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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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
金漢率 | Kim Han-sol

파일:kim hansol.jpg
출생
1995년 6월 16일 (28세)
평안남도 평양시
(現 평양시)
본관
전주 김씨
국적
[[북한|

북한
display: none; display: 북한"
행정구
]]
→ [[포르투갈|

포르투갈
display: none; display: 포르투갈"
행정구
]]

신체
178cm
학력
보스니아 국제학교 (졸업)
UWC 모스타르 캠퍼스
파리 정치대학 르아브르 캠퍼스 (졸업)
가족
아버지 김정남, 어머니 이혜경
남동생 2명 여동생 1명
증조부 김일성, 증조모 김정숙, 김성애
조부 김정일 , 조모 성혜림
숙부 김정철, 김정은 [1]
숙모 리설주, 친종제 김주애
고모 김여정
친척
작은친할아버지 김평일
친고모할머니 김경희, 김경숙, 김경진
친고모할아버지 장성택
당숙 김인강, 당고모 김은송, 고당고모 장금송
작은친증조할아버지 김철주, 김영주
친당숙할아버지 김정현, 친당고모할머니 김영성
증조당숙할아버지 김창주, 김원주, 김봉주
친이증조할아버지 김성갑, 김성호
1. 개요
2. 출생
3. 행보
4. 여담



1. 개요[편집]


북한정치인 가문의 후손. 김일성의 장증손자, 김정일장손이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장남이다.

현재 국적은 북한포르투갈 이중국적. 의외라면 의외로 북한은 복수국적을 금지하는 법이 없으며 본격적으로 매체에 언급되던 시기에 갖고 있던 국적이다. 현재는 망명했으므로, 망명국의 국적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정남 피살 이후 김한솔을 대피시킨 자유조선에이드리언 홍 창, 크리스토퍼 안이 인터뷰에서 김한솔을 최종적으로 미국 CIA가 데려갔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했을 가능성이 높다.[2]


2. 출생[편집]


김일성 일가의 장손이지만 적자는 아니고 어머니는 김정남의 본처가 아닌 동거녀인 이혜경이다. 사족으로 김한솔의 아버지인 김정남도 김정일의 사생아다. 김정남의 생모는 당시 유부녀였던 성혜림으로, 성혜림과 김정일은 정식 혼인 관계인 적이 없었다. 다만 김정일이 생에 처음 본 자식이자 장자였기에 어린 시절엔 예비 황태자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북한이 왕조국가나 다름없다고는 해도 진짜 봉건왕조처럼 유교적 종법을 철저하게 따르는 국가는 아니기 때문에 김정남이나 김한솔이나 본처 소생이 아니더라도 취급은 왕조국가에서 말하는 적장자 그 자체였다.

김한솔의 형제로는 동복 여동생 김솔희, 김정남의 본처 신정희의 아들인 차남 김금솔, 다른 첩인 장길선의 아들인 삼남 김이순이 있다. 그러니까 여동생 빼고 남동생 둘이 다 어머니가 다른 셈. 본처의 자식이 아니라서 그런지 어린 시절부터 외가에서 비밀스럽게 자랐으며 자신의 할아버지가 김정일이란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백두혈통이란 걸 모르고 북한의 평범한 보통 사람처럼 자란 셈. 외가가 시골의 평범한 집안이었기 때문에 북한 일반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이 때 얻었던 것으로 보이며,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김한솔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김한솔은 부계 혈통으로만 따진다면 초대 김일성장남장남장남이라는 엄청난 로열 블러드다.[3] 게다가 김정일은 적녀로 추정되는 딸들(홍일천 소생 김혜경, 김영숙 소생 김설송, 김춘송) 말고는 정실부인에게서 난 아들이 한 명도 없었다. 이 딸들 역시 생사 여부와 존재 여부가 불분명하다. 사실 진짜 왕조국가였던 조선왕조 기준으로 봐도 정비 소생 적자가 있어도 위로 장남이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측실 소생 형이 있으면 왕위 계승에 위협이 될 정도로 장남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대표적인 예가 고종영보당 이씨의 아들 완화군이다. 게다가 김정일의 아들들은 죄다 사생아였으니, 적자 서자 논란은 애초에 있을 수가 없었고 장남인지 차남인지에 따라 서열이 갈렸다.


