16강 조별리그 첫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11][12] 김태영은 독일 월드컵 출전도 내심 노렸으나 많은 나이로 인한 노쇠화와 2004년부터 잦은 부상을 겪기 시작해 회복 이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리며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왔다. 결국 국가대표에 대한 미련을 접고 2004년 12월 대표팀에서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

2.3. 플레이 스타일[편집]


현역 시절 아파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거친 수비로 유명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 내내 퇴장 기록은 없고, 경고 또한 33번에 불과할 정도로 깨끗한 수비를 선보인 선수. 정작 파이터 이미지는 없던 최진철이 K리그 경고 2위를 마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축구화에 일부러 쇠로 된 징을 박아, 경기장 입장할 때부터 상대 선수에게 쇳소리를 들려주며 위압감을 심어줬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양발을 자유자제로 쓰는 수비수로 유명했다. 원래 왼발을 못 썼지만 파울로 말디니처럼 죽어라 연습해서 왼발을 잘 쓸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노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자서전에서, 평소에는 오른발을 주로 쓰는데 페널티킥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왼발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유럽에도 드문 케이스라고 회고한 기록이 있다. 이 덕분에 월드컵 당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고, 실제 오퍼도 몇 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뉴캐슬 측이 나이가 너무 많다며 턱없이 낮은 이적료를 부르는 바람에 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14]

180cm이라는 센터백으로서는 작은 키[15]를 지녔지만, 김태영은 대인마크 능력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자신의 작은 키를 커버했다. 당시 크리스티안 비에리라는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에게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경기를 뛰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투지와 끈질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또한 김태영은 수비수로서 스피드가 빠른 편이고 수비집중력이 높아서 대인마크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최진철과 홍명보의 스피드라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지만 윙백으로도 일가견이 많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윙백으로 출전했다.[16]

[17]
스페인 전에 라인이 뚫려 침투하던 루이스 엔리케를 끝까지 쫓아가 마크하는 장면은 김태영의 플레이의 백미. 작은 키지만 운동능력이 뛰어나 제공권이 제법 뛰어난 편이었고, 상술한대로 속도와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그야말로 한국의 '칸나바로'와 같은 스타일이라 볼수 있다.


3. 수상[편집]



3.1. 대회 기록[편집]





3.2. 개인 수상[편집]


  • K리그 베스트 XI: 2002, 2003
  • K리그 대상 공로상: 2005
  • K리그 30주년 베스트 XI: 2013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2002
  • 푸마-스투 프로축구 베스트 11 특별상: 2005


3.3. 수훈[편집]




4. 통산 기록[편집]



4.1. 국가대표[편집]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17
0
0
U-20
0
0
U-23
0
0
A대표
105
3
종합기록
105
3


5. 지도자 경력[편집]



5.1. 코치 경력[편집]


2006년 관동대학교 축구부 코치를 거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각급 코치를 역임하면서 홍명보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2009 U-20 월드컵 8강 6위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이후 울산 현대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이후 홍명보의 부름을 받고 A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종료 후 부진한 결과를 책임지고 홍명보가 물러나면서 같이 물러났다.

2014년 12월 15일 노상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였으나, 2015 시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했다. 이후 홍명보를 따라 항저우 뤼청행이 거론되었지만, 홍명보를 따라가지 않고 해설가로 활동하였다. 전남 수석 코치 당시 감독(노상래)-수석코치(김태영)-선수(김병지)가 모두 70년생 동갑내기 친구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2016년 6월 태국 프리미어 리그로 갓 승격한 팀인 파타야 유나이티드 FC의 감독 제안을 받았지만 선수단 구성, 환경적인 문제가 많아 감독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bluewings.kr/7d5151af28319ffef10f7b86031acbac.jpg

2016년 12월 12일 이운재와 함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U-20 대표팀 시절 같은 코치였던 서정원 감독과 재회하였고, 2018시즌까지 활동하였다.


