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정치인)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이다. 호는 일천(一泉)이다. 선친이 제헌 국회의원 김용재(金用在), 동생이 전 서울 강북구청장 김현풍이다. 본관은 김해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요한 보스코이다.
1939년, 충청남도 당진군(현 당진시)에서 태어났다. 보인상업고등학교(30회),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당진군-서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심현직 후보와 신민당 한영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한영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장기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외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남도 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통일국민당 송영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 해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선출되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이종찬 등과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새한국당을 창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육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직을 역임하였다. 1999년 자유민주연합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정계 은퇴 이후 국민행동본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의 보수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 및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전면개정을 비난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였다.
대표적으로 광우병 촛불집회에 미사를 진행한 정의구현사제단의 행동을 비난하는 내용을 본인이 대표로 있는 뜻있는 가톨릭 모임의 이름으로 조선일보 등에 광고로 게재하였으며, 공정택 서울특별시 교육감 후보 사무실에서 "전교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은 흔들린다."라는 색깔론 발언을 했다.
이어 2011년 6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맡았다.
2. 선거이력[편집]
3.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7 05:16:30에 나무위키 김현욱(정치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