3. 행보[편집]


2011년 가을에 본격적으로 정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스니아에서 영어권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SNS를 통해 김정은을 비웃는 합성 사진을 올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굶고 있는데 나만 호의호식하는 게 미안하다"라는 등 사리 분별력 있는 언행을 올린 것이 보도되었다.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있는지 K-POP 영상을 링크해 둔 기록도 발견되었다. 이 당시 자신을 향해 질문 세례를 퍼붓는 기자들에게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응하였다고 한다.


핀란드 공영방송 YLE와의 인터뷰 내용.

2012년 10월 핀란드 공영방송 YLE와의 인터뷰로 주목받았다. 아버지 김정남이 가난한 인민들을 항상 생각하라고 가르쳐 왔으며,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남북통일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한다. 마카오에서 국제학교를 다닐 때 친하게 지냈으며, 서로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북한에 대해 인도주의적인 프로젝트(Humanitarian project)에 참여하여 인민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삼촌(김정은)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 난 정말 모른다"라며 김정은을 가리켜 독재자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나는 통일을 꿈꾼다. 남북한 중 어느 한쪽으로는 갈 수 없고, 친구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는 항상 언젠가 북한에 돌아가 좋은 영향을 미치고 그곳 사람들이 모두 살기 좋아지게 할 수 있기를 꿈꿔왔다."라고 말했다.

김한솔의 여러 발언이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것으로 비쳐서 저러다 김정은이 암살대를 보내는 것 아니냐고도 하고, 암살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 아니냐는 설이 돌기도 했다.

2013년 6월 국제학교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UWC) 모스타르 분교를 졸업하고# 8월 프랑스의 그랑제꼴 중 하나인 파리 정치대학에 입학한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대고모부(고모할아버지)인 장성택김정은에게 사형당한 뒤 잠깐 잠적했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주변인들도 이를 알고 있는지 동양인이 김한솔을 찾으면 바로 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아 프랑스 경찰이 자주 오는 모양. 그의 행적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도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받아 신고를 받고 출동한 프랑스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

2014년 10월 연합뉴스TV의 끈질긴 취재에 "그만하시죠"라는 한마디를 남겼는데, 문자로만 보면 그만 좀 귀찮게 하라는 표현이지만 실제로는 웃으면서 예의있게 한마디 던진 것이었다. 물론 기자들이 너무 붙는건 원하진 않는 모양. 이에 대해 일부 기자들은 김한솔이 자신의 옷차림에 굉장히 신경쓰기 때문에 그만하라고(?) 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기도 했다는데,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을 봤을 때 단정한 옷차림의 모습이 찍혀있기 때문이라나.. 알아서 판단하자.

한국어를 구사할 때 억양은 대한민국 표준어 억양에 가깝게 말한다.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김한솔은 오랜 해외 유학 생활을 하면서 접한 한국인 친구들과도 별 위화감 없이 지냈다고 하며 한국의 문화 매체 또한 자주 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 영어 억양은 옛날 인터뷰 영상에서는 미국 억양에 가까운데 2010년대 이후 인터뷰 영상을 보면 r발음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는 등 어투가 좀 바뀌었다. 사실 평양 기준 문화어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남한의 서울 지방의 표준어와 억양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흔히 북한 말투하면 생각하는 말투들은 평안도, 함경도같은 더 위쪽 말투다.

프랑스에서의 학업을 끝내고, 아버지 등 가족들이 체류했던 중국이나 마카오 등지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서 학업을 마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과정에 입학할 예정이었다는 보도도 있지만, 당사자의 현재 상황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고, 옥스퍼드대 측에서도 확인된 바 없으니 루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후 언론 보도에 의하면 영국 유학을 준비하였다가 포기한 것은 사실이었다는 보도가 있긴 했다.


3.1. 망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한솔/망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여담[편집]


종교는 불명인데 십자가 금목걸이를 한 사진이 있어서 기독교 신자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물론 기독교 신자까진 아니고 단순 패션일 수도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7 02:33:46에 나무위키 김한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버지의 원수이기도 하다.[2] 또한 워싱턴에서 김한솔을 봤다는 제보도 있다. 따라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은 것.[3] 부친 김정남은 김씨 일가의 사람이고 한때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위치였으므로 본처 외에 도 최소 셋 정도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본처 신정희 외에 이혜경, 장길선, 서영라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