5.2. 천안시 축구단 감독[편집]



파일:2021김태영.png

2020시즌을 앞두고 당성증 전 감독의 후임으로 K3리그 참가팀 천안시 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계약기간은 최소 기간 2년, 최대 3년까지이며 연봉은 역대 천안 감독 중 최고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임 감독 당성증이 구단을 떠난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던 만큼 천안시 축구단 팬들의 인식은 썩 좋지 못했다.

2020년 K3리그에서는 최종순위 11위로 삐걱거렸지만, 2021년 K3리그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2021년 9월에 천안시 축구단과 2023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21년 K3리그 정규리그에서 승점 54점으로 당시 K3리그 한 시즌 최다 승점 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K3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경기에서 극장골을 허용하며 준우승을 거두었다.

2022년 K3리그에서는 시즌 중반까지 2승 8무 6패로 16개팀 중 15위에 그치며 K3리그 강등권을 맴돌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후술할 근무 태만 논란까지 겹치면서 구단 입장에서는 감독을 좋게 볼 수 없었다.

2023년부터는 천안시 축구단이 K리그2에 참가하는 만큼 과연 프로화 이후에도 김태영이 팀을 맡아도 되는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2022년 8월 3일, 경질되었다.[18]


6. 행정가 경력[편집]


2023년 5월 1일, 승부조작범 날치기 사면 파동으로 이사회가 물갈이된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7. 해설자 경력[편집]


2006 FIFA 월드컵 독일 당시에는 여성 국제심판인 임은주[19]와 함께 MBC에서 해설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전남 코치에서 사임한 후 2016년에 MBC의 축구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이후 MBC에서는 하차했으며, 2016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SBS에 축구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8. 논란[편집]



8.1. 천안시 축구단 감독 근무 태만 논란[편집]


2022년 김현회 기자가 김태영의 감독직 외의 잦은 예능 프로 출연 등에 대해 근무 태만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우려를 기사를 통해 드러냈는데, 2022년 기준 김태영은 천안시 축구단 감독을 비롯해서 무려 3개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 중 2개는 ‘지금 굳이 맡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표했다.[20]

2022년 7월 기준 천안시 축구단은 K3리그 16개 팀 중 15위에 머물러 있는 K3리그 강등권이었는데, 그런 심각한 상황 속에 팀의 감독은 각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고, 여성 연예인들의 팀을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 부적절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입장이었다.

심지어, 한창 시즌 중에 본인 고향인 고흥군수 선거 유세에도 참석해 송귀근 후보 지원유세에 참여하기도 하며 팬들로부터도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되었다.[21]#

물론 김태영 감독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예능 프로에 출연하거나 정치 활동 등을 할 수는 있으나 본업은 어디까지나 K3리그 천안시 축구단 선수들 지도인 만큼 이는 자칫 근무 태만으로도 보일 수도 있으며, 특히 당시 천안시 축구단이 2023시즌부터 K리그2에 입성한다는 점인데, 당장 내년 봄부터 프로 팀 전환이라는 중대한 상황 속에서 이 팀의 수장은 너무 팀을 자주 비우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었다.

당장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이 부진해 깊은 시름에 빠졌던 경남FC 설기현 감독과 성남FC 김남일 감독이 쏟아지는 예능 프로그램 섭외를 거절하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주년 행사 참석도 최소한으로 줄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영표강원 FC 대표이사 재직 단시 부진한 상황 속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이에 이영표는 팀 홍보 차원이라 반론한 바 있으며,[22]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 액셔니스타 감독과 선수로 인연을 맺은 최여진이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이영표 감독님은 구단 업무 때문에 바쁠 때면 거의 훈련에 나오지 않으시고 선수들에게 자율훈련을 지시하셨다"고 증언할 정도로 예능은 부업이고, CEO가 본업이라는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김태영의 경우 이영표 처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팀의 홍보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섭외도 ‘천안시 축구단 감독’보다는 ‘2002년 레전드’에 맞춰져 있다.

