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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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했던 좌완 투수. 現 kt wiz 코치. 등번호는 28번.[1]
2. 선수 경력[편집]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양준혁과는 대구상고 동기다. 최고 147km/h의 빠른 공을 던지는[2] 그 당시 보기 드문 좌완 파이어볼러였기 때문에, 투수난에 허덕이던 삼성은 대학 최고의 타자인 양준혁 대신 김태한을 1차 지명했다. 거친 폼을 가진 투수가 많았던 당시 기준으로 매우 깔끔하고 간결한 폼을 가지고 있었으나, 제구력이 좋지 않고 몸이 늦게 풀리는 타입이라 구위에 비해 위기를 자초하는 타입이었다. 속구만 따지면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강력한 속구를 받칠 만한 변화구가 없었고,[3] 이후 부상 등으로 속구 구위가 떨어지면서 롱런하지 못했다.
1993년부터 박충식, 김상엽과 함께 삼성 마운드 트로이카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1993년 한국시리즈 2차전 때 삼성 라이온즈 투수로서는 최초로 한국시리즈 완봉승을 따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완봉승은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좌완투수 완봉승 기록이다. 1995년에는 선발에서 마무리로 보직을 바꿨다. 다만 이 시기에 스트라이크 낫 아웃 사건을 터뜨려 백인천 감독의 혈압을 왕창 올려 놨다.
1998 시즌 중 군 입대가 확정되어 30세의 나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고, 소집 해제 후 2000년부터 중간계투로 전환했으나 공익 복무로 인해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던 탓인지 입대 전보다 하락세를 보였다. 2001 시즌 후 6:2 현금 트레이드(김기태, 김동수, 김상진, 김태한, 이용훈, 정경배+현금↔틸슨 브리또, 오상민)로 SK 와이번스에 이적했고[4] , 2003 시즌 후 SK에서 방출되어 은퇴했다.[5]
3. 지도자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김태한/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해설위원 경력[편집]
2019 시즌 후 삼성에서 나온 뒤 대구 지역방송인 TBC 드림FM의 라디오 중계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어 2020년에는 1시즌 동안 해설가로 활동했다.#
해설위원 경험도 없는 사람을 TBC에서 앉힌 이유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목소리. 낮으면서도 굵은.. 그러니까 전형적인 아저씨스러운 목소리인데, TBC는 과거 이동수 해설위원 이후 이동수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야구인을 라디오 해설위원으로 써오고 있다. 왜냐면, 야구중계 라디오를 주로 듣는 연령층이 30대 이상의 남성인데, 김태한의 전형적인 아저씨 목소리가 동질감과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설위원 목소리에 최대한 변함을 주지 않음으로서 듣는 사람에게 익숙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김대진 캐스터와의 목소리 궁합 때문이다. 김대진 아나운서는 현재 10년 넘게 TBC 드림FM 프로야구 캐스터를 전담하고 있는데, 해설위원이 몇 번 바뀔 동안 10년 넘게 캐스터 자리에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김대진 아나운서를 바꿀 수 없으니 해설진들도 김대진 아나운서와 궁합이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로는 2019년까지 삼성 투수코치를 맡은 것에서 오는 전문성이다.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어느 정도 선수의 컨디션이나 구질을 파악하는 해설을 해주는데, 해설의 질이 TBC 역대 해설위원 중에서는 높은 편이다. 삼갤에서는 드디어 적성을 찾았다는 반응.
김태한 이전에 TBC에 있었던 두 해설위원이 각각 7년씩 오래 해왔기 때문에 김태한도 현장에서 오퍼가 없는 이상 그만큼 해줄 가능성이 높았으나, 1년만에 현장의 오퍼를 받으며 2020 시즌 후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후임 해설위원으로는 최경환이 영입됐다.
5. 기타[편집]
딱히 좋은 별명은 없으며, 사사방 등에선 돌태한이나 개태한 등으로 씹히는 게 일상다반사다. 삼갤도 비슷했으나, 어느 정도 재평가된 2016년 말부터는 투수 교체시에 나오는 곡 제목에서 따와 주로 봄바예라고 부른다.[6]
6. 연도별 성적[편집]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 투수 기록
- 타자 기록
7. 관련 문서[편집]
[1] 과거에는 김일융, 안지만이 사용했다. 최근까지는 박근홍이 사용하다가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 현재는 이병헌이 사용 중.[2] 물론 마무리로 등판했을 경우이며, 선발로 올라왔을 때는 140km/h대 초반을 던졌다.[3] 슬라이더보다 주로 커브를 구사하였으나 위력이 그다지 없었고, 제구도 잘 되지 않았다.[4] 이 시절에 한번 찍힌 선수는 가차없이 내치는 것으로 유명한 김응용 감독에게 항명했다가 당시 감독과 손발이 잘 맞았던 프런트와 그룹 고위층한테도 찍혔다는 설이 있다.[5] 이때 김상진과 서로 위로할 겸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전화로 김상진 본인에게도 방출 통보가 왔다고 한다. 그 전화를 받고 나서 김태한에게 자신도 위로해 달라고 말했다는 웃픈 상황이 되어버렸다고.[6] 안토니오 이노키 테마곡을 Sid-B가 샘플링한 노래이다.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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