김태영 감독은 지금 천안시 축구단에 집중해 성적을 내야 할 때다. 지금 이 모습은 천안시 축구단의 팬들과 축구인들에게 상처만 주는 행동이다. 만일 K리그1의 인기 상위권 구단이 팀 성적이 바닥을 기는데 팀 운영에 집중을 안하고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 축구팀 두 개의 감독을 맡아 고정 출연하고 있다면 이건 당장 경질 당해도 할 말 없는 일이며, 경질뿐 아니라 팬들과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을 만한 심각한 일이다.

한국프로축구에서 관습처럼 내려오는 온정주의에 따라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은 상호합의 또는 자진 사퇴로 계약을 종료하여 소위 아름다운 이별의 형식으로 팀을 떠나지만 김태영 감독은 결국 이례적으로 경질되었다.


9.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 2 ~[편집]



[ 선수 명단 ]
MC
이수근
배성재
FC 액셔니스타

NO.8

정혜인
MF | 주장

NO.10

이혜정
FW

NO.11

문지인
MF

NO.250

이채영
GK

NO.1

박하나
FW

NO.14

김용지
MF
감독: 김태영 / 코치: 전재홍
FC 월드 클라쓰

NO.452

사오리
FW | 주장

NO.14

나티
FW

NO.01

케시
DF

NO.13

애기
MF

NO.8

이야누
GK

NO.720

카라인
DF
감독: 오범석 / 코치: 이태호
FC 구척장신

NO.100

이현이
FW | 주장

NO.18

김진경
MF

NO.1

허경희
MF

NO.21

진정선
GK

NO.66

차서린
FW

NO.22

요요
-
감독: 하석주 / 코치: 안동혁
FC 불나비

NO.10

안혜경
GK | 주장

NO.99

박가령
DF

NO.20

채연
FW

NO.0

강보람
MF

NO.32

이주리
FW

NO.21

이승연
DF
감독: 백지훈 / 코치: 김기수
FC 국대 패밀리

NO.1

김수연
DF | 주장

NO.9

명서현
GK

NO.10

박승희
DF

NO.11

황희정
FW

NO.17

나미해
MF

NO.690

김민지
MF
감독: 김병지 / 코치: 김종원
FC 스트리밍파이터

NO.67

일주어터
GK | 주장

NO.707

깡미
DF

NO.23

심으뜸
FW

NO.777

앙예원
MF

NO.01

진절미
DF

NO.5

히밥
MF
감독: 이을용 / 코치: 김상균
FC 원더우먼

NO.23

김희정
DF | 주장

NO.10

키썸
GK

NO.7

김가영
FW

NO.31

김설희
DF

NO.11

트루디
FW

NO.13

소유미
FW
감독: 정대세 / 코치: 정주일
FC 탑걸

NO.3

채리나
DF | 주장

NO.111

유빈
DF

NO.2

김보경
FW

NO.59

다영
FW

NO.21

공민지
MF

NO.00

태미
GK
감독: 최진철 / 코치: 이원영
FC 아나콘다

NO.5

오정연
GK | 주장

NO.10

윤태진
MF

NO.11

노윤주
FW

NO.101

배혜지
DF

NO.12

이나연
DF

NO.20

박지혜
DF | 임대선수
감독: 이영표 / 코치: 김현수
FC 발라드림

NO.7

경서
MF | 주장

NO.10

서기
DF

NO.27

민서
GK

NO.3

서문탁
DF

NO.24

리사
FW

NO.95

케이시
DF
감독: 최성용 / 코치: 최승호
FC 개벤져스

NO.7

조혜련
GK | 주장

NO.34

김민경
FW

NO.5

오나미
FW

NO.35

김혜선
MF

NO.13

김승혜
MF

NO.48

이은형
DF
감독: 조재진 / 코치: 정종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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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불나방
NO.18
강경헌
MF
파일럿
NO.18
신효범
DF
파일럿 ~ 시즌 2 (슈퍼리그)
NO.2
조하나
MF
파일럿
FW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NO.37
서동주
FW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DF
시즌 2 (승강 PO)
NO.7
송은영
MF
파일럿
FW
시즌 1
NO.4
DF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3 (챌린지리그)
NO.7
박선영
MF | 1대 주장
파일럿 ~ 시즌 2 (프리시즌)
NO.30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NO.77
홍수아
FW
시즌 2 (승강 PO) ~ 시즌 4 (슈퍼리그)
NO.88
강소연
MF
시즌 3 (챌린지리그) ~ 제1회 SBS컵
NO.33
윤수현
FW
제1회 SBS컵
NO.78
한초임
FW
감독
이천수

파일럿 ~ 시즌 1
하석주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2 (승강 PO)
현영민

시즌 3 (챌린지리그)
조재진

시즌 4 (슈퍼리그)
코치
문경민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2 (승강 PO)
정종봉

시즌 3 (챌린지리그)
원용진

시즌 4 (슈퍼리그)
FC 국대 패밀리
NO.11
한채아
MF
파일럿
FW | 2대 주장
시즌 1
NO.14
[[FC 국대 패밀리#심하은|{{{#fff 심하은}}}]]
DF
파일럿 ~ 시즌 2 (프리시즌)
NO.3
남현희
DF | 1대 주장
시즌 1
NO.19
[[FC 국대 패밀리/이정은|{{{#fff 이정은}}}]]
MF
시즌 2 (슈퍼리그)
NO.21
[[FC 국대 패밀리#이희영|{{{#fff 이희영}}}]]
MF
시즌 3 (슈퍼리그)
NO.3
[[전미라/골 때리는 그녀들|{{{#fff 전미라}}}]]
FW
파일럿
FW | 임대선수
시즌 1
FW | 3대 주장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NO.8
[[양은지/골 때리는 그녀들|{{{#fff 양은지}}}]]
GK
시즌 1 ~ 시즌 3 (슈퍼리그)
NO.123
곽민정
FW
시즌 2 (슈퍼리그) ~ 시즌 4 (챌린지리그)
감독
조재진

시즌 2 (슈퍼리그)
김병지

파일럿 ~ 시즌 1, 시즌 3 (슈퍼리그)
김태영

시즌 4 (챌린지리그)
코치
원용진

시즌 2 (슈퍼리그)
이준원

시즌 3 (슈퍼리그)
김종원

시즌 3 (슈퍼리그)
전재홍

시즌 4 (챌린지리그)
FC 개벤져스
NO.7
이성미
DF
파일럿
매니저
시즌 1
NO.11
이경실
FW
파일럿 ~ 시즌 1
NO.02
안영미
DF
파일럿 ~ 시즌 1
NO.80
신봉선
MF
파일럿
FW | 1대 주장
시즌 1
NO.74
허민
GK | 임대선수
시즌 4 (슈퍼리그) ~ 제1회 SBS컵
감독
황선홍

파일럿 ~ 시즌 1
김병지

시즌 2 (리그) ~ 시즌 2 (슈퍼리그)
이영표

시즌 3 (챌린지리그) ~ 시즌 4 (승강 PO)
코치
배정현

시즌 2 (리그) ~ 시즌 4 (승강 PO)
원용진

제1회 SBS컵
FC 구척장신
NO.1
송경아
MF
파일럿
NO.12
진아름
FW
파일럿
NO.9
한혜진
MF
파일럿
NO.14
FW | 1대 주장
시즌 1
NO.11
[[차수민(모델)/골 때리는 그녀들|{{{#000 차수민}}}]]
DF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NO.3
아이린
GK
파일럿 ~ 시즌 3 (슈퍼리그)
NO.7
송해나
DF
파일럿 ~ 제1회 SBS컵
감독
최진철

파일럿
최용수

시즌 1
백지훈

시즌 2 (리그) ~ 시즌 2 (슈퍼리그)
오범석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코치
김태현

시즌 2 (리그)
박태윤

시즌 2 (슈퍼리그)
오창현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FC 월드 클라쓰
NO.7
구잘
FW
시즌 1
NO.77
아비가일
FW
시즌 1
NO.00
마리아
DF
시즌 1
NO.23
에바
DF | 1대 주장
시즌 1 ~ 제1회 SBS컵
NO.119
엘로디
MF
시즌 1 ~ 제1회 SBS컵
NO.27
라라
DF
시즌 2 (슈퍼리그) ~ 제1회 SBS컵
감독
최진철

시즌 1, 시즌 2 (슈퍼리그)
이을용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코치
서영덕

시즌 2 (슈퍼리그)
김상균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FC 액셔니스타
NO.9
이미도
DF | 1대 주장
시즌 1
NO.7
지이수
FW
시즌 1
NO.41
김재화
FW
시즌 1
DF
시즌 2 (리그)
NO.14
장진희
GK | +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NO.10
최여진
FW | 2대 주장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NO.1
최윤영
DF
시즌 2 (슈퍼리그)
FW
시즌 3 (슈퍼리그)
MF
시즌 4 (슈퍼리그)
NO.02
이영진
DF | 3대 주장
시즌 2 (리그) ~ 제1회 SBS컵
감독
이영표

시즌 1 ~ 시즌 2 (슈퍼리그)
백지훈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코치
황인욱

시즌 2 (리그)
김병채

시즌 2 (슈퍼리그)
김기수

시즌 3 (슈퍼리그) ~ 시즌 4 (슈퍼리그)
FC 원더우먼
NO.7
송소희
FW
시즌 2 (리그)
NO.1
황소윤
FW
시즌 2 (리그)
NO.110
치타
DF | +
시즌 2 (리그)
NO.11
주명
DF | 임대선수
시즌 2 (리그)
NO.819
박슬기
DF | 1대 주장
시즌 2 (리그)
DF
시즌 2 (챌린지리그)
NO.81
요니P
GK
시즌 2 (리그)
GK | 2대 주장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챌린지리그)
NO.8
에이미
FW
시즌 3 (챌린지리그) ~ 시즌4 (챌린지리그)
NO.29
홍자
FW
시즌 2 (챌린지리그) ~ 제1회 SBS컵
감독
이천수

시즌 2 (리그)
오범석

시즌 2 (챌린지리그)
하석주

시즌 3 (챌린지리그) ~ 시즌 4 (챌린지리그)
코치
심서연

시즌 2 (리그)
오창현

시즌 2 (챌린지리그)
문경민

시즌 3 (챌린지리그) ~ 시즌 4 (챌린지리그)
FC 탑걸
NO.9
바다
DF
시즌 2 (리그)
NO.22
문별
FW
시즌 2 (리그) ~ 시즌 2 (챌린지리그)
NO.7
간미연
FW
시즌 2 (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NO.99
아유미
GK
시즌 2 (리그) ~ 제1회 SBS컵
감독
최성용

시즌 2 (챌린지리그)
김병지

시즌 4 (슈퍼리그)
코치
이범직

시즌 2 (리그)
최승호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김종원

시즌 4 (슈퍼리그)
FC 아나콘다
NO.1
신아영
DF | 1대 주장
시즌 2 (리그)
NO.82
최은경
DF
시즌 2 (리그)
NO.77
차해리
MF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챌린지리그)
NO.10
김다영
DF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챌린지리그)
NO.23
박은영
FW
시즌 2 (리그)
FW | 2대 주장
시즌 2 (챌린지리그)
NO.8
주시은
DF
시즌 2 (리그) ~ 제1회 SBS컵
감독
현영민

시즌 2 (리그) ~ 시즌 2 (챌린지리그)
조재진

시즌 3 (챌린지리그)
코치
정종봉

시즌 2 (리그) ~ 시즌 2 (챌린지리그)
원용진

시즌 3 (챌린지리그)
FC 발라드림
NO.4
박기영
GK | 1대 주장
시즌 2 (챌린지리그)
NO.36
알리
DF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NO.5
손승연
DF
시즌 2 (챌린지리그)
DF | 2대 주장
시즌 3 (슈퍼리그)
감독
김태영

시즌 2 (챌린지리그) ~ 시즌 3 (슈퍼리그)
정대세

시즌 4 (챌린지리그)
코치
김종현

시즌 2 (챌린지리그)
전재홍

시즌 3 (슈퍼리그)
정주일

시즌 4 (챌린지리그)
FC 스트리밍파이터
NO.22
이수날
FW
시즌 4 (챌린지리그) ~ 제1회 SBS컵
감독
최진철

시즌 4 (챌린지리그) ~ 시즌 4 (승강 PO)
코치
황인성

시즌 4 (챌린지리그) ~ 시즌 4 (승강 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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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1970)/골 때리는 그녀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여담[편집]



  • 2002년 월드컵 때 등번호 7번을 달고 활약했다. 10번 못지 않은 7번의 상징성과 그의 포지션을 감안했을 때 등번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10번을 이영표에게 배정하였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김태영에게 이 등번호를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23][24]

  • 이을용의 증언에 의하면 겉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착하고 깔끔한 성격이라고 한다. 후배랑 방을 같이 써도 본인이 청소 다 하고 빨래를 칼같이 갠다고 한다. 이처럼 솔선수범하는 자세에 뛰어난 프로 의식을 갖춰 거스 히딩크와 동료 선수들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며, 히딩크호의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송귀근 전 고흥군수랑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2022년 지방선거 때는 김태영이 직접 선거 유세에 참여해 "국가대표는 국가대표를 알아본다"며 "송귀근 후보는 국가대표급 군수다"고 치켜 세우며 송귀근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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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이에 윤석영은 "2002월드컵 4강 - 이영표, 김태영, 최진철, 송종국. 2012올림픽 동메달 - 윤석영, 김영권, 김창수 그리고 아쉽게 빠진 홍정호. 이상 모두 혈액형 O형. 그 외 최고의 수비력 박지성 O형"이라고 적었다. 누가 봐도 최 감독의 인터뷰에 대해 반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사[3] 당시 부상을 낸 축구 선수는 바로 크리스티안 비에리.[4] 이천수의 유튜브에 나와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김태영이 코뼈가 부러진 사실을 알면 상대팀 공격수에게 보복성 플레이를 가할까봐 미리 팀닥터와 이야기를 한 후 타박상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5] 이 타이거 마스크에는 비화가 있는데, 당시 대표팀 의료진은 김태영과 똑같이 코뼈 부상을 당했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인 미야모토 츠네야스가 특수 제작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온 것을 떠올렸고, J리그 소속이었던 유상철이 일본의 마스크 제작업자를 수소문하게 된다. 다행히 연락이 닿아 이탈리아전 다음날 새벽에 일본에서 제작자 두 명이 한국으로 날아와 김태영의 얼굴 본을 뜬 뒤 10시간 만에 마스크를 만들 수 있었다.[6] 공교롭게도 이로부터 20년 후 UEFA 챔피언스 리그마르세유와의 조별리그에서 마르세유 소속 선수 음벰바와의 충돌로 손흥민이 안면에 부상을 당하여 김태영과 유사한 형태의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 출전할 것을 결의한 바 있다. 두 선수의 국가대표 등번호도 7번으로 같다.[7] 2016년 피파 온라인 3 2002 레전드 리턴즈 이벤트로 찍었던 영상에서 오랜만에 쓰고 나왔다.[8] 다만 이 실점은 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민성, 홍명보, 유상철의 책임도 있었다.[9] 당시 영상을 자세히 보면 패스 미스를 한 선수의 등번호가 7번이다.[10] 사실, 김태영 코치의 고향인 고흥군은 옛날부터 완력이 좋은 장사들을 배출하기로 이름이 있는 곳이다. 호남에서는 여수시에서 돈자랑하지 말고, 고흥군에서 힘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지금도 전해진다.[11] 요르단전 이후 무릎 부상을 당해 남은 대회를 소화하지 못했고, 김태영의 빈 자리는 당시 전남 시절 동료였던 만 19세의 김진규가 출전했다. 김진규는 어린 나이로 인한 경험 부족을 제대로 드러내어 8강 이란전에서 이영표와 함께 수비 불안을 노출하여 3:4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12] 무릎 부상만 아니었다면 2004 아시안컵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13]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얌전한 플레이를 많이 했던 2002 히딩크호 멤버들에게 더 거칠고 쎈 플레이를 하라고 끊임없이 자극했던 히딩크 감독이 김태영에게만큼은 살살 하라고 다독였다고 한다.[14] 만약 이적이 성사되었다면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가 나왔을 판이었다.[15] 당시 동아시아 기준으로 작은 키는 아니다. 당시 일본 수비의 정신적 지주였던 미야모토 츠네야스가 176cm였고 히딩크호 출범 초기 황태자로 불리웠던 송종국은 175cm의 신장으로 히딩크호의 중앙수비(스위퍼)를 담당했다. 단, 180cm 이하의 센터백이 드물지 않았다는 것이지 당시 K리그에서도 안익수, 이임생, 최영일 등 상당수의 센터백들은 180cm 초반대 이상이었고, 유럽의 센터백들은 지금의 센터백들과 큰 차이가 없는 거구들이 즐비했다.[16] 그래서 그런지 피파 온라인 4에서는 김태영을 센터백 포지션보다 윙백이나 풀백 포지션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능력치가 한 단계 더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17] 후반전 41분 1초에 엔리케가 김태영과 몸싸움과정에서 김 태영의 등을 밀어 넘어뜨리고도 카드 및 파울이 없었다.(1994 미국 월드컵 한국VS스페인(무승부) 당시 엔리케는 홍명보를 뒤에서 밀어 넘어뜨려서 경고 받았던 것과 대조된다.) 자세한 내용은 히딩크호/스페인전 참조 파일:2002 엔리케 반칙 사진.jpg파일:94 엔리케 경고.gif[18] 조성용 천안시 축구단 유소년 총괄 디렉터가 감독대행을 맡게 된다.[19] 강원 FC 대표이사와 FC 안양의 단장 및 야구의 키움 히어로즈 단장을 지냈던 그 분 맞다.[20] 각 군부대를 돌며 경기를 펼치는 tvn 예능 프로그램 <전설이 떴다 군대스리가>에서 감독을 맡고 있고 7월부터는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도 새롭게 감독을 맡았다.[21] 차라리 천안시장 선거면 '예산 따오려고 저러나보다'라고 이해라도 가는데, 4월 이후 2개월 동안 팀이 무승인 시기에 천안시에서 한참 떨어진 고흥군까지 내려가 선거를 도와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임은 분명하다.[22] 실제로도 이영표의 경우 골때녀 멤버들을 강원 홈경기에 초청한 적도 있고, 쿠팡이 강원 FC 스폰서를 맡는다는 조건 하에 토트넘 내한 경기 해설위원을 맡을 정도로 강원 FC에 대한 진심을 여러 군데에서 엿볼 수 있었다.[23] 2004년 김태영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후 7번은 2005년부터 박지성이 이어받게 되면서 한국 국대의 에이스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고, 현재는 손흥민이 이 등번호의 주인이다.[24] 먼 훗날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김태영처럼 7번을 달게 된 수비수가 있었는데, 바로 첼시 FC로 떠난 라힘 스털링의 등번호를 이어받은 풀백 주앙 칸